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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7화 〉탐식마(貪食魔) (387/429)



〈 387화 〉탐식마(貪食魔)

류 현이 처음으로 회귀 사실을 고백했을  세아는 곧바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신이 기나긴 투병 끝에 결국 아지다하카의 독에 죽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도 느리게 눈을  번 깜빡이는 것으로 넘어갔으나,
류 현이 아지다하카를 쳐 죽이고 자신도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모든 반응을 멈춰버렸다.

눈 깜빡임,
호흡 때문에 잘게 오르내리던 가슴의 움직임,
 외의 산 사람이 보일 수밖에 없는 작은 움직임들을 모두 멈춰버렸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넘어서,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을 거부하려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자세히 들여다 볼 것도 없이 류 현은 곧바로 누이의 이상을 눈치 챘다.


동공은 허공을 향한 채로 멈춰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초점을 잡지 못하고 사정없이 떨렸고,
떨림을 멈추려고 왼손을 감싸 쥔 오른손도 같이 떨렸다.


방금 전까지 빛을 뿜어내던 눈으로 류 현에게 들여다보이는 것 같은 위압감을 선사했던 것이 거짓말 같은 변화였다.

떨림이 온몸으로 퍼져나가자 류 현은 더는 참지 못하고 손을 뻗었다.
그런다고 떨림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뭐라도 해주고픈 마음에서였다.

그  세아의 떨림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하지만  현은  변화에 기뻐할  없었다. 그보다  끔찍해할 반응이 바로 터져 나왔으니까.

감정이 고조되는 예열단계도 없이,
세아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그것을 효시로 세아의 눈물샘은 완전히 고장나버렸다.

눈에 이상이 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눈물이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다.
류세아는 눈물만 쏟아내었다.
그러면서도 훌쩍거리는 소리 같은, 사람이 울고 있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행동들이 전혀 없어서  현은 덜컥 겁이 날 지경이었다.

세아의 눈물에 잠깐 사고가 정지되었던 류 현이 내뻗다가 멈춘 팔을 다시 움직였다.


그보다 먼저, 그의 손이 닿기 전에 세아의 손이 팔을 잡아끌었다.
생각지도 못한 기습에 류 현은 그 품안으로 그대로 딸려 들어갔다.


“...누나?”
“...안해. 나는 그런 줄...로 몰랐...”

꽉꽉 틀어막고 있었을 뿐이라는  류 현은 저를 품안에 집어넣고도 벌벌 떨고 있는 세아를 보곤 깨달았다.
훌쩍거리는 소리나 목매인 소리가 일시에 터져 나왔다.
류 현은 잠깐 허공을 더듬거리다가, 천천히 세아의 등을 쓸어주었다.

처음에는 흠칫흠칫 놀라던 세아도 세 번 되고, 네 번이 되자 류 현이 하는 양을 편히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울음이 멈춘 건 아니었다.
 봐도 심상찮은 떨림이 조금 수그러든 정도였다.


그 와중에도 옹알이 같은 중얼거림은 계속 되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가  알아들을 걸 걱정한 양,
같은 말을 기본적으로 다섯 번씩 반복했기에 류 현은 세아가 느낀 죄스러움에 대해서 모두 들을  있었다.


그게 류 현의 이해를 돕진 못했지만 어떻게 달래야 할지의 방향성 정도는 잡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게 왜 누나가 미안해야  일이야.”
“난 괜찮아. 멀쩡해. 이거 봐, 팔에 흉터자국 하나 없잖아.”
“전에는 팔에 그냥 맨살 부분이 더 적었거든? 그래서 누나가 흉터자국 볼 때마다 울어서 이거 어떻게 없앨 수 없나 하고 별의 별 짓을 다했다니까. 부상은 이번이 전보다 훨씬  입었지. 아무 것도 없는 바닥부터 다시 시작한 게 아니었으니까.  때는 진짜 아무것도 몰라서 몸으로 떼우느라 별의 별 죽을 고비를...”
“아니, 이제 그 일은 없는 일이 됐다니까.  울고 그래? 이거 봐, 흉터자국 없잖아. 후유증이고 뭐고 다 사라진 거라니까?”
“‘비아트리체’?  얘긴 왜 갑자기...아니, 그 정도 부상이면 아픈 것보다 어질어질 한 게 더 크다니까. 통증을 다 느꼈으면 내가 이렇게 멀쩡하겠어?”
“진짜야, 의사쌤한테 같이 물어보러 갈까? 아니, 또 왜 울고 그래. 응?”
“내가 왜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하겠어? 이번에는 던전도 훨씬 적게 들어간다니까. 전에는 1년에 이거에  배는  들락거렸어. 지금은 던전 피로도도   번 밖에 안 느껴봤고. 자릿수가 다르다니까. 어? 오러 버프?...나중에 얘기 끝나면 보여줄게. 아니, 누나한테 씌우는  좀...그게 아니라, 누나는 훈련도 안 받았고 그렇잖아. 플레이어로 각성했다고 끝이 아니야. 누나 능력이 굉장하긴 한데 마력량 자체는 그냥 그렇거든. 오러 버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는 나도 정확하게 모르니까...”
“...훨씬 낫지. 애초에 승하가 등 떠밀어서 이렇게  거기도 하고. 응? 아니 왜 또? 아니, 이게 울 얘기야?”



그게 잘 풀렸다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세아는 울음을 조금 그쳤다고 생각이 될 때면 다시 울음을 터뜨리길 반복했다.
류 현이 의도적으로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배제하려고 들어도,
기어코 울 거리는 찾으려드는 것처럼 방향을 돌리거나 류 현이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류 현은 중간부터는 달래는 건 반쯤 포기하고 이야기를 빨리 끝낼 요량으로 질문을 빠르게 받아쳐내는 방향으로 선회하기로 했다.
이야기를 끊고 갈 터닝 포인트에 빨리 도달해서 조금이라도 쉬게할 생각이었다.

“...그 때는 엘릭서를  얻었어. 자세한 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는데 미국이랑 손잡고 나서도 강 찬은 코빼기도 못 봤거든. 그 사람이 만든 아티펙트는 지원 받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시점에서는 사망한 상태였지 싶어. 저렇게 정력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그렇게 조용히 박혀 있을 수가 없으니까.”
“어...뭐 그렇지? ‘터주’가 그 때처럼 군벌화 되진 못했어도 충분히 커졌다고 들었거든. 내 기억이 정확한  아니지만 아마 규모만 보면 전생보다는 훨씬 커진 거 같고. 2대 클랜도 전력이 멀쩡하니 한국에 있는 것보단 여기 있는 게 나은  같아서. 노골적으로 날뛸 구실이 아직 없는 거지 걔들이 평화주의자가 된 건 아니니까. 군인? 음...말하자면 복잡한데 경계 서는 사람들 공식적으로 군인은 아니야. 페이퍼 컴퍼니로 클랜을 세우고 협조인력을 보냈다는 식으로 기록을 남기는 거지. 버넷 씨? 아, 그 사람은 군인 됐을 걸. 훈장 받으면서 계급이...중령이라고 했나 대령이라고 했나?”
“나? 어...자유훈장인지 뭔지 준다는데 일이 바빠서 아직...아니, 그건 아니고. 솔직히 그거 주나 안 주나 별 차이는...알았어. 그 쪽도 떼먹으려고 하는 거 아니니까 그런 걱정은 마세요.”
“...맞긴 해. 대체 남 훈장 받는 일에 시위까지 하고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훈장 더 받는다고 여기로 귀화할 리가...귀화?...누나는 하고 싶어? 아니, 뭐 나야  미련 없긴 한데. 지금 이 상태가 더 나은  같아서. 미국이 잘 해주긴 해도 네임드 몹이 벌써 두 번이나 왔다갔잖아. 하나는 잠깐 들린 수준이긴 하지만. ‘살바토르’ 때  편지 아니었으면 누나 안 불러들였을 거야. 어, 그러니까 지금 이 상태가 제일 낫다고 봐.”
“언론? 내가  그런  신경 쓰...누나! 그런 거 좀 검색해서 보지 말라고 했잖아. 아 진짜...”
“응? 갑자기 화련 씨 얘기는 왜...어...좋은 사람이긴 하지? 내가 찾아갔을 때만 해도 이모님 병 수발 든다고 그러고 있었으니까.”
“어...희란 씨는 아니야.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데 뭘 어떻게 찾겠어? 그런 능력은 숨기려고 작정하면 겉으로는 티도 안 나는데. 나도 진짜 생각도 못하게 만난 거라니까. 사고가 날 줄 알았으면 내가 왜 거길 갔겠어? 바닥부터 시작하면 재생능력도 거의 없다시피 해서 부상당하면 오히려 더 오래 걸리는데.”
“승하는...전생에서는 이미 죽은 상태였지. 어, 승하도 진짜 우연히 만난 거야. 한국 최강이 그 시간에 그런 던전 근처에서 돌아다니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솔직히 위기감은  때가 최절정이었지.”
“맞아, 누나말대로야. 내가 운이 억세게 좋은 놈인 거지. 어디 가서 우연히 이런 팀을 만나겠어? 회귀도 그렇고. 아,  그래? 괜찮아진 줄 알았더니. 왜 울고...아냐, 아니 그게 아니라...난 괜찮다니까. 진짜.”


세아의 눈물바다 공세를 멈춰 세운 건 배가 우는 소리였다.
점심 무렵에 시작해서 저녁때까지 5분이 될까 말까한 짧은 휴식이 끼어있었을 뿐이고,
그것도 뭘 먹거나 하는  생각지도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세아는 제 배에서 나온 소리에 멍하니 굳어버렸고 류 현은 빵 터져선 끅끅거렸다.

세아는 끅끅거리며 배를 부여잡은 류 현을 노려볼 여유도 없이 제 배를 노려보았다. 한  더 소리를 내면 주먹질이라도 할 기세였기에 류 현은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이제 누나가 얼마나 울었는지 알겠어? 얼마나 울었으면 어제보다 더 빨리 배가 꺼졌겠어?”
“......”
“그런 눈으로 배 노려보지 말고 우리 밥 먹고 하자.  거르고 뭐하는  들키면  또 화련 씨한테 잔소리 들어.”
“...그래, 그러자.”
“근데 식당에는 못 내려가겠네. 누나 얼굴 좀 봐. 오늘도 좀 올려달라고 부탁해야겠다.”
“...나 세수하고 올 게.”

류 현은 돌아서자마자 귀가 벌겋게 달아오른 세아의 뒷모습을 보곤 속으로 킥킥거리며 식당으로 연락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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