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45화 〉탐식마(貪食魔) (345/429)



〈 345화 〉탐식마(貪食魔)
‘염병할, 힘만 다 되찾은 건가?’


류 현이  모습을 보고 속으로 내뱉은 욕지거리와는 반대로,
투명한 물빛으로 이루어진 비아트리체의 몸은  생명체와 조각상 중간의 무언가로 보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용제 살바토르’가 생명체로서 보일  있는 강건함을 극한으로 보여줬다면, ‘해왕 비아트리체’는 그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전혀 연약해보이지 않았다.
극한의 조형미는 강건함마저 품을 수 있다고 말하는 듯 했다.

바다에 잠겨있는 배 아랫부분은 보이지 않았지만 드러난 부분만으로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으리라는 믿음 아닌 믿음마저 느껴지게 했다.

완벽하다는 말 이외에는 다른 말이 의미 없어 보이는 모습.

그 완벽함은 류 현에게는 감탄보다는 짜증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지만.
완벽한 외견이 놈이 되찾은 힘의 완전함을 상징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라도 흠을 찾으려던 류 현의 시선이 한 지점에서 맺었다.


‘...완전히 동화되지 못한 건가? 아니면 살바토르 놈과 종류가 달라서 저런 건가?’

 현의 시선이 고정된 그곳에는,

그 완벽한 균형미를 자랑하는 조형 안에 자리 잡은 또 다른 비아트리체가, 인간형인 비아트리체가 존재했다.
꼿꼿이 선 상체 부분만 해도 어지간한 빌딩 높이 인 터라,
갑옷을 두르고 있다기보단 매몰되어 있는 느낌이었지만,
안쪽의 작은 비아트리체의 시선을 따라서 용의 시선이 돌아가는 것을 봐선 본체는 작은 쪽이 분명해 보였다.

‘최악은...아닌 거 같기도 한데. 본신이랑 완벽하게 융합까진 못 이뤘지만 그  단계쯤은 된다 이건가.’

류 현은 붙어선 승하의 어깨를 툭 쳐서 뒤로 물러나게 했다.


마법 하나에 2인이 휘말리는 일은 없도록 하는 게 이번 공략의 원칙이었다.
류 현은 화련이 저격당했던 일을 흘러보낼 의향이 전혀 없었다.

“다시 제가 먼저 갑니다. 방어력이 생각이상이면 그걸 터뜨릴 테니까 제 신호 놓치지 않게 조심하십쇼.”
“야, 너 그거 까지 터뜨리면 몸이 못 버티...”

 현은 듣지 않고 그대로 뛰어올랐다.
거대해진 비아트리체는 그가 아래턱 바로 아래까지 다가올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다,


쒹! 류 현이 허리를 뒤틀기 전에 바다에 잠긴 꼬리로 그를 쳐냈다.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날려간 그를 따라서 혈선이 그어졌다, 사라졌다. 왼쪽 어깨가 덜렁거릴 정도로 깊은 절상도 혈선이 사라지는 것만큼 빠르게 아물었다.
류 현은 핏물은 사라졌지만, 남은 피비린내를 침과 함께  뱉어냈다. 맞는 순간 집중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왼쪽 어깨를 잃을 뻔한 것에 대한 짜증도 같이.

‘...저 꼬리 조지기 전에는 승하는 근처도 못 오게 해야겠군.’


그는 뒤쪽을 향해서 손을 내젓고는 검은 기운을 뭉클뭉클 피워 올렸다.
비아트리체가 저렇게 변한 것을 따라하려는 것 마냥 덩치를 불리고,  불렸다.
머릿속에서 몇 개의 핀이 날아가는 것 같은 감각과 함께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두통이 엄습했다.

제 아무리 ‘강림’의 경지가 진일보 했다지만,  정도의 힘을 뽑아내는 건 버거운 일이었다.
1단계에 묶어두고 있는 절제력에 이상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현은 거기에 다시 잠들려던 청뢰를 두들겨 깨웠다.
빠지직! 그에게 성을 내는 것처럼 청로의 기운이 날뛰었다.
검은 안개로 이루어진 날개가 그의 등에 자연스럽게 드리웠다.


다음 순간 류 현은 쏜살이 되었다.


푸앙! 콰르릉! 뻐어엉! 언제까지고 오연하게 서 있을  같던 비아트리체의 머리가 폭음과 함께 훽 젖혀졌다.
소리의 꼬리를 쫓아 올려다보면,
어느새 놈의 턱 아래에 시커먼 번개 구름 같은 것이 들러붙어 있었다.


폭발하는 검은 기운과 청뢰의 폭풍 속에서  현은 놈의 모가지를 쥐어뜯으려고 했지만,
비늘을 뚫고 끌어 모은 힘의 반절이 소모됐다는 것에   놀라고,
이 미친 듯이 단단한 갑옷 속에 파묻혀 있는 인간형인 비아트리체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것에 두 번 놀랐다.

어떤 네임드 몹이든 일단 그가 달라붙어서 게걸스럽게 제 생명을 탐하면, 반쯤 정신 줄을 놓고 떼어놓는데 전력을 다했다.
그게 생명체가 보여야할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런데 놈의 반응은 거기서 벗어난 걸 넘어, 방금 전까지의 혼란마저 정리한 것처럼 보였다.

비아트리체는 그렇다는 것을 사양치 않고 보여줬다.


[떨어져.]

꾸웅! 뇌가 뒤흔들리는 것 같은 압력이 그를 짓눌러왔다.  현은 비늘에 박아 넣은 손가락이 빠지는  아니라, 찢어질 것 같은 압력에 이를 악물었다.
그러면서도 놈의 공격을 분석했다.


‘프레셔? 아니야...이건 누르는 게 아니라, 끌어당겨지는 거다. 눈인가? 아니면 물?’

비아트리체가 힘을  되찾지 못해도 물과 얼음이 있는 곳에서는 부분적으로 ‘권능’을 사용할  있을 거라는 살바토르의 말이 떠올랐다.

바다에서 놈을 끌어낼 방법이 없는 입장에서는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긴 했지만,
지금 당해보니 방법을 찾았어야 했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승하나 그녀보다  몸이 약한 후열이 이거에 노출되면 도무지 답이 없다.

순식간에 도출된 결론에 류 현은 자신을 묶어두고 있던 절제력을 조금 느슨하게 했다.
그의 눈이 불이라도 붙는 것처럼 하얗게 백열했다. 그 빛이 안구 밖으로 뿜어질 것처럼 강렬하게.


카드드득! 우직! 뻐어억! 쒹!
다시금 비아트리체의 머리가 뒤로 돌아갔지만, 류 현도 이번에는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떨어져라, 무례한 것아.]


주먹을 날림과 동시에 날아온 꼬리가 그를 빙하 깊숙이 쳐 박아 놓았다.
놈은 그에 만족하지 않고,

쿠와악! 콰드득! 카라락!
인간형의 비아트리체가 가리키는 대로 얼음덩어리가 그가  박힌 구덩이로 날아들더니,
지층 아래로 처박아버릴 것처럼 수축하면서 아래로 계속 파고 들어갔다.


그 단순한 동작에 깃든 어마 무시한 마력의 파동에 승하가 바쁘게 검은 검기를 내쏘아대었으나,
퓽퓽! 놈의 시선을 돌리기는커녕, 일순간 물처럼 변화한 놈의 비늘에 먹혀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상 너를 고향으로 돌아갈 제물로 써주지.]


쿠직! 꾸직! 꾸드득!  현을 가둔 얼음덩어리를 중심으로 점점 가라앉는 얼음구덩이,
그 주변에서 새어나오는 심상찮은 마력에 후열들이 달려오려고 했지만 승하가 가까스로 손을 뻗어 그것을 말렸다.

‘류 현도  이상한 초능력 같은 거에 반응도 못했어.’


자신이라 한들 다를 것은 없을 터다.
힘의 크기마저 저 상태의  현이 떨쳐내지 못할 정도이니, 후열은 까딱하면 즉사일 터.

‘방어 벗겨내기 전에는 쓰지 말라고 하긴 했지만...’


어디 공략이 계획대로만 흘러가는 것이던가.
힐끗하고 비아트리체가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걸 다시금 확인한 승하는, 최대한 평온하게 심호흡을 하려고 했다.
“스흐읍...”

그때,

꾸웅! 쿠직! 콰직! 퍼어엉! 얼음구덩이에서 굉음이 터지며 시커먼 것이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섬뜩하지만, 반가운 기운도 같이.
좌반신 대부분이 벗은 몸으로 변한 류 현은 살벌한 기운과 함께 얼음구덩이를 박차 올랐다.


반면,


비아트리체는 이전과 별 다를 것 없는 공격에 심드렁하게 대응했다.


[떨어져라.]

쉭! 말로 일으킨 권능에 류 현이 움찔하면 꼬리를 휘둘러 바닥에 쳐 박아버린다.

방금 전까지 펑펑 써대던,
꽤 위협적인 화력을 보여주던 우레의 정수는 다한 것인지 흔적조차 없다.
온 몸에 두르고 있는 마신의 은총을 받은 것 같은 마력은 왜인지 몰라도, 그 정체성을 죄다 내다버린 것 같은 맹탕.


경계할 이유가 없다.
방심도 뭣도 아니다.

“세 번 당하겠냐.”

씹어 뱉듯이 내뱉은 류 현이 다음 생각도 하지 않고 몸을 날렸을 때도 별로 변한 건 없었다.
스스로 자세와 호흡을 무너뜨렸으니,  빨리 처리할 수 있을 터.

눈밭에 한 바퀴 구른 류 현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반대방향으로 뛰어가도 마찬가지였다.
줄행랑을 치든 말든 해야 할 일은 같았으니.
등을 보이면 오히려 치기에는 좋았다.


기다린 꼬리를 먹이를 덮치려는 뱀처럼 내쏘아,

류 현의 허리를 끊어놓으려는 순간,


슈슉! 그의 모습이 약올리는 것처럼 100미터 공간을 뛰어넘어 나타났을 때도 짜증 이상의 뭔가는 없었다.


그러나,

“충전 완료.”

뛰다말고 멈춰선  현의 손아귀에서 이미 힘이 다 해서 사라졌다고 생각한 짙푸른 번개가 들끓고 있는 것을 보고나자 의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다한 것이 아니었나? 정말  낙후된 곳에서 온전한 정수를 뽑아내었단 말인가?


그녀가 다음 생각을 진행하기 직전,

“극뢰.”


콰르릉! 빠지직! 짜자작!

하늘과,
구덩이,
류 현의 손아귀에서 터져 나온 세 줄기의 푸른 번개가 비아트리체를 꿰뚫었다.
아니, 꿰뚫지는 못했다. 방어에만 전념하는 그녀를 뚫을 수 있는 자는 지금은 사라진 ‘살바토르’ 뿐이니까.


그럼에도 그녀도 마냥 무시하기 힘든 엄청난 전력 때문에 몸을 굳히는  피할 수 없었다.
그냥 몸으로 받는다고 치명상 같은  입을 리는 없겠지만, 괜한 틈을 내주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그 방어하는 와중에도 번개가 약해지자마자 방출을 그만두고 달려드는 류 현의 모습은 훤히 볼 수 있었다.


건방지고 무모한 인간놈을 다시 땅바닥에 쳐 박고 다져주려던 비아트리체는,
류 현이 제 본신 위에 올라타고 나서야 이상을 감지했다.


너무 뜨거웠다.
아무리 초월자의 은총을 받았다고 한들 인간이,
 낙후된 세계의 인간이  수 없는 정도의 화력이 비늘 위로 느껴졌다.

‘살바토르’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생사결을 나누었을 때나 느껴봤던 끔찍한 열기.


[떨어ㅈ...]

비아트리체가 ‘권능’을 발해 그를 떨쳐내려던 순간,


쿠아아앙!

지상에 내려앉은 태양 같은 폭발이 둘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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