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79화 〉탐식마(貪食魔) (379/429)



〈 379화 〉탐식마(貪食魔)
[커헝!]


푸쉭! 츠츠- 칼날늑대는 자신의 용맹함을 증명할 새도 없이 끙끙 앓는 소리조차 못 내고 문드러지더니,
그대로 숨이 끊어지자마자 검고 작은 덩어리로 화해 내려앉았다.


마법사와 탱커에게 동시에 고통을  수 있게 만드는 단단한 외피와 현대 육상 병기들의 기동력을 우습게 만드는 순간 각력은 검은 안개 앞에선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탐욕스럽게 생명을 탐하는 검은 안개의 이빨에서 아주 잠깐 동안의 연명만 시켜주었을 뿐.


그조차도 별로 행복하게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류 현은 자신이 만들어낸 칼날늑대였던 것을 한 번  보고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뒤따르는 승하가 괜스레 그것을 툭 차서 흩어놓고,
그보다 뒤에서 쫓아오던 인도 측 플레이어 무리가 뜨악한 표정으로 그것을 살피다가  현이 시야 밖으로 사라졌음을 깨닫고 후다닥 뒤를 쫓았다.

발걸음을 빨리 하는 동안에도 그들은 떠들 권리를 포기하진 않았지만.


“저게 말이 되나?”
“저녀석 자주포 포탄도 각이 안 맞으면 그냥 튕겨내는 녀석이라고. 당연히 말이 안 되지.”
“자주포?”
“그래, 아준전차 말고 임마.”
“대체 무슨 능력이 저래? 생중계 때는 저렇진 않았잖아.”
“나는 얘가 이럴 때마다 어떻게 이 자리 올라왔나 모르겠어. 미친자식아, 저 불릿울프 만 마리가 있어도 그 용한테 흠집도 못 낼 텐데 그걸 말이라고 해?”
“아니, 그럼 저 능력이 막힌 상태에서 그런 괴물이랑 싸웠다는 거잖아.”
“저게 주력 능력인건가? 그런데 그럼 재생력은? 진짜 다중능력자인 건가?”
“비슈누시여 정말 이게 맞는 선택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 괴물이 눈이 돌아가면...”
“젠장,  입  다물어.”

도무지 던전에는 그것도 현존하는 최상위 던전인 어울리지 않는 행태만 보이는 그들이었으나,
류 현도 승하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개개인이 배테랑이라고 불리기에 손색없는 경력을 가진 저들이 저토록 조심성 없게 구는 건 류 현 본인의 탓이었으니까.
소음과 냄새를 감지해서 다가온 괴수는 류 현이 인지하자마자 문드러져 단말마조차 내뱉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당연히 그 끝은 아주 조금의 차이가 있지만 죽음 뿐.

사냥도 뭣도 아니었다.
본능대로 일행을 향해 다가온 괴수들은 류 현이 뿜어내는 죽음의 안개에 죄다 먹혀 그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다.
문자 그대로 뼈조차 남기지 못하고 시커먼 덩어리만이 잠깐 형태를 유지하다 먼지로 흩어졌다.
허망하다 못해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감이 들게 만드는 죽음의 연쇄.

인도 측 플레이어들과의 거리가 벌어진 것도 세 번째 희생양이 생겨났을 때쯤이었다. 그가 휘두르는 검은 안개의 불길함이 언급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류 현은 그들이 뒤에서 지껄이는 소리를 뻔히 다 들었지만 들은 티를 내지도, 걸음을 빨리하지도 않았다.
뒤돌아서 티를 내려던 승하를 뜯어말렸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그런 반응을 보일만 하다고 생각했고,
피하려면 피할 수 있는 상황을 스스로 자청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원래라면 라비 라자와 그가 대동한 인원들이 이 던전을 정리할 예정이었다.

‘예상외로 별 반응이 없군.’


라비 라자를 비롯한 인도 측 플레이어들 얘기는 아니었다. 여기서  더 보여주면 협상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도망칠 거 같은 이가 둘은 보였으니까.


류 현의 고민은 ‘비아트리체’ 전에서 인지하게 된 자신에게 생겨난 새로운 능력에 대해서였다.
이걸 과연 자신의 능력이라고 불러야 할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아예 저장 공간이 분리되는 건 아닌 거 같은데...이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또 다시 제 미래도 모르고 그에게 달려들려던 칼날늑대가 한 마리 문드러지며  마력이  안으로 스며들었다.
류 현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가 사용 중인 ‘공간’으로 들어오는  아니라 이전과 똑같이 흡수되었다.

‘분명히 아무 이유 없이 이렇게 됐을 리는 없지. 그것도 기점도 확실한 걸 보면 연관성이 있을 텐데...’


‘비아트리체’ 전 도중 자신의 몸이 갑자기 이전에 흡수했던 네임드 몹의 기억의 공명에 움직인 이후,
류 현은 자신의 몸을 돌보는 과정에서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변화를 목도하게 되었다.
구획을 구분하기 위해서 파티션을 세운 것처럼 내부에 무형의 장벽이 세워져 구획이 나눠진 것이다.
육체적으로 다른 문제가 생긴 건 아니었지만, 당황하기에는 충분한 상황.

당황해서 그 벽을 없애보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으나 전부 허사로 돌아갔다.

마력을 잔뜩 벽 너머 구획으로 밀어 넣어서 구획 구분을 없애려는 시도도,
‘강림’의 힘을 빌어 벽을 부숴버리려는 시도도 전부 무의미했다.


텅  구획은 류 현이 취한 어떤 조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움직였던 ‘마녀 페릭스’의 기억과 엘더 리치의 기억이 그  일어났던 기현상이 그냥 일어난 게 아니라는 듯,
그 비어있던 구획에 자리를 잡았지만 류 현이 할 수 있는 게 없는 건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그 기억들을 써먹을 수야 있지만, 그걸 통해서 새로운 구획에 변화를  수는 없었다.


자신이 아는 이  그나마 이런 일에 지식을 빌려줄 만한 화련에게 도움을 청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세아가 몸을 회복하는 기간 내내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고,
어느 정도 회복된 뒤에는 화련을 찾았는데 그 자리에서 화련이 핏덩어리를 한 움큼 토해내서 무산되었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현도 처음의 당혹스러움이 희석되면서 제 상태를 돌아볼  있게 되었고,
전생에 겪은 ‘강림’의 반작용을 생각하면 호들갑 떨 일도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곤 당분간 관망하는 것으로 노선을 바꾸었다.

당장 화련의 도움을 구하는 것도 차분히 생각해보면,
그녀는 이제야 어느 정도 제 능력을 회복한 상태였으니 좋은 결과보다는 사고가 터질 확률이  높았다.


‘비아트리체’ 전 이후로 묘하게 세아의 상태가 불안 불안해 보이는 것도 마음에 걸렸던 지라 류 현은 입을  다물고 평정을 유지했다.
뭘 시도해 보기에는 자신의 상태도 그리 멀쩡하지 않다는 것도 한 몫하긴 했다.


그러나 오늘,
합법적으로 세아의 눈을 피하게 된 기회를 틈타 류 현은 생각만 해두었던 실험을 실행하기로 했다.

괴수를 쳐 죽여서 유입되는 새로운 마력으로 ‘기억들’ 외에는 텅 빈 구획에 변화를 꾀하는 것.
라비 라자가 엑스칼리버의 검증을 위해서 화이트 던전 하나를 확보해두었다는 말을 하는 순간 이러기로 마음먹었다.


라비 라자도 거부하진 않았다.
검증을 위해선 보스  하나만 있어도 되니까.

‘진짜 아무런 반응이 없네. 대체 뭐가 조건인거지?’

그 결과가 건진 게 아무 것도 없는 실패였지만.
 변화의 키라고 생각되는 두 네임드 몹의 기억조차 미동이 없었다.


이제 자신이 생각해 두었던 마지막 실험을 차례다.

‘끙...이거 내보이면 진짜 도망가는 거 아닌가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류 현은 아무렇게나 퍼뜨려놓은 검은 안개를 끌어 모았다.
순식간에 오른손에는 검은 안개로 이루어진 채찍이,
왼손에는  위로 새로 돋아난  같은 거대한 팔이 돋아났다.


여태껏 꿈쩍도 안하던 엘더 리치와 ‘페릭스’의 기억이 저건 자신들의 유산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공명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예상대로.

뒤쪽에서 다시금 기겁하는 소리들이 터져 나왔지만 류 현은 듣지 않으려고 애쓰며,
자신의 아무 의지를 담지 않은 마력을 흩뿌려 존재감을 한껏 과시했다.
허리까지 오는 풀이 무성한 평원 형태의 던전이라 아무 여과도 없이 그가 내뿜은 마력 파동이 저 끝까지 퍼져나갔고,
아직 죽지 않은 모든 괴수들이 이에 반응했다.


순식간에 포위망 아닌 포위망이 완성되었다.
류 현의 변화에 기겁하면서 멈칫거리던 인도 플레이어들이 그 변화를 느끼곤 거리를 좁혀 따라붙었다.
승하가 눈치 좋게 그들에게 다가가 더 접근하지 못하게 막았다. 항의하려던 목소리는 류 현의 모습을 보곤 쏙 들어갔다.

 현은 사방에서 몰려든 괴수들이 자신을 시인할 수 있을 정도로 다가올 때까지 가만히 두었다.
던전의 주인으로 보이는 거대한 존재감이 뒤늦게 다가오는 것도 느껴졌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 전에 끝날 테니까.

[치이잌!][크르렁!]
효시를 올린  라미아와 칼날 늑대였다.
덩치 차이가 극과 극이라도 해도 좋을 두 괴수는 인간이라는 공통된 살의의 대상 앞에서는 서로를 신경도 쓰지 않았다.

류 현은 자신의 뒤를 노려오는 놈들을 흘끗 한  봐주는 척 했다.
그러자 조금 더 떨어진 곳에서 멈춘 채 몸을 낮춘, 정면에서 다가오던 괴수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뛰어올랐다.


 현은 늘어뜨리고 있던 두 팔을 들어 올리며 손바닥을 살짝 내저었다.
가벼운 동작이었지만 그 결과물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쒸링! 콰가가각!

피와 내장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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