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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5화 〉탐식마(貪食魔) (375/429)



〈 375화 〉탐식마(貪食魔)

협상은 지지부진하게 계속 되었다.
일이 잘 안 풀려서는 아니었다.
류 현이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았다는 핑계와 자신보다 상태가 더 좋지 않은 팀원들의 상태를 살핀다는 핑계로 계속 시간을 끌었기 때문이었다.

‘마탑’에서 얼마나 몸이 달았는지 또 다른 마스터가 날아왔지만,
협상의 축인 류 현과 강 찬이 시큰둥하니 바뀌는  있을 리가 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류 현에게 전권을 넘겨버리고,
 현의 제의대로 미국이 제공할 보호와 편의를 알아보고 있던 강 찬은  다른 마스터가 협상 테이블에 끼어들었다는 것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알았다고 한 들 크게 변하는 바는 없었겠지만 어쨌든.


축이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어떻게 협상장의  자리를 차지한 미국의 경우에는 류 현의 시큰둥한 반응 때문에 눈치를 보다가 다른 일에 눈이 돌아가서 협상 테이블에서 멀어진 경우였다.
바로 강 찬이라는 미국에게 가장 필요한 인력유형 중 하나가 생각지도 않은 귀화 가능성을 내비쳤기 때문.


류 현이 강 찬을 소개해주며  얘기를 꺼냈을 때 던컨은 류 현의 머리 위에 헤일로를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기쁨과 흥분이 조금 사그라진 후에는 갑자기 왜 저런 제의를 해오나 의심이 고개를 들기도 했으나,
아무리 털어봐도 강 찬의 이력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류 현처럼 외부와의 거래가 극단적으로 적은 것도 아니었고,
이룬 업적에 비해서 인지도가 낮은 건 좀 특이하긴 했으나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이력이었다.


특히 어떤 면에서는 ‘신의 방패’를 넘어서는 위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전 그가 이룬 업적 중 가장 빛나는 것인 엘릭서는 유명세를 가져다주기에 충분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상당히 위험한 물건이었으니까.
숨기는 게 당연했다.


우선 재료가 단순히 비싼  넘어서 입수 난이도가 어지간한 돈은 무의미할 정도로 엄청났다.

아니, 사실 엄청난 정도가 아니라 당시 기준으로는  팀만이 가능할 수준이었다.
그의 스폰서인  현이 버티고 있는 용잡이 팀만이 공급 가능한 재료들.


거기에 재료 수급이 조금 수월해진 지금도 엘릭서를 재료가 되는대로 마구 뽑아내기 힘들다고 했다.
공정과정에서  찬의 몸이 상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형태로 힘을 써야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런데 그것을 플레이어 업계와 전혀 관계없지만 엘릭서가 간절한 이들이나 혹은 그들의 가족들이 신경이나 쓸까?
던컨이 내린 결론은 그렇지 않다. 였다.


류 현 본인이야 누나의 치료를 위해서 기밀을 기한 것으로 보였지만,
앞으로도 개량 엘릭서만을 드러내는 수준으로 그쳐야할 듯 싶었다.


‘대하는  보면 귀화시키는데 성공해도 레시피는 고사하고 생산도 저 친구에게 허락을 맡아야 할  같긴한데...개량 엘릭서만이라도 어떻게든 따내야겠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결심까지 하기에는 상당히 쪼잔한 스케일이었으나,
강 찬이 가진 핵심 아이템 레시피는커녕 그가 흘린 레시피 조각도 제대로 해석 못할 인재풀을 가진 집단의 수장으로서는  수 없는 일이었다.

플레이어 전투력과 그를 뒷받침 해줄 기본 인프라야 협회와 ‘마탑’의 틀에서 벗어나더라도 미국의 저력으로 어떻게든 확보해내었지만,
강  같이 마법을 기반으로 던전이 내놓은 신비로운 물건들을 주무르는 인재를 키워내는 건 미국에게도 버거운 일이었다.
던전 내의 아티펙트나 퍼즐들이 게임 아이템마냥 미국 땅에 일정비율로 뿌려지는 것도 아니었고,
초기 플레이어 스캔들 때문에 손 놓고 있는 걸 넘어 쌓은 것까지 허물어뜨렸어야 했던,
미국은 무엇보다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러니,
이번 귀화는 무조건 성공시켜야 했다.
지금 국민들이 성난 폭도마냥 모여서 귀화시키라고 시위하고 있는 대상은 따로 있었지만,
강 찬이 품고 있는 가치를 생각한다면  열화와 같은 목소리들을 조금이나마 수그러들게  수 있으리라.

가장 큰 이유는 눈앞에 있는 저 젊은 동양인 남자를 귀화시킬 자신이 없어서였지만.
아쉬울 것도 없고, 강제할 수도 없는 남자를 아쉬운 쪽에서 어떻게 붙잡는  말인가?

던컨은 상당히 대비되어 보이지만 분위기만큼은 화기애애해 보이기까지 한 강 찬과 류 현을 향해서 다가갔다.


류 현이 먼저 그의 존재를 느끼고 돌아보기에 인사말을 고르는데,
젊은 비서가 다가와 그에게 귀엣말을 속삭였다.


“각하, 인도의 라비 라자가...”
“라비 라자?”


비서가 말을 다하기도 전에 멀지 않은 거리에 있던  현이 반응했다.
류 현은 의도치 않게 엿들어버린 꼴이 되자 고개 숙여 사과하려고 했지만 던컨은 손을 내저어 그것을 막았다.


“급한 일인가?”


급한 일이 아니라면 저 두 남자가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모르지 않는 비서가 여기로 달려오진 않았겠지.
던컨의 질문은 그걸 넘어서, 기밀이라는 걸 티내면서 이 자리를 떠야할 정도의 일이냐는 것이었다.

젊은 비서의 대답은 던컨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예, 라비 라자가 저 분과의 연결을 원했습니다.”
“뭐?”


‘대소환’ 이후 가장 격렬하고 잦은 국지전의 전장이 되어버린 곳이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지대.
엄청난 인구수 덕에 넘치는 플레이어 풀을 가지게 되었지만,
바로 옆의 파키스탄 때문에 칼리프 클랜이라는 엄청난 적을 안게 된 인도의 ‘대소환’ 적응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인도 내의 이슬람 교도들 덕에 전면전이 터지지 않은 것뿐이지,
칼리프 클랜이 알게 모르게 정도가 아니라 아주 대놓고 파키스탄을 지원해준 덕에 인도는 언제나 플레이어 인재난에 허덕였다.

던전 대응 시스템이 갖춰지기 전에는  많은 인구수에서 오는 플레이어 풀을 제대로 활용도 못해보고 국가가 찢겨지기 직전까지 몰린 적마저 있을 정도였다.
그 혼란기를 선두에 서서 수습한 것이 라비 라자였다.


칼리프 클랜의 알 사디크와 다르게 그는 무력으로 대부분의 분쟁을 틀어막았고,

그 업적으로  때 검성과 대등한 위치에 놓였던 인도를 대표하는 플레이어가 됐다.

하지만 그것도 과거의 일.
그 명성이 사그라지기 전에도 라비 라자는 그 명성에 걸 맞는 생활을 누리기에는 놓은 환경이 그리 좋지 못한 축이었다.

다른 네임드 플레이어들과는 다르게,
연합작전은커녕 국외 활동이 전혀 없다.
파키스탄 국경지대에서 발로 뛰어다닌 것을 포함시켜도 그리 변하는 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인프라 구축을 대강이나마 해낸 최근이야 꽤나 안정되었지만,
내부 문제가 터질 조짐이 새어나오고 있어 위안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아니, 일부 지방에서는 이미 군벌로 떨어져나가겠다는 선언까지 한 집단까지 존재했다.

라비 라자 본인이 통치자로서의 재능이 있었다면 이야기가 좀 달랐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일군을 이끄는 리더가 될 수는 있어도 한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와는 거리가 멀었다.

두들겨 패서 억지로 봉합하는 것까지가 그가 가진 능력의 한계였다.
그 정도도 충분히 대단한 능력이라고 할만 했지만, 그의 조국이 요구하는 수준은 그것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기에 라비 라자의 처지는 당분간 바뀌지 않을 듯 했다.


괜히 전 세계가 네임드 몹이라는 환란에 휘말려 몸살을 앓을 때 그의 이름이 언급조차 거의 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국가가 네임드 몹이라는 초유의 환란에 휘말려 몸살을 앓는 동안 정말 멀쩡하게 전력을 온존한 대표적인 플레이어 강국이 인도였음에도,
주변국들은 폭탄을 바라보는 심경으로 인도 주변을 살필 뿐 도움을 요청하진 않았다.

이렇듯,
제 조국 밖에서 명성 쌓기는 고사하고, 외부로 시선을 돌릴 여유조차 없는  그의 처지일 터.

‘요즘 그리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닐 텐데?’


당장 파키스탄과 연결된 칼리프 클랜 견제도 버거울 작자다.

가장 최근에 들은 소식에 의하면 클리프 클랜이 숨겨놓은 칼이었던 마람 압둘아지드가 그쪽 국경 분쟁에 끼어들었다고 들었다.

자료에 의하면 마람 압둘아지드는 경력이 모자랄지언정, 라비 라자에 밀릴 인물이 아니었다.
라비 라자 본인도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지만, 그래서 그 상황이 장기화 될 가능성이 컸다.

제 코가 석자인 판국에  뜬금없는 연결 요청이란 말인가?
그것도 미합중국 대통령 라인을 전화 연결원처럼 쓰는 무례함까지 보이면서.

던컨은 어떻게 하면 상대의 무례함이 더 강조되어 보이면서 자신이 느낀 불쾌함을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의 고민을 알 턱이 없는 젊은 비서는 자신의 상관에게서 떨어질 불호령에 대한 불안감에 대뜸  기밀사항을 토해내었다.


“유니크 아티펙트로 ‘신의 방패’ 거래를 하고 싶다는 요청입니다.”
“뭐? 그걸 어떻게  자가...”
“예?”

상황 정리가 덜 된 머리로도 던컨은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의 작태가 라비 라자가 무례한 이라서가 아니라,
상황이 너무 급박해서 미래의 팻감까지 넘겨줄 정도로 절박해서 나온 행동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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