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82화 〉탐식마(貪食魔) (382/429)



〈 382화 〉탐식마(貪食魔)

“진심이오?”

보통을 넘어서는 침착함 때문에 상관의 침착함을 뺏어갔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듣고 사는 제프 리어던은 그 우스갯소리가 사실이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거울로  얼굴을 비춰보지 않아도 어떤 표정이 떠올라 있을지 알만 했기에.


상대가 포커페이스를 가장 하는 정도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자는 아니었지만,
감정적인 허점을 뻔히 내보이는 것보다야 훨씬 나으니까.

“예, 그 조건대로 갈 생각입니다.”
“...내가 가타부타 할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되오만은...그래도 이건 너무 손해 보는 입장이 되는 게 아닌가 생각되는데.”
“어차피 그걸로 장사할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할 수도 없고요.”


평온을 가장한 것이 아니라 정말 가벼운 대꾸에 리어던이 세우려던 철가면이 다시금 무너져 내렸다.

리어던의 철가면을 부순 건 류 현이 내민 ‘신의 방패’ 판매 조건이었다.
‘신의 방패’ 생산 재료의 2배분과 차후 네임드 몹과 그에 준하는 괴수 사태가 터졌을  군사적 동조 협약에 동의 할 것.


어디로 보나 사적인 이득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조건이었다.
지금도 워싱턴에 걸려오고 있을 전화들,
‘신의 방패’ 레시피를 알려주면 주겠다는 제의들의 대가보다 한참 낮다.


‘신의 방패’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나면 재료의 값이 폭등하긴 하겠지만,
류 현이 내건 조건을 보면 각국에서 통제에 들어갈  분명했고 그 조건 내에서 이득을 봐봤자 ‘신의 방패’의 가치에 비하면 정말 보잘  없는 수준 일터.


‘...설마설마 했는데 정말이었군. 이 남자는 사적인 이익이 관심이 없어. 이렇게 판이 짜여진 순간조차...’


던컨 앞에서 내뱉은 바 있는 말이지만,
내뱉은 뒤에도 스스로 계속 의심해왔었다.


리어던이 평생 봐온 인간 군상들은 그런 인간이 존재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그러한 기질을 타고 났어도 그 기질을 유지할 수 없다.
타고난 기질에 운을 더해, 속세와 연을 끊고 산중에 틀어박혀 고행만 해왔다면 모를까.


당연히 눈앞의 남자, 류 현은 어느 것도 해당되지 않는 이였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평범하지만은 않은 성장과정.
트라우마 때문에 탈선하고 그로인해서 인생 전반이 꼬여도 이상하지 않은 경우였다.

거기에 성인이 되기도 시작한 플레이어 분야에서는,
급격한, 아니 광속이라고 해도 무방한 성장 속도까지 보였다.


가혹한 주변 환경 때문에 억눌려있던 본성이 튀어나오든,
급격한 환경 변화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방황을 하든 간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다분한 상황들뿐이었다.

그렇다고 스폰서가 써먹으려고 그를 잘 관리한 것도 아니었다.
알아본 바로는 말이 스폰서지 대등한 거래 관계에 가까웠다.

사회적 기반이 있을 수가 없는 류 현이 성장하는 동안 포션 레시피 등을 제공하는 대가로 잡다한 편의를 제공 받는 관계.
대체 어디서 그런 레시피를 구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에 와서는 별 의미 없는 일이 되었다.

이젠 누구도 그를 제어할 수 없을 테니까.
이전에 NSA가 제기한 진짜 스폰서설은 거론할 가치도 없어졌다.

저런 괴물을 누가 제어하겠는가?
애초에 그의 행보 자체가 뭔가 이득을 보려고 누군가를 키우는 이의 휘하에 속한 자의 것이 아니었다.


결국,
제프 리어던은 거의 30년에 달하는 정계 생활동안 자신의 내부에서 강건한 벽을 쌓아올린 ‘인간 분류법’에 예외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앞의 남자는 세계 수위권 정도가 아니라,
독보적인 힘을 가지고도  힘으로 사적 이익에 별 관심이 없는 자라는 것을.

사람들이 상상 속에서나 그리던 영웅, 혹은 초인이라고 불리는 상상 속 존재와 비견될 수 있는 자라는 것을 말이다.


‘...나도 참 속물이로군.’


그렇게 인정하고 나자 가장 먼저 고개를  것은 경외감보다는 한 없이 두려움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
자신과 다른 이에 대한 거부감과 약간의 부끄러움.


정계에 입문한 뒤로 꿈속에서 조차 바라본 적 없는 존재의 실존 확인은 리어던에게 그러한 감정을 가장 먼저 선사했다.


다행스럽게도 리어던은 복마전 소리를 듣는 미국 정계내에서도 포커페이스의 달인 소리를 듣고 사는 이였다.
이미 두 번이나 연속해서 깨지긴 했지만, 넋 놓고 세 번째를 허용할 정도로 허술하진 않았다.

리어던은 재빠르게 감정을 수습해서 한편으로 밀어둔 후에 입을 열었다.

“그 높은 뜻에는 경의를 표하고 싶긴 하지만, 장사를 하지 않아도 문제가  수는 있소. 약해진 통제력 때문에 분명 문제가 생길 것이고.”
“그 부분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닙니다. 그에 대한 대처 방안도 나름 생각해 두었습니다. 이렇게 뻐기고 있어도 대부분은 제가 생각해낸 게 아니긴 합니다만은...혹시 부통령님의 고견도 들을 수 있을는지요?”


그래서였나. 인도에 다녀오더니 거의 일주일가량 칩거에 들어갔던 건.
리어던은 혼자서 납득하고는 그것을 잘 기억해 두기로 했다.
성질 급한 주제에 정확한 사태 파악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그의 상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기억하는 작업이 끝나자마자 리어던은 다시 입을 열었다.
숙고할 것도 없었다.
그의 정치적 커리어에서 이런 일에 끼워 맞춰 볼 케이스는 무수히 많았으니까.


모든 사람들의 삶에 이토록 강력하면서 직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품이 이런 식으로 다뤄진 적은 없었지만,
저울의 균형이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었기에 반대쪽 저울에서 할 짓도 굉장히 한정되어 있었다.

“고견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소. 닳아빠진 정치꾼들이 하는 일이야 뻔하지. 분명히 요구한 ‘신의 방패’ 2개분 재료 납부를 거부하는 자들이 나올 겁니다.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겠지. 제 나라 국민들이 충분히 적응한 뒤에, 대략 4, 5차 배부 때쯤에 그러는 작자들이 나올 거요. 정말로 능력이 모자라서 자체 수급이 안 된 걸 수도 있고, 확보를 해놓고 간을 보는 걸 수도 있겠지. 사실 이유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소.  작자들 때문에 원칙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게 문제지.”
“아마도 정말로 국력이 약해서 모으지 못할만한 나라를 방패막이 삼아서 재협상을 시도할 거요. 그렇지 않으면  군사적 협조부분을 건드리려고 들 수도 있겠지. 우리는 형편이 어려운데도 이렇게까지 네 요구를 맞춰주려고 노력했다. 그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졌으니 조금 감안 해주는  맞지 않겠느냐.  궤변에 말려들면  뜬 상태로 공짜로 ‘신의 방패’를 뜯기는 꼴을 보게 될 테고, 강경 대응하면 사람들의 목숨으로 장사질 하는 악마로 내몰릴 거요.”


리어던은 숨을 고르면서 물을  모금 머금었다.
그리 무리한 것도 아니었는데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고 얼굴이 후끈거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곧 그 원인을 알아채었다. 부끄러움 때문이다.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리어던이 보기에- ‘신의 방패’를 뿌리려는 이 앞에서 타국의 정치인이라지만,
그들이 얼마나 쓰레기같이 굴지 설명하고 있자니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려 오는 것이다.

딸아이에게 처음으로 거짓말을 발각당하고 그것을 지적당했을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 높은 뜻에는 경의를 표하는 바이지만...아무래도 정치꾼이라는 작자들이 그렇소. 상대를 옭아매지 못하면 호의조차 이용해 먹기 쉬운 상대로 볼 뿐이지.”
“확실히 그 부분은 제가 대응하기가 쉽진 않겠군요. 재료 납부도, 군사적 동조 협약도 꼭 필요한 일인데...그렇다고 제가 이걸 쥐고 강하게 압박하면 앞에 붙은 멘트만 다르지 비슷한 반응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건...부정할 수가 없군. 하지만 목줄을 쥐고 있는 게 낫다고 단언할 수 있소.”
“‘신의 방패’에 상응하는 조건을 붙이면 서유럽 국가들 외에는 입찰시도도 버거워 할 테고...”

그래선 수혜국가가 적어져서 곤란하다며 긁적거리는 류 현을 보고 있자니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양심이 콕콕 찔리는 느낌이었다.
순수한 선의를 가지고 호의를 베풀면 뒤통수가 터질 거라고 조언 하는  끔찍하다는 걸로는 부족한 기분이었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리어던은 그런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확신을 넘어, 다른 예시까지 실시간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볼 수 있을 정도라 양심통은 점점 더 구체화 되어갔다.


“그렇다면 협상 주체를 미국이 맡으면 어떻겠습니까?”
“음? 그게 무슨...”
“들으신 그대롭니다. 마침 강 찬 씨의 귀화도 마무리 단계 아닙니까. 법률상으로는 ‘신의 방패’에 대한 권리와는 별개이긴 합니다만, 실질적으로는 그렇게 딱 잘라 구분하기도 힘들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외부에서는 그렇게 보고 있을 테고요.”
“으음...그건 그렇소.”

그렇지 않아도 ‘신의 방패’에 대한 정보가 유출된 뒤 강 찬의 귀화에 대해서 슬쩍 잡음을 넣어 보려는 국가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물정 어둡던 한국의 대통령마저 방문한 지 삼 주도 안 되었는데 다시 날아오겠다고 연락을 해오고 있을 정도니 말 다한 셈.


 정도로 일이 어그러질 리는 없겠지만, 빅딜이 오가는 와중에 그런 잡음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가뜩이나 ‘신의 방패’에 대한 협상을 따로 진행 하면서 그 정보가 밖으로 다시 새지 않게 하려고 애쓰고 있으니.

오늘 들은  현의 조건을 들어보면 여태껏 한 걱정이 바보짓이 되긴 했지만,
문제는  조건대로 할 경우에 자신이 말한 대로 무임승차자가 혹은 무임승차 시도가 속출해 판이 깨져버릴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살바토르’와 ‘비아트리체’라는  한 쌍 때문에,
나라가 절단  뻔한 위기를 겪은 입장에서는 눈앞의 청년이 세속의 일에 환멸을 느껴서 등을 돌려버리는 일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만 했다.


그래서 자국에서 두  벌려 환영할만한 조건에 뭔가를 더 달아야 하지 않겠느냐 하고 조언을 건네는 웃지 못 할 촌극의 배우를 자청하게 된 것이고.

그런데,


협상 주체를 미국이 맡으라니?
말하는 뉘앙스를 볼 때 일만 떠맡기려는 것 같진 않았다.


평소의 리어던이라면 세상에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은 없다고 자신을 꾸짖고 상대의 속내를 읽어내려고  썼겠지만,
눈앞의 청년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있는 자였다. 적어도 인명이 걸린 일에 한 해서는.

아니, 일만 떠맡겨도 충분히 그 안에서 이득을 짜낼 수 있겠지만.
실권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러다가 일이 틀어져서 실권이 없다는 게 탄로 나면 체면만 깎아먹고 아무 것도  얻는 수가 있었다.
그 정도야 커버할 수 있는 게 미국이라는 타이틀이긴 했으나,
네임드 몹이라는 환란 때문에 몸살을 앓는 중인 나라의 정치인으로서 조금 아쉬울 수밖에 없다.
정말, 티내지 않고 속으로만 삭힐 아쉬움이지만.


헌데,
눈앞의 청년은 대체 무얼 말하고 있는 것인가.
리어던은 기대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달싹이는 류 현의 입에 온 기대를 모아서 그가 내뱉을 말을 읽었다.


“제가 처음 제시한 조건만 제 앞으로 해주신다면 협상을 통해서 어떤 식으로든 ‘목줄’을 채우셔도 됩니다. 개인인 제가 하는 것보다 미국이 맡는 게 더 수월할 테고, 상대들도 쉽게 납득하고 안심하겠지요. 아, 군사적 동조 부분은 좀 곤란할 수도 있으니 귀국의 자문단의 힘을 빌리긴 해야겠군요. 그것까지 해서 해결해주시겠다면 협상권을 넘겨드리겠습니다.”


리어던은 책상을 박차고 올라서 어퍼컷을 날리고 싶은 기분을 겨우 참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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