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46화 〉탐식마(貪食魔) (346/429)



〈 346화 〉탐식마(貪食魔)

폭발의 순간,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고 앞을 가린 승하는 폭발 그 자체는 보지 못했지만 열기로  진행을 알 수 있었다.


피부가 익어버릴 것 같은 열기는 그녀에게 욕지거리를 내뱉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녀가 욕하는 이유는 다른 이유에서 였지만.

‘저게 기어이...!’


그녀의 분노 아닌 분노는  현을 향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제 입으로 몸에 무리가 간다는 해방 청뢰를 펑펑 쓰면서,
아직 제대로 시험해보지도 못한 유성우 해방을 저렇게 가까이서 터뜨리다니!

날카로워진 눈초리로 승하는 시커먼 폭발 구름을 노려봤다.
그녀의 예상대로, 폭발구름을 가르며 튕겨져 나온 인영이 시야에 포착되었다.


그녀는 앞을 살피지도 않고 튕겨져 나가는  현을 쫓았다.
비행은 길지 않았고,
그녀가 류 현을 받아냈을   현은,

치이이! 쯔즉! 사람보다는 숯 덩어리에 가까운 몰골이었다.
그나마 오른쪽 눈 부분은 탄화되지 않아서 의식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사실은 승하의 화만 더 돋웠다.

“야! 너 무슨 생각...”
“빗...나갔습니다.”
“뭐?”
“생각...보다, 조준이 잘  돼서... 되는대로 폭발력을 안으로 가두긴 했는데...”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떨어져나갈 지경인 입술을 달싹여 류 현이 전한 정보에 승하는 다시 화가 치솟는 듯 했지만, 눈으로는 이미 폭연을 향했다.


‘왜 저런 구름이 생겼나 했는데, 얘는 진짜...응?’

 현이 제 몸을 불살라서 일으킨 폭연이 걷히자 드러난 광경은,
승하와 류 현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뭐야...너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니 저게 왜.”


비아트리체는 버티고 서 있긴 했다.
갑옷처럼 두른 본신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던 인간형의 그녀가.


인간형의 비아트리체를 감싸고 있던 본신의 상체 부분이 거의 반으로 쪼개져, 노출된 인간형 부분이 제 발로 서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인간형마저 아주 성하진 못했는데, 그녀의 어깨에는 시커먼 불꽃이 용암처럼 부글거리는 중이었다.

‘저게 대체 뭐야...?’


‘유성우’를 처음으로 해방시켰을 때 느낀 힘의 크기를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광경.
동시에 두 개를 해방해서 운용하긴 부담스럽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감당이 안  거라고는 생각하진 않았다.

실제로도 해방 때 힘의 역류 때문에  고통스럽긴 했지만, 제어가 아예 안 되진 않았다. 마법과 담을 쌓고 살았던지라 조준이 꽤 크게 빗나가긴 했으나 제어 자체는 가능했다.

빗나간 것도 검은 기운과 검은 안개를 끌어 모아 폭발력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으로 커버했다.
스스로 방어를 푼 격이라 이 꼴이 되긴 했지만.


달리 말하면 스스로 방어를 푼 자신도 겉가죽과 근육이  것 말고는 견딜  있는 폭발이었다.

칼리프 클랜의 비밀 병기였을 마랍 압둘아지드처럼 천부적인 재능은 아니었지만, 수 없이 맨주먹으로 괴수와 맞서 본 경험으로 만들어진 직감 상으로는 저런 효과를 일으킬 화력이 아니었다.
비아트리체가 두른 본신이라는 갑옷은 역대 급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방어력을 띄고 있었으니까. 조준마저 실패한 공격이 통할 수준이 아니었다.

더욱이,


저런 검은 불꽃은 일으킨 적도 없고,
일으킬 줄도 모른다.

엘더 리치와 ‘페릭스’의 기억은 조금씩 그 안에 녹아들어서 이런 저런 시도에 도움을 주고 있긴 하지만, 그를 마법사로 만들어주진 못했다.
어디까지나 마법사 흉내로 저가 품고 있는 거대한 힘을 밖으로 투사하는데 써먹는 정도였다.


물을 매개로 삼아 말 한 마디로 항마력도 무시하는 초능력을 펑펑 써대는 녀석이 끄지 못하고, 긁어내야하는 보기만 해도 지독해 보이는 불꽃을 일으키는 능력은 가져본 적도 없었다.
검은 안개가 수준 이하의 괴수들에게는 그렇게 작용하곤 했지만, 저건 어디로 보나 검은 안개가 아니었다.


‘분명히 터뜨릴 때는 검지 않았는데...’


류 현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맥동하는 주황빛 반지를, 해방 유성우를 내려다봤다.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돔을 만들었을 때 뭔가가...’

그러나,
비아트리체는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줄 의향이 없었다.


반으로 쪼개져, 그 무게 때문에 벌어지며 끊어질 것 같은 본신을 왼손을 휘둘러 반쯤 봉합시킨 그녀는,
남은 오른 손을 내뻗어 뭔가를 조형하는 것처럼 손가락을 까딱이더니,


쿠그그! 5톤 트럭만한 얼음덩어리가 떠오르자 주먹을 확 움켜쥐었고,


쿠직! 꾸직!
그러자 물리법칙을 잊은 것처럼 5톤 트럭크기의 얼음덩어리가 직경 15센티 수준의 공으로 변했다.
워낙 순식간에 이루어진 변화에 류 현과 승하가 뒤늦게 뒤를 돌아보았지만,


쉭! 이미 탄환은 쏘아진 후였다.
류 현은 시각과 청각이 반응하기 전에 제 직감대로 저를 받아들고 있던 승하를 밀쳤다.
탄화 되었다가 재생 중이던 팔 근육이 다시 끊어질 정도로 있는 힘껏!

“커억...”


소리조차 없었다.  현이 공격을 인식했을 때는 내민 오른 팔이 바닥에 떨어진 후였다.
팔 뿐만 아니라, 간과 폐, 왼쪽 어깨도 관통당해서 덜렁거릴 지경이 되었건만 관통된 통증은 느낄 새도 없었다.
 현이 피격 부위를 인식한 건, 통증이 아닌 상처부위를 타고 올라오는 한기 때문이었다.

한기가 허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상처부위에서 얼음이 얼어 차오르기 시작하자, 통증이 문제가 아니게 됐다.


한기가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온 몸의 마력을 건드려 터뜨리고,
그 내상에 한기가 달라붙어 얼려 상처를 벌리면,  부근이 또다시 마력 통제권이 사라지길 반복했다.


끔찍한 고통의 연쇄 속에서 우습게도 류 현은 화련이 이것을 어떻게 버텼나 하는 의문을 품었다.
그 의문은 곧 비아트리체에 대한 분노가 되었고, 류 현은 그것으로 굴하려던 투쟁심에 불을 댕겼다.

‘강림’ 2단계.
후욱! 겉으로 보이는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위기에 반응해 뿜어지던 검은 기운이 다시 몸으로 스며들어버리는 등, 표면적으로는 기세가 줄어든 것처럼 보였다.

당연했다.
2단계는 힘의 사용제한을 늘리는 게 아니라 내부를 향한 것이니까.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쯔즉! 투둑-
상처 부위에 살이 차오르며 그를 괴롭히던 냉기가 살과 함께 얼어붙은 채로 배출되었다.
탄화되었던 부분도 밑에  살이 차오르며 밀려 떨어져나갔다.

“후우우...”


호흡과 함께 살짝 새어나온 검은 기운마저 잠깐 허공을 맴돌다 그의 몸으로 되돌아갔다.

자신에게 뛰어오려다 엉거주춤하게 멈춰선 승하를 돌아보며 호흡을 고르던 류 현,
쉭! 그의 몸이 갑자기 휙 돌아갔다.


푸슛! 류 현이 자신의 뒤쪽을 살피려고 고개를 돌린 동안 복부와 오른쪽 무릎에서 피가 확 솟구쳤다.
다시금 상처 부위에 얼음이 차오르다가, 살덩이와 함께 얼음이 같이 배출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을 공격한 탄을 눈으로 쫓던 류 현은, 하얀 벌판 위에서 움직이는 하얀 탄환을 발견했다.
그것이 5톤 트럭만한 얼음덩어리가 압축된 탄환이라는 건 그가 알 길은 없었지만, 저것이 보통 것이 아니라는 건 여실히 느꼈다.

자신의 피지컬적인 부분에 치중한 ‘강림’ 2단계임에도 장난처럼 뚫고 들어와, 내부 항마력마저 없는 것 마냥 내상을 펑펑 터뜨리고 있으니.

‘동체시력이나 반사신경으로 어떻게 될 게 아니군. 마법으로 순간 가속시키는 건가? 아니면  권능인가 뭔가?’
‘...어글을 잡아야겠군. 스치기만 해도 승하는 전투 이탈이다.’

류 현은 방금 전부터 자신에게 아주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승하에게 고개를 내젓고는 비아트리체를 향해 달렸다.


‘하나, 둘...! 큭...’


한 번의 도약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현의 몸이 훽 돌아갔다. 곧바로 치솟는 핏줄기가 그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현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골수가 질질 흐르고 있는 왼다리와 삼분지 일이 뜯어 먹힌 목 때문이었다.


‘염...병!’

다시금 보이지 않는 탄환을 피하는 것처럼 몸이 휙 돌아갔지만,
푸확! 이번에는 더 큰 상처가 복부에 벌어지며 내장조각이 쏟아졌다. 류 현의 무릎이 빙하에 닿았다.

그 사이 본신을 고치던 왼손마저 손을 떼고 동원한 비아트리체는 아예 그 주변의 빙하를 들어올렸다.
직경이 200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덩어리는 비아트리체의  손이 마주 겹쳐지자,
산산조각 났다가  현을 중심으로,

콰득! 카드득! 꽈지직! 꾸드득!
말 그대로 압착되기 시작했다.
작용하는 마력의 압력 때문에 열기마저 느껴질 지경이었지만, 사방에서 짓누르는 힘은 멈추지 않았다.


순식간에 갇힌 류 현이 겨우 두  겹쳐 있을 공간까지 압축된 얼음덩어리 위로 핏물이 스며 나오는 듯 하다,


치이이! 콰아앙! 후르르!
그 안에서 눈이 멀 것 같은 빛과 굉음이 터져 나왔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검은 불꽃이었다.
방금 전의 빛의 근원이라고 믿을  없을 정도로 검은, 피비린내가 나야만 할 것 같은 불길한 검은 불꽃.


그리고 그건 전혀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다. 검은 불꽃은 류 현이 흘리고 있는 피 위로 피어오르고 있었으니까.


플레이어의 피는 외부에 노출되면 증발한다는 원칙 따윈 알바 아니라는 듯,
검은 불꽃은 그의 피와 상처에서 스며 나오는 검은 것들을 살라먹으며 기세를 키우는 중이었다.
팔이 떨어져도 순식간에 재생해내는 그의 재생력마저 억눌리는지 상처는 닫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불의 정수...? 정말 살바토르를 죽였나? 아니야, 저런 불꽃은 그도...]


당황한 것 같은 비아트리체의 중얼거림이 들렸지만 무시했다.

 현은 피비린내가 섞인 한 숨과 함께 가슴께로 손을 가져가, 명치에 박힌 반지를 뽑아내었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불덩어리 같은 그것을 손에 쥐자, 살 익는 냄새가 손과 가슴께 두 곳에서 올라왔다.


제 살타는 냄새를 맡는 기괴한 상황 속에서 류 현은 픽 웃어버리고 말았다.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짜 이딴  누가 쓰라는 건지. 아니면 그놈 말처럼 내가 버그 같은 거라도 돼서 나만 이런 건가?’

‘피에 불을 붙여야 진짜 화력이 나온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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