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8화 〉탐식마(貪食魔)
“그럴 거면 차라리 내가 가는게...!”
“아니 네가 가면 쟤가 어떻게 반응할 줄 알고 그러는데? 저게 정상적인 상태 같아 보여?”
“......”
화련은 입을 앙다물고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류 현이 비아트리체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전과는 차원이 컨트롤 능력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그 기괴한 검은 기운을 주물럭거려 만든 팔과 거대한 중식도 같은 칼을 휘두르며.
상황이 나쁘지 않은 걸 넘어서 좋았지만 그녀의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달랐기 때문이다.
류 현의 겉모습을 제외한 전부가.
화련이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류 현이라는 인간의 인상이라던가,
마력을 운용할 때 보이는 특유의 투박함,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대를 앞에 두고 주변에 신경 쓰는 걸 그치지 못하는 점이라든지,
지극히 주관적이거나 객관적으로 봐도 확실한 부분의 변화가 눈에 보였다.
지금의 류 현은 류 현이되, 류 현이 아니었다.
마치 알맹이가 바꿔치기 당한 것만 같다.
엘더 리치와 본 드래곤을 상대로 빈사의 상처를 입었을 때,
그 상처를 안고 네임드 몹 셋을 순식간에 끝장낼 때 그 때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비슷한 건 류 현이 류 현 같지 않아졌다는 점이고,
다른 점은 지금이 훨씬 기계적이라는 점이 달랐다.
말 그대로 사람같지가 않았다.
‘저건...대체 뭐지? 마스터가 말하길 ‘강림’ 폭주는 저런 상태가 아니었는데...’
회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류 현은 제 능력에 대해서도 풀어놓았다.
워낙 형언하기 힘든 부분이 많아서 들은 걸 다 조합해도 세 문장 미만의 조잡한 설명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은 류 현이 마무리로 내놓은 당부의 말은 기억하고 있었다.
전투가 장기화 되고 큰 상처를 입은 류 현의 상태가 이상해질 시에는 무조건적인 구조시도 보다는 관망을 택할 것.
잘 지켜지진 않았다.
엘더 리치와 본 드래곤 조합 때야 상황의 불가피함으로 멍하니 구경했었으나,
그 뒤로 그녀들은 류 현조차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을 때는 대열이고 뭐고 생각 안하고 달려온 적이 더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류 현이 예견한 폭주는 없었고,
네임드 몹도 무너진 대열을 후벼 파는 것보다는 류 현을 깔아뭉개는데 더 관심이 많았다.
류 현도 몇 번 화를 내긴 했지만,
그건 명령을 어겨서 내는 화라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짜증도 섞인 것이었다.
그에 관한 역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남들 잘 시간에 수련하는 것으로 그 부분을 채우려고 하던 게 그였다.
‘저건...수련의 성과 같은 게 아니야.’
일본에서 그랬을 때는 그저 이질적인 검은 기운 탓인 줄 알았다.
자신의 수준으로는 감지가 안 되는 그런 것이라 그런 이질감을 느끼는 건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지금 그의 모습은,
마치 프로그래밍된 대로 움직이는 기계가 아닌가?
화련과 승하의 머릿속 상태는 비슷했다.
엉망진창이 된 그 머릿속은 하나의 의문에 압도된 상태였다.
‘어떻게 하지?’
구엘 뒤 굴락 때도 무기력함을 절감하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힘이 부족했던 것이지 해결 방식은 아주 단순했다.
놈을 배제하면 되는 문제였으니까.
지금은?
두 여자는 비아트리체로부터 류 현을 떼어내도 되는 게 맞는지,
만약 떼어내는데 성공하더라도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천공성 위에 백혜라를 돌보고 있을 희란도 별반 다르지 않겠지.
이렇게 승하와 옥신각신하고 있는 것도 무의식중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일단 내가 가진 스택으로 떼어놔 볼테니까 너는 바로 가까이 오진 말고...”
뻐억!
그 때였다.
금방이라도 비아트리체의 목에 칼을 박아넣을 것처럼 쉴 새 없이 몰아붙이던 류 현의 움직임이 덜컥 멈췄다. 동력이 다한 기계장치마냥.
그 직후 코피가 확 쏟아짐과 동시에 비아트리체의 발차기가 그를 날려보았다.
그 순간 두 여자는 서로의 마음을 읽어내었다.
슈슉! 화련이 류 현의 곁으로 승하를 날려 보내고,
키아아악! 텔레포트 됨과 동시에 검은 검기를 흩뿌린 승하가 날려가던 류 현은 받아내었다.
화련은 지체하지 않고 그 둘을 대상으로 텔레포트를 발동시키려고 했으나,
[잔재주도 적당히 해야지.]
콰직! 노기서린 비아트리체의 목소리와 함께 네 방향에서 솟아난 얼음 기둥이 그것을 가로막았다.
한기를 품은 얼음기둥은 화련의 마법을 찢어발기며 아예 그녀가 옮기려던 통째로 얼려버렸다.
화련은 마법의 반동에 신음하면서도 둘의 좌표를 얼음기둥이 맞물린 곳 조금 아래쪽의 빈 공간으로 이동시켰다.
“크으으...”
그것만으로도 내상이 터질 것처럼 가슴께가 시큰거리는 느낌이었다.
화련은 굴하지 않고 마법을 재발동시키려고 했다, 블링크 트리거로 탈출을 기대하기에는 저 단순한 공격에 담긴 힘이 심상찮았다.
류 현을 데리고 있으니 자신이 빼내주는 게 최선이다.
승하가 당황한 표정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음에도 얼음 기둥 네 개로 만들어진 간이 감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기둥 간 빈 공간을 채우는 얇은 얼음마저 끄떡도 안했다.
[인간을 상대로 공간격리를 쓰게 될 줄은 몰랐다만은. 날파리부터 치워야겠지.]
두 사람의 텔레포트를 시도하던 화련의 얼굴에 경악이 떠오르기도 전에,
꾸웅! 비아트리체의 발구름에 빙하가 들고 일어났다.
얼음으로 이루어진 파도가 치는 것처럼!
류 현과 승하를 이동시키려다가 저 안쪽의 좌표가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하던 화련은 그 공격에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녀가 그 공격을 인지한 것은 얼음의 파동와의 거리가 200미터도 남지 않았을 때였다.
공격 규모를 생각하면 코앞이라고 해도 좋을 거리.
화련이 큰 손해를 감수하고 비상탈출을 감행하려는 때,
치이이익! 츄왁! 아직 다 사라지지 않은, 빙하 곳곳에 박혀있는 불의 결정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와 그것들을 모조리 녹여버렸다.
그것을 전부 지켜본 비아트리체의 눈에서 분노가 이글거렸다. 천공성에 있을 흉수를 향한 분노의 열기가 화련에게도 닿을 정도였다.
[감히...!]
비아트리체는 왼손을 뻗어 반쯤 움켜쥔 동작을, 오른손은 허공을 치는 것 같은 동작을 해보였다.
오른 주먹이 뻗어져나옴과 함께 거대한 용의 본신도 살짝 가라앉았다가 몸을 쭉 빼며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거대한 몸뚱이가 어디를 타겟으로 잡았는지는 너무도 분명해 보였다.
화련이 기겁하며 성과 자신을 이동시키려고 했지만,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인지 마법이 돌아가질 않았다.
‘아니 왜 좌표가...?’
용의 본신이 완전히 떠오르려는 찰나,
파캉! 파각! 콰직!
비아트리체는 예상치 못한 등 뒤의 습격에 앞으로 우당탕탕 나가떨어졌다.
마악 날아오르려던 용의 본신도 옆으로 쓰러지며 다시 빙하 위에 몸을 쳐 박았다.
[아니 어떻게 격리를 깨고...]
몸을 추스를 생각도 못하고 당혹스러워하는 비아트리체 위로 류 현이 덮쳐들었다.
검은 기운으로 이루어진 제3의 팔은 사라졌지만,
검은 기운으로 이루어진 제 몸뚱이만한 클리버를 여전히 움켜쥐고 있는 류 현이!
비아트리체는 반사적으로 손을 내뻗어 그것을 막으려고 했으나,
콰긱! 츠걱!
검은 칼날이 그녀의 오른 손 손가락 두 개를 먹어치웠다.
날아간 약지와 소지에 분노나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다.
류 현은 무릎 관절이 무너져 핏물이 비어져 나오는 격한 방향전환을 감행하며 목덜미를 노려왔다.
승하가 이미 한 번 살짝 파낸 바 있는 그곳을.
[너..!]
파창! 푸걱!
비아트리체 또한 멍청히 있지만은 않았다.
방향전환을 위한 그 잠깐의 딜레이,
그 사이 가벼운 발 구름에 발 앞쪽 빙하가 창처럼 솟구쳐 류 현의 배를 다시 후벼 팠다.
류 현은 핏발 선 눈으로 이를 악문 채, 클리버를 계속 휘둘렀지만 정말 한마디 가량이 모자라 코끝에도 닿지 못했다.
한기까지 그의 몸 안으로 파고드는 것이 확인 되자 비아트리체는 분노보다는 의문을 토해냈다.
이미 한 번 거절당한 그 질문을.
도무지 입에 올리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었다. 그가 제 손가락을 잘라내었기에 더더욱.
[어떻게 이렇게 급격하게 변할 수가 있지? 그에게 영혼을 대가로 뭔가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도 없을 터인데. 그래도 그런 급격한 발전에 대가가 없을 리가 없지. 이해할 수 없구나.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지? 그의 사도가 된 것으로는 고통이 부족하더냐?]
그러나,
그래선 안 되었다.
류 현은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슈슉!
그렇다고 그에게 신경이 팔려있지 않았다고 한들 대처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비아트리체의 행동이 아주 그르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스칵! 키아악! 파캉! 뻐벙!
승하는 자신의 존재감을 따라서 뒤돌아 본 비아트리체의 왼쪽 눈에 있는 힘껏 검을 찔렀다.
도무지 눈알을 찌른 느낌이 아니었지만,
승하는 망설이지 않고 한껏 응축시킨 검은 검기를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