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4화 〉탐식마(貪食魔)
이 주일 후.
“그럼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겁니까! 벌써 일주일째입니다. 일주일!”
“아니 우리가 앓아누운 환자를 붙잡고 인터뷰 요청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안쪽 상황을 조금만, 아주 조금만 알려달라는 것 아닙니까!”
“또 정보 통제를 하려는 겁니까!”
“이러면 렌트 정권과 달라진 게 뭡니까! 정보 통제를 중단하라!”
“맞다! 정보 통제를 중단하라!”
시장 바닥을 방불케 하는 소란스러움에 루카스 파커는 슬쩍 기자 무리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목에 건 출입증이 아니었다면 기자가 아니라 소요를 일으키려고 작정하고 모인 폭도로 보일 지경이었다.
찌푸린 표정만 봐도 그가 이 소란스러움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무리에서 슬쩍 멀어진 건 그 때문은 아니었다.
“히익...”
“끄르륵...”
‘또 저러는군. 저쯤 되면 위쪽에서도 정식 대응 매뉴얼로 인정해준 거라고 봐야하나?’
버티고 선 두 남자는 물론이고,
문도 뜯어내고 안으로 진입할 기세였던 선두의 기자들이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거나 갑자기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 뒤에 있던 이들도 그리 멀쩡하진 못했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당황스러워 하다가, 문 앞을 가로막아선 남자들을 돌아보더니 선두의 기자들만큼은 아니었지만 그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명백하게 기가 눌린 모습.
혼란이 일어나기에 무리 없는 이상현상이었지만,
바닥을 기고 있던 이들을 제외하면 어리둥절해하는 모습보다는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표정.
루카스를 포함해서 가장 뒤쪽에 포진한 기자들의 시선이 문 앞을 가로 막아선 두 명의 경비원을 향했다.
군부대 마크를 달고 있지만 플레이어가 분명해 보이는 두 남자를.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 시선의 방향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이 무언가를 한 것은 확실했다.
이런 일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벌써 네 번째니까.
그렇다고 반복해서 내린 처방 때문에 약빨이 약해진 건 아니었다.
목적을 위해서 어디든 갈 것처럼 기세등등하던 기자 무리를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와해시킨 것만 봐도 그랬다.
바닥에 엎어져서 꿈틀거리는 이들을 챙길 생각을 하지도 못할 정도였으니.
원인을 알아도, 아니 알기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챙기려고 다가갔다가는 같은 꼴을 당하게 될 게 분명했으니까.
비교적 뒤쪽에 있어서 별 영향을 받지 않은 이들도 분위기에 휘말려 더 이상 뭔가를 요구하긴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이젠 연방 정부에서 나서서 언론까지 탄압하다니! 렌트 정권이랑 다를 게 없는 정도가 더 하군.”
“계엄령을 아직도 유지하는 것부터가 수상하다 싶었는데 이제 플레이어로 언론까지 탄압하는 꼴을 보니...”
“이젠 플레이어 규약은 대놓고 개나주라는 태도로군! 렌트 정권? 그치들은 그래도 여론에 신경 쓰는 척이라도 했지!”
멀찍이 떨어져서 상황을 지켜보던 고참기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갑자기 독재 정권 물러가라고 외치는 이까지 있었다.
완전히 뻗어버린 건 아니고 반쯤 넋이 나갔던 기자들까지 억하심정에 따라 외치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엉망진창이 되었다.
루카스는 조금 더 뒤로 물러나서 그들이 하는 짓을 지켜보았다.
정확히는 이 황당한 상황을 두 경비원이 어떻게 대처하는 지 유심히 살폈다.
‘덮어놓고 기운만 내뿜는 것도 아니고 앞 열만 저 꼴로 만든 거 보면 둘 다 보통내기는 아닌데...’
이 문 뒤의 병원 안에서 요양 중인 이들의 면면을 생각하면 더욱 그럴 것이다.
문제는 플레이어의 수준이 높다고 이런 개판에 대한 내성이 높을 리가 없다는 것.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더 힘들 수도 있었다.
플레이어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제약을 생각하면 이런 상황에 놓인 것 자체가 악몽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아니, 분명 그럴 터였다.
루카스 피터라는 전도유망한 기자가 한창 커리어를 쌓아 올려갈 때 나타난,
플레이어라는 특종거리를 걷어차고 플레이어와 무관한 정치인들만 따라다닌 건 그러한 부조리함이 싫어서였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현실을 바꿀 자신이 없었던 이의 평범한 도피였지만, 루카스가 학을 떼고 돌아보지도 않을 정도로 더러운 일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다 알만한 인간들이 저러는 걸 보면 참...’
뒤에서 선동하고 있는 기자들의 면면을 보면 루카스보다 더 잘 알면 알았지,
모를 수는 없는 이들이었다. 그와 같은 정치부 기자들도 많았지만,
플레이어와 관련된 기사거리는 쳐다도 안 본 루카스가 이상한 것이지 요즘 세상에 정치부 기자라고 플레이어와 연관이 없을 수가 없으니까.
아예 플레이어 전문 기자까지 끼어있는 걸 보고 있자니 할 말도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저 정도 수준의 플레이어가 미국이라는 국가에 남아있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진 않을 터인데.
보다 못해 그들의 시선을 돌릴 말을 짜내려던 때였다.
“허어, 내가 여길 떠나있는 동안 문화도 바뀐 건가? 언제부터 열심히 일하는 친구들 괴롭히는 게 기자일이 된 거야?”
외부자 출입통로 라고 떡하니 용도가 박혀있었지만 지난 일주일 간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는,
그 문을 열고 튀어나온 건 폭도로 돌변할 기세였던 기자들이 가장 바랐던 이는 아니었지만 2순위 정도는 될 유명 플레이어였다.
미국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얼굴이자, 미국인에게 가장 많은 욕과 동정표를 받은 애증의 플레이어.
거너 건터, 지벡 건터.
이주일 전,
북극에서 벌어진 괴수 대전에 직접 기여하진 않았지만,
그 생중계에 직접관여 했음을 정부에서 공인하고 수억 명이 본 그 생중계를 영상 보관조차 못하게 만든 마법을 부린 자.
그 전투가 끝나고서 행방이 묘연해져, 방송업계에서 비공식적으로 현상금까지 걸었다는 말까지 나오게 만든 장본인이 등장한 것이다.
이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꽤 얌전한 몰골로 말이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거, 거너 건터?”
“오, 그래도 이번에는 별명으로는 불러주네. 기자 할배. 전에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매국노라고 했었던 거 같은데.”
가장 뒤쪽에 서있던 플레이어 전문 기자가 목을 움츠렸다. 자신을 기억했을 거라곤 생각 못한 모양.
루카스도 놀라긴 했지만 이내 납득했다.
껄렁껄렁한 태도 때문에 사람들이 잊고 살곤 하지만, 저 자는 가장 많은 마법을 실전에서 쓰는 마법사였다.
기억력이 나쁜 게 더 이상한 일일 테지.
“지벡 건터 씨 혹시 용잡이 팀과 커넥션...”
“아니, 중계 영상은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영상 1분당 100만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지벡 건터 씨! 제발!”
고참 기자가 굳어서 말이 막히든 말든 잠깐의 정적동안 상황에 적응한 기자들은 제 할 말만 쏟아내었다.
방금 전에 몸으로 밀어붙이던 젊은 친구들이 거품 물고 바닥을 기게 되었던 건 잊어먹었는지,
지벡에게 엉겨 붙으려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래봐야 여기 있는 이들이 다 달라붙어도 그를 끌어낼 수 없음에도.
지벡 건터가 최상위를 넘어서, 다른 상위 카테고리를 만들어야 할 정도로 강력한 플레이어인 것조차 잊은 듯한 모습.
그 절박한 태도와는 별개로 두 경비원의 굳건한 방어라인을 아무도 넘진 못하는 게 현실이었지만.
‘근데 왜 지금 나타난 거지?’
아귀다툼 같은 광경을 살피며 루카스는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저 아귀들과 비슷하지만 다른 목적으로 찾아왔기에 그는 좀 더 차분하게 상황을 곱씹어 볼 수 있었다.
지벡 건터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하거나, 이득을 보려고 했다면 이 거대한 요양지가 조성된 일주일 전쯤에서 전투 종료 직후가 가장 적절했을 거라는 사실을 바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직접 전투에 기여한 바는 없었으나, 그것이 이 상황에서 영향력이 적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용잡이 팀이 미국 내에 등장했던 두 마리 네임드 몹을 상대로 승리한 사실과,
작전 참가 인원들의 이름 정도만 밝히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연방 정부의 대응으로 온갖 유언비어가 돌아다니고 있는 지금이라면,
그가 망명할 때 요구했던 천만 달러 인터뷰비는 우습게 보일만한 뭔가가 나올 만도 했다.
그 일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는 단순히 관심 정도를 넘어서, 거의 광기 수준을 넘보려고 하고 있는 판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되어가는 게 전혀 이상한 상황이 아니기도 했다.
선을 긋고 지키기에는 이번 사태로 잃은 게 너무 많았으니까.
‘그래도 지금 나선 건 이해가 안 가는군. 상황이 너무 지저분해졌어. 본인한테 똥물은 이미 튀었고, 뭐라고 하든 간에 부정적인 반응이 반일 텐데.’
“인터뷰? 해주지. 이왕 이렇게 된 거 펀딩해서 와. 한 곳만 해주면 뒷말로 돈에 미친놈이니 어쩌니 할 거 아냐? 너희 상사한테 가서 전해. 사이좋게 돈 모아서 오면 해준다고.”
“영상? 파는 건 안 되고, 내가 참관한다는 가정 하에 틀어줄 수는 있어. 파는 건 안 된다고. 방송국 날아갈 일 있어?”
“그 친구들 인터뷰? 말이 되는 소릴 해. 당신네 방송국 들어다가 바쳐도 안 되지. 그 친구들 몸값이 그 정도로 싸 보여? 대신 디에고를 데려와서 같이 하자고. 그 친구 정도면 남미 피해 정도를 대변할 수 있지 않겠어? 그래, 그렇게 하자고.”
지벡이 상상 이상으로 능숙하게 기자들을 대응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쓸데없는 희망도 같이 고개를 드는 듯 했다.
일주일 전에는 희망에 가득 차서 이곳으로 왔지만, 일주일간 동종업계 종사자들의 추태를 보며 거의 포기해버린 일을 이룰 수도 있다는 희망이.
한 편으로는 별 소용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벡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자 루카스는 저도 모르게 그것을 입밖에 내고 말았다.
그것을 인지하자마자 바로 후회에 빠졌지만,
지벡의 입에서 나온 반응은 그도, 지벡의 주변에서 아우성치고 있던 기자들도 상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흠...글쎄, 이게 의사들도 딱딱 확언을 할 수 없는 문제라. 그냥 들이밀었다가는 내 목이 잘릴 수도 있고. 이렇게 하지. 여기 내 연락처고, 명함 있지? 그래, 이 연락처 내가 기억해 두겠어.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연락 줄 테니 다음에 봅시다. 기자양반. 여기 뭉개고 있어봐야 얼굴 볼 일 없을 테니 근처에서 시간 죽이고 있거나 하쇼.”
“아아, 인터뷰 요청 아니라니까 그러네. 못 들었어? 저 기자양반은 그냥 만나 보고 싶다는 거잖아. 아니, 그리고 내가 물어봐주겠다고 한 거 못 들었어? 받아주는 건 그 친구들 판단이라니까? 왜 당신들 요청은 안 받아 주냐고? 아니, 내가 무슨 공무원이야? 내 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