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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3화 〉탐식마(貪食魔) (363/429)



〈 363화 〉탐식마(貪食魔)

“...내가 너희들 같은 괴물들도 치를 떠는 그런 괴물이 될 거라는 얘기인가?”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말은 그의 심장과 머리를 쥐어짜낸 것이었다.

전생부터 류 현의 마음 깊은 곳에 틀어박혀서 그가 잊을만하면 공포를 상기시켜주던,
‘강림’을 쓸수록 점점 커져가는 충동 때문에 못 본채 할 수도 없던 자신에 대한 의혹.

이대로 계속 능력을 키워간다면 류 현이라는 인간은 어떻게  것인가?
더 진전되지 않더라도 지금의 자신은 인간,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나?

살아남기 급급했기에 한구석으로 밀어두고 고민하는 것조차 뒤로 미루었던,
마땅히 보살펴야 했던 자신의 신변에 대한 문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넘긴 것도 아니었고.

이상현상의 근원이 되는 힘을 쓰지 않고서는 눈앞에 닥친 적을 이겨낼  없어서,
문제를 키우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문제로부터 눈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악화되는 속도를 늦춰보려고 빈사 상태에 몰리지 않는 한은 ‘강림’의 충동에 몸을 내맡기는 것도 최대한 피해왔다.


반신이 찢겨져나간 상태로 입으로 적의 목에 칼을 꽂다가 쇄골 밑으로 전부 날아가고,
감각이 멀쩡한 상태로 거열형 체험하게 된다거나,
 몸이 타들어가는 통증을 죽을 때까지가 아니라 반나절동안 시달리다가 다 녹은 몸뚱이를 회복할 때까지 천천히 작열통을 느끼다,
결국 ‘강림’의 충동에 몸을 내맡겨서 상대를 끝장내는 상황의 반복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놓지 않았다.

그 노력이 빛이 바랄 정도로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것과,  정도 노력으로 만족할만한 안정감을 느끼기에는 충동의 존재감이 너무 거대했기 때문에 외면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뿐.


그렇게 혼자 속에 묻어두고 스스로 외면하는 식으로 대면하길 피해온 문제를 직접 찌르는 것은 아니어도, 그 부근을 찌르는 말을 들은 것이다.
네 안에 있는 힘은 인간에게 허용된 것이 아니라고.
괴수보다 끔찍한 무언가로부터 비롯된 거라고.


그것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인 네임드 몹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된 것이다.

손을 마주 잡고 있는 승하가 그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류 현은 동요하고 있었다.


[...놀랍구나. 그 반응을 보면 조짐을 느끼고 있었던 듯한데, 너와 같은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게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구나. 감정을 버리지 않고도 홀로 자아를 유지하고 있는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거늘.]


승하가 류 현의 동요에 반응하기도 전에 죽어가고 있는 용이 그의 동요에 반응했다.
죽어가고 있는 존재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생생하게.


“네 동족이 했던 소리를 또 할 생각인건가?”
[그가 무슨 소리를 했기에 그리도 불편해 하는지 모르겠구나. 성까지 넘겨준 마당에 악담을 하진 않았을 터인데.]
“...내게 친족이 남아있는 게 놀랍다고 하더군.”
[그건 놀랄만한 일이긴 하구나. 사실, 친족뿐만 아니라 이 행성이 너의 고향 행성이라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만은.]
[그리 불쾌해 할 만한 일이 아니다. 나 또한 직접  힘에 노출되지 않았다면 그리 생각했을 것이니. 그도 큰 유감이 있어서 그리 말한 것은 아닐 테니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는 말거라.]


말하는 괴수,
그것도 네임드 몹에게 타이르는 말을 듣고 있자니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한 기분이었지만 류 현은 잠자코 듣기만 했다.


[괴물이 된다라, 글쎄. 알  없구나. 내 식견이 부족한 것을 감안해도 확답을 내줄  있는 존재는 없을 것 같구나.]
“아는 척은 열심히 해대더니 알맹이는  동족 반의반도  되는  같은데.”
[그렇다고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안다고 할 수도 없지 않겠느냐. 네가 그 존재처럼  수 있냐고 묻는 거라면...글쎄, 기적이 일어나도 힘들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구나. 허나, 지금  존재자체도 기적이 일어나도 힘든 것이니 그런 장담은 의미가 없는 것이겠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네 질문은 네가 초월자 이상의 무언가가 될 수 있느냐는 말과 다를 게 없으니 대답도 애매모호할 수밖에. 저 초월자들도  질문에는 정확한 답을 주지 못할 터인데, 어찌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내가 그러겠느냐?]
“그게 대체 뭔...”
[네가 가진 힘의 근원이 되는 존재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괴물 수준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렇게 말하는 나조차도 그 존재를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를 정도로 거대한 존재지.]
“...내 인지를 초월한  큰 괴물이라는 소리로만 들리는데.”

 현은 자기가 내뱉고도 놀랐다.
괴수를 상대로, 그것도 방금 전까지 서로 살을 찢고 내장을 보았던 적을 상대로 투정부리는 것처럼 말할  있을 줄은 스스로도 몰랐으니까.

비아트리체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킥킥 웃었다. 몸이 들썩거리는 통에 벌어지고 있는 상처구멍이 더 박차를 가했으나 신경도 쓰지 않는  했다.

[그래,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내가  입장을 너무 간과했어. 네게는 가치가 없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 그리고 그 힘을 품고도 자아를 유지할  있는 존재의 가치가 [초월]보다 낮다고는 누구도 장담 못 할 일. 내가 멍청했어. 사과하마.]

생각지도 못한 사과.
류 현은 거의 반사적으로 비아트리체의 눈을 노려봤다.
그런다고 그 심중을 읽어서 진위를 판단할 수는 없었지만, 비아트리체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 이야기에 박차를 가했다.

[네가 이대로 그 힘을 키우면서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었지? 미안하구나. 그조차 장담할  있는 게 없으니. 변명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아마 너에 대해서 뭔가를 장담할  있는 존재는 이 우주에는 없을 거다. 이 행성에 손을 댄 이름 모를 초월자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 말에 류 현은 뜨끔했다.
칼리프 드 오르시아의 얼굴이 절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살바토르가 죽기 직전에 연락을 넣고 죽은 건가? 아니 그러면 누나가 포착을...’

저도 모르게 놈의 눈치를 살피자, 비아트리체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닫힌 세계라지만 너와는 만난 모양이로군. 네게 금제를 걸지도 못했을 텐데 왜 그리 숨기려고 하는 겐지. 나 또한 이곳을  떠날 몸.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이미 이곳에 있는 내 존재가 끝났다는 것을. 다른 누구도 아닌 그러한 힘을 가진 너는 모를 리가 없지.]
“...칼리프  오르시아.”
[뭐?]
“칼리프 드 오르시아라고 했다만.”
[그녀는 사라진 게...아니, 그건 틀린 정보가 되었으니 되씹어봤자 의미는 없나. 그래, 그랬었나. 그래서 시간의 엇갈림이...]

횡설수설하는 비아트리체.
류 현이 슬쩍 끼어들어서 스스로 묻고 답하는 순환을 끊어놓으려는 찰나에 그녀의 시선에 그에게로 돌아왔다.

[놀랍구나. 네가 그녀를 만났다는 것도, 그녀가 너를 찾아왔다는 것도, 그리고 이 행성이 멀쩡한 것도. 아니,  경우에는 너를 확인하고 봐 넘겨주었다고 해야 할까. 그녀가 네 안의 것을 보지  했을 리는 없으니. 그렇다고 봐야겠지. 그래, 그런 거였어.]


끝난 줄 알았던 자문자답이 자신을 주제하는 쪽으로 노선만 변한  하자 류 현은 이번에야 말로 불평을 토해낼 생각이었다.
좀 더 유용한 정보를 토해내도록.


[원래는 적당한 정보를 던져주고 빚을 지울 생각이었다만은...]
“뭐?”
[그녀가 너의 존재를 용인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이 미친 용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저 뻔뻔한 속내를  입으로 내뱉는 걸 보고 있자니 황당해서 말문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심경을 잘 대변해주고 동시에 정보를 뜯어낼 말을 고르던 류 현의 말문을 또 다시 비아트리체가 틀어막고 나섰다.

[잘 듣거라. 남은 힘으로는  번 밖에 말해줄  없으니.]
[머리 세  달린 악룡이 끝이 아니다. 왜 그런 가짜가 제자리를 찾은 후에도 나타나게 되었는지는  수 없지만, 너희에게는 크나큰 호재가 되었으니 그것까지 따질 필요는 없겠지.]
“뭐...? 아지다하카가...”


머릿속에서 정리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말이 튀어나갔다. 지금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
류 현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하지만,

[카학...!]

말을 끝마치기 무섭게 비아트리체의 입과 눈에서 검은 핏물이 쏟아졌다.
내부 손상으로 인한 출혈과 토혈이 아니라,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 힘이 그녀를 지우려는  마냥,
피를 뽑아내고 있는 듯한 격렬한 출혈이었다.

배의 구멍은 순식간에 범위를 넓혀 상하체의 연결을 끊어놓았고, 외떨어진 하반신은 순식간에 검은 것에 갉아 먹혀 소멸했다.
정말  세상이 비아트리체를 지우려는 것처럼 소멸하는 속도가 박차를 가했다.
비아트리체는 가슴께까지 사라진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킥킥 웃었다.
안팎으로 가해지는 압력 때문에 중간부터는 콜록거리는 소리로 바뀌었지만.

[...이런 곳이라도 미래를 뒤트는 정보는 대가가 크군. 본체에게까지 바로 타격이 갈 줄은.]
[이 이상은 정보를  수가 없구나. 아예 입을 막아버리는군.]


[건투를 비마. 다시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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