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6화 〉탐식마(貪食魔)
당황이 가라앉자 던컨의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한 건 분노였다.
‘왜 벌써 이야기가 저기까지 샌 거지? 어디서?’
던컨은 영원한 비밀이 있을 거라는 환상을 보고 살기에는 현실주의자였으나,
그래도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이번 ‘신의 방패’건에 핵무기 배치도급의 기밀 등급을 준 것이 무색하게,
너무도 빨리, 허망하게, 어처구니없는 상대에게까지 알려지지 않았나.
그것도 자기 집안 단속도 안 되서 미래의 팻감까지 팔아치울 정도로 제정신인 아닌 상대에게 말이다.
던컨은 정말 오랜만에 지금도 열심히 구르고 있을 실무진의 일처리 그 자체에 분노를 느꼈다.
‘아니 아무리 상황이 상황이라지만 대체 일처리를 어떻게 하기에...’
우연찮게도 류 현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고,
드물게도 그 생각을 표정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을 읽어낸 던컨은 저도 모르게 사과하려다가 비서를 다그쳤다.
“다시 정확하게 말해 보게. 라비 라자가, ‘신의 방패’를 정확히 집어서 요청했다고? 자기네 아티펙트로?”
“그, 그쪽 주장에 따르면 유니크 아티펙트라고 합니다. 협회에서 신설한 기준에 따르면...”
“그 개정안을 별 의미도 없으니 말할 필요 없네. 어차피 용잡이 팀이 보유 중인 것들을 기준으로 만든 주먹구구식 기준이니까.”
청뢰,
유성우,
개미지옥.
용잡이 팀이 보유 중인 이 세 가지 유니크 아티펙트 중,
청뢰와 유성우 이 두 가지는 어지간한 플레이어나 클랜보다 유명해진 상태였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비아트리체’ 레이드 생중계 때문이었다.
홀로 북극에 인공위성이 관측할 수 있는 선을 그어버리는 괴물을 상대로 보여준 그 압도적 화력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로 퍼졌으니 유명해지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
문제는 너무 유명해진 탓에 일개 팀이 저런 대량학살병기급 화력을 지닌 아티펙트를 보유해도 되냐는 속이 뻔히 보이는 논의가 이곳저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
유니크 아티펙트 자체만으로는 저런 화력을 낼 수 없지만,
그걸 아는 건 ‘비아트리체’ 레이드에 손을 보탠 미국 내의 극소수와 용잡이 팀이 전부였다.
저것이 규모를 신경 쓰지 않고 위력을 집중하는 것에만 신경 쓴 것이라는 게 밝혀지면 또 다시 뒤집어지겠지만,
류 현의 유니크 아티펙트를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는 식의 이슈를 대하는 태도를 봐서는 그럴 일은 없어보였다.
‘비아트리체’ 레이드 때 보인 푸른 번개와 검은 불꽃이 자신이 능력이 아니라 유니크 아티펙트로 인한 것이라고 밝힌 건 류 현이었다.
이전 전투 기록을 통해 저게 류 현의 능력이 아니라 다른 외부 요인이 작용한 것이다,
아니다 저 정도 수준에 오른 플레이어가 전무후무하니 새로운 능력을 추가 각성했을 가능성도 있다.
현존하는 아티펙트로는 어떤 보조를 더해도 저런 위력을 낼 수 없다.
이런 논의들이 알아서 오고가며 흐지부지 될 문제들을 제 손으로 못을 박아서 끝내버린 것이다. 기자들을 불러들여 인터뷰 했을 때 아주 오피셜로 쐐기를 꽂았다.
던컨은 그 이유가 궁금해서 그걸로 꿈까지 꿀 지경이었지만 묻지는 못했다.
그러니 라비 라자가 유니크 아티펙트 운운한 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생중계를 보거나 아니면 본 이에게 말을 전해 듣고도 그것을 협상 재료로 내놓겠다고 한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었지만,
상황이 급해서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기 힘들어서 라는 이유로 충분히 넘어갈 만 했다.
하지만 ‘신의 방패’의 존재를 아는 건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그 존재를 알고 있는 인간이 서른 이상으로 늘어난 지 일주일도 안 된 참이었으니까.
그리고 높은 확률로 연방 정부가 라비 라자가 가진 정보의 출처일 테니까.
던컨은 확신했다.
이 일이 끝나기 전에 자신이 높은 확률로 대규모 인사 정리 서류에 사인을 하게 될 거라는 것을.
그의 결심 아닌 결심을 알 턱이 없는 젊은 비서는 갑자기 안광을 번뜩이는 상사의 눈초리에 슬쩍 뒤로 물러서며 말을 이었다.
“라비 라자 측에서는 검증이 필요하다면 응할 생각도 있으며, 이렇게 증거 영상도 보냈습니다. 이게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실례지만 저도 같이 볼 수 있겠습니까?”
류 현이 불쑥 다가서자 거의 넘어지려는 비서를 조금은 불안한 눈빛으로 한 번 봐준 던컨은 류 현을 향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렇게 할 거요. 그 친구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접촉해온 건지는 모르겠지만...거래 물품도 상대도 우리는 아닌 듯하니.”
유니크 아티펙트는 이미 청뢰와 유성우 등을 실컷 본 강 찬은 그대로 작별을 고하고 돌아갔다.
조금 위축된 듯한 비서가 노트북을 가져다 세팅을 끝내고 라비 라자가 보내온 영상을 틀었다.
영상 속에는 2미터에 달하는 거한이,
모두의 기억과는 조금 다르게 왼팔이 사라진 거한이 꽤나 큼직한 대검을 짚고 서있었다.
일선에서 뛰는 것처럼 보이는 투박한 차림새의 남자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의장용이라고 하더라도 잡다한 장식이 과해 보이는 검.
“저쪽도 반지 형태의 것을 얻은 건가?”
던컨은 모양새부터 영 아닌 것 같은 검을 가장 먼저 유니크 아티펙트 후보에서 제외하고 라비 라자 몸을 훑었다.
류 현은 그와 반대로 라비 라자가 지팡이처럼 짚고 있는 검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엑스칼리버. 저게 저기서 발굴되었었나?’
회귀를 인지하고 대강의 계획표를 만들고 있을 때 책정한 우선순위가 낮은 편에 속하는 아티펙트긴 했으나,
류 현은 그 외형만큼은 잘 기억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외형 말고는 정보가 없어서 그것 외에는 외우고 말고 할 게 없는 거였지만.
이름을 날릴만한 사건 터지고 바로 유실된 비운의 유니크 아티펙트가 바로 엑스칼리버였다.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인도가 아닌 영국 땅에서 영국인이 그 존재를 처음으로 드러내었으며,
그 외형만 자료로 남고 모습을 드러낸 직후 유실되었다.
소유자가 킹 헬라의 언데드 군단에게 덤벼들다가 시체도 남기지 못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말이었다.
류 현이 엑스칼리버의 존재와 소식에 대해 접한 건 한참 뒤의 일이었고,
그는 그것을 찾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 시기 영국은 킹 헬라는 사라졌지만 언데드 왕국이 되어있었으니까.
구울들이 서로를 먹어치워서 구울로드라는 변종 괴수가 등장하고, 그 변종이 리치와 결합한 뒤 바다를 건너가 유럽 본토에서 유격전을 벌여댈 지경이었다.
인간들에게 이름까지 받은 그 괴수들은 결국 류 현의 손에 소멸했지만,
그렇다고 영국이 언데드 소굴에서 벗어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검 하나 찾겠다고 죽은 자들만이 서있을 수 있는 그 땅에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문제의 아티펙트가 파괴되었을 가능성도 적지 않았으니.
킹 헬라 때문에 365일 할로윈 데이가 되어버린 유럽의 상황이 만만하지 않았던 것도 있었고.
괜히 류 현이 현생에서 데스나이트의 등장을 경계한 것이 아니다.
어쨌거나,
그 때문에 류 현은 바로 구릿빛 피부의 거한이 짚고 있는 검이 엑스칼리버라고 불렸던 물건임을 알아보았다.
팀이 보유 중인 유니크 아티펙트가 세 개에 달하자 기억의 한 편으로 슬쩍 밀어두고 대충 잊었던 물건.
회귀 직후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그럴만한 힘이 류 현의 아래에 모여 있지 않은가.
어디서 발굴되었는지도 모를 물건을 찾겠다고 심력을 쓸 바에야 지금 있는 것들을 잘 써먹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고 실제로도 잘 먹혔다.
이번 원정 이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의 방침에 확고한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유니크 아티펙트의 ‘해방’이라는 사용법을 알게 되었다.
탐욕을 억누른 채라지만, ‘강림’상태의 자신이 휘두르는 ‘검은 것’보다 더한 위력을 보여주는 것을 직접 몸으로 겪지 않았는가.
해방 청뢰는 아직도 컨트롤이 거의 불가능해 메리트와 부담이 반반 수준이나,
해방 유성우는 그 끔찍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써먹을 이유가 넘치는 위력을 보여주었다.
같은 용이 맞나 싶을 정도로 끔찍한 방어력을 자랑하며 전생에 보았던 아지다하카를 뛰어넘은 위력을 과시하던 ‘비아트리체’조차,
‘검은 것’과 해방 유성우의 조합으로 뽑아낸 검은 불꽃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세아나 다른 팀원들이 들었다면 거품을 물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대가로 눈에 보이는 수명을 요구하더라도 써야하는 수준이다.
그렇게 결론까지 내린 류 현은 우선순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던 엑스칼리버라고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막말로 해방 상태가 당장 해방 청뢰보다 더 제어가 안 된다고 해도 승하에게 맡기면 그만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칼 때문에 전투력이 깎이고 있는 판이었으니.
내구도나 그 발동방식에 대해서 자료가 전무한 아티펙트라서 무엇도 장담할 수 없긴 하지만,
그런 부분들을 감안하더라도 이야기 자체는 충분히 들어 볼만 했다.
대뜸 기밀인 ‘신의 방패’를 언급한 것이 켕기긴 했지만,
어차피 그걸로 장사치 놀이를 할 생각은 없었다.
‘신의 방패’로 장난질을 하다가 공중분해 당한 ‘마탑’의 교훈을 되새길 것도 없이,
이건 널리 보급되어야만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신의 방패’를 발동시키는 건 공짜가 아니고, 한 번 설치했던 땅에 바로 재설치를 할 경우 그 내구도가 급격하게 감소한다.
그러니 제대로 된 방어력을 내려면 공격을 분산시켜줄 다른 도시가 많은 게 좋았다.
공짜로 내주진 않겠지만 전생의 ‘마탑’마냥 상대에게 불합리한 요구를 하거나, 폭리를 취하지도 않을 것이다.
‘일단 가서 확인은 해보긴 해봐야겠군.’
어차피 보급할 물건을 가지고 유니크 아티펙트를 얻을 수 있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아, 그전에 미국이랑 조율을 끝내놓고 가야겠군. 이럴 때 먼저 챙겨줘야지.’
영상 속 라비 라자가 하얀 막에 싸인 엑스칼리버를 휘둘러 온갖 단단한 것들을 베어내는 차력쇼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류 현은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저것이 유니크 아티펙트임을 확인하는 건 저런 시시한 것들을 베는 것보다 자신이 한 번 잡아보는 게 더 확실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식욕이 동할 거리까지 다가가보거나.
류 현이 외형을 알고 있다는 정보가 있을 리가 없으니 외형만 본 뜬 사기일 가능성은 적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워낙에 정보가 적은 아티펙트라,
이런 식으로 알아서 정보가 굴러들어와 주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 몰랐을 가능성이 컸다.
‘청뢰랑 유성우 쓴 걸 깐 게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는데. 그냥 반쯤 위협용으로 깐 거였는데...설마 그거 때문에 과신하고 장난질 치진 않겠지?’
‘근데 이번에도 승하 데려가야 하나...그냥 혼자 갔다 오겠다고 하면 또 난리 칠 거 같은데...’
영상이 진행될수록 끙끙 앓는 소리를 삼키려고 애쓰는 던컨과 그의 비서가 내는 소리를 배경 삼아 류 현의 고민도 깊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