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86화 〉탐식마(貪食魔) (386/429)



〈 386화 〉탐식마(貪食魔)
그 이후로는 이야기가 조금 겉돌았다.

류세아가  현 본인보다 그의 상태를  볼 수 있었지만 그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대한 자료라고 해봐야 류 현을 관찰하는 게 전부였으니 당연한 일.

세아가 ‘빛’이라고 칭한 것에 대해서 아직 완전히 감을 잡고 있지 못한 게 현실이었다.
대충 엘더 리치의 기억과 ‘페릭스’의 기억이 융합한 것에 ‘강림’의 기운이 작용했다고 생각하였다가,
세아의 설명이 거듭되면서 조금씩 그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일어났다는 것을 인식한 정도였다.


“어, 그럼 저번에 중동에 갔을  말했던 거랑은 좀 다른 건가?”
“뭐가?”
“그, 검은 안개가지고 말했을  그랬었잖아. ‘강림’상태가 훨씬 안정적이었다는 식으로. 그  공간을 통째로 빨아들여서 구덩이처럼 보인다고...”
“아, 그랬었지. 그 땐 내가 틀렸어. 지금도 잘은 모르지만 그 때는 더 몰랐으니까.”
“틀렸다고? 어...정확히 뭐가 틀렸다는 거야.”
“구덩이가 아니었어.   나는 이런 걸 본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제대로 분간할 능력이 없었던 거지.”
“으음...”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듣고 있는 류 현의 기분은 복잡했다.
머릿속 한 편에 밀어두었던 화련의 말이 불현  떠올랐다.


‘언니 재능은 진짜 미친 수준이에요.’
그 말이 마법적인 재능에 국한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직접 목도하게 된 것이다.

류 현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알려진다면 세상 사람들이 기막혀 하겠지만,
그 류 현이 보기에도 세아의 성장속도는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녀가 각성하고 자신의 능력을 인지한지  2년이 되질 않았는데,
1년도 안  일을  시절의 기량 부족으로 인한 실수 취급한단 말인가.

그것도 그 시점에도 누구도 실시간으로 감지하지 못한 네임드 몹, ‘페릭스’와 ‘업화의 아이들’의 존재를 혼자서만 제대로 보았던 이가.
‘페릭스’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화련조차 그러진 못했다.
 시점에서 루키라고 믿기지 않는 수준에 올라있었는데, 지금은 그 시절을 서투른 시절로 치부할 정도라니.

이건 공격능력이 없는 보조계열의 문제가 아니었다.

능력 범위가 한정적이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류 현이 아는 한 세아의 능력 범위는 세계 최정상급이었다.
희란이나 화련에 버금가는 수준.
응용능력이나 지속력은 그 둘과 비교가 안 되겠지만,
괴수와의 전투 경험은 고사하고 훈련도 제대로 안 해본 이가  가지라도 그 둘과 비교될 수 있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지벡 건터도 아티펙트로 도배를 하고 천공성의 보조를 받아가면서 해낸 일을 그녀는 혼자 해내지 않았나.
그는  세계 생중계라는 옵션을 달고 있긴 했지만 본인의 말에 따르면,
원거리 관측 자체가 문제지 중계는 ‘천공성’이 알아서 다 한 수준이라고 했다.


그러니,
‘비아트리체’와의 격돌을 아무 무리 없이 관전한 걸로 모자라  현의 내부까지 저보다  살핀 그녀는 천재라고 불리는데 부족함이 없으리라.

그 천재적인 재능을 억눌러 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류 현은 자신을 위해 그 재능을 아낌없이 발휘하고 있는 누이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숨긴다고 애를 써봤지만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왜 그래?”
“아냐, 아무것도 아냐...음, 그럼  안의  공간들 때문에 착각한 거라는 거야?”
“응, 그 때는 사람 안에 그렇게 넓은 공간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몰랐으니까. 지금도 현이 너 말고는 다른 경우를  적은 없지만.”
“‘강림’ 상태에서 주변을 장악하는 마력이 더 안정되어 보인다는 것도 바뀌는 건가? 그  무거운 거에 눌린 것처럼 안정되었다고...”
“아니, 그건 아예 분류를  못 한 거라...이걸 뭐라고 설명해야하지...”
“응? 분류를 잘 못 해?”
“효과는 똑같아. 그러니까...장악하는 건 똑같은데. 장악 속도가 엄청나게 달라. 장악하고 나서 안정화 되는 속도도 다르고. 정말 차원이 다를 정도로 달라서 그 때 잘 못 본 거야.”
“...나 지금 누나 말 반도  알아먹은 거 같은데.”
“자, 잠깐만. 여기 종이랑 펜을...”

조금 허둥대며 종이  장과 펜 하나를 올려놓은 세아는  옆에 하루 종일 끼고 있던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먼저 종이와 펜에 손을 대곤, 펜으로 대각선을 죽죽 긋더니 그 위로 다시 대각선을 그었다.
그러곤 그 위로 다시 짧은 선들을 대충대충 그었다.


“검은 안개는 이런 느낌이야. 속도가 아주 느리진 않는데 밀도가 높진 않아. 이렇게 듬성듬성. 그래서 느려 보이고 불안정해 보여. 실제로 바로 안정화에 들어가지도 않고. 하지만 이렇게 보여도 장악된 건 확실해. 상대적으로 불안정해 보일 뿐.”

종이 전체 면적의 반 이상이 검게 변하자 세아는 펜과 종이를 놓고 태블릿을 들었다.
그림 프로그램을 실행시킨 후 배경을 위아래로 반으로 가르는 선을 그은 세아는 윗부분을 검은 색으로 완전히 채워버렸다.


“‘강림’상태에서는 이렇게 돼. 빠르고 밀도도 엄청 높아 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그래서 주변이랑 비교하면 훨씬 무겁게 보여. 같은 공간 내에 마력이  배,  배로 불어난 것도 아닌데도 안정화가 되니까 주변보다 훨씬 무거워 보이는 거지. 아마 내가 잘 못 본 이유도 이것 때문 일거야. 실제로 무거워진 게 아닌데도 언뜻 보면 그렇게 보이니까. 사실 공간 내의 마력량 자체는 거의 똑같아.”
“마력량이 똑같다고? 그 안정화되기 전이랑?”
“한자리 수까지 따지면 줄었다고 해야겠지.”

그럼 주변 공간을 장악해서  촉각처럼 쓰던 감각은 뭐란 말인가.


그를 위해서 소모한 마력은?

그것까지 착각일 리가 없었다.


상대가 점점 강해지는 통에  재미를 못 보고 있지만,
자신의 동체시력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공격을 그걸로  번이나 감지했었다.


그런 행사는 공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변을 장악했다는  말이 장악이지 주변을 제 마력으로 꽉 채웠다는 의미다.
당연히 거기에 쓰인 마력은 대부분 회수할  없다.


검은 안개 때문에 중간 중간 빨아들여지는 양이 있긴 하지만,
그걸 감안해서 류 현도 계속해서 마력을 내뿜어냈다.

애초에 검은 안개 자체도 마력을 있는 대로 퍼부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성질이 특이한  넘어서 기괴하긴 했으나,
류 현의 몸 밖으로 떨어져 나오면 서서히 제어에서 멀어지며  성질을 잃어가는 건 마법을 포함한 다른 플레이어들의 마력을 동반한 기예와 다르지 않았다.


  독하다 뿐이었지. 흩어지면 주변 공간의 마력수치에 보탬이 되는 건 변함이 없을 것이다.

빈 공간을 어떻게 아무 연결도 없이 자기 몸의 연장선처럼 쓴단 말인가?


만약 공간을 점하기 전과 별 다를 바 없는,
제로에 가까운 약간의 마이너스라면 류 현이 행해온 전투법은 실행조차 할 수 없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류 현은 문제없이 그 일을 해왔다.

‘비아트리체’ 전에서 감지 한계 범위 경계에서 텔레포트 시켜,
반응할 수 없는 거리에 출구를 만들어서 피할 수 없게 만든 탄환 공격을 몇 번 당한 후이긴 하나 파악하지 않았나.

류 현 혼자서 동체시력으로는 절대 파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세아가 잘  파악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했다.

“그 부분은 나도 명확하게 설명을 못 하겠어. 분명히 련이의 마법을 보면 현이 네가 ‘강림’이나 검은 안개를 썼을 때랑 다르게 흩어지는 마력들 때문에 마력 밀도가 올라가. 그러면서 잠깐 동안은 불안정해지고. 현이 네 때와는 정반대로. 같은 공간 장악인데도 왜 그렇게 다른지는 나도 모르겠어. 희란이가 그 청뢰였나? 그걸 쓸 때도 똑같아. 일그러짐 현상이 좀 오래 가는  외에는...현이 네가  힘을  때에만 그래.”

말을 마친 세아가 슬쩍  현의 눈치를 보았다.
세아의 말을 곱씹으며 레이드 당시를 되짚어 보는 류 현의 표정은 빈말로도 좋을 수가 없었고,
그걸 본 세아는 어깨를 움츠리며 사과부터 하려고 들었다.


“내가 괜히 말 꺼내서 심란하게 만든 거...”
“아니, 아냐. 계속 모르고 있는 것보다는 알고 있는  낫지. 알아야 능력 개발도 해 보는 거고...솔직히 말하면 나도 이 힘에 대해서 모르는 게 훨씬 많아서...당분간은 협상질 말고 수련에 좀 집중해야겠네.”

수련이라는 말에 세아가 슬쩍 눈을 흘겼지만 오래 가진 않았다.
류 현이 잽싸게 덧붙였다.

“약속 깨려고 각 보는 거 아니니까 안심해.  진전도 없던 거 때려치우고 그 시간  생각이니까. 나도 쉬긴 쉬어야겠고.”

둘러대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미국에게 ‘신의 방패’ 협상을 맡기기로 한 것도 자신보다 미국을 내세우는 게 여러모로 원하는 바를 얻어내기 좋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귀찮은 일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은 개인정비 시간을 갖기 위해서기도 했다.

세아나 팀원들과 계속 붙어있는 터라 티를 내지 못한 것이지,
‘비아트리체’ 전에서 몸이 멋대로 움직인 경험은 류 현에게도 위기감을 선사했다.
예전에 이 비슷한 케이스를 겪어본 입장에서는 절로 예전의 공포를 떠올릴 정도로 말이다.

“이건 내 느낌일 뿐인데...”
“응? 뭔가 더 있어?”
“진짜, 정말로 느낌일 뿐이니까.”
“틀렸다고 해도 화낼 사람 없어. 편하게 말해.”
“내가 볼 때는 연습하는 느낌이었어.”
“연습? 무슨 연습?”
“현이 내 안의 공간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잖아? 그걸 적용대상만 바꾼 그런 느낌? 검은 안개는 일단 제압만 하는 군대고, ‘강림’상태에서는 완전히 편입시켜서 안정화시키는 그런 느낌?”
“흐음...”
“어디까지나 내 느낌일 뿐이니까...”
“알았어. 뭔가 다른 느낌을 받으면 그  다시 얘기나 해줘.”


한 편으로는 우려를 표하면서도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동생의 태도에 기쁨을 감추지 않은 세아는  뒤로도 의욕적으로 제 나름대로 고민해온 문제들에 대한 추측들을 내 놓았다.

그 때문에 자신이 한 결심의 실행이 2일 미뤄지게 된 류 현이 농담으로도 불만을 표하지 못할 문답들이 남매 사이에 오고갔다.

그리고 3일차,


“흐윽...”
“아니, 누나 그건...”
“미안해...누나가...”


류 현은 과거 이야기를 꺼낸 지 10분도 안 되어 자신의 결심이 후회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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