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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0화 〉탐식마(貪食魔) (360/429)



〈 360화 〉탐식마(貪食魔)

콰긱! 류 현은 자신을 움켜쥔 거대한 용의 팔에 놀라기 이전에,
억누르고 있던 마력을 있는 힘껏 밖으로 방출해서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츠츠! 빠직! 뻐벙!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것에 물든 마력과 용의 손아귀에 스며나온 한기가 맞물리며 그의 몸이 붕 뜨는 듯했으나,

[떨어져라.]

비아트리체의 입에서 나온 언령이 물리법칙을 거부하며 류 현의 몸을 잡아채었다. 날려가던 몸이 덜컥 멈춰섰다.
그에 그치지 않고 용의 앞발은 물리적으로 그의 팔을 잡아채어 승하 위에 덮으려고 들었다.


 현은 어떻게든 몸을 빼내려고 했지만,
한순간이나마 한기에 노출되었던 부분이 얼어붙었는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주먹이 날아드는 것을 보고 류 현은 결단을 강요받았다.


저걸 맞으면 나는 몰라도 밑에 깔린 승하는 무사하지 못한다.
 현의 시선이 잠깐 움켜쥔 칼에 머물렀다.


츠츠! 쿠우우! 그가 결단하는 것과 동시에 끔찍한 두통이 뒤통수에서 머리 전반으로 퍼짐과 함께,
클리버의 윗머리 부분이 아주 조금 줄어들었다. 줄어든 만큼 부정형의 검은 기운으로 화해 류 현의 몸 안으로 돌아왔다.

기묘할 정도로 비효율적인 행동 같았지만 결과는 눈에 보일 정도로 확실했다.

쿠아아아! 몸 안으로 거둬들여진 제련된 검은 기운은 손발보다 더 매끄럽게 그의 의지를 따라 움직였다.
4할이 비아트리체와 그녀가 내뿜는 기운을 가두면서 밀어내고, 남은 6할이 승하를 지켰다.

눈 깜빡하기에도 부족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조금의 막힘도 없이 두 가지 일이 이루어졌다.
동원한 힘이 많지 않아 피해를 각오하고 이를 악물었지만,

퍼엉! 몸이 한  크게 들썩이고 멀리 나가떨어지는 것으로 그치자 류 현 스스로도 놀랐다.

“승하...!”
“멀쩡해. 어우...퉷...”


얼어붙은 핏가루를 내뱉는 모습을 보니 말하는 것처럼  타격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내 방식보다 훨씬 나은데.’


아주 약간이지만 길이가 줄어든 클리버를 보고 있자니 묘하게 후련하면서도 허망한 기분이었다.
움직이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이 의지만으로 팔보다 더 신속하게,  정교하게 움직이는 힘은 괴수를 쳐 죽이는  외에는 힘에 대한 집착을 느껴보지 못한  현조차 갈증 비슷한  느낄 정도였다.
당장 클리버를 전부 해체에서 나온 기운을 몸에 담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의 적은 고민할 시간을 내줄 생각이 없었다.

쩌저적! 퍼억! 그의 발아래의 얼음이 터지더니 그 속에서 불쑥 얼음송곳이 솟아났다.
척 봐도 발판이 되는 빙하와는 성질이 달라 보이는 마법의 부산물.
류 현은 막기보다는 몸을 비트는 길을 택했으나,
그가 고개를 돌린 곳으로 용의 앞발이 닥쳐들었다. 투명한 물빛 물질로 이루어진 용의 본신이.

콰직! 느낌이 달랐다. 이전에는 더럽게 단단하고 무거운 것에 치인 느낌이 전부인 물리력 덩어리였다만,
츠츠츠! 이번에는 접촉과 동시에 피부위에서 안 쪽으로 파고들려는 사나운 기운이 느껴졌다.
‘용제 살바토르’와의 모의전에서 느꼈지만,
정작 실전인 비아트리체와의 교전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용 특유의 사납고 강렬한 기운이!

쩌적! 뻐벙! 한기가 뼈에 미치기 전에 류 현은 마력을 발출하여 한기에 붙잡힌 오른팔을 빼내려고 했으나,


[같은 수에게 계속 당해줄 거라고 생각했느냐?]


놀고 있던 용의 앞발이 그의 왼 어깨를 움켜쥐었다. 몸을 비틀거나 마력을 내뿜어 떨쳐낼 틈도 없었다.
비아트리체는 당장 사생결단이라도 낼 것처럼 보통 정제된  아닌 게 분명한  마력을 마구 쏟아 부었다. 정말 다른 존재라도 된 것 마냥 거침없는 행보였다.
상대적으로 방비가 소홀해졌던 왼쪽 어깨가 순식간에 괴사했다.


류 현은 팔뚝 살이 얼어 터져서 힘도 제대로 안 들어가는 오른팔로 클리버를 휘둘렀지만,


콰득! 용의 꼬리가 팔뚝을 꿰뚫으며 그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슈슉! 양팔을 포함한 공격루트가 봉쇄된 류 현을 돕기 위해 비아트리체 뒤로 블링크를 발동시킨 승하는 칼을 내지르기 직전,
섬뜩한 감각에 허리가 꺾어져라 확 상체를 뒤로 젖혔다.
공중에서 뜬 상태에서 그런 동작은 공격 기회를 날리는 건 물론 치명적인 틈이 될만 했으나,


콰직! 비아트리체의 시선이 닿는 것보다 빠르게 허공에 생겨난 얼음철퇴가 그녀의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해주었다.

하지만 비아트리체의 공세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툭 하고 발꿈치로 얼음판을 두드리는 소리에 머리통이 잘렸던 얼음용이 다시 생을 되찾는 것처럼 잠깐 용틀임을 하더니 승하의 등 뒤로 덮쳐들었다. 규모로 볼 때 그 자신과   또한 영향을 받을 게 분명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반응한 것은 천공성에서 힘겹게 상황을 지켜 보고 있던 백혜라였다.
‘종언의 불’ 발동 이후 힘겹게 그것을 꺼드리지 않고 버티고 있던 백혜라와 희란은 마지막 힘을 쥐어짰다. 발동 직후 완전히 탈진해서 의식만 붙들고 있던 백혜라보다는 희란 쪽이.

화르륵! 거리를 무시하고 즉발로 얼음용의 핵을 터뜨려버린 불꽃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얼음용의 몸뚱이까지 전부 증발시켜버렸다.
요란하게 터져 나온 수증기 때문에 승하의 몸이 뒤로 밀릴 정도였다.

 현을 붙들고 그대로 찌그러뜨릴  같은 기세였던 비아트리체가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노기 어린 시선으로 돌아볼 정도로.

[감히 용의 권능을 범하는 걸로도 모자라서...]

뒷말은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흉흉한 기세에서 그걸 듣지 않아도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는 뻔히 보였다. 류 현은  팔을 잡힌 채로 발길질을 날려 놈의 시선을 돌리려고 들었지만 비아트리체는 거침이 없었다.


[유동하라.]

그녀의 말 한 마디에 천공성 밑의 빙하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 마냥 녹아 사라졌고,

[동결의 창.]

픽- 그의 동체시력으로도 쫓을 수 없는 속도로 얼음의 창이 천공성을 꿰뚫었다.
화련과 ‘살바토르’ 공인으로 실체는 있으나 물리적으로 해체할 방도가 없다던 천공성은,

쩌엉! 가느다란 얼음 기둥이 확 부풀어 오르자 그 공인이 무색하게 삼분의  가량이 부서져 추락해갔다.


도움으로 겨우 위기를 모면했던 승하도,
천공성이 태양빛을 다 가리는 위치에 있던 화련도,
직격은 피했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굳건할 줄 알았던 발판이 뒤흔들려 서로 부둥켜안고 뒹굴고 있는 백혜라와 희란도,
 기묘하게 무게감 없어 보이는 거대한 성의 추락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강제로 비아트리체를 직시해야만 했던 류 현만이 즉시 반응했다. 클리버의 칼몸이 천공성마냥 삼분의 일이 줄어들었다.


수족보다 더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의지를 받드는 힘이 몸 안에 충만해졌지만,
류 현의 머릿속에는 경고등이 요란하게 울고 있었다.

이걸 그냥 둬서는 안 된다. 두면 계속해서 강해질 것이다. 이대로 시간을 줘서는  된다.

그가 보기에 더 없이 완벽하게 정제된 검은 기운은 힘줘서 운용할 것도 없이 류 현의 의지를 반영했다.
오른팔은 한기에 좀 먹혔던 피와 살덩이를 얼음과 함께 토해내 우격다짐으로 제어권을 되찾았고,
그보다  심했던 왼팔은 아예 터져나갔다. 터져나간 자리에는 앙상한 나뭇가지마냥 검은 기운이 뼈대만 채웠다.

뼈대만 남은 왼팔이었지만 아무도 그 존재를 무시할 순 없을 터였다. 비아트리체마저 왼팔을 보자마자 그를 걷어차서 떼놓을 정도였으니까.
류 현은 곧바로 달려들어서 다른  빠진 동료들에게 시간을 벌어주고자 했지만,
비아트리체의 대응이 훨씬 빨랐다.

[유동하라.]


다시금 터져 나온 언령의 행사에 그의 발밑의 얼음이 녹아내려 쑥 꺼지는가 싶더니,


[멈춰라.]


이전과는 다른 언령에 녹았던 물이 얼어붙는 것 마냥 단단하게 그의 두 발을 옥죄었다. 얼어붙지 않았지만 그렇게  것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린 것이다.
한기조차 느껴지지 않는 것이 류 현을 더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설마 벌써 기억을...?’


아직 남은 기운을 발치로 집중시켜 벗어나려는 순간,

 현은 몸이 뻣뻣하게 굳는 그 느낌을 되새기게 되었다.


회귀 전,
아지다하카와 처음으로 대면했을  느꼈던 본능적인 공포를.

이후 세아가 아지다하카의 독에 죽고 나서 강제로 극복한 뒤로는 느낄 일 없을 거라고 여겼던,
그의 의지와 무관한 본능의 소리를.
도망치라는 그 소리를 말이다.

그 순간 류 현은 승하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시간감각이 늘어나는 것을 느꼈다.

한없이 늘어지는 것 같은 시간 속에서 류 현은 보았다.


비아트리체의 머리 주변으로 모인 한기와,
 머리통 주변에 신기루처럼 드리운 용의 머리를.
본신의 것을 그대로 가져다 투구로 뒤집어  것 같은 그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보다는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현이  수 있는 것도  거기까지였다.

다음순간,


피잉! 콰가가강! 용의 분노 어린 숨결이 북극을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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