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66화 〉탐식마(貪食魔) (366/429)



〈 366화 〉탐식마(貪食魔)

인터뷰는 그리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망부석 마냥 뒤에 지키고 서있던 지벡 건터가 인터뷰를 시작하기 직전에 슬쩍 끼어들어서 류 현의 몸 상태를 언급하며 주의 아닌 주의를 줬기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사전에 입을 맞춰둔  분명해 보이는 모습에 기자들은 두  놀라야만 했다.
그들이 아는 지벡 건터는 저럴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세간에 널리 퍼진 인식대로 완전 판단 불가 개망나니라는 인식까지는 아니어도,
그들이 아는 지벡 건터는 누구 밑에서 저렇게 성실하게 역할을 수행할 만한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그럴 이유도 충분했다.
조국에서 손에 꼽히는 플레이어 자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안에서는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하는 약물 실험이나 혈청 실험 대상이 되고,
밖에서는 던전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대대 단위 화력에 떠밀려 던전을 클리어 하는 노역을 강제당한 게 지벡 건터였으니까.

그가 유럽으로 망명하고 나서  커다란 스폰서를 물었다는 소문 아닌 소문은 공공연하게 돌았지만,
그런 소문을 뜬 소문 정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스폰서 후보 목록을 아는 이들도 크게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었다.

망명 이후 지벡 건터는 이전까지 받았던 압제를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굴었고,
그건 어떻게 봐도 일반적으로 스폰서를 두고 일정을 소화하는 상위 플레이어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이들은 저놈의 본성이 개망나니였구나 하고 말았고,
그보다 시류를 읽을 줄 아는 이들은 지벡 건터가 망명과정에서 졌을 빚을 그가 가진 정보로 거의 청산했다고 여겼다.
지벡 건터가 겪었던 고초 중 검열망에 걸려 기사로 나오지 못한 것들만 봐도 그 정도의 정보를 쥐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기도 했고.


자연스레 그에게 쏠렸던 관심은 개망나니의 행적을 찾아서 가십으로 소비할 만큼 할 일 없는 이들의 것만 남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그의 행적을 주의 깊게 살핀 기자도 이 자리에 있긴 했지만,
지벡 건터는 스스로가 치고 다니는 가십지에나 실릴 법한 사생활 문제를 빼곤 별 다른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진 않았다.
적어도 수사국이나 검사가 그를 기소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가진 과거를 감안하면, 치고 다닌 사고에 비해 최악에 가까운 세간의 평을 억울해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말이다.

그러니,
지벡 건터와 스폰서의 관계나 그 스폰서의 끔찍함에 대해서 모르는 이들에게는 이런 그의 모습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어디 소속되는데 알레르기가 생겼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인간이 이렇게 위험한 건수에,
그것도 자신에게 온갖 압제를 가했던 미국의 일에 끼어든 것도 놀라운 일인데 네임드 몹 원정대에서 몇 번 본 게 전부일 인간에게 저렇게 깎듯이 굴다니? 보고도 믿기 힘든 일.


보기 편하게 편집된 전투 영상을 보고  놀랄 일 없을 거라고 생각한 그들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에 비해 인터뷰는 굉장히 평이했다.
작전 결행 당시 심경이나, 잡은 후 소감 같은 것들이 주를 이루었다.

아주 형식적인 질문들.
무난하지만 곱씹어 볼만한 알맹이는 거의 없는 답변.
이런 것들도 인터뷰어가 꼬으려면 꼬일 수도 있겠지만,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그런 식으로 기삿거리를 짜내는 이들이 아니었다.


신문사에서도 인터뷰가 잡힌 걸 알고서 아주 닦달을 했지만,
그 말을 순순히 들을 자들이었다면 지금보다  높은 직책을 맡고 있었을 터였다.

애초에 이 자리에 불리지도 않았을 테고.
처음에는 왜 불렸는지 조차 판단이 안 섰지만,
기자들은 자신 외의 다른 이들의 경력을 곱씹어보고,
친절하게 편집된 영상을 보고 난 후 대부분 감을 잡은 상태였다.


루카스 또한 거의 확신한 상태였다.

 기묘한 인선이 나름대로 기레기로 인한 여론 분탕질을 막기 위해서 라는 것을.
자신이 포함된 건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다른 기자들의 면면만 봐도 그런 의도를 유추할 수 있었다.


자극적인 기사를 내기 위해서 질문을 꼬거나 답변을 곡해하지 않는 자들.
그러면서도 그 명성 때문에 하이에나들도 쉬이 달려들기 힘든 자들.


그렇다고 그가 기대한 효과가 제대로 나올 지는 의문이었지만, 그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기자를 좀 거른다고 좋은 말만 나올리는 없겠지만...당사자 입장에서야 이럴 만도 하지. 빈말로라도 합리적이라고 하긴 힘들겠지만...겪은 일이 있으니.’

아마도 우크라이나에서의 폭탄테러가 꽤 영향을 끼쳤을 테지. 루카스는 그리 판단했다.


플레이어에 대해 관심을 끊으려고 애를 써온 루카스마저 우크라이나에서 류 현이 겪은 일을 모르지 않았다. 그만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이들이 보도가 끊기자마자 그 일이 없었던 일인 양 관심을 빠르게 거뒀지만, 그렇게 대충 퉁치고 넘어갈만한 일은 아니었다.


지금 동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 플레이어 노선의 시위들은 잘만 보도 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어떻게 참고 있나 싶을 정도.

‘그래도 너무 늦은 거 아닌가? 데스나이트 사냥 영상도 그렇고 뭔가 일관성이...’

루카스 스스로도 본인이 고려할 만한 사항이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사서 고생이더라도 최대한 맞춰주고 싶었다.

밖에서 돌고 있는 이야기들 전부가 그런  아니었지만,
억 단위의 인명을 구한 영웅에게 걸맞지 않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  현실이었으니까.

다른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저 입을 다물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자신이 열성적으로 떠들어 봐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식을 바꾸겠냐만.


루카스는 과거 자신이 등 돌리고 도망쳐버려서 내내 빚진 기분을 느꼈던 플레이어에게,
이미 사람을 미워할 이유까지 떠안고도 그런 싸움을 한 이에게 뭐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루카스가 확신을 갖기 위한 질문을 짜내고 있던 때였다.


“했던 질문을 반복하는 듯하여 조금 그렇지만 묻지 않을 수 없겠군. 원하는 방향성 같은 건 정말 없소?”


이번에도 한  빠르게 나선  마커스 라이트먼이었다.


하지만 이번 발언은 이전과 전혀 다른 반응을 이끌어내었다.
기자들의 반은 경악한 표정으로 초로의 신사를 보고 있었고,
 나머지 중 반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남은 이들은 루카스가 짓고 있을 약간 벙찐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커스 라이트먼이 지나온 길이, 그의 질문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손녀의 그네를 밀어주는 게 인생의 낙일 것 같은 신사는  커리어에 비해 한 곳에 5년 이상 있어본 적이 없는 대쪽 같은 인사였다.

그런 그가 기사의 방향성을 인터뷰이에게 묻는 것을 그의 일화만 들어온 이들도 믿지 못할 일이었다.

그럴 생각이 가득했던 루카스 조차 순간 저래도 되는 건가 생각했을 정도로 너무 노골적이었다.

그러나  현의 대답은  충격적인 질문에 비해 너무 평이했고,
이전과 변함이 없었다.


“그저 해오신대로 기사를 써주시면 됩니다. 제 개인적인 사정을 감안할 필요 없이, 판단하신 그대로요.”

***


“마지막에  말은 뺏어도 됐을  같은데.”


지벡 건터는 방금 전까지 마커스 라이트먼이 앉아있던 자리를 차지한 채로 다리를 까딱거리며 볼멘소리를 내었다.
드물게도  의견에 동의한 다는 듯이 건너편에 자리 잡은 웨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분들이 가진 명성을 생각하면 아주 조금 우호적인 표현만 있어도 꽤 큰 효과를  수 있었을 텐데요.”
“아니, 그냥 마지막에  소리만 안 했어도 열심히 빨아줄 놈이 삼분의  정도는 됐어. 특히  루카스라는 아저씨 표정 봤어? 자기가 무슨 락스타 만난 소녀인 줄 아는 거 같더라.”


타박에도  현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가볍게 어깨만 으쓱해보였다.
그 간단한 동작에도 지벡 건터가 움찔하는  느껴졌지만 류 현은 그것도 모르는 척 해주었다.


“글쎄요. 그런 식으로 만든 억지 명성이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만.”
“억지 명성이 아니라 그 반대지. 들어보니 여태 소문나는  억제 해왔다면서? 어쩐지 아무리 유럽놈들 콧대가 높아도 그렇지 너네 기사가 더럽게 안 보인다 싶었다. 한국에서도  볼일 없는 것들이랑 비슷한 빈도로 기사 나 더만.”
“그 때는 그러는  나았으니까요. 제 판단 착오도 없잖아 있긴 했습니다만.”
“이해가 안 간단 말이지. 자기 주가 올라가는 걸 거절하는 정도가 아니라 억누른 그쪽이나, 들어준 협회나.”


마지막에 가서는 웨인을 곁눈질 하는 게 의도가 뻔히 보였지만, 웨인의 얼굴에는 별 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요청자인  현이 일이 틀어진 지금도 그 요청을 수행한 협회를 포함한 협력자들을 원망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자신의 판단 착오를 탓하고 있다는  알았기 때문이었다.

여유로운 웨인의 표정에 지벡 건터는 영 탐탁찮았지만 표정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류 현의 머릿속에서 자신의 순번이 약간이나마 상승했다는  느낄 정도로 민감했기에, 저보다 순번 높고 강하기까지 한 웨인에게 대놓고 딴지를 걸진 못했다.
대신 자신이 맡게  일에 대한 정보를 더 캐내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태도로 볼 때 그럴 가능성은 낮아보였지만, 나중에 왜 자기 의도를 못 읽었냐고  소리를 듣는 건 정말 질색이니까.

“근데 진짜 약 안  거야? 안 나가봐서 실감이 안 나나 본데, 바깥은 진짜 장난 아니야. 여기로 유조차 꼬라박을 놈도 나올 거 같다니까.”
“그럴 생각이 있다면 이미 기사 한 두 줄로는 어떻게 될 일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런 기사를 부탁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려고 했다면 협박이 더 잘 먹히는 상대를 모았겠지요.”

평이한 어조였지만 협박이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인터뷰에 참석한 기자 후보군을 꾸리고, 모으기까지  지벡으로서는 이 괴물이 평이하게 말하든 아니든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싸움을 보고  뒤로는  현이 좀  편하게 다가와도 이렇듯 저도 알면서도 과민반응하게 되었다.

‘돌겠네. 돌겠어. 그렇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무섭다고 이 그늘에서 나갈 수도 없고.’


“그런 부류의 명성을 원했다면 이렇게 피곤하게 갈 필요도 없었겠지요. 사실 전달만으로 충분합니다.”


자리를 정리하려는 그의 말에 반쯤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린 지벡이었지만 걱정을 완전히 거두진 못했다.

‘유조차만 안 꼬라박히게 닦달 좀 해야겠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참을 거 아냐?’

사흘 후,
자신의 과민반응이 정신병이 수준이 된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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