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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3화 〉탐식마(貪食魔) (373/429)



〈 373화 〉탐식마(貪食魔)

협상은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모두에게 편한  아니라, 류 현에게 편한 분위기였지만 그것으로 족했다.
거의  분 간격으로 지루하다고 툭툭 건드리는 승하의 칭얼거림도 기분 좋게 넘길 수 있을 정도로.


 현의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을 제하고도,
전체적으로 그리 경직된 분위기가 아니기도 했다.

협상이 협상이 아니었으니까.
거의 그에게 자비를 구걸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마탑’ 측에서 설계에 일부 기여했다는 ‘지도’의 존재를 주장하기도 했지만,
‘마탑’이 일부 기여도를 주장한 시점에서  기여가 보잘 것 없다고 실토한 거나 다름없었다.


대중들에게는 조금 집착이 심한 마법사들의 연구단체로 알려져 있지만,
세상 천지에 그런 순수한 의도만으로 지금 같은 자리를 얻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대소환’이 낳은 특허 괴물 소리까지 듣는 ‘마탑’이 대놓고 지분 비율을 요구하지 않는 것만 봐도,
강 찬이 얼마나 ‘신의 방패’ 기술에 대해 꽉 쥐고 있는지 알만 했다.


‘대체 뭐가 어떻게 작용해서 바뀐 건지 모르겠지만.’

전생에서는 이렇지 않았다.
3차 ‘대소환’ 이후 ‘마탑’이 내놓은 ‘신의 방패’는,
‘마탑’이 최전성기를 누리게 만든 핵심 아이템이자,
몰락의 단초였으니까.

세상에 내놓자마자 물과 식량과 비슷한 우선순위까지 치고 올라와,
천정부지로 값이 치솟는  보고 ‘마탑’이 이것을 협상재료로 너무 신나게 써먹는 바람에 사방에서 공격당하게  이유 중 하나였다.

‘그 때 ‘마탑’을 파낼 때 한 소리가 생명을 저울질 하는 장사치들이었나.’

그런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는 짓들을 ‘신의 방패’를 인질로 삼아하고 다닌  사실이었으나,
‘마탑’ 해체  그 일에 발을 담갔던 단체의 행보도 그리 다를  없었다.

‘마탑’보다 뭔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해서, 그 빈자리를 채우기는커녕 재화를 마구잡이로 낭비해 인류 몰락에 가속도가 붙어버리는 바람에 여론이 모일 수가 없었을 뿐.


‘원래도 ‘황금손’이 만든 거였나? ‘마탑’이 워낙 신경질적으로 통제를 했으니 그랬어도 이상하진 않긴 한데.’
‘아니, 지금 시점에서는 고려할만한  아닌가.’

워낙 출처가 불분명하고, 정보도 없는 아티팩트라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마탑’이 전생과 비교해서 세력이 한미해진 건 아니었지만, 시간이 부족했으니까.

네임드 괴수의 등장 속도에 비해 괴수 군단의 등장도 상당히 늦어지는 듯하니,
어떻게 하기 힘든 문제에 골몰하느니 대충 기억의 한 구석에 밀어두고 잊으려고 했었다.


그런 차에 묵묵히 괴수 사체를 갈아서 뭔가 연구 중인 듯 했던  찬이 그걸 들고 나온 것이다.
급속 치료용 엘릭서 개량 정도만 해도 만족이었던 류 현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복권당첨.


그 위업을 ‘마탑’이 지분 요구를 하지 못할 정도로 거의 혼자 이뤄내다시피  강 찬은 아예 전권을 그에게 넘겨버리고 자리만 지키고 있으니,
협상이 협상이 될 수가 없는 건 당연했다.


간간히 말을 섞으려고 애쓰고 있는 던컨마저 아주 노골적으로 눈치를 보고 있으니 말이다.
‘마탑’의 마스터 중 하나가 날아온 것도 찍어 누르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요구하든 권한이 모자라서 협상이 깨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류 현은 한 번의 계약체결로 모든 걸 끝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애초에 이 건으로 개인적인 이득을 끌어내려고  자리에 온 것도 아니었으니.


‘보급창으로 쓰면 안성맞춤인 놈들을 뭐하러 그런 것만 받고 풀어줘?’


류 현의 이런 생각을 알 방도가 없는 ‘마탑’의 마스터, 장  뮈소는 속만 타들어갈 뿐이었다.


눈앞의 괴물은 무력만 인간을 이탈한  아닌지,
 옆자리의 미대통령도 혹할만한 제안들에도 꿈쩍도 안 했다.


이룬 무력과 업적에 비해 쌓은 재화나 명성이 형편없는 수준이니 그곳을 비벼보자던 ‘마탑’ 수뇌부의 분석은 이 자리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비슷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속이 타들어가고 있는 던컨은,
헛다리 연발로 제 풀에 지쳐버린  폴 뮈소와 달리 협상이 어그러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알고 있었지만,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속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대가로 내놓을 만한  없다.’


아무리 날고 기는 미국이라지만, 물밑에서 준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 한계도 차고 넘치는 것이겠으나, 눈앞의 남자는 물욕적인 측면은 초월한 자였다.


만족의 문제가 아니라, 별 관심이 없다는  수뇌부와 던컨 스스로가 내린 결론이었다.
정신병적인 면모가 엿보이는 성향이었으나, 한가하게 그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것을 손에 넣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아도 피폐해진 나라다.
아예 저 ‘신의 방패’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존재가 확인되었으니 얻지 못한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한  휘청한 나라가 다시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하는 국민들이야 뭐든 안겨줘서 저 남자를 귀화시키면 된다고 소리 높이고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던컨은 보고 있었다.

희망이 될 수 있는 무언가가 눈앞에 있는데 갖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아마 그 희망이라는 게 만능 지팡이 같은 게 아니라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던컨은 그 상황을 가정조차 해보고 싶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으로 다들 지치셨을 테니 오늘은 이쯤 하도록 하지요.”

갑작스럽게 잡힌 자리만큼이나 갑작스러운 파장선언.
누구도 불평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저 무겁게 고개를 끄덕여 가까스로 동의를 표할 뿐.

류 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사람들을 챙겨나가는  순간까지도.


덩그러니 남겨진 두 노인은 서로를 한  바라보고는 속으로 쓴웃음을 머금고 자리를 떠났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는 성벽같은 남자를 설득하자면 오늘 밤은 불면의 밤이  것이다.

***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놀랐습니다. 엘릭서 개량 연구만 해도 보통일이 아닌데...”
“내가 뭐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골방에 박혀서 물약이나 만들고 퍼즐이나 푸는 데  정도 성과는 내드려야 하지 않겠소.”

강 찬은 처음 봤을 때를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로 부드럽게 풀린 어조였다.
그의 시선 끝에는 뒤에 다소곳하게 서 있는 소녀가 있었다.


 현도 눈에 익은 얼굴이었다. 강 찬의 공방에 가끔 드나들 때마다 차를 날라주었던 아이였다.
다리를 절고, 팔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우며 상반신에 커다란 화상이 있던 아이.
류 현 외의 손님은 대접하지 않았던 아이다.

그 때 보았던 모습이 거짓으로 꾸몄던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끔한 모습이었다.
강 찬이 멀리 나올 때도 공방의 아이들을 대동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걸 기억하고 있는 류 현은 저 소녀가  자리에 있는 의미를 쉽게 유추해내었다.

“축하드립니다. 제 사익을 위해서 드린 의뢰여서 이렇게 오지랖을 부려도 되나 싶긴 합니다만.”
“아니요, 그렇게 말하면 세상만사가 제 사익을 위한 짓이지. 세상 천지에 대의 타령하는 놈들은 많아도 그걸 위한 후원하나 제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잘 없소.  의도가 어찌 되었든 이 아이도 그렇고, 나도 큰 은혜를 입은 셈이지. 엘릭서 연구는 당신 덕에 끊기지 않은 거요.”
“그렇게 말씀 해주시니 마음이 편하군요. 그런데, ‘신의 방패’ 건 말씀입니다만...이렇게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상상이상으로  큰 건수가 될 수도 있는데...”
“나를 보시오. 내 이 몸뚱이에 비싼 옷이 어울리겠소, 아니면 비싼 차가 어울리겠소? 나는 지금 같은 상황만 유지되어도  바랄  없소. ‘신의 방패’ 연구도 본 드래곤 사체 덕에 시작된 것이기도 하고. 엄밀히 따지자면 내 지분은 5할도 간당간당하지.”
“‘마탑’의 마스터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 것 같던데요.”
“그 치야 장사꾼이니 계약서에 들어갈 것만 신경 쓰는 것이지. 애초에 그쪽은 아는 것도 거의 없소. 그 퍼즐도 그냥 폐기될 것을 내게 선심 쓰듯이 보낸 것뿐이고. 아까 보지 않았소? 그 뺀질뺀질한 면상으로 살살거리는 걸.  퍼즐의 한 줄이라도 해석을 했다면 5할 지분부터 외쳤을 작자들이오.”
“‘마탑’ 마스터야 신경 쓸 게 많은 입장이니까요.”
“흠...그 치한테 받아야  게 많은가 보오.”
“하하, 너무 속보였나요.”
“내 대답은 처음과 동일하오. 거기서 나올 로열티 이할 가량만 연구비로 받을 수 있다면 그 외의 것들은 상관하지 않을 거요.”


강 찬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굳건한 태도로 다시금 못을 박았다. 무정물 같은 굳건함이 지금은 그리 흐뭇할 수가 없었다.
류 현은 빙긋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거기에 미국이 자랑하는 재활센터와 보호를 얹는 건 어떻습니까? 아, 연구비도 따로 받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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