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4화 〉탐식마(貪食魔)
“화련 씨!”
류 현이 반사적으로 외쳤지만, 원하던 대꾸는 돌아오지 않았다.
“끄응, 깜짝 놀랐네.”
혼자만 다급한 류 현에 비해 한가로워 보이기까지 한 태도로, 복부에 얼어붙은 얼음덩어리를 마력막과 함께 떼어낸 화련은 그 태도만큼이나 멀쩡했으니까.
일주일간 해온 훈련이 헛것이 아니라는 걸 뒤늦게 눈치 챈 류 현은 머쓱해 하기보단, 가슴을 쓸어내렸다.
머리로는 대처 될 거라고 알고 있는데, 그 때의 일이 떠올라서 저도 모르게 반응하고 말았다.
“에이, 진짜. 아직도 속에 두고 끙끙 앓고 계셨나 보네. 저 괜찮아요. 마스터.”
“쟤 저거 잡을 때까지 저럴 걸. 그러니 오늘 잡아야지.”
물론 태연자약한 건 승하와 화련 본인뿐이고, 웨인이나, 백혜라, 희란은 류 현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놀란 눈치였지만.
“어, 언니 괜찮으세요?”
“어어, 멀쩡해. 생각보다 이거 효과 좋네. 하긴, 마스터한테 빨릴 위험 감수하고 열심히 훈련했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희란아? 앞으로는 나오지 말고. 너 지금 장비도 별 거 없잖니?”
태연한 걸 넘어서 희란에게 오더를 상기시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황당하기까지 했지만, 뭐라 할 말은 없었다.
상대가 반쯤 넋을 놓은 상황이라서 그렇지, 대장이 보이면 안 되는 동요하는 모습도 보였다.
‘집중하자. 젠장.’
‘근데 저건 대체 왜 저러는 거야? 공격 한 번 막혔다고 저러는 건 아닐 테고.’
그렇지 않아도 현생에 와서 네임드 몹이 인간 말을 하거나,
인간을 노예로 부리거나 하는 황당한 짓을 벌여서 죽이기만 해도 벅찬 놈들을 상대하면서 골머리를 썩여야 했는데.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머리에 ‘살바토르’가 아예 불을 질러버리는 바람에, 눈앞에 대놓고 틈을 보이는 놈이 있어도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설마 그놈이 말한 힘만 찾은 그런 상태는 아니겠지? 젠장, 이것도 엄청 쥐어짠 거란 말이다.’
슬금슬금 거리를 좁히면서도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살바토르’가 준 정보에 의하면 본신을 끌어낼 수 있는 상태까지 갔다면 좋은 가정 같은 건 거의 다 의미가 사라졌다는 것.
‘차라리 애매하게 되찾아서 힘이고 지식이고 반쪽짜리였으면 좋겠는데.’
‘살바토르’는 그 상태가 인류에겐 가장 위험할 수 있다고 하긴 했으나, 이미 맞붙은 상황이니 큰 의미는 없으리라.
그 대양을 주무를 수 있다는 마법 같지도 않은 마법을 쓸 수 없게 만들면 될 테니까.
한 번 뛰기만 해도 도달할 거리를 허용하고도 경계는커녕, 머리를 부여잡고 혼자 중얼거리는 꼴을 보면 그런 걱정이 다 쓸모없는 것도 같지만.
[그가 약해진 것은 맞지만....그래도 그건 있을 수가...]
어찌됐거나, 류 현은 더 이상 놈에게 시간을 줄 생각이 없었다.
류 현이 고개를 까딱 해보이자,
검집에 꽂혀있는 검 손잡이에 팔을 얻고 있던 승하가 발도 자세를 취했고,
승하에게 첫 공격을 허용했던 비아트리체가 움찔하더니 기존 팔에서 튀어나온 물빛 오른손, 본신으로 추측되는 그 손으로 앞을 가로막았다.
류 현이 느낀 방어력을 생각하면 소극적이지만 무난한 대응.
하지만,
지직! 슈슉! 키아악!
[....?]
검 끝이 검은 선을 그려내기 직전,
승하가 정면에서 놈의 뒤에서 나타나자 멍청한 대응이 되었다.
카앙!
[크윽?!]
검은 검기가 놈의 몸뚱이를 관통하진 못했지만,
기습에 균형을 잃고 무너지는 것을 류 현은 놓치지 않았다.
빠악! 무너지는 놈의 턱에 끊어지는 어퍼컷.
그대로 반응이 딜레이 된 놈의 복부에 진짜 한 방을 있는 힘껏 내꽂는다!
꽈르릉! 미쳐 날뛰는 청뢰의 기운 때문에 주먹이 안쪽에서부터 터질 것 같았지만, 그 통증마저 기꺼웠다.
놈의 깨진 방어, 물빛 비늘이 사라져 노출된 피부가 드디어 타들어가는 게 보였으니까.
그 사실에 고무되어 무너진 자세에서도 다시 주먹을 꽂아 넣으려고 했지만,
퍼억! 놈이 꺼내든 본신의 팔은 생각보다 더 유연했다.
‘염병, 뭐 이렇게 빨라? 순간가속 마법이라도 건 건가?’
다시금 류 현을 띄워 올린 놈은 아직도 타닥타닥 연기를 피워 올리는 복부도 무시하고,
본신의 두 팔로 류 현을 겨냥했다.
승하가 그것을 방해하기 위해서 검기를 쏟아 부었지만, 이번에는 골반부분에서 꼬리 같은 것이 튀어나와 모두 튕겨내었다.
‘본신을 계속 유지를 못하는 건가? 소형의 장점을 이용하려는 건 아닌 것 같은데.’
한가롭게 고민하던 류 현의 몸이 놈의 손아귀에 들어가기 직전,
따악! 슈슉!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류 현의 몸이 놈의 손아귀 밖으로 옮겨졌다.
놈이 예상 못한 이변에 굳어져 있는 사이,
놈의 품안으로 무사히 텔레포트한 류 현은,
콰직! 콰악! 우드득! 있는 힘껏 니킥을 먹인 후 자세가 풀린 놈의 머리통을 바닥에 쳐 박고는 있는 힘껏 목을 짓밟았다.
인간이라면 여기서 그쳐도 되었겠지만,
콰악! 지지직! 콰르릉! 같은 생명체가 맞는지 의심될 때마저 있는 놈의 상대로는 청뢰 최대 출력으로도 만족이 되질 않았다.
다시금 밟아주기 위해서 발을 끌어당기는데, 무형의 기운이 그를 확 밀어내었다.
뜨지 않기 위해서 힘을 써 봐도 뿌리내린 바닥 부분까지 같이 떠올랐다.
산발이 된 머리를 휘날리며 떠오른 놈이 앞서 두 번이나 실패한 파리 잡기 동작을 재시도 했으나,
콰긱! 승하의 검이 목덜미에 박히자 멈출 수밖에 없었다.
“흐읍!”
피부만 살짝 파고 든 채로 검이 멈추자, 승하는 있는 힘껏 마력검을 움직여봤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승하는 그대로 검을 놓아버리고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것마저 늦은 판단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확 냉기가 복부에 밀어닥쳤다. 화련을 저격했던 것과 같은 마법.
채앵!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그대로 얼음이 맺힌 마력막을 뜯어내서 던져버렸다.
완벽하게 다 막진 못해서 배꼽부분에 소름이 돋은 것 같았지만, 이정도면 훈련의 결실로는 차고 넘쳤다.
그 동안 바닥에 안착한 류 현이 승하의 앞으로 슬쩍 나섰다.
“괜찮으십니까?”
“어어, 이게 되네. 그 때 봤을 때는 진짜 넘사벽 수준이라서 이걸로 대처가 되나 싶었는데.”
“...이게 불완전하다 못해 장난치는 수준이라니까요.”
“그럼 운 좋은 거 맞긴 하네. 기분은 더럽지만.”
생채기 수준의 타격에 놀란 것인지, 놈은 멍하니 상처부분을 짚은 채로 승하를 바라보고 있는 듯 했다.
“어쩔까?”
“좀 더 해보죠. 아무래도 본신을 꺼낼 수 있는 것 같은데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겠습니다.”
“난 지금도 칼 안 박히는데.”
“본신을 꺼낸 부분의 비늘을 벗겨내면 그래도 할 만합니다. 아무래도 저 기괴한 방어력도 마법 같은 걸 쓴 모양인데. 둘 다 동시에 쓰진 못하는 것 같네요.”
“네가 비늘 벗겨내기 전에는 안 박히는 건 똑같은데, 놈이 날 무시하면 네 부담이 너무 커지잖아. 닥돌하면 혼자서 어쩌게?”
“그래주면 고맙죠.”
“에휴...그래서 어디?”
“계속 왼쪽 눈으로 갑시다. 제가 다른 말 안하면 거기만 노립시다.”
“오케이.”
승하가 자세를 잡기도 전에 류 현은 바로 뛰쳐나갔다.
키아악! 그를 뒤따라 튀어나온 검은 검기가 그를 앞질러나갔다.
상처를 짚은 채 멍하니 있던 놈은 불쾌감을 느낀 것인지, 다시 적의를 불태우며 거대한 두 팔을 교차하며 내휘둘렀다.
검은 검기는 힘없이 튕겨나가고, 류 현마저 풍압과 또 다른 무형의 기운에 몸이 훅 떠올랐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 권능인지 뭔지도 되찾았나? 그 때 들은 수준까지는 아니군.’
후왁! 흰자위와 동공의 색이 뒤바뀐 눈동자가 백열하자, 등 뒤에서 뼈대뿐인 날개가 펼쳐졌다.
검은 안개로 이루어진 날개는, 날개가 아니라 등에 불이 붙은 것 같았지만 성능만큼은 확실했다.
떠올랐던 것보다 빠르게 바닥에 발을 붙인 류 현은 바로 손가락을 튕겼다. 방향감각이 일그러졌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시야에는 놈의 등판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블링크 트리거(Blink trigger).
장악된 공간 내에서는 방아쇠가 되는 행동만 하면 시전자를 기준좌표 겸 좌표연산기로 삼아 텔레포트 하게 만드는 화련의 새로운 마법.
‘천공성’ 같은 규격외의 아티펙트와 희란과 화련이 묶여야한다는 문제가 있긴 했으나, 류 현이 보기에는 감수할 가치가 차고 넘치는 유용함이었다.
뻐억! 이렇게, 몇 번이나 놈의 뒤를 점하거나 클린히트를 꽂아 넣게 해주었으니까. 있는 힘껏 내휘두른 스트레이트가 놈의 안면에 작렬했다.
류 현은 날려가려는 놈의 거대한 팔을 잡아끌어, 관자놀이게 그대로 훅을 먹였다.
두 번, 세 번 놈의 눈이 다시금 희번득 하자 그대로 놈의 배를 걷어차 날려버렸다.
류 현은 경주하는 것처럼 따라붙으며, 예의 공격을 다시 준비했다.
검은 안개를 비롯한 시커먼 것들을 끌어 모아 커다란 덩어리를 만들고, 그 안에 청뢰의 기운을 양껏 밀어 넣어 만든 망치를!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던 놈이 용의 팔로 바닥을 긁으며 멈춰 서려던 순간,
콰앙! 콰르르릉! 짜자작! 번개와 검은 안개로 이루어진 망치가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기회만 엿보며 200미터 내로 따라붙던 승하마저 둘의 모습을 놓칠 정도로 물보라와 수증기, 얼음조각이 성대하게 솟구쳤다.
발 딛고 있는 빙하 전체가 들썩거리는 듯 했다.
“류 현!”
돌입 전 주의를 단단히 받아 바로 돌입하지 못하고, 발만 구르던 승하가 뛰어들려던 그 순간이었다.
퍼엉! 이전의 폭발이 우스워보일 정도의 거대한 폭발과 함께 물기둥이 솟구쳤다.
승하는 그 와중에도 자신이 기다리던 이가 튕겨져 나오는 걸 포착하고 재빠르게 받아내었다.
류 현의 상태를 확인하던 승하는 기겁하며 그의 뺨을 두드렸다.
“야야, 너 이거 보...”
“검지랑 중지 펴신 거 보입니다. 조금 긁힌 것뿐입니다.”
그의 말과는 정반대로 가슴이 파여 갈비뼈와 간이 들여다보일 정도였지만, 그는 덤덤하게 털고 일어났다.
그 덤덤한 태도만큼 상처도 빠르게 아물었다.
“그게 무슨 긁힌 상처야, 일단 이거라도...”
내민 물약 병이 무시당하자 류 현의 시선을 강제로라도 돌리려던 승하는, 그의 표정을 보자 자연스럽게 그가 보는 것을 따라 올려다보게 되었다.
류 현의 시선은 단순히 물리적 현상으로 솟아오른 것이 아닌 게 분명해 보이는, 아직도 솟구쳐있는 물기둥에 고정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그 너머에 있을, 승하가 기겁하게 만든 부상을 입힌 존재에.
“제 생각보다 힘을 많이 찾은 것 같습니다.”
“허어...”
물기둥을 가르며 다시 모습을 드러낸 비아트리체는 이전과 많이 달라진 상태였다.
류 현이 본신이라고 칭한 거대한 두 팔은 더욱 거대해졌으며,
몸의 다른 부분도 그 거대해진 팔에 걸맞게 변한.
그야말로 용의 표본이라고 할만 모습.
‘염병할, 힘만 다 되찾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