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47화 〉탐식마(貪食魔) (347/429)



〈 347화 〉탐식마(貪食魔)
‘피에 불을 붙여야 진짜 화력이 나온다니...’


정확히는 피와 자신이 뿜어내는 검은 것들을 태울 거리로 제공했을 때 지금 같은 화력이 나오는 것이지만.

이해가  가는 건 매한가지였다.
해방 전에도 상당한 마력을 잡아먹는 아티펙트다.
해방 후에는 류 현조차 상당한 재생력을 여기서 새어나오는 힘의 역류에 할당해야할 정도고.

그런데 그걸로 모자라서, 검은 안개와 기운까지 집어넣어야 한다니?
 현이 ‘대소환’의 방향성과 대치되는 존재라던 살바토르의 증언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도구가 아닌가.

다른 이들은 피로 퉁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몸마저 조금씩이지만 타고 있는 걸 보면 그렇게 넘길만한  아닌 것 같았다.
화력을 내기 전에 몸뚱이가 타버릴 테니.

류  본인 또한 그냥 넘어가기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피와 검은 것들이 살라 먹히면서 마력이 밀물처럼 빠져나가고 있으니까.
가장   재생하는 와중에 소모되는 체력이었고.

‘그렇다고  쓸 수도 없군.’

비아트리체, 놈이 본격적으로 얼음 덩어리를 주물러서 휘두르기 시작한 권능인지 뭔지는 도무지 류 현의 내구력으로도 버텨낼 수가 없었다.
상성까지 좋지 못해서, 공격자체를 감지는 가능했지만 대처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지금이다! 하고 반응하는 것보다 항상  박자 빠르게 공격이 들어왔으니까.
이 부분을 감안해서 반 박자 빠르게 움직여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움직임에 맞춰서 달리 반응하도록 프로그램이라도 된 것 같았다.
블랭크 트리거를 발동시키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놈의 존재감 때문에 스택이 쌓이는 속도가 느린데, 부상  피하겠다고 소모할 순 없었다.


방금 얼음감옥에 갇혀서 압착될 때는 아차 싶었지만.
검은 기운으로 얼음에 담긴 마력을 빨아들이려고 탈출을 꾀했지만, 그보다 짜부라드는 속도가 더 빨랐던 것이다.
흡수되는 마력도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어떻게 이 마력으로  정도 강도 상승을 꾀했나 싶을 만큼.


항상 자신이 괴수 상대로 점해왔던 상성상 우위가 부분적으로나마 뒤집히자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젠장, 진짜 사방이 놈의 무기창이군.’


이제야 살바토르가 말한 ‘권능’의 끔찍함이 실감이 갔다.
그 까다로운 공격을 퍼붓고도 비아트리체는 당황해 하는 티는 났을지언정, 피폐해진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해방 청뢰와 해방 유성우로 입힌 타격도 말끔하게 사라졌으며 다루는 힘도 계속해서 과시하는 것처럼 계속 규모를 늘려갔다.


쿠그그그! 끄그긍!

 현은 자신을 가두는데 들어갔던 얼음덩어리보다 다섯 배는 훨씬 넘어 보이는,
빙산이라고 칭해도 될 거대한 덩어리를 다섯개나 띄워 올리더니,
콰직! 쿠직! 꾸지직! 이전처럼 물리법칙을 씹어 먹는 압축을 시전 해보였다.


화살처럼 압축된 그것을,


쒸이익! 기존의 탄환과 함께 류 현의 앞뒤로 내쏘았다.
그렇지 않아도 동체시력으로 쫓을 수 없는 탄환들은 류 현의 반응 범위 내에 들어감과 동시에 공간을 그대로 10미터 가량 뛰어넘었고,
그것들이 가속을 유지한 채로 그대로 그를 꿰뚫으려던 찰나,

슈슉! 화련이 내뻗은 손길이 그를 잡아채었다.
 바로 옆으로 류 현을 끌어당긴 화련은 그가 이동해옴과 동시에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나야했지만.


 광경을 비아트리체의 미간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대체 왜 재생을 안...으앗, 이거 왜 이래? 왜 이렇게 뜨거워요? 이거 괜찮은 거 맞아요?”
“새로 찾은 유성우 사용법이 좀 거칠어서요...”
“이거부터 일단 끄고...”
“이거 아니면 저거 방어  뚫습니다.”
“아니 그럼 혜라한테서 그 정수인지 뭔지 받은 다음에 재정비해서...”
“안 됩니다. 저놈 화력이 생각보다 강합니다. 그거 없이 공격받으면 후열은 즉삽니다. 어지간하면 저 끌어당기는 것도 하시면 안 됩니다. 저놈이 다른 괴수들처럼 멍청하지가 않아서, 저렇게 반응을 할 겁니다.”

그를 따라 비아트리체를 올려다  화련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현 앞에선 최대한 멀쩡한 채 했지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는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생을 통틀어 죽음에 가장 가까웠던 순간이었으니까.

살바토르에게 얻은 정보를 토대로 마력으로 투명한 막을 둘러 술자가 가진 인식의 틈을 파고들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화력자체가 알량한 마력막 하나로 해결될만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 공격이 정말 단일 타겟에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가능한 방어. 여기서 화력이 더 늘어나면 그것도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아까 타격 당했을 때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냉기는 느껴졌으니까.

“블링크 트리거 스택도 저한테 할당하지 말고 승하 씨한테 몰아주십쇼. 후열이 1, 승하 씨가 제 몫까지 해서 2입니다.”
“아니, 어쩌려고요. 아까 그 공격  봤죠? 마스터가 딱 반응할 수 있는 범위 한계선에서 텔포했다고요!”
“보진 못해도 대충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저한테는 더 필요 없습니다.  공격에는 쿨타임이 없으니까요. 피하는데 쓰면 끝이 없어요. 10스택. 이걸로 해결 봐야죠. 제 걱정하실 때가 아닙니다.”


류 현은 턱짓으로 이제는 자신뿐만 아니라 화련에게도 이글거리는 시선을 보내고 있는 비아트리체를 가리켰다.
측면에서 승하가 검은 검기를 팔이 빠져라 쏘아내고 있지만, 조금의 어그로도 끌어가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혜라 씨한테 지금 그걸 쓰라고 하십쇼. 이제 후열로 본격적으로 어그로가 튈 겁니다. 특히...”
“네, 절대 안 잡힐게요. 저거 끼고도 잡히면 진짜  내놔야죠.”

마지막 대답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현은 그대로 털고 일어나 땅을 박찼다. 동시에 화련도 텔레포트하자 그들이 있던 자리에 얼음이 퍽 깨지며 하얀 가루가 흩날렸다.

‘어그로도 더럽게  튀고 어글 잡을 사람은 나밖에 없군...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멘탈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었으면 답도 없었겠어.’


후르르! 기세를 끌어올리자 몸 위로 기세가 뿜어 나오는 것 대신 그것을 맛있게 받아먹은 검은 불꽃이 용틀임을 한다.
콕 찌르면 터질  같이 백열하는 유성우는 이제 그 자리가 제자리인양 그의 명치부근에 박혀서 불을 뿜었다.

비아트리체도 그냥 있지 않겠다는 듯이 손을 휘저어서  멀리서 날고 있던 탄환을 유도하고,
동시에 발 딛고 있는 얼음덩어리를 띄워 올렸지만,

따악! 슈슉! 류 현의 모습은 공간을 뛰어넘어 그녀의 코앞에서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놀라지 않고 물을 끌어올림과 동시에,

[떨어져라.]


권능으로 그를 짓누르려고 했으나,
치지직! 류 현의 몸을 태우고 있는 불꽃이 자신의 점유권을 주장하는 것처럼 그를 옥죄려는 힘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깨진 바닥으로 솟구치던 바닷물은 역으로 뿌리까지 증발당해서 순간적으로 아래 부분이 보일 정도가 되었고,
비아트리체 본인은 불에  것처럼 다시 탄환을 유도하던 손을 빼야만 했다.


순간적으로 제어를 잃고 추락하는 탄환들은,


슈카카각! 파스스! 잔뜩 약이 오른 승하가 아주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공격에 쓰인 검도 부스러지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비아트리체는 그 사실에 신경 쓸 수가 없었다.

그 옛날,
처음으로 동족끼리의 대등한 전투를 경험하게 해준 생사대적이 생각나게 만드는 불꽃이,
아니 불길함으로만 따지면 비교도  수 없는 화인(火人)이 코앞에 들이닥쳐 있었으니까.

끔찍한 열기가 더욱더 부풀어 오르며 폭발을 예감하게 만드는 그 순간,
비아트리체는 눈을 질끈 감고 방어를 위해 본신의 비늘을 끌어올리던 것을 되돌렸다.


콰르릉! 충격파만으로 빙하가 들썩거릴 정도의 폭발이었지만 모두의 시선을 끌어당긴  다름 아닌,
폭발  터져 나온 시커먼 불꽃 무더기였다.
정확히는 그 직후에 보인 이상 현상.


거대한 비아트리체의 본신의 상반을 집어삼킬 정도로 쏟아졌던 검은 불꽃이, 갑자기 시계태엽이 되감긴 것마냥 도로 폭발의 근원으로 말려들어간 것이다.
마치 그런 현상은 허용되지 않은 행위가 다시 물러지는 것처럼.


그 현상을 밖에서 보진 못했지만, 류 현도 이 이상현상에 당황하고 있었다.
상상이상으로 강력한 폭발 때문에 마력과 체력이 빨려나가며 몸이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이거 큰일 났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한계에 도달하기 직전 그것이 억제된 것이다.

하지만 그 당황은 시야가 회복되면서 뒷전으로 밀려나야만 했다.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살의로 번들거리는 파란안광을 폭사하며, 본신의 팔을 끌어당기고 있는 비아트리체에 비하면 무엇도 급한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그  폭발 직후가 가장 취약하다는 걸 눈치 챈 건가?’


그럴 것이다. 아니라면 인간형 부분이 저렇게 손상을 입을 걸 각오하고, 본신의 피해를 최소화해서 곧바로 이렇게 공격해 올 수는 없으니까.
누구보다 검은 불꽃 폭발에 당황한 놈이 아닌가?
지금도 놈의 인간형은 얼굴 반쪽이 검은 불꽃에 타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전법.
폭발 직후에는 재생이고, 마력운용이고 마비되다시피 한다는 것을 정확하게는 몰라도 어렴풋이나마 눈치 채야만 할  있는 행동.

놈의 거대한 본신의 두 앞발에는 시리도록 파란 마력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너무나 뻔 하지만, 그래서 절묘하고 강렬한 피할  없는 공격.


류 현은 이를 악물고 몸을 웅크려 충격에 대비했다.
손상 정도보다는 의식을 잃어서는  됐다. 순식간에 후열에 괴멸할 테니까.

그런 류 현의 앞으로,


슈슉! 익숙한 존재감이 공간을 뛰어넘어 날아왔을 때 그가 느낀 것은 반가움보다는 당혹스러움이었다.
그가 나승하에게 배당한 역할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몸이 약한 그녀에게, 회피탱킹 조차 안 먹히는 비아트리체를 상대로 그가 부여한 역할은 스트라이커였다.

 현이 놈의 방어력을 착실하게 깎아내면, 블링크 트리거와의 조합을 통해 같이 약화시켜놓은 부분을 최대한의 공격력으로 쳐서 치명상을 입힌다.
그게 당초의 계획이었다.


비아트리체의 방어력이 상상이상이라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중이었지만,
승하에겐 비장의 수가 남아있었으니 문제는 없었다.

비아트리체의 화력 투사법이 상상이상으로 까다로워 접근시키고 싶지 않다 로 기우는 중이었으나, 어디까지나 안전의 문제 때문이었다.

당연히 그런 내막을 알 리 없는 비아트리체는,
별 위협이 되지 않는 인간을 신경 쓰지 않고 하던 동작을 이어갔다.
손아귀에 들어오는 게 마신의 사도 둘도 아니라, 별 위협이 되지 않는 그랜드마스터라면 문제없다.
그리 여겼다.




그리고 승하는  판단에 똥물을 끼얹어줄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희란을 통해 건너오는 류 현의 마력뿐만 아니라,
회색 오러 마저 자기 안으로 갈무리해 겉보기에는 무방비처럼 보이는 그녀는 천천히 검을 내리그었다.
무엇을 베는 것이 아니라, 그냥 휘두르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아주 느긋하게.

그것을 본 비아트리체는 그 순간 자신의 시간감각이 한 없이 늘어난 것을 느꼈다.


그것이 위기감인지,
아니면 경외감 비슷한 무엇인 건지는 비아트리체 본인도 알 수 없었지만,


 덕분에 비아트리체는 볼 수 있었다.

느긋하게 내려 그은 사선 베기의 후속 동작을.
시간을 끊어내려는 것처럼 솟구치는 검의 궤적을!

파캉! 뻐벙! 맞물리려던 거대한 용의  다리와 앞발이 터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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