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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8화 〉탐식마(貪食魔) (388/429)



〈 388화 〉탐식마(貪食魔)

세아는 부끄러움을 먹는 걸로 풀기라도 할 것처럼 전투적으로 식사를 했으나,
그 뒤에는 별 얘기를 하지 못하고 자리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현이 이야기 하는 동안 내내 울었다가 잠깐 그쳤다가, 다시 눈물을 쏟아내고 하는 통에 진이 다 빠져버린 것이다.
다시 이야기를 재개한 지 5분 만에 자신이 잠들기 직전까지 갔다는 걸 알게  세아는 내일 계속 해줄 수 있냐고 물었고,
류 현은 그러자고 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하루 종일 울기만 한 누이를 두고 가는게 못내 불안하여,
쉽사리 발길을 떼지 못하고  번이고 세아를 돌아본 끝에 돌아간 것이었지만.

다음날에는 세아가 먼저 깨서 류 현을 찾아왔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새벽에.
꽤 이른 시간인지라 류 현은 제대로 잤는지 의심을 했지만, 세아의 성화를 밀어내진 못했다.


전날보다는 훨씬 이완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설명을 위해서 풀어야하는 부분은 전부 말해놔서 세아의 질문에 대꾸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아침은 동이 터올 무렵 대강 빵 하나를 나눠먹는 식으로 해결하고,
점심때까지 느긋하게 질문을 주고받았다.


세아가  현을 보고 생긴 의문점에 대해서 전생과의 연관점을 물으면 류 현이 대꾸하고, 세아가  것에 대해서 묻고 듣는 식으로.
거기에 중간 중간에 장난이 끼어들자 그리 많은 말을 나누지 않고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류 현은 시계를 보고는 어제일을 떠올리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어제처럼 또 그러기 전에 내려가서 밥 먹자. 안 내려가고 내내 여기 박혀있으니까. 화련 씨가 걱정하는  같더라.”
“아, 어제도 살피다가 내려갔었지.”
“어, 자꾸 밑에서 모르는 사람이 돌아다니는 거 같기도 하고 한 번 얼굴은 비추는 게 맞는 거 같아.  그래도 계속 보고서 올라오는  커트 중인  같은데. 그냥 올려도 된다고 했었는데...”
“그러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식당으로 내려갔더니 얼굴을 아는 이들이 죄다 놀란 눈을 했다.
무슨 문제가 생겨서 내려오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었던 모양.


둘 다 그런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라 식사에나 열중했다.

밥을 거의 다 먹었을 때쯤 백혜라와 같이 내려온 승하가 그들을 보고,
“어!”하고 소리를 질렀다가 백혜라에게 끌려 나가는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문제가 되진 않았다.
오히려 세아는 웃는 얼굴로 끌려나가는 승하를 곁눈질하며 물었다.

“...얘기 한 거 같지?”
“아마도. 얘기 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은 이미 넘어섰었고. 승하가 자꾸 안 끌었으면 내가 말했을 거야. 여태 그냥 있어준 게 용할 정도지.”
“맞아, 혜라 쟤도 오러 버프 받았다면서. 왜 난 안 된다는 거니?”
“누나 마력량이나 경험이 백혜라 씨랑 비교도 안 된다니까.”
“팀에는 잘  써먹고 있다면서.”
“아니 그건...”


류 현은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생각해도 정말로 억지를 위해서 이런 저런 말을 끌어다쓰고 있는 꼴이었으니까.
‘구엘 뒤 굴락’으로부터 오러버프의 권능을 뜯어내고 바로 사용했을 때는 그런 고려가 전혀 없었다.


 현은 그게 문제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뭔가  못 된다한들 그마저도 고칠 수 있다는 자신에 차 있었다.
결과적으로 문제는커녕 그 힘으로 난적을 잡아 죽였으니 문제야 없었다.
지금 이 시점에 한참 전에 폐기된 위험성 문제를 꺼내드는 것 자체가 문제였지.

“...보는 것만으로는 안 돼?”
“그건 잘  되더라. 그것 말고도 네가  ‘강림’ 때 쓰는 검은 기운도 그렇고, 검은 안개도 솔직히 완벽하게 파악은 못 하겠어. 근데 그런 것들에 내가 접촉 해 보고 싶다고 하면 허락 해줄 거니?”
“절대  돼!”


순간 식당에 존재하던 몇 안 되는 인원들의 눈이 모두 남매를 향했다.
화련이 병동  한정으로 자유롭게 발동시킬 수 있게 해준 방음막의 한계치를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세아가 눈살을 찌푸리며  현의 팔뚝을 찰싹 쳤다.

그녀는 그대로 자리를 정리하고 그를 거의 끌다시피 하며 방으로 이끌었다.


문이 닫히자 세아가 샐쭉 눈을 흘기며 류 현에게 한 소리를 했다.


“또 싸웠다고 소문내려고 그래?”
“아니...나는...”
“...그래,   못도 크지. 그런 꼴을 전생에서 네가 봤는데 겉보기에 초연하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글러먹었...”
“그 얘기가 왜 지금 나와? 나 진짜 괜찮다니까. 남들은 가지고 싶어도  가지는 기회까지 얻었는데 내가 왜 그러겠어?”
“......”

한동안 류 현을 빤히 보기만 하던 세아는 그저 한  대신 콧김만 훅 뿜고 침대 자리를 잡았다.


“알았어. 현이  마음이 놓일 때까지 그 얘긴 안 할게.”
“그냥 안 하면  돼?”
“그건 양보  해줘. 현이 너도 네 능력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했었잖아. 그런데 다른 것도 아니고 네임드 몹의 능력을 끌어들인 건데 확실히 해야지. 지금까지 별 문제 없었다곤 해도 변수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니고. 방법이 없으면 모를까, 내가 그런 계통의 능력인데.”

 현으로선 할 말이 없었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전생, 현생 통틀어서  현이 봐온 어떤 감지계보다 뛰어나고 쉽게 파악하지 않았나.
 화련조차 이걸 어떻게 접근해볼까 고민하고 있을 때 내용물을 뜯어본  세아였다.


걸림돌이라곤 자신의 염려증뿐이었다.
말 그대로 별 다른 근거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트라우마를 원동력으로 끊임없이 존재를 키우고 있는 염려증이 근거의 전부였다.

결국 류 현은 항복을 선언해야만 했다.
염려증 때문에 거부하게 된다면 세아를 걱정해서 그녀에게 걱정거리를 안겨주는 격이었다.
류 현은 다른 건 몰라도 누이에 대해서는 그런 불편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알았어. 지금 당장은 안 되고 내가 회복하고 나서 좀 있다가.”
“안 그래도 될 거 같은데...알겠어. 기다릴게.”
“...내가 듣기로는 심리적 영향도 없진 않다고들 했어. 난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네.”
“다른 것도 아니고 그냥 안심되는 느낌이라면서? 딱히 그걸 받는다고 마력 손실이나 체력 손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문제가 생기더라도 현이 너한테서 터질 확률이 높아. 그래서 한  보자는 거고.”
“알겠어. 알았으니까 이건 나중에 내가 준비되면 그 때 다시 얘기하자.”
“응, 근데 현이 너 더 안 먹어도 돼? 내가 끌고 올라오긴 했는데...”
“응?...뭐 더 먹으려면 계속 먹을 수 있긴 한데 나한테는  의미 없어. 사람들이 먹는 거 먹어봐야 칼로리 채우기도 잘 안 되고.”
“어, 그럼 더 큰 일 아냐? 너 요 며칠 동안 괴수고기도  먹었잖아. 그것도 부상도 그렇게 크게 당했었는데...”

제 오른 팔을 이리저리 주물러보는 세아를 내려다보며 류 현은 픽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억눌렀다.
가슴이 간질간질한 감각이 나쁘진 않았지만 사서 걱정하는 걸 보는 게 마음 편하진 않았다.

“그렇게까지 불편한 능력은 아니야. 왕창 먹어두면 대부분은 마력으로 치환되긴 하는데...그게 완전 마력화 되는 건 아니거든.”
“으응? 그게 무슨 뜻이야?”
“어느 정도는 칼로리화 비슷하게 해서 쌓아둘  있다는 뜻이야. 마력은 마력인데...마력검 같은데  땡겨쓰는 힘이 있거든. 처음에는 이게 말이 되나  느낌뿐인가. 싶었는데, 누나 설명 들어보니 아예 다른 공간에 빼놓나 보네. 그것 덕분인지 막 재생한다고 배고파 죽진 않아. 마력이랑 체력이 좀 빠질 뿐이지. 나만 이런  아니고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이렇게 되는 거겠지. 플레이어 됐다고 엥겔지수가 폭주했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으니까.”
“그래...? 왜 난 그런 느낌이 없지?”
“어이구, 각성한 지 얼마나 되셨다고요. 누나 각성 이후 활동이라고 해봐야 거의 병원에서 운동 좀 한 게 전부인데. 누나 몸 상태는 그냥 막 각성한 플레이어보다 약간 나은 수준이야. 소모 칼로리라고 해봐야 운동 좀 하는 일반인 수준일거고. 플레이어 활동을 안 했는데 변하면 그게 큰 문제지. 그래서 지금처럼 기량이 오른 것도 어떻게 올랐는지 미스테리 한 거고. 거의 각성하자마자 화련 씨 공간 마법을 꿰뚫어 본 것 하며...솔직히 나는 누나가 오러 버프 걱정하는 것보다 누나 상태가 더 걱정 돼. 마력도 엘릭서 마신 거 빼면 거의  늘어난 거 보면 기량만 계속 쑥쑥 크고 있는 건데...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 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오네. 그냥 고만고만하게 시력 대신할 정도였어도 충분했는데.”


세아는 말을 폭풍을 쏟아내곤 옆에 철푸덕 주저앉는 동생을 보고 살풋 미소 지었다.


“누난 지금 상태라서 다행이다 싶은 걸.”
“뭐? 아니, 나한테 오러 버프가 잠잠하다고 완전히 안심할  아니라고 해놓고는...누난 그냥 능력만 터진 게 아니라 아직도 원래 시력은 찾지도 못하고 있잖아. 그렇게 속 편하게 굴 사항이...”


벌컥 화를 내려던 류 현은 다시 끝없는 논쟁에 불이 붙을  같아 말끝을 흐렸다.
드디어 좋게좋게 분위기가 풀렸는데 입씨름으로 말아먹고 싶진 않았다.


자신의 안위 때문에 열을 내는 동생을 향해 미소를 더욱 짙게 한 세아는 나지막하게,
하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이  덕분에 조언뿐이라도 현이 너한테 말이라도 해줄  있게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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