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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8화 〉탐식마(貪食魔) (378/429)



〈 378화 〉탐식마(貪食魔)

“그럼...여기 있소.”


일행  가장   현보다 한 뼘이 조금 안되게  큰 거한이 대검을 내미는 모습은  흉흉해보였으나,
긴장한 것은 오히려 거한의 뒤에 줄지어 서 있는 인도  플레이어들이었다.
당장이라도 발검할 기세로 몸을 웅크린 채 칼자루를 움켜쥔 이들이나,
마법사로 보이는 이들이 조준을 위한 손을 앞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은 환영의 기색이라고는 요만큼도 찾아볼  없었다.


그보단 맹수와 우연히 마주친 듯한 경계태세.

그러거나 말거나  현의 턱짓에 대검을 받아든 승하는 그것을 똑바로 치켜든 채 슥 손가락으로 훑어 올라갔다.

“오...”


그녀는 그대로 대각선으로 내리긋고,
구르듯이 크게 옆으로 베어내보고,
손가락 세 개만으로 270도 회전을 가하며 허공에 연속되는 곡선을 그렸다.


한 번 더 손목 힘으로 검을 빙글 돌려본 그녀는 그대로 대검을 땅에 박아 넣었다.
반대편에서  모습을 보고 있던 인도 측 근접형 플레이어들이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냥 검 자체가 괜찮은데?”
“그렇습니까?”
“어, 생긴  저런데 무게 중심도 이상할 정도로  잡혀있고. 아니, 맞춰진다고 해야 하나 저건?”
“맞춰진다고요?”
“음...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아까 크게 휘돌릴 때 있잖아? 다른 검이었으면 손에서 빠질 정도 돌린 건데 무게추 쪽에 갑자기 무게가  쏠리는 느낌이 들더니 착하고. 무슨 말인지 알지?”
“정확히는 아니어도 대강 알거 같네요. 청뢰나 유성우랑 다르게 따로 발동시키지 않아도 상시 발동 중인 기능이 있나 봅니다. 아까 봤을 때 마력의 유동도 못 느낀 거 보면 정말 덤으로 달린 기능인  같은데...”
“일단 나한테서 나간 마력은 없어.”

 현은 승하가 박아놓은 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바로 앞까지 다가가 손을 슥 내뻗었다.
바로 뽑아낼 것처럼 거리를 좁히던 류 현의 손은 정말 한 뼘도  되는 거리에서 멈춰섰다.

원하던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처음 청뢰를 접했을 때보다는 제어하기가 수월해졌지만, 결코 착각할 수 없는 종류의 갈증.

‘느낌상으로는 합격인데...이대로 맞는 거 같다고 해주는 건  그렇지.’


“승하 씨.”
“예정대로 해?”
“예, 그래야죠.”
“알았어. 바로 해 볼테니까 꺼내놔봐.”

류 현은 ‘가방’을 조작해서 저만한 비늘 덩어리를 꺼내놓았다.
물빛을 돌며 뒤가 비치는 비늘은 상처 투성이었지만 조금만 손을 보면 귀금속에 준하는 가치를 인정 받을  있을  했다.
그 정도로 그칠 물건이 아니므로 그가 그렇게 할 일은 없겠지만.


류 현이 꺼내 든 건 ‘비아트리체’가 동원한 본신의 조각 중 하나였다.
 다시 뒤쪽에서 억눌린 신음 같은 것이 터져나왔다.


이번에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는지 2미터에 달하는 거한, 라비 라자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이게 그  그...”
“예, ‘비아트리체’의 비늘입니다. 본체가 죽어버리고, 손상이 좀 있긴 하지만...시험대로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라비 라자는 저도 모르게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차고 넘쳤다.
세상에 단 한 마리뿐인 ‘네임드 몹’의 단단한 부위를 아티펙트 검증용으로 써먹는다니.
플레이어 대국인 인도의 정점인 그조차 상상도 못할 사치다.


반쯤 넋이 나간 채로 끄덕이는 라비 라자가 동의했다고 생각한 승하는 땅에 꽂은 대검을 뽑아들고 비늘 앞으로 갔다.

그리고,

“스읍...”

츠츠-
자신이  먹는 것보다,
아니 젓가락질보다 자주한 자신만의 기예를 일으켰다.
플레이어로 각성한 누구나  수 있지만,
누구도 그녀처럼은 하지 못하는 아주 단순하지만 그래서 끝이 없다고 생각하는 기예, 마력검을.

“오...”

대검 위로 피어오른 마력검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승하가 수련 시에 보여주는  위로 보일 듯 말듯한 수준이 아니라,
허연 연기 같은 것이 검 위로 피어오르는 듯 하다가 그 표면만 계속해서 맴돌았다.

승하가 집중을 하자 연기 같은 것은 뒤가 비치게 바뀌었고,
검의 모습이 굴절되었지만 선명하게 보이는 수준으로 점점 변화했다.
그녀는 잠시 검을 들여다보다가 류 현이 말을 걸려고 할 때 쯤 앞의 비늘을 향해 대각선으로 내리그었다.


스읏- 칵- 버터를 자르는 것처럼 아주 부드럽게 파고들던 검은 반쯤 내려가서 금속성 소음과 함께 멈춰섰다.
반발력에 손목이 살짝 울릴 정도였지만 승하는 전혀 실망한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흥분한 기색까지 보였다.


“와, 이게 물건이네. 이게 이렇게 쉽게 베여?”

 현과 승하 본인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이었다.
류 현도 잽싸게 옆으로 붙어 검이 지나온 궤적을 들여다봤다.
각진 면에 손을 미끄러뜨리면 베일 것처럼 아주 매끄럽게 베인 모습.
류 현은 좋아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물었다.


“마력 소모는요?”
“힘을 좀 주긴 했는데 검은 검기의 1/10정도? 이 정도면 이 상태로 하루 종일도 싸울 수 있을 거 같은데.”
“중간에는 일부러 멈추신 건 아니지요?”
“어? 좀 놀라서. 별 생각 없이 긋다가  토막 내버릴 거 같아서 멈췄지. 굳이 안 그래도 되잖아?”
“그거야 그런데, 그럼 문제없이 끝까지 갈 수 있다는 의미군요. 음...”

 현은 비늘을 손끝으로 톡톡 두들겼다.
마력을 담은 것도 아닌데, 손끝이 저릿한 반발력이 느껴졌다.
그 주인이 소멸한지 오래고, 끊어서 보관하기 위해서 검은 안개에 노출시켰음에도 비늘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잔존 마력으로 인한 반발력은 인류가 도무지 흉내 낼 수 없는 무언가 였고.


헌팅 레벨 200급이라면 이 비늘에 칼질만 해도 혼자서 자멸할 것이다.
괜히 류 현이 ‘가방’에서 뭘 꺼낼 때마다 미국 측 보좌진이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아니었다.
분석은 뒤로 미뤄두고 당장 백악관 지붕이나 대통령 업무실 벽에 이걸로 도배만 해도,
용잡이 팀을 제외하면 아무도 뚫지 못하는 철옹성을 구축할 수 있을 터.


이 비늘의 가치를 제대로 알 수가 없는 인도 측 플레이어들은 강도를 확인 해보고 싶어 하는 기색이었지만,
그렇게 해줄 의리까지는 없었다.
류 현은 커다란 검상이 남은 비늘을 갈무리 하고 라비 라자를 향해 돌아섰다.

“밖에서 확인  수 있는 건 대강 확인한 거 같군요. 확보하셨다는 던전으로 바로 가볼 수 있겠습니까? 아티펙트 출력을 확인하려면 적어도 지룡급은 되어야  듯 싶은데요.”
“근처에 봐둔 화이트 던전이 하나 있소.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말을 자르고 들어온 건 여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설치된 의자에서 잠자코 있던 화련이었다.
 현의 거듭된 당부에 따라 인도로 일행을 데리고  뒤로 말도 거의 하지 않고 있던 화련은 기다렸다는 듯이 끼어들었다.


“저 한 시간을 차에서 덜컹 거리고 있을 상태 아니에요. 마스터.”
“끙...이럴  같아서 거기 계셨으면 했는데.”
“아니, 남들은 못 누려서 안달인데  그러시나 몰라. 이 정도는 이제 눈감고도 해요.”

 현은 한숨과 함께 라비 라자에게 화련의 텔레포트 능력과 측근에 해당 하는 이들 열 명가량을 알아서 뽑으라고 이야기했다.
통보에 가까운  말에 라비 라자는 당혹스러워했고, 그의 측근들은 반대했지만 얼마 안가 그들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신의 방패’ 시연도 그곳에서 할 겁니다.”


당장 급한  그들이었으니까.
유니크 아티펙트를 ‘신의 방패’에 넘길 것처럼 운을 띄웠다가 거래 내용을 바꾼 것도 그들이었고.


결국 라비 라자 곁에 일곱명의 측근이 모였고,
화련은 그들을 한 번 슥 훑어본 후 류 현에게  문제가 없다고 고개를 끄덕여준 뒤,
자신의 위상공간으로 그들을 포함한 일행 전체를 뒤덮었다.


라비 라자와 측근들이 당황한 목소리를 내기도 전에,

슈슉! 그들은 공간을 뛰어넘어 정글 한 복판에 서있게 되었다.


“아니 이게 진짜 가능한...”
“미친...진짜 되는 거였어?”
“아티펙트 기동음 같은 거 못 들었어?”
“기동음은 고사하고 거의 필드가 전개되는 거랑 동시에 이동됐어.”
“진짜 말도  되는 괴물들이 그 작은 나라에서 나왔군...”

여덟 쌍의 눈이 그녀에게 경외어린 시선을 보냈지만 그녀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류 현을 슥 올려다본 그녀는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괜찮으십니까? 진짜...게이트 바로 코앞이면 그렇다고 말을 하지...그 쪽에 마법사가 없는 것도 아니면서...”

예상했던 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화련은  웃으면서 활기차게 대꾸했다.


“이제  정도 변수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네임드 몹 상대로도 해 봤는데 저거에  방해를 받겠어요? 그런데 저 여기서 기다려요?”
“여기까지 와서 이런 말씀 드려봐야  웃기긴 하겠지만 아직 던전 출입 피로도를 무시할 정도로 회복 되진 않으셨잖습니까. 이번은 좀 참아주시죠.”
“그렇게 치면 승하 언니도 비슷한 거 같은데. 뭐, 알겠어요. 잠깐 요 앞에 산책하고 오죠 뭐. 빨리 나오게 되면 신호탄 드린  가지고 계시죠?”
“예,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나오죠.”
“저 양반들 표정 보면 안 그럴  같은데...그럼, 좀 있다 봐요.”

화련은 그대로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정글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무도 작은 여자가 혼자 아무 장비도 없이 정글로 걸어 들어갔다는 사실을 걱정하지 않았다.
오늘 그녀를 처음 본 라비 라자와 측근들 조차. 정글 내부에 생성된 블랙 던전 두어 개가 터져서 안전이 보장 안 된다는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정도로 화련이 보여준 기예가 그들에게는 충격적이었다.


그들은 초청한 손님에게 집주인으로서 해야 하는 주의사항 전달대신 조용히 수근거렸다.


“대장, 이거 거래가 성사되기는 할까? 저 괴물들 진짜 너무...”
“...진짜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들이 와버렸는데.”
“어쩌겠나. 아직까지 우리를 공격하고 아티펙트를 약탈할 기미를 안 보였다는 거에 계속 걸어봐야겠지.”
“난 이게 잘 하는 짓인지 모르겠는데...”
“좀 다물어. 마람 그 미친 마녀랑 사생결단이든 뭐든 내려면 ‘신의 방패’인지 뭔지가 필요하다고. 거래가 되든 안 되든 시도는  봐야   아냐.”

류 현은 그것을 다 듣고 있었지만 들리지 않는 채 하며 그들에게 손짓했다.
당장이라도 사람의 집어삼키려는 것처럼 공명음을 내뿜고 있는,
화이트 던전의 거대한 게이트를 향해.

“자, 가시죠. 얼른 테스트를 마무리해야 협상도 빨리 시작하지 않겠습니까.”


2미터에 달하는 거한 라비 라자는,
왠지 자신이 작아진 것 같은 착각과 함께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류 현을 포함한 10인의 플레이어는 보무도 당당하게 화이트 던전으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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