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72화 〉탐식마(貪食魔) (372/429)



〈 372화 〉탐식마(貪食魔)

호지슨 버넷은 한 번  뒤를 돌아봤다.
나이 지긋한 초로의 신사가 그를 향해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에 대한 존경심이 조금은 깎여나가는 듯 했으나, 그의 요청을 받아들이기에는 충분한 존경심이 남았기에 호지슨은 앞으로 나섰다.

태블릿을 잡고 화면을 슥슥 넘기고 있던 류 현이 고개를 들자, 그 옆에 드러누워서 칭얼거리고 있던 승하의 시선도 그에게로 향했다.
순식간에 세계 최강 2인의 시선을 받게 된 호지슨은 입안에서 굴리던 혓바닥마저 뻣뻣하게 굳는 것 같은 감각을 맛보았지만,
침착함을 가장하며 말을 짜내었다.

“혹시 저희가 미리 준비 해둬야 할 것이 있겠습니까?”


별 의미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호지슨과 그를 유도한 비서실장은 이  사람이  워싱턴으로 돌아가지 않고,
시카고로 향하는 지 정확한 내용은 알지 못했으니까.
뭘 조금이라도 알아야 대략적인 준비를 해두지 않겠는가? 시카고를 향해서 날아가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대략적인 준비가  된 시점에서 별 의미 없는 말이었다.

그러니 호지슨의 질문은 지금의 상황에 대한 질문의 성격이  강했다.

‘마탑’에서 네임드 몹이 북극에 남긴 거대한 얼음벽을 연구하기 위해서 실질적인 점유자라고 할 수 있는 그들에게 협상을 요청했다는 건 알았다. 연방정부에서 주선한 협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외의,
본론으로 보이는 다른 협상 내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차기 던전부 장관 내지 그의 준하는 실무직을 받게  거라고 예견되며,
실제로도 그 정도의 정보와 권한을 제공받고 있는 호지슨 버넷이라 할지라도 정보를 캐내기에는 너무 어려운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마탑’은 어느 국가와든 거래할 수 있는 중립성을 지닌 대신, 특정 국가의 영향력도 늘리지 않으려고 애를 써왔고 드물게도 그에 성공한 단체였다.


마법사가 될 가능성이 보이는 이는 어디서 왔든 거절하지 않는다.
그게 공식적인 ‘마탑’의 구호였고,
 때문에 ‘마탑’을 주시하는 단체들이 서로 감시하는 구도가 짜여졌다.

협회에서 뒤를 봐준 바가 가장 컸지만,
어느 정도 커진 뒤에는 그마저 털어 내버렸다.

초기에 기반을 다지기 위해 자본을 갈아 넣던 시절이면 모를까,
유럽의 특산품이라고 해도 좋을 물의 오브 같은 전략물자에 가까운 아티펙트 생산에 발을 걸치고,
그 비슷한 기술을 가지고 여기저기 발을 걸치고 있는 ‘마탑’은 건드려봐야 주시하고 있는 이들을 모두 적으로 돌리는 까다로운 존재가 되었다.

그러니까,
무슨 이유로 류 현과 승하가 그곳으로 바로 날아가고 있는  알 방도가 없었다.
류 현이 지나가는 말로 마중 나가야할 사람이 있어서 직접 가는 것이라고 말하긴 했으나, 그게 정보의 전부였다.


그래서 이리 구걸하는 것처럼 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체면 챙기기에 별 관심이 없는 호지슨에게는 이런 행동을 해야 하는 사실도, 상황 그 자체도 별로 굴욕스럽지 않았다.

“아, 제가 급한 마음에 아무 말씀도 안 드렸었나보군요.”
“아닙니다. 혹시나 도울 일이 있을까 싶어...”
“아니요. 미국과도 아주 연관이 없다고는 못하니까요. 여기 있습니다. 3페이지부터 7페이지까지입니다. 뒤에 있는 내용들은 소모된 것들에 대한 영수증 같은 거라.”

비서실장이 호지슨을 부추긴 것이 허망할 정도로  현은 순순히 태블릿을 내어주었다.
훑어보는 시늉을 하다가 비서실장과 상의해도 되겠냐고 허락을 구할 생각이었던 호지슨은 1페이지 중간에 끼어있는 문장에 시선을 빼앗겨,
선 자리에서 전부 읽어내리고 말았다.
태블릿을  그의 손이 잘게 떨렸다.


승하가 걸어오는 손장난을 대충 쳐내고 있던 류 현은 그 모습을 힐끔 보고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그래, 제대로 된 관료라면 그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아, 관료는 아닌가?’

“류, 류 현님...이, 이게 정말로...”
“보고서를 작성한 강 찬 씨는 이런 걸로 장난을 칠분은 아닙니다. 그리고 협상자리긴 하지만 확인하기 위한 자리기도 합니다.”
“자, 잠깐 연락을 해야   같은데 혹시...”
“예, 태블릿을 주시면 제가 그쪽으로 보내드리죠.”


호지슨은 당장이라도 손에서 태블릿을 떨어뜨릴 것처럼 손을 벌벌 떨었다.
그에게서 태블릿을 받아든 류 현이 자료를 이메일로 보내주고 고개를 끄덕이자,
호지슨이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비틀 비서실장에게로 다가갔다.
갑작스러운 호지슨의 이상행동에 당혹스러워하던 비서실장은,
곧 그 행렬에 동참하게 되었다.

자신보다 한 뼘은  거한과 초로의 신사가 흥분으로 몸이 떠는 모습을 빤히 보던 류 현은 그들이 보고를 올리고 있을 대상을 떠올리고는 이마를 짚었다.
어쩌다보니 자신이 떼놓고 온 꼴이 된 미합중국의 대통령과 부통령을.


‘아,  때 바로 말했으면 바로 따라붙었을 텐데 너무한 짓을  게 되었군.’


류 현은 두 노인에게 비행이 너무 가혹한 여정이 아니길 빌었다.

***

‘대소환’ 이후 가장 크게 변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대답을 할 테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내놓을 답은 크게 세 가지였다.

플레이어의 등장과 지금도 원인을 규명하긴커녕, 정확한 기점조차 불분명한 언어의 통합.


그리고 부동산 개념의 변화다.

‘대소환’ 이전까지는 그 나라 상황에 따라서 정도 차이는 있었지만 부동산에 대한 이미지는 ‘그래도 땅은 남는다.’였다.


원자력 발전소가 터진다거나,
국경선 분쟁에 휘말리거나,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유실 같은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은 대부분 효력을 발휘했다.
국경선 분쟁 같은 경우에도 후에 권리를 행사할 상황이 오는 경우도 있었으니, 정말 대부분의 경우에는 들어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대소환’ 이후 그 말은 케케묵은 과거를 상징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있더라도 금세 인류의 기술과 지혜에 쫓겨나곤 했던 인간 외의 생명체로 인한 무기한 점유권 상실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심지어 이 불청객들은 인간에 대한 적대감이 엄청났다.
살의라고 표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말이다.


아프리카는 불모지 대부분이 괴수에게 점유 당했고,
 정도로 점유권에서 밀리지 않은 강대국들의 국민들조차 부동산에 대한 인식을 달리  수밖에 없었다.

이전과 달리 부동산이 소실되는 극히 드물게 일어나는 재해가 언제 어디서든 터질  있게 바뀌었으니까.


시간이 흐르면서 지옥같은 시간을 견뎌낸 대가로 ‘대소환’ 내의 법칙을 규정하고,
괴수와 던전에 대한 대처법들이 속속 생겨나긴 했으나,
그것을 완전히 근절시킨다는   시점에서는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근절시키겠다는 말만큼 허황되었기에 이전과 같을 수는 없었다.

근처에 원자력 발전소만 생겨도 요동치는  부동산 시장이었으니 당연했다.

사람들이 자연재해처럼 대하기에는 인간에게 너무 적대적인 존재로 인한 재해였다. 사람들이 이것을 뭐라고 받아들여야 할지 결정도 못한 판에 마음을 놓을 리가 만무.
적응하기엔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어찌됐거나  정부의 눈물 나는 노력과 이해득실에 따라 그들과 발을 맞춰주기로 한 언론들의 노력 덕에 부동산 시장은 어느 정도 안정세를 찾았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집을 믿진 않았지만, 믿고 싶어 하는 마음을 버리진 않았다.


그마저 블랙 던전과 네임드 몹이 등장하면서 시작된  3차 ‘대소환’ 덕에 위태위태한 상황이었지만.


괜히  플레이어 시위 같은  일어나는  아니었다.

정부가 모든 정보를 오픈하진 않았기에,
작전에 참여한 업계 관계자나 정부 관계자처럼 모든 상황을 알진 못했으나 사람들은 느끼고 있었다.


제 2차 ‘대소환’ 초기,
좋아하는 축구팀의 경기 결과보다 도시 근처에 나타난 상위 던전 토벌 소식을 먼저 찾던,
언제 집 대문이 뚫고 괴수가 쳐들어올까 두려워하던 그 시절에 돌아오고 있다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 불안함을 전가시킬,
혹은 그 불안함의 근원을 근절시킬 수 있는 존재들을 닦달하는 것이 그들 나름대로의 불안감을 떨쳐내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류 현은 그 견해에 전혀 동의할 생각도 없고, 그 멍청한 생각에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생각도 없었지만 하나만큼은 장담할 수 있었다.

그 멍청이들 중 대부분은 그렇게 성토하는 플레이어에게 고개를 조아리게  것이라고.


눈앞에 놓인 주먹만 한 쇠구슬은 그런 기적을 일으킬만한 물건이었다.

‘상황이 너무 급격하게 돌아가서 개발 못 되나 싶었는데. 대단하군. 대단해. 그 와중에 기술방어도 한 거 같고...’


신의 방패.
정확히는 전생에 그렇게 불렸던 이 인조 아티펙트는 그럴만한 가치를 지닌 물건이었다.
지키려는 도시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소이탄을 쏟아 부어도 쉴드만 소모되고 마는 상위 괴수를 막아낼  있는 물건이었으니까.
급이 낮은 괴수는 단독으로는 일정반경 내로 얼씬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차고 넘쳤다.


물론 대가가 없지 않고 무한히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도시로 진입한 괴수에 대한 대비책이 플레이어와 유인부대가 전부인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었다는  생각하면 가히 부동산 혁명을 일으킬만한 물건이었다.


시험 시동으로 대략적인 스펙만 기재된 보고서를 받고,
워싱턴으로 향하던 에어포스 원이 류 현을 따라 이곳 시카고로 날아온 것만 해도  가치를 알만 했다.

류 현은 아까 전부터 가만히 앉아있기 괴로운 듯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는 미대통령을 한 번 힐끔 봤다.


그의 속내를 알만했다.
쓸모없지는 않지만, 뒤에 있을 논의에 비하면 쓸모없는 이 논의가 빨리 끝나기를 바랄 테지.

류 현은 그의 소망을 들어주기로 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이 논의는 별 영양가가 없었다.
‘마탑’에게는 그렇지 않겠지만, 그건 그의  바가 아니었다.

그는 시선을 다시 맞은편에 앉은 ‘마탑’의 여섯 마스터 중 하나에게로 되돌렸다.

“당장 북극으로 갈 일정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에 대한 협상은 이쯤 해두도록 하지요. 일단 미정부와의 조율도 거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동의하오.”
“그럼 신의 방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할까요? 아, 이건 제가 임시로 붙인 명칭입니다만...”
“나쁘지 않은 이름이군. 특성도  나타내주고 있고, 차후 조정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일단 그리 부르도록 하지요.”


포커페이스를 가장하곤 있지만 ‘마탑’의 마스터 또한 본제가 나오자 꽤 흥분한 듯 했다.
그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류 현의 왼쪽자리를 힐끔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일반인들이야 그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할 술수를 부려놨지만,  현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류 현은 ‘마탑’ 마스터의 시선을 따라,
논의가 시작된 이후로 계속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석상처럼 있는 강 찬을 한 번 돌아보고는 속으로 픽 웃었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정말 기술을 꽉 쥐고 있나 보네. 생각보다 편하게 가겠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