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70화 〉탐식마(貪食魔) (370/429)



〈 370화 〉탐식마(貪食魔)
한국의 24대 대통령, 최치열은 그렇게 평이 좋은 대통령은 아니었다.

국내에서는 그를 보고 사인하는 할아버지라고 불렀고,
국외에서는 아시아에 존재하는 우유부단한 지도자 밈으로서, 우스꽝스러운 순간 캡쳐로 각종 합성짤에 등장하곤 했다.

그는 ‘대소환’ 이후로 자국 내에서도 호평을 받은 지도자가 없는  현실인 한국 정치계의 표상 같은 존재였다.


임기 내에 ‘대소환’의 여파로 북한이 붕괴한 뒤처리를 해야 했던 그의 전임자마저 평이 좋지 못했으니,
그보다 능력이 출중하지도,
평가를 뒤집을 사건이 있지도 않았던 최치열이 평가가 좋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지도 몰랐다.
무색무취에 능력도 그저 그런 지도자가 각광받을 시대는 아니었으니까.

실제로 최치열 본인도 자신에 대한 세간에 평가에 대해서 완전히 수긍하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부분적으로는 틀린  아니라고 여길 정도였으니 말다한 셈이었다.


한국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은 어떻게 저런 치가 이런 시대에 대통령 자리를 꿰찼는지 의아하게 여겼으며,
그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강력한 경쟁자  명을 8프로 이하의 표차이로 겨우 누르고 당선되었건만,
그조차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최치열은 그런 반응에 대해서는 부분적인 수긍정도가 아니라 같이 고개를 끄덕여줄 정도로 이해하는 쪽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5선 의원이었던 최치열은 원래 청와대의 주인 자리에는 별 관심이 없던 인사였기 때문이었다.
최치열은 엄청난 업무 수행 능력이나, 특출난 정치적 조율 능력이 없는 대신 주제 파악하는 능력이 괜찮은 편이었고 그게 그가 여기저기 줄을 갈아타면서도 크게 미움 받지 않는 원동력 중 하나였다.
시대가 그런 시대였다는 점도 한  거들긴 했으나, 그런 시대였기에 최치열의 눈치 보는 능력은 더욱 빛을 발했다.


원래라면 최치열은 다선 의원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것으로 정계 커리어를 끝마쳤을 것이다.
최치열 본인도 그 이상의 욕심은 가지고 있지 않았고,
무엇보다 줄타기를 열심히 한 덕에 그는 국민적 인지도가 짧지 않은 커리어에 비해 낮았던 것이다.
 공천 자리를 먹으면서 커리어가 끊어지지 않을 정도 수준의 인지도.


뭘  올라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그런 처지가 최치열의 욕심을 억제시켰다.
정치 커리어는 굉장히 길지만 얼굴만 봐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정계 망령.
그게 그의 커리어를 상징하는 말이  예정이었다.

 제의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시작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임자가 야당 소속이었던 최치열을 식사자리에 초대하면서였다.
국민적 인지도는 물론, 정계 내에서도 대놓고 적대 당하지만 않을  이미지가 좋지만 않던 최치열을 개인적으로 대통령이 부른  여상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대통령이 최치열에게서 얻을 이득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당시의 최치열은 야당 내 다리를 놓으려는 사전 작업의 일환이라고 여기고 식사 자리에 응했다.

하지만,
최치열의 예상과 다르게 대통령의 목적은 최치열이라는 정치인  자체였다.

그것도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주겠다는,
그를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대단한 분들과 다리를 놓아주는 그런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는 대단한 분들의 얼굴은커녕, 이름조차 제대로 지목해서 듣지 못했지만 최치열이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할만한 증거들을 대통령은 내보였다.
한 번이 아니라 수 차례의 식사 자리를 반복하면서 매번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대가는 전대 정권이 해오던 업무의 승계와 현 정권에 대한 조사를 틀어막는 것.


대가에 비해서 그에게 주워지는 게 너무 많아 누구라도 의심해야 마땅한 수준이었으나,
최치열은 결국 수락하고 말았다.
그들이 제시한 대통령 직 외의 포상과 저도 모르고 있었던 정치적 야망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꿈틀거렸기 때문이었다.

수락하고 나서도 이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돈과 시간을 들이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고 말았다.
그의 강력한 경쟁자  반절은 스캔들이 터져서 떨어져나갔고, 살아남은 경쟁자들도 스캔들에 시달리며 야금야금 표를 잃어갔다.


그러고도 8프로 이하의 표차이로 간신히 당선될 지경이었으나,
그 간발의 차이가 어디서 왔는지 알았기에 최치열은 그를 당선시킨 스폰서에게 충실하게 굴기로 마음 먹었다.

가장 처음 착수한 일은 전대 정권의 핵심 인사들을 솜방망이로 때리는 척 하다가,
야당 강경파 거두의 섹스 스캔들을 터뜨리는 거였다. 정보 출처가 그의 스폰서였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전대 정권에 대한 검찰 조사가 섹스 스캔들에 어영부영 묻히게 되자,
최치열은 곧바로 반 플레이어 협회 성향의 클랜들을 조용히 밀어주기 시작했다.
플레이어들의 모임인 클랜이 반 플레이어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협회가 지원을 위해서 요구하는 정보나 각종 규제에 반하는 성향을 가진 클랜들은 넘치도록 있었다.


예를 들어서 그가 ‘예거즈’의 대항마로 밀어준 ‘산군’ 같은 클랜 말이다.

그들을 밀어준 이유?
‘예거즈’를 약화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그 안에 정신적 지주로 자리 잡고 있는 검성을 편을 들 기반인 그 클랜을 말이다.


전대 대통령이 스폰서의 요구로 ‘예거즈’의 창립 멤버를 검성을 제외하고 죄다 저세상으로 보내버렸으니 그 뒤처리가 그의 임무로 떨어진 것.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기함했지만 발을 빼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결국 최치열은 집권 초를 검성을 고립시키는데 정력을 쏟아야만 했다.
거기에 믿을만한 인력과 집중을 쏟아 붓다 보니 임기 1년을 채우기도 전에 도장 찍는 노인이나 사인하는 할아버지 소리를 듣게 되긴 했으나, 다시 돌아가도 최치열은 그리 할 터였다.

대통령 자리에 앉기 전까지 접하게 된 검성에 대한 정보는 이게 인간이 맞나 싶은 것들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검성을 고립시키는 작업을 감행하면서도 청와대로 쳐들어온 검성에게 칼 맞는 악몽을 꿀 정도였다.


전대 정권이 얼마나 거기에 정력을 쏟아 부었는지 검성의 위업들이 1년이 채 못가 반 이상 파묻힌 상태긴 했으나,
그렇다고 그 일신에 깃든 사람 같지 않은 무력이 사라진 건 아니지 않은가.


최치열은 초선 의원 때보다 더 열심히 뛰었다. 서류 위에서 말이다.


스폰서가 밀어준 자금이 더 해지자 그의 열정은 빠르게 보답받았다.
‘예거즈’는 몸은 담고 있지만 운영에는 별 관심이 없던 검성과 유리되었고,
그가 다 방면으로 먹인 돈을 먹고 취해버린 부 길드마스터는 급기야 검성 살해 계획을 짜기까지 했다.

예상한 것보다  나간 반응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스폰서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최치열은 커넥션의 흔적을 슬슬 지우면서도 반 검성 클랜 연합에 대한 지원을 간접적으로 이어갔다.

모든  순조로워 보였다.
실제로도 순조로웠다.
반 검성 연합의 세는 점점 커지는데 반해, 검성은 속세와 인연을 끊겠다는 양 매체에 얼굴을 들이밀지 않는 건 물론이거나와,
클랜 내의 활동마저 그친 검성이 저도 모르는 사이 조여든 올가미를 벗겨내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아니, 그것이 조여들기 전에 픽 고꾸라져 죽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나이를 생각하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활이 메말라버린 검성이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는  그의 생각이었다.


 괴물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건 확신 정도가 아니라 사실 그 자체였다.


류 현.
그 괴물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그 괴물 때문에 모든 게 꼬여버렸다.
초기에 왜 잡지 못했나 거슬러 올라가보면 ‘터주’의 문민호가 존재했지만,
그것으로 문책해서 파내기에는 그것을 실책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의문이었고,
문민호의 존재감이 너무 커졌다.

그 존재감이 그 괴물과의 커넥션으로 인한 것이 반절이 넘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속이 미어터질  같았지만,
최치열은 섣불리 움직일  없었다.
그가 어려운 임무에 임할 때마다 돈과 시간으로 마법을 부려주던 그의 스폰서도 침묵했고,
무엇보다 그 괴물은 어떻게 건드려야할지 감이 안 올 정도로 급속하게 성장한 것이다.
그냥 보통 노인으로 보이는 4선 의원에서, 대통령으로 탈바꿈한 자신의 변화조차 댈 수 없을 정도로 급속하게.

순식간에 한국 정상급으로 성장해서 외국으로 뛰쳐나가선,
한국에선 검성이 포함되지 않으면 쳐다보기도 힘든 최초 던전 클리어를 턱턱 해치우더니,
 대가리에 이름을 박고 나타난 급이 다른 괴물들마저 찢어죽이고 다니기 시작했다.


필리핀의 도시 하나를 겨울왕국으로 만들고,
중국의 해안 도시들을 폭격하며,
일본의 섬 하나를 격리시킨 괴물을 팀 단독으로 소멸시킨 것이다.

그 뒤로는 어디서 뭘한 것인지 칼리프 클랜 측에서 항의 서한이 날아오게 만들더니,
아프리카로 날아가서 땅덩이가 두 배에서 세 배 불어난 땅에서 인간 노예를 부리고 있었다는 괴물을 잡아 인간 노예들을 해방시키고,
동유럽에 할로윈을 선언하려던 유령기사는 말 그대로 찢어 죽였다.

거기에 이번에는 플레이어의 시대에는 조금 뒤쳐졌다는 평가를 듣지만,
여전히 미국은 미국이라는 평을 듣는 미국마저 속수무책으로 동부 해안도시를 내준 ‘살바토르’와 ‘비아트리체’라는 괴물마저 때려죽인 것이다.


전자는 전투 영상이 남아있질 않아 다들 긴가민가하는 반응이지만,
후자는 아예 전투 장면이 네임드 몹 최초로 생중계되기까지 했다.


사람들의 반응?
스폰서의 명으로 유명세를 억누르고 있던 최치열의 노력이 무색하게 되는 건 그 30분도 안 되는 생중계로 충분했다.

 한 번으로  현이라는 놈은 세계 최강임을 인정받았고,
여태 사건이 터지면 관심이 끓어올랐다가 최치열과 왜인지 몰라도 같이 찬물을 끼얹는 신화그룹의 찬물이 닿으면 가라앉던 국민들의 관심이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한 것이다.


최치열이 전날 검성에게 목이 잘리는 악몽을 꾸고도 LA까지 날아와,
 회담 자리에 오게 된 건 그러한 이유에서 였다.

공식적으로는 검성과  현의 귀국을 촉구하기 위한 방미였지만,
최치열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애초에 그러고 싶어도 둘을 강제할 수단이 그에겐 없었고,
있어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여태 목이 멀쩡한 걸 보면 검성이 자신과 전대 정권이 한 짓을 모르는 듯 하나,
그렇다고 최치열이 알고 있는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최치열은 이대로 임기를 끝내고 스폰서가 내려준 포상들을 즐기며 여생을 마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요즘 같이 흉흉한 시국에서는 그것도 쉽지는 않겠지만,
그의 스폰서는 정말 보통이 아니었으니까.

정말 다행스럽게도 회담은 별 문제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오기로 했다던 검성도 시위대를 달래러 떨어져나갔다고 하고,
공식적으로는 자신이 데리러 온 대상인 류 현도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능글맞게 스리슬쩍  주제를 피해가는 미대통령에게는 감사인사를 올리고 싶을 지경.

이제 다시 귀국하면 좋아하는 와인을 취할 정도로 즐기고 아예 잠으로 하루를 보내리라.
최치열은 그런 즐거운 결심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회담 내내 시큰둥한 태도로 입을 잘 열지 않던 류 현이 그에게 다가왔다.
정치인 특유의 습관으로 손부터 내민 최치열의 악수를 류 현이 무던하게 받아주었다.


마음이 마냥 편하진 않았지만, 최치열은 으레 나이 많은 어른이 건네는 덕담을 입에 담으려고 했다.

그 때, 류 현이 장신의 몸을 기울이더니 최치열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녀가 잊어주려고 해도, 우리는 잊지 않습니다.”

최치열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