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8화 〉탐식마(貪食魔)
-친구들 이 기사를 봐줘. 생각보다 우리 소원이 쉽게 이루어질지도 몰라!
ㄴ아니 이게 뭔데 대뜸 보라는 건데. 랜섬웨어냐?
ㄴ겁쟁이.
ㄴ또 멍청하게 싸우려고 하네. 내가 읽어줄 테니 이상한 소리로 트래픽 낭비 하지 마라. 드래곤 슬레이어의 누나가 우리나라에 와있다는 기사야.
ㄴ뭐 진짜야? 언제 들어왔데?
ㄴ기사가 사실이면 들어온 지 좀 됐는데? 비아트릭스랑 싸우기 전부터 들어와 있었다는데.
ㄴ걔가 들어와 있든 말든 우리 소원이랑 무슨 상관인데?
ㄴ멍청아 드래곤 슬레이어한테는 누나 말고 다른 가족이 없어. 그 누나라면 죽고 못 산다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떠돌 정도고.
ㄴ진짜야?
ㄴ기사 출처가 어딘데?
ㄴ타임즈나 가디언지나 할 거 없이 알만한 신문사는 다 내놓은 기사야. 걔네도 한국에서 난 기사 기반으로 쓴 모양이던데?
ㄴ에이, 인터뷰는 아니라는 거네.
ㄴ걔 이번에 인터뷰 한 거 말고는 신문사랑 인터뷰 한 적 없어. 이번이 처음이라고! 자기네 나라에서도 기사는 많이 났는데, 친구니 동네 주민이니 하는 사람들 인터뷰만 실려 있더라.
ㄴ처음이라고? 그게 말이 돼? 아니 걔 정도면 나라에서 나서서 띄워 주려고 난리 치지 않나?
ㄴ자꾸 얘기가 새잖아. 그래서 걔 누나가 여기 온 지 오래됐다고? 근데 좀 이상하잖아, 상황 해제된 지 한 달도 안됐다고.
ㄴ상황 해제는커녕 실시간 진행 중일 때 왔다는 소리잖아.
ㄴ얘 말이 맞아. 동부에 레드 드래곤 웨이브 들이치고 나서 들어왔다더라.
ㄴ아니 왜? 다른 애들 말 대로면 반대로 했어야 하는 거 아냐?
ㄴ글쎄, 비아트리체 분석 결과들 보면 오히려 이게 맞을 수도 있지. 그 괴물이 작정하면 거리 같은 건 문제가 안 된다고.
ㄴ그 괴물이 전략핵급 화력을 펑펑 쏟아낸다는 엉터리 분석을 믿냐?
ㄴ넌 북극 위성사진이나 보고 와라. 마탑 놈들이 환장할 만한 마법 결정이 위성으로 관측 될 정도로 커다랗게 남았는데 핵 몇 방으로 그게 해결 될 거 같냐?
ㄴ위에 너드 놈들은 무시하고, 드래곤 슬레이어가 자기 누나를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에 불러 들였다는 거야 그럼?
ㄴ굳이 따지자면 그런데, 이번에 상대한 괴물에 한 해서는 그런 걸 따지는 게 의미 없으니 이상할 건 없지. 걔 말고 누가 그런 괴물을 잡을 건데? 차라리 옆에 데려다놓고 들여다보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만하지.
ㄴ일단 그렇다고 치고, 그게 왜 걔 귀화시키는 거랑 상관있는 건데?
ㄴ내가 저렇게 말하긴 했는데 너 같으면 아무런 신뢰도 없는 곳에, 그것도 이미 전시인 동네에 자기 하나 뿐인 가족을 그냥 들이겠냐? 자기가 싸우고 있는 동안은 들여다 볼 수도 없는데? 그 먼거리까지 움직여서? 드래곤 슬레이어가 뭐에 감명 받았는지는 몰라도 연방 정부 놈들이 간만에 일을 잘 해서 아니겠어?
ㄴ오, 뭔가 좀 그럴싸하게 들리네. 주어가 연방 정부가 아니었다면 바로 믿었을 듯.
ㄴ어, 그러니까 니 말은 드래곤 슬레이어가 자기 조국보다 연방 정부를 믿는다는 거야?
ㄴ확신하긴 힘들지만 비슷한 수준은 되지 않을까? 한국에 걔에 대한 기사 진짜 쥐뿔도 없어. 커뮤니티도 이번일 터지기 전에는 거너 건터 얘기가 더 많을 정도더라.
ㄴ지벡 그놈 보다 더 많이 언급 되는 게 가능하긴 해?
ㄴ어쨌거나 사이가 정말 안 좋은 거든, 별 관심이 없는 거든 간에 드래곤 슬레이어가 자기 나라에 큰 애착은 없어 보인다는 거지.
ㄴ생각해보니 이상한 점이 있어. 걔 대체 어떻게 그 정도 힘을 가지고도 인지도가 이 모양일 수가 있는 거지? 데스나이트 머리통 뜯어내는 영상도 퍼진 적 있잖아.
ㄴ내 술친구 중 하나가 기자인데 협회에서 장난치고 있다더라고.
ㄴ허언병자 놈아 구라를 치려면 좀 논리를 가지고 쳐. 여태 걔 열심히 도와준 게 협회랑 우리나라뿐인데 뭐하러 그런 짓을 해?
ㄴ우리나라가 걔를 도와줬다고? 아니 대체 뭘로 도와?
ㄴ타임즈에서 아주 목록까지 뽑아놨던데. 국방부 라인 있기로 유명한 기자라서 사실상 오피셜이라고 봐도 돼.
ㄴ아니 연방정부 놈들은 이런 거 홍보 안하고 뭐하는 건데?
ㄴ홍보해서 뭣하게?
ㄴ당연히 드래곤 슬레이어 귀화시키는 데 써먹어야지!
ㄴ걔는 여론 압박한다고 뭘 될 애가 아니야. 꿈 깨라. 너 같으면 그런 무력 가지고 개미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겠냐?
ㄴ그거 말고 한국 애들 놀리는데 쓰면 되겠네.
ㄴ뭔소리야?
ㄴ너 한 한달 쯤 접속 안하고 살았냐? 요즘 한국애들 스레드 점령하고 난리도 아니야. 자기네 사람이니 뺏어가지 말라고 관련도 없는 스레드에 징징거리고 그래서 ip밴도 했는데 vpn돌리고 온다더라.
ㄴ걔 한국에 있을 때 별 관심도 못 받았다면서? 이제 와서 아깝다고 저러는 건 좀 추하네.
ㄴ추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거지. 내가 쟤들 입장됐어도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았을 듯.
ㄴ네다음한국인.
ㄴ말도 안 통하네 어휴.
-연방 정부 놈들은 대체 뭐하는 거야? 왜 계속 입 다물고 있냐고! 빨리 나서서 그 좃같은 카퍼레이드든 뭐든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ㄴ훈장도 빼먹으면 안 되지.
ㄴ미친놈들, 그 동양인들은 외국인이라고!
ㄴ이새끼 한국인 같은데?
ㄴ맞아 이런 개소리를 할 만한 건 그놈들뿐이지.
ㄴ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군. 아예 자유 훈장도 주자고 하지?
ㄴ한국인 친구, 몰랐어? 우리가 주자는 거 네가 말하는 그거 맞아.
ㄴ맞아, 그거 말고 줄게 어디 있어?
ㄴ진짜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군. 아예 그 동양인 놈한테 지켜달라고 발이라도 핥지 그래?
ㄴ와 그렇게 할 수 있으면 당장하고 싶다.
ㄴ발 좀 빤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세계최강이 지켜준다는데 그 정도면 평생 하루에 한 번도 빨겠다.
ㄴ이 미친놈들 너희는 자존심도 없냐?
ㄴLA에서는 아예 걔한테 훈장 주라고 시위도 한다는 데?
ㄴ그거 구라가 아니고 진짜였어?
ㄴ걔들 밥맛이지만 그건 잘 한 거 같네. 나도 껴볼까. 그 시위 어디서 한데?
ㄴ이봐 위의 한국인 친구, 이럴 시간에 너희 친구들이 그 이상한 청원 올리는 거나 막는 게 생산적이지 않을까?
ㄴ청원? 무슨 청원?
ㄴ쟤네 나라에도 백악관 청원란 같은 게 있더라고. 거기다가 드래곤 슬레이어 출국 금지 특별법 청원 올려놨더라.
ㄴ미친 진짜야?
ㄴ어, 백악관 청원란에 쟤네가 올린 거랑 비슷한 게 올라와 있다는 것도 진짜고.
ㄴ세상이 진짜 미쳐 돌아가네. 걔가 기겁하고 떠나도 불평도 못하겠다.
ㄴ갈 때 가더라도 나 좀 데리고 가줘요! 발도 잘 빨고 요리도 잘 해요!
“그만, 이만하면 된 것 같네.”
제럴드 던컨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몸을 뒤로 눕혀버렸다.
그대로 격무에 시달린 발을 구두로부터 해방시켜주고, 두 발을 책상에 올리기까지 했지만 그것으로 타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대통령의 얼굴에 드리운 다크써클만 봐도 그에겐 이 잠깐동안 제멋대로 구는 시간이 절실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제프 리어던은 체면 따위 집어던져 놓은 지 오래인 상사의 추태에서 시선을 돌려, 태블릿으로 시선을 옮겼다.
던컨이 방금 전까지 보고 있었던 그 화면을 향해.
발을 까딱거리며 피로를 풀던 던컨은 그 모습을 보고 열심히 일하는 하급자를 보는 즐거움을 느끼진 않았다.
그 반대였지.
그는 불평하듯이 말했다.
“자넨 질리지도 않나?”
“질린다고 보지 않을 수는 없지요.”
“아니, 다 비슷하지 않나. 빨리 카퍼레이드든 훈장수여식이든 해라! 귀화 서류에 도장도 같이 받고! 이거 외에는 할 일 없는 놈들이 영상 분석이랍시고 너드짓 하는 거고.”
“지금은 가장 여론이 잘 모여 있는 곳 아닙니까. 계속 모니터링을 해두어야지요.”
“거기서 분탕질치는 한국인 친구들이 없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의미가 없지는 않지 않습니까. 분탕질치는 한국인들의 존재가 아주 무시할 수 있는 거라면 모를까. 그리고 저는 분명히 직접 보실 필요까진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비서실 친구들이 올린 보고서가 있지 않습니까. 각하께서 고집을 부리시는 바람에 아무런 쓸모가 없어졌지만요.”
역시 말로는 당해낼 수 없었다.
던컨은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끄응...오늘도 한국 총리한테서 연락이 왔나?”
“총리가 아니고 대통령이 직접 연락해왔습니다. 당장 달려오는 걸 동부가 아직도 어수선하니 오는 과정에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르니 자제해달라고 물렸지요. ”
“...그 치도 참 뻔뻔해. 그렇지 않나?”
“정치인의 미덕을 잘 갖추긴 했지요. 그 이상으로 무능한 것이 문제겠지만 여태껏 별 문제가 없었으니까요.”
“운 좋은 걸로는 역대급 대통령이긴 하지. 아무것도 안 해도 나라를 지켜주는 괴물이 둘이나 무상으로 일을 해줬다니...그러고도 찾아오겠다는 거 보면 자네 견해대로면 그 치가 나보다 대통령으로는 나은 거 같기도 해.”
“...각하.”
“그런 표정으로 안 봐도 그 치 앞에서 티 낼 정도로 미숙하진 않으니 걱정 말게...흠, 5일 후에 LA에서 보자고 하는 게 나으려나?”
“예, 거기가 가장 급합니다.”
서랍에서 피지도 않을 시가를 꺼내든 던컨은 그것의 한 쪽 끝을 잘라내고 코앞에서 만지작거렸다.
마치 자신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2분여 더 시가를 가지고 놀다가 내려놓은 던컨은 한 숨과 함께 내뱉었다.
“거참, 앨라배마에 선거 유세 갔을 때도 이럴 일은 없었는데.”
“거기 친구들이 좀 흥분을 잘 하긴 했어도 미친 건 아니었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임기 내에 훈장을 주고 카퍼레이드 돌리라고 시위하는 걸 달래러 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리고 자기네 국민이니 내놓으라고 강짜부리는 우방국 대통령을 상대하러 가는 것도.”
“시위대는 제가 맡을까요?”
“그래줄 수 있겠나?”
다클써클에 뒤덮여 우중충하게 죽어가던 던컨의 얼굴이 피어나는 듯 했다.
제프 리어던은 농담이었다고 해서 골려주려던 그의 계획을 철회하기로 했다.
그의 상사는 누가 봐도 안쓰러울 정도로 지쳐있었다. 몇 달간 침식에 편히 임하지 못했으니 지금 업무를 보는 것도 기적이라 할만 했다.
제프 리어던은 계획과는 조금 다르지만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 상사에게 기쁨을 주기로 했다.
“예, 시위대는 제가 상대할 테니 각하께서는 잠깐 얼굴만 비춰주시면 될 듯합니다. 어차피 저 친구들도 답답한 마음에 저러는 걸 테니 확언을 주고 나면 같이 시간만 죽여도 될 테니까요.”
“고맙네.”
짧은 감사 표현과 함께 던컨은 그대로 굳어버린 것처럼 생각에 잠긴 표정이 되었다.
아마도 한국 대통령을 어떻게 달래서 돌려보낼 멘트를 짜고 있으리라.
리어던은 업무를 덜어내고도 쉬지 않고 바로 다음 업무에 착수하는 상사를 위해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