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67화 〉탐식마(貪食魔) (367/429)



〈 367화 〉탐식마(貪食魔)

가장 먼저 이상을 느낀  승하였다.


개인적인 용무로 호위 같은  거느리지 않고 외출한 건 그녀가 처음이었으니 당연했다.
그녀는 원정 이후 첫 외출을 감행하고  시간이 채 안 돼서 이상을 느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번 원정에 기여한 이들 중 직접적으로 기여도를 쌓은 인들은 몸조리에 여념이 없고,
간접적으로 기여한 이들은 사후 처리와 여기저기에서 들이밀어지는 청탁을 밀어내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간접적인 기여를 했으며, 미국 내에서 완전히 찍힌 지벡 건터에게도 하루에도 수차례 청탁이 들어오는 판국이니 말다한 셈.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전에 없던 적극성을 내보여서 자청한 격무라는  알 수 있지만, 그런 걸 신경 써서 파악할 정도로 승하가 여유로운 상황인   아니었다.

어찌됐거나 원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최전방 스트라이커 둘 중 하나였고,
미국 내에서 이미지도 지벡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양호한 편인 승하가 지벡보다  자유로운 건 특이한 일이긴 했다.


뜯어보면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지만.


그녀도 지난  주일간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여유가 없었다.
팀 내  둘 뿐인 최전방 스트라이커 역할을 그런 괴물을 상대로 수행을 했으니 몸이 거덜 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게 이유는 아니었다.

이번 원정에서 상당한 기여를  백혜라를 돌보느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종언의 불’을 사용하느라 아주 마법적으로 착 붙어있던 백혜라와 희란은,
사이좋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끔찍한 내부 화상을 입어  일주일은  먹는  아니라 간간히 피를 토하느라 바쁜 상태였다.

일반적인 의료 행위가 아니라 옆에서 상태를 보다가 엘릭서를 몸 안쪽에 강제로 때려붓는 과격한 시술을 감행할 간병인이 필요했다.
여기에서 화련과 승하가 나섰다.

승하는  혼자 걸어 다니면 처음 보는 이가 봐도 이상이 느껴질 정도였고 오른 팔은 아예 못 쓰는 상태였지만,
끝끝내 고집을 굽히지 않아 관철해내었다.

그녀를 설득할 만한 류 현과 백혜라가 앓아누운 데다가,
스스로도 내상이 없진 않아 희란과 백혜라를   돌보기에는 벅찼던 화련은 어쩔 수 없이 묵인했다.
아마  현이 세아에게 붙들려 있지 않았다면 둘이서 대판 싸웠을 것이다.


그렇게 이 주일이 지나갔고,  동안 백혜라와 희란은 정신을 차리고 고형물을 삼키고 혼자 식사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회복했다.
지금도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내는 터라, 혼자서 제대로 거동하려면 한 달은 족히 필요해 보였지만 가장 힘든 시기는 넘긴 셈이었다.

그리고,
류 현 또한 침대에 저를 묶어두려던 세아의 성화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자유를 되찾자마자 팀원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한  현은,
답지 않게 외출 허가를 기다리고 있던 승하에게 너무 멀리만 다니지 마시라는 말만 해주었다.

어차피 멀리 나갈 생각도, 오래 나가있을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기에 승하는 칼 한 자루 차지 않고 밖으로 나섰다.

하루에 몇  씩 피를 토하면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의 배에 구멍을 내고 엘릭서를 쏟아 붓는 과격한 방식의 반복은 그녀에게도 정신적 피로감을 주었고,
정말 잠깐 폐에 바깥바람만 넣어줄 생각이었다.

나가서 뭘 하기에는 상황도 기분도 받쳐주질 않으니.

이번 사태가 터진 뉴욕에서 200마일이 조금 넘게 떨어진 거리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인프라가 무사한 워싱턴이지만,
그게 도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계엄령이 유지되고 있는데다가, 레드 드래곤 웨이브 때문에 파괴된 도로 때문에 이동이 쉽지 않음에도 사태가 종결되자마자 바로 돌아온 이들이 있긴 했으나 소수였고.
정부 관계자 외의 도시 상주인구 대부분은 정부에서 불러들인 이들이었다.


식사나 도시가 비어있던 동안 휘젓고 다닌 밤손님이 일으킨 청사  파손을 고치기 위해 관계자들이 부탁으로 불러들인 이들.


감시받는 기분 속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건 승하의 취향이 아니었다. 뭣 때문에 그렇게 화련과 백혜라의 갈굼을 먹어가며 류 현의 집으로 숨어들었겠는가.


 현에게 말한 대로 잠깐 근처에서 나무나 보다가 들어갈 작정이었다.
‘예거즈’ 창립 멤버들이 죽은 뒤로는 사람 많은 곳은 꺼리게 된 그녀였다. 다행스럽게도 현 상황은 그녀의 의도에  맞는 편이었고.

무인을 넘어 조금은 야생스럽게 변한 공원을 거닐기 시작한 지 십 분이 조금 넘었을 때였다.

멍하니 폐에 통풍을 시키고 있던 승하는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봤다.
그저 류 현에게 사정을 못 들은 미국의 관료가 놀라서 쫓아온 것이거나, 별거 아닌 일인데 호들갑 떨며 달려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혼자도 아니고 일가족 전체가, 그것도 정부 관계자마저 아닌 이들이었다.
거기까지였다면 승하는 대충 그들에 대한 기억을 망각의 저편으로 밀어 넣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승하를 알아봤다.
그것도 미취학 아동으로 보이는 꼬맹이가.


장래가 기대되는 적극성과 용기를 가진 그 꼬마는 기어코 승하에게 사인을 받아냈고,
저가 보고 싶다던 류 현에게 승하가 이 일을 전하게 하게 만들어 이름이 오르내리는 영광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승하 입장에서는 그 이후   넘게 사인을 해준 것에 대한 자그마한 원한의 표출 같은 것이었지만.


“너 대체 뭘했길래 저래?”
“제가 따로 뭔가  건 없습니다만. 하기는 지벡 건터씨가 열심히 활동 중이지요.”
“지벡 그 놈이 열심히 뛴다고 이렇게 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냐?”
“그거야 뭐...”


미국 내에서 플레이어의 위치는 굉장히 미묘하다.
정치적으로는 어떻게 건드리든 다음날 일간지 1면에 나올 법 했으며,
사회전반의 인식은 은연중에 깔린 인종차별 은밀성과 비슷했다. 사람들은 차별이 실존한다는 걸 언급하길 좋아하지 않았고, 들어내서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고치려는 시도도 그보다 조금 덜 할 뿐 불편해했다.


최초의, 그리고 최대의 플레이어 박해 국가.
그것이 미국이 지고 있는 멍에였으며, 미국인 플레이어들의 망명률이 독보적인 이유  하나였다.


모든 미국인 플레이어들이 과거의 일 때문에 망명을 감행하는  아니었다.


1세대와 2세대가 박해를 피해 특권을 보장받고 망명을 감행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면,
그 이후로는 미국이 지고 있는 플레이어 박해 국가라는 멍에로 인한 사회적 반향을 견디지 못해서였다.

플레이어 박해 국가라는 타이틀은 플레이어들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도 크나큰 충격이었다.
다른 종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차이점을 가진 플레이어의 등장도 충격적인데,
적응할 시간도 없이 그들에게 가한 박해 때문에 국가적 멍에를 뒤집어쓰고 시대 흐름에 뒤처지게 된 것이다.

패권국으로서 쌓은 내실이 어디 가는  아닌지라 정부 차원에서는 여기저기 뒷구멍을 내서 몰래몰래 쫓아가고 있었다지만,
기자도 웬만한 이들은 알지도 못하고 아는 이들도 입이 다물린 판에 일반 국민들이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나 소속감이 투철한 이들은 물론,
국가가 간섭하는 건 다 악이라 생각해 플레이어 박해 사태가 까발려졌을 때 강도 높은 욕을 퍼부은 이들도 이후 이어진 국제적 손가락질과 불이익에 대해서는 이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뭘 했다고 이래!
잘 못은 했다지만 우리한테 이렇게까지 굴 일이야?

해소되지 못한 울화는 속에서 빙빙 돌다가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방식으로 터져버린 것이다.
물리적으로 터진 사례는 없었지만, 편법으로 야금야금 군에 편입되어 조국을 위해 일하던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회의감을 느낄만한 일이었다.
역사적 사례를 생각해보면 꽤 온건한 방식의 해소이긴 했으나, 불합리하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게 미국이라는 나라였다.

‘대소환’ 이전에는 자유와 다인종, 민주주의의 대표자임을 표방했으나,
‘대소환’ 초기의 실수로 언제든지 플레이어와 일반인들 간의 대립이 일어날 수 있는 곳.


던컨 정부가 들어서면서 편법을  군으로 플레이어들을 편입시키고,
그들의 활약상과 그들이 가진 애국심을 강조하면서 이미지 융화에 나서고 있긴 했지만 국가가 나서서 해결될 일이었다면 더 강압적이었던 전대 정권이 폭로로 몰락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대표적인 피해자인 지벡 건터가 망명 이후 그것과 별 상관없는 기행으로  일까지 싸잡혀서 욕먹는 건 아주 점잖은 표현법에 속했다.
지벡 건터의 망명은 누구도 지탄할 일이 못 되었고,
그를 따라서 수많은 1,2세대 미국인 플레이어들이 망명길에 나선 것도 죄가 아니라는 걸 냉정히 생각해보면 누구나  수 있는 일이었으나,
지벡은 여전히 가장 많은 욕을 먹는 플레이어군에 속했다. 미국 내의 여론이 지대한 역할을 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한 정서가 널리 퍼져있으니 블랙 던전과 네임드 몹이 나타나면서 플레이어 부조리에 관한 것은 물론이고 여러모로 흉흉해지기 시작한 현 시점에선,
군 소속이 아닌 플레이어는 거리에 나다니는 것도 불편할 상황이었다.


그런 시국에 타국에서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조국 내에서보다는 이미지가 좋은 편이라지만,
명백한 외지인인 승하에게 그런 반응을 보였으니 바로 달려와서 보고를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용잡이 팀이 목숨 걸고 미동부를 유린한-했다고 알려진- 괴물을 잡는 모습이 생중계되긴 했으나,
세상에는 자신만 예외로 두고 직업적인 의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목숨 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고 그렇지 않으면 욕을 하는 인간들이 제법 많았다.

그 판단 대상이 플레이어라면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과반을 훨씬 넘어 8할에 달할 터였다.
 현이 생각하기에는 8할도 아주 보수적으로 잡은 것이었다.

그런 인식에 대해  아는 류 현도 승하가 바로 달려와서 전하는 심경을 이해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라지만, 그렇기에   닿는 반응.
미국이 지금 평온하게 사태를 정리한 것도 아니고, 지금 워싱턴에 있는 이들이라면 이미 한  피난길에 올랐던 이들 일터다.
그 와중에 아이가 부모로부터 느낄 감정적 피드백을 생각하면 특이한 일이 맞았다.


그렇기에  놀라웠지만 류 현은 일희일비  생각은 없었다.


그저,
지금도 그리 들뜬 기색은 아니지만 승하가 나중에 실망할 수도 있을까 싶어 슬쩍 물을 끼얹는 말만 건넬 뿐.


“이 시간에 워싱턴으로 돌아온 이들이라면 조금 판단을 달리하는 게 맞겠지요. 어떤 방식이든 정부와 끈이 있는 이들이니까요. 기사자체가 잘 빠진 것도 크긴 하겠습니다만...기대는 안 하시는 게.”
“누가 기대한데? 좀 놀라서 그렇지. 근데 기사가 어떻게 빠졌길래 그래? 어디 봐.”
“보셔봐야 별 재미없을 겁니다. 진짜 알맹이는 없는데  주물러서 용을 빼냈다고 해야 하나.”


승하에게 태블릿을 건네주는  현은 그 생각을 삼 일이 채 못가 철회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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