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6화 〉탐식마(貪食魔)
“읏...”
류세아는 병실에 혼자 앉아있었다.
자신을 윗선과 그 윗선이 쩔쩔매는 간병대상의 눈치를 보느라 새하얗게 질려가던 간병인에게 휴대폰까지 넘겨주고 얻은 혼자만의 시간을 그녀는 능력을 사용하는데 쓰고 있었다.
동생을 비롯해서, 그녀 주변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간병인을 포함한 주변인 대부분이 그러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녀는 각성 이후 처음으로 자기 의지로 능력의 최대치까지 활용하는 중이었다.
몰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간병인이 그렇게 쩔쩔 매면서도 제 옆에 붙어 있으려 한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휴대폰을 쥐어주고 떼놓을 수 있었던 것도 그걸 알았기 때문이었으니까.
류 현이 직접 그녀에게 알려줬다.
그녀의 하나 남은 혈육인 남동생은 이번에는 자신에게 모든 걸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의 요청과 자신의 필요 때문에 싸움을 전 세계에 중계하게 될 것이라고.
듣고도 믿기지 않은 이야기를 하며 어지간하면 보지 말았으면 한다는 말을 했었다.
처음에는 화가 나기도 했지만, 천천히 고심해 본 결과 동생이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저도 그랬을 테니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부모의 죽음과 함께 화상 자국처럼 새겨진 강박을 극복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괜히 류 현이 세아의 정신상태에 무심해서 숨기는 식으로 마찰을 피해 간 것이 아니었다.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의 문제라고,
세상 어느 직종보다 트라우마와 가까운 플레이어로 10년가량 활동한 그가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세아는 스냥 보아 넘기지 않았다.
장기 입원생활 중 권유받은 정신과 상담을 통해 자신의 강박을 발견하고는 극복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 결과,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지만 류 현이 원정 나가기 전날 끙끙 앓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동생의 통보를 듣고도 이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미국으로 날아오기 전까지 그녀의 담당의가 봤다면 박수를 쳤겠지만, 아쉽게도 그녀의 진전에 주의를 기울 일 이는 이곳에 없었다.
하나 뿐인 혈육도 당장 죽네 사네 하는 문제에 매달려서, 그 와중에 새어나오는 살벌한 기세를 누이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만나는 것도 자제했었으니까.
여러모로 그리 만족스러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세아는 이성적으로 접근해보려고 애를 썼다.
류 현의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그런 걸 보게 되면 제정신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괴수가 보냈다던 초대장 같지도 않은 초대장을 읽은 뒤로는 뒤숭숭했는데, 동생이 싸우는 모습까지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어쨌거나 세아가 혼자 있게 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어차피 보지도 못할 거 아예 여지를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주변이 시끄러워질 건 뻔했기에 방음 잘 되는 개인 병실에 혼자 있게 해달라고 휴대폰까지 넘겨줬다.
그러곤 병실에 틀어박혀서 봐봤자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마음만 아플 뿐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달랬다.
중간부터는 자학 비슷한 게 되긴 했지만 그렇게라도 시선을 돌리려고 애를 썼다.
그녀는 정말로 볼 생각이 없었다.
북쪽에서 못 본 척 넘기기 힘든 거대한 불의 파동을 보기 전까지는.
아직 시력이 돌아오지 않은 터라 생활하기 위해서는 항시 능력을 사용하고 있어야 했기에,
세아는 그 폭발을 아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폭발과 함께 터져 나온 불꽃이 맞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시커먼 구멍 같은 빛을 띤 불꽃은,
마력흐름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세아에게는 도무지 못 볼 수가 없는,
눈을 감고 있었어도 이상을 느꼈을만한 사나운 파동을 세상 곳곳에 흩뿌려대었다.
그녀가 보기에는 세상이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있나 싶을 정도였다.
정말로 그 사나운 파동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지고 있음에도 세상은 이상할 정도로 평온했다.
그것이 이상해서 파동의 행방을 좇으려던 세아는 그것이 동생이 전장으로 택한 곳에서 나왔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자신에게 욕을 한 번 퍼부어주고는 시선을 북극으로 돌렸다.
그녀의 능력은 아주 자연스럽게 의지를 수발했다.
거리적 문제나, 마력의 파동으로 인한 방해는 걸림돌조차 되지 못했다.
세아는 무의식적으로 그 모든 장해를 뛰어넘었다. 대가는 그녀 안에 자리 잡은 얼마 되지도 않은 마력 중 일부로 충족되었다.
화련이나 류 현이 봤다면 황당해서 할 말을 잃었을 무시무시한 재능의 행사였으나,
병실 밖을 지키고 있을 플레이어들은 무엇도 느끼지 못했다.
류 현이 지금의 상황을 알았더라도 그들의 무능함을 탓하기 보다는 누이의 부주의함에 화를 내겠지만.
어찌되었든,
그 폭발 때문에 세아는 조용한 병실 안에서 누구의 제지도 없이 용잡이 팀의 분전을 관람하게 되었다.
동생의 권유에 동의했었던 기억은 동생의 뱃가죽이 터져나가며 내장을 쏟아냈을 때 같이 날아가 버렸다.
비명을 지르면서 뛰쳐나가 문 근처를 지키고 있을 플레이어들에게 왜 여기서 손 놓고 있냐고 따지지 않고 앉아 있는 게 그녀의 최선이었다.
그녀의 감은 눈에서 행해지고 있는 원시(遠視)는,
지벡 건터가 실시간 편집해서 내보내고 있는 영상보다 훨씬 깨끗하고, 순간 영상이 끊겼던 것처럼 보이게 하는 순간적인 가속도 모두 잡아내었다.
심지어 동생인 류 현을 지독하게 괴롭히고 있는 커다란 용과 조각 같은 미녀의 연결까지.
물론 세아는 그 미녀가 사람이 아니라 괴수임을 단박에 알아보았고, 그 주변에 얼어붙었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정체된 마력의 벽 또한 보았다.
그 벽을 무너뜨리려는 것인지 한 번치고 뱃가죽이나, 가슴에 구멍을 하나 허용하는 동생을 보고 있자니 입안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애당초 보지 않기로 결심했던 어제의 자신이 옳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저 무섭도록 아름다운 괴수에게 맞서고 있는 동생은 기괴한 기운을 흩뿌려대곤 있지만, 위태롭게 보이기만 했다.
눈에 보이는 바로는 체급차이가 너무 심했다.
대체 어떻게 동생이 접했는지 캐묻고 싶은 저 불길하고 기괴한 기운을 끼고도 버티는 게 고작인 체급차이.
그것을 살라먹으며 타오르고 있는 검은 불꽃은 괴수가 꺼려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동시에 사랑하는 동생의 몸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고 있음이 눈에 훤히 보였다.
그녀의 입안에선 이미 네가 그렇게까지 싸울 필요가 없지 않느냐 는 만류가 파도를 이루어 수십 번 휘몰아쳤다가 부서져나가기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 연기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한 자기혐오는 그녀에게서 집중력을 앗아갔다.
자칭 류 현의 친구라던 나승하가 이탈하고 나서 세아는 잠깐 집중력을 잃었다.
정말 잠깐이었다.
어느 새 볼을 적시고 있던 눈물을 닦아내면서 그녀는 곧바로 다시 들여다보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바로 연결되지 않았다. 방금 전만해도 아무런 문제없이 집중하면 슬로우 모션까지 볼 수 있었는데.
이런 경험이 처음인 세아는 당황 속에서 재연결 시도를 반복하기만 했다.
전장에 있는 누구도 모르게 연결되었던 원시가 깨지면서,
그곳에 있던 용이 그녀의 시선을 눈치 채었기에 일어난 일임을 알아차리기에는 세아의 지식과 경험이 너무 일천했다.
타들어가는 속을 부여잡고 열한 번째 재시도에 힘을 쏟아 부은 세아는 다시 연결된 것에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당혹스러움과 마주 해야 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괴수에게 뱃가죽이 터지고,
무릎이 관통당해 역으로 꺾여 몇 번이고 빙하에 얼굴을 쳐 박았다가 일어서면서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이던 동생이,
그 잠깐 사이에 물빛 동체의 커다란 용과 괴수대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은 동생에 대한 믿음이나 애정으로 납득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류세아는 검은 촉수 같은 걸 쭉쭉 뽑아내는 모습에만 놀란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은 지금 저 곳에서 싸우고 있는 류 현 자신보다 더 정확하게 그의 상태를 파악해내었다.
스스로가 바라지 않던 결론이었음에도.
“혀...현아? 아니지...?”
‘말도 안 돼! 현이가 맞는데 그런데...왜 현이가 아닌 거지?’
결국 세아는 더는 견디지 못하고 병실을 박차고 튀어나갔다.
그 중 가장 가까이서 휴대폰으로 생중계를 들여다보고 있던 이의 폰을 뺏어들고는 영상을 말 그대로 뚫어져라 노려봤다.
하지만 지나치게 성능 좋은 그녀의 능력은 휴대폰 화면이 아닌, 그 화면이 비추고 있는 곳의 좌표를 바로 그녀의 머릿속에 비추어 주었다.
도출되는 결론은 이전과 동일했다.
저건 류 현이 아니다.
세아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휴대폰을 빼앗긴 경호원과 간병인이 뭐라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그녀의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세아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럼 현이가 아니면 뭔데?’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