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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0화 〉탐식마(貪食魔) (350/429)



〈 350화 〉탐식마(貪食魔)

문명이 기능하는 땅의 인간들은 죄다 휘말린 범세계적인 소동.
 소란을 집도한 자는 평소에는 별 관심도 없던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중이었다.

미합중국의 대통령 제럴드 던컨은 대놓고 기도를 올리고 있진 않았지만  손을 움켜쥔 채 끊임없이 신에게 청원하는 중이었다.
자신의 기도를 받아줄 신이 자신의 바람을 이루어   있을 만큼 유능하길 바라면서.

핏발선 눈과 극도의 긴장으로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은 청원하는 신자보다는 결과를 기다리는 결과를 기다리는 도박사 같은 모습이었지만,
사령부 내에 가장 독실한 신자도 그와 별 다를 것 없는 모습이니 상관없을 것이다.

여론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서 켜둔 채팅창 화면에 관심을 두는 이는 없었다.
그 모니터 요원들을 관리해야하는 직책을 가진 이들도 그 사실에 별 관심이 없었다.


본토에 러시아의 핵이 떨어져도,
‘각하, 의회에서 루스키 친구들에게 보내  선물을 같이 고르자고 성화인데 바로 의회로 가시겠습니까?’

라고 농을 치고도 남을 자신의 부통령마저 굳은 표정으로 화면을 주시하고 있지 않은가.
이 와중에도 사령부 내의 이들 중 가장 태연한 모습이긴했지만.


‘내게서 애나를 뺏어갔으니 이 정도는 들어줘도 되지 않소. 당신 신자들을 지키는 일이오.’


자신을 정계에 복귀시키고, 대통령이 되도록 만든 아내의 죽음까지 들먹이며 던컨은 기도했다.
국가가 플레이어라는 개인들을 짓누른 결과로 아내를 잃은 남자는,
젊은 시절 자신이 그토록 경계하던  명의 초인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을 넘어서,
그 초인을 위해서 기도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 사실에 분해하거나, 스스로를 한심하게 느낄 새도 없었다.
직책이 가진 힘에 비해서 그의 몸뚱이는 일반인 그 자체였으니까.

거기에 늙기까지 한 그의 동체시력은 류 현의 배가 터지는 장면 정도 밖에 잡아내지 못했다.
그마저도 놓치지 않으려면 눈이 빠져라 집중해야만 했다.
비교적 젊은 관리직들도 모니터 요원으로 붙여둔 플레이어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는 것만 봐도 그 문제는 아니었다.


던컨은 저 아름다운 괴수에 비해 미물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남자의 처절한 분전에 책임감을 느꼈다.
그것이 스스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제 스스로 위안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자조를 퍼부으면서도 그는 그것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제럴드 던컨은 그런 남자였으니까.
전대 정권이 완전히 망쳐놓은 플레이어들과의 관계 때문에 아내가 희생되고,
 사건을 통해서 플레이어에 대한 증오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를 보고,
같은 일을 겪은 이들을 다독여  분노가 엉뚱한 곳으로 튀지 않도록 국가를 종용하여,

마침내 그 시스템을 뜯어고칠 자리까지 올라온 자였으니까.


 현이 일주일도 전부터, 일주일 후에 비아트리체를 사냥하겠다는 호언장담을 하긴 했어도 마냥 마음 편하게 관전한다는 건 그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신념상 이 상황 자체가 가시방석 그 자체였다.

계속되는 긴장 상태와 도무지 전투 상황을 쫓질 못하는 눈 때문에 괜히 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때도 있지만,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했을 뿐 자리에서 일어나진 않았다.

이건 자신이 발의하고 추진한 일이니까.



 싸움을 알만한 이들만 알고 끝내는 것이 아니고,
기사로 다듬어서 내놓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 세계에 내놓는 것.


던컨은 제의 아닌 제의를 하면서도 받아들여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저 영상의 일부분만이라도 얻어서 나중에 써먹을 수 있도록 가장 크고,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을 말한 것뿐이었다.

촬영자체도 저 ‘천공성’을 전투 중에 동원해야 가능한 일이고, 우크라이나에서 테러까지 당해본 이들이기에 그런 식의 접근자체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데스나이트의 목을 뽑아버리는 영상을 팀원 중 하나가 공개하는 일도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내부의  아닌가?
거기다 그의 유능한 비서진은 그것을 공포탄 사격 비슷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데스나이트 토벌 후, 아무런 콩고물이 떨어지지 않자 슬슬 딴 생각을 품고 뒷공작에 시동을 걸던 나라들과 자신들에게 찬사 대신 폭탄을 던진 이들에 대한.

그런데 생각 외로  현은 흔쾌히 그것을 수락했고, 아예 지벡 건터를 사령부에 남겨놓고 가기까지 했다.
아마 촬영을 해도 그냥은 뭘 시인할 수도 없을 테니 그에게 실시간 편집을 맡기겠다는 거였다.


안전한 후방에 남게 된 지벡 건터마저 진심이냐고 되물으며 황당해 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소리였다.

지벡 건터 정도면 기존의 헌팅 레벨이나, 비교 체계가 의미 없을 정도로 돌출된 실력자 아닌가.
용잡이 팀원들이 그 지벡 건터마저 혀를 내두르는 괴물들만 있다지만, 그 괴물들로도 장담하기 힘든 네임드 몹이 상대다.
한 손이 아쉬운 상황인데도 이 여유로움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네임드 몹에 대한 제대로 된 자료가 없었기에,
원정대 인원수를 늘리는 것 자체도 리스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추측 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영상을 보고 있자니,
빙긋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한 류 현이 아주 신사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던컨이 기억하는 걸로만 여섯 번째 터져나가고 있는 복부에서 장이 쏟아졌다.

화면상에서 일순간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가속을 하던 몸으로도 그 부상은 무시하기 힘든지, 류 현의 무릎이 다시 빙하에 닿았다.

보이지 않는 공격의 고삐를 당긴 것인지, 그의 배가 아물고 무릎을 펴기도 전에 오른쪽 다리와 왼쪽 눈자리가 터져나갔다.
그의 몸이 빙하위로 쓰러졌다.

사령부 곳곳에서 억눌린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하지만 화면 속의 초인은 굴하지 않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몸 위로  새 없이 타오르고 있는 검은 불꽃과 재생되고 있는 다리와 천천히 차오르고 있는 눈자리는 안도감보다는 고통스러움을 느끼게 했다.

던컨은 저 남자가 어떤 고통을 감수하고 있는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상상마저 저 남자에 대한 모독이  테니까.

‘너무 쉽게 생각했어...’

쉽게 생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눈앞에 자신의 상상을 아득히 넘어서는 현실을 직시하고 나니 그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었다.

이건 그가 아는 플레이어의 싸움이 아니었다.


보통 플레이어의 싸움도 처절함으로는 어디 가서 꿀릴 일은 없다.
적정 등급의 괴수도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거인이고, 플레이어는 그 거인을 죽일 수 있는 마법의 검을 쥔 난쟁이였으니까.
사람들은  난쟁이가 거인을 쳐 죽이는 것에 집중하고 환호하지만, 난쟁이 입장에서는 매 순간이 외줄타기고 죽음의 위기다.

혼자서 괴수를 벌집 꼴로 만들거나,
노는 것처럼 움직이면서 산 채로 회를 쳐버리는 이들도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특정 부분에서 압도할 뿐이지 전체적인 스펙을 따지면 열세에 가까웠다.

아니면 아예 등급이 다르거나.

그리고 미국의 대통령은 그 난쟁이의 처절한 사투를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자리였다.

 단추를 잘 못 꿴 이후,
미국은 플레이어 전력 유출과 외교적 약점을 드러내게 되었고,
그렇지 않아도 드넓은 영토 내에 전력 약화까지 겹치자 던전 통제에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벌어진 현실에서 벌어진  괴수 전은 전부 영상자료가 되어서 쌓이게 되었다.
협회에게 물밑 거래 재료로 제시해도 될 정도의 양질의 자료가.

그러나 지금 던컨은 자신이 봐온  수많은 사투들이 빛이 바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미동부를 쑥대밭으로 만든 용종 괴수마저 백단위로 도살한 괴물 같은 남자가 한 번의 접근을 위해서 온 몸이 넝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재생되고 있으니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은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사지 멀쩡하게 은퇴하면서, 재생 후에도 남은 환통과 반복된 부상으로 인한 ptsd로 병원에서 여생을 보내게 된 이들에게 훈장을 달아준 게 자신이었으니까.

너무 경솔했다고,
그가 괜찮다고 웃으면서 대꾸하는 것에 그대로 넘어갔으면  됐다고.
아무리 정보가 전무했을지라도 그랬으면 안 됐다는 자책의 말들이 계속 증식해 나갔다.

“어...?”


그 자책의 연쇄를 끊은 건 모니터 요원으로 데려다 놓은 신참 플레이어의 목소리였다.
사령부 내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돌아가자, 시선을 받은 이는 어깨를 움츠리며 떠듬떠듬 변명하듯이 말했다.


“화면의 상태가 조금 흐릿하게...”


모였던 시선은 곧바로 그가 곁눈질 하고 있는 이에게로 쏠렸다.


그들의 시선이 돌아간 곳에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눈이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있었던 화면 앞에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동양의 수행자처럼 좌선하고 있는 남자, 지벡 건터는 식은땀으로 등허리 라인이 다 보일 지경이었다.

자신에게 시선이 쏠린 것과, 그 시선들이 갈구하고 있는 질문을 읽은 지벡은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야이 머저리들아 위를 보라고. 위를!”

순간 화면이 흔들리며  세계적으로 불만 채팅들이 줄을 이었지만, 그건 말을 내뱉느라고 집중력이 흐트러져서가 아니었다.

간접영향만으로도 송출에 지장을 줄만한 이상현상이 벌어지고 있기에 따라온 노이즈.

사령부의 이들은 지벡의 지적에 따라,
지벡의 지적을 듣지 못했을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감이 좋은 이의 지적에 따라 그것을 보게 되었다.

북극에 떠오른 두 번째 태양을!


추락이 아니라, 침몰하는 것처럼 천천히 가라앉고 있는 두 번째 태양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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