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41화 〉탐식마(貪食魔) (341/429)



〈 341화 〉탐식마(貪食魔)

리치몬드에 자리한 임시 사령부는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말 그대로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알아챌 수 있을 것 같은 정적과 극도의 긴장 상태의 사령부는 모두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벡 건터가 일전에 뉴욕을 점거한 가칭 ‘화룡’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서 펼쳤던 마법이 다시금 펼쳐진 것이다.
그동안 놀고먹고 한 게 아니라는  증명하듯, 처음 펼쳤을 때보다 시야각이나 다각도에서 비춰진 시야가 4분할로 출력되고 있었다.
여기에 동원된 드론과 중계기 가격이 최신식 전투기 편대 값과 맞먹는다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사실에 아쉬워하는 이는 없었다.
국가가 끝장나면 그 돈을 아쉬워 할 수도 없어질 테니까.


적어도 사령부 내에 모인 이들의 생각은 그랬다.

[정말 떠난 거로군.]


그러고도 ‘비아트리체’가 말할 때마다 화면이 흔들리거나, 노이즈가 끼는 것을 피할 순 없었지만.

뉴욕을 감시하기 시작한 지 삼일 만에 얻은 정보치고는 영양가가 없긴 했지만 긴장을 늦추는 이는 없었다.
비아트리체가 그 말을 남기고 미련 없이 등을 돌려 뉴욕을 빠져나가기 시작해, 화면이 비추는 시야에서 사라지고도 계속.


“타겟...대서양으로 진입했습니다. 현재 시속 80키로미터. 천천히 북상합니다.”
“감시위성은?”
“여전히 관측되지 않습니다. 브라보팀을 투입시킬까요?”
“아니, 당초 계획대로 간다.”

그러면서 대령계급장을 단 남자는  현을 슥 돌아봤다.  현이 고개를 끄덕여주자 남자는 말을 마저 했다.


“최대한 타겟을 자극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동경로만 파악한다. 꼭 타겟을 시인할 필요는 없다.”
“고생들 많으셨습니다. 저는 이만.”


류 현은 경례로 돌아온 대답에 응해주며 사령부를 나섰다.
대통령과 부통령도 자리해 있긴 했지만, 고민에 빠진 기색이 역력했기에 말을 걸지 않고 자리를 떴다.


‘저럴 만도 하지.’

사람의 인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복도를 천천히 걸으며 류 현은 생각했다.


삼일 전,
뉴욕을 점거하고 있었던 ‘용제 살바토르’와 있었던 일을 전부는 아니지만 필요한 부분을 그들에게 풀었다.
핵폭탄으로 협박하는 괴수의 존재도 감당하기 힘들었을 터인데, 그런 협박을 하던 놈이 도움을 주고 순순히 죽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류 현은 그것에 대해서 실망을 느끼지도, 책망을 하지도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으니까.
그의 진실을 알고, ‘용제 살바토르’와의 이야기도 모두 알고 있는 팀원들조차 받아들이기 애먹고 있는 상황인데, 정보가 제한된 이들이 애먹는 건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더욱이,
뉴욕에는 중심부 커다란 구덩이 같은 전투흔적도 남아있었으니까.
외부에서도 불의 장벽 안쪽에서 불기둥이 치솟는 걸 봤다고 했으니, 별 일 없었다는 말을 쉽사리 믿기는 힘들 것이다.

자신만 태연자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으니, 이게 맞는지 판단조차 서지 않을 만도 했다.


‘저걸 잡을 수 있다고 장담 못했으면 분위기도 개판 났겠지.’


‘용제 살바토르’와 대화하고, 거래 성사시켜 놈을 죽인 날.
류 현은 혼비백산해 있던 사령부로 날아와서 포위망을 해산시키고, 비아트리체의 방문에 대비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저것을 잡을  있게 되었다는 호언장담도 같이 내뱉었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워하던 지휘부도,
그의 예견대로 비아트리체가 뉴욕 포위망을 풀자마자 들이닥치자 긴가민가하는 정도로 바뀌었으며,
인계받은 천공성을 보여주자 기세로 고개를 끄덕이는 수준으로 바뀌었다.
납득한 게 아니라, 상상하지도 못한 상황에 항복을 선언한 모양새였다.

천공성을 보여주고 나서 자신의 설명 이외는  질문이 없는 것만 봐도 그랬다.
류 현 본인도 이 성으로 뭘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는 지경인데, 아무것도  수가 없는 이들이 의문점이 없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당장 벌어진 일 중 폭탄 하나만 치웠고, 나머지 폭탄들은 그대로니 나를 자극하지 말자 이거겠지. 내가 봐도 이건 상정외의 규모니까.’

류 현은 오른쪽 손바닥에 새겨진 하얀 문신 같은 것을 내려다봤다.
일전에 X던전의 열쇠가 새겨졌던 그 자리에는, 그 X던전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천공성의 열쇠가 새겨졌다.


당장은 움직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외부에서 보기에는 충분히 위협적일 것이다.
자신의 소유가 되는 바람에 대부분의 기능이 막혔고, 그 사실을 숨기지도 않았지만 현 상황에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도 쉽지 않을 테니까.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류 현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전생보다는 낫긴 하지. 아니, 당장 데스나이트 때보다도 훨씬 낫네.’

적어도 상황 종료 전에 전리품 운운이나, 연구협조 같은 소리는  나오고 있으니까.

외부 요인 때문에 팀원 멘탈이 터질  걱정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미정부가 정보통제에 엄청나게 힘쓰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위기감지 능력의 차이인지.
사태가 장기화 되고 있음에도, 도중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별 잡음이 들려오지 않고 있으니까.

‘그래. 결국 내가 할  있는 건 놈들을 때려잡고, 또 때려잡는 것뿐이지.’

잡념을 털어내려는 것처럼 고개를 흔든 그는 어느새 멈추었던 발걸음을 다시 떼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전개에 사령부 관전 참여를 거부하고 숙소에 틀어박힌 팀원들을 다독거리기 위해서.


‘앞으로 일주일. 적어도 나흘 안에는 진정되었으면 좋겠는데.’

***

비아트리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몇 번이고 올려다본 하늘이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낯선 별자리, 낯선 마력의 흐름.


그녀의 고향에서 보던 별의 태동은 이 하늘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하늘 위로 비치는 것들이 모두 죽은 별들의 박제인  마냥, 생기 없는 별빛만이 메마른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비아트리체는 사흘 전 그것이 이상하다고 여겼지만, 곧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잊게 되었고, 이 밤하늘에 대한 불만만이 남았다.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관측 능력의 상실도,
자신의 고향인 [에레츠]의 하늘이 이 별과 달리 밤이 되면 누군가의 영역이 되어서 그런 것이라는 것도 떠올리지 못했다.

이미 오려져나가고 기워지길 반복한 그녀의 기억은,
이제 원본조차 알  없게 된 기억으로는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는 세뇌를 감지해낼 수가 없었다.

그저 뭔가 이상하다는 위화감만이 그녀의 신경을 긁어댈 뿐이었다.


그것 이상으로 그녀의 신경을 긁어대는 건, 아무런 연고도 없이 끌려온 이 이상한 세계에서 유일한 동족이었던 살바토르가 증발했다는 사실이었다.
말 그대로 증발이었다.

자신이 아무리  세계로 끌려오면서 입은 상처 때문에 온전치 못한 상태라고는 하나,
이름을 되찾음으로서 어느 정도 격의 상승을 이루었음을 생각하면 현 상황은 말이  되었다.

숨었으면 위의 요인들 때문에 자신이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고,
원래의 세계로 돌아갔다는 것도 말이 되질 않았다.

살바토르도 이 세계로 끌려오면서 타격을 입었고,  때문에라도 그런 대규모 술식을 티내지 않고 일으킬 수 없을 테니까.

공간격리를 일으킨 상태에서 제물을 써서 술식을 일으켰다?
며칠 간 검토해 본 결과 자신도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이상한 세계는 외계를 향한 모든 힘의 작용이 이상하리만치 억눌려있었다.
공간 격리만 해도 힘이 분산되어버린 살바토르에겐 벅찼을 것이다.


몸뚱이만 넘어와서 상대적으로 힘의 손실이 덜한 자신도 장시간 유지하는 것이 힘들었으니까.
외계로 향하는 것도 아니고,
이 세계 내에서 간섭을 거부하는 술식마저 이 정도의 부담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살바토르가 제물을 바치든 말든 단독으로 [에레츠]로 넘어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 때문에 비아트리체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눈앞에 벌어졌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대처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살바토르에 비해서 마법적 능력이 전투에 편중 되었기에 더더욱.

[본인이 사라진  그렇다고 쳐도, 성은 대체 어디로 간 거지?]


정말 만에 하나, 살바토르가 새롭게 자신의 존재감을 감출 방법을 찾은 것이라고 가정해도 그의 성이 사라진 것이 설명되질 않았다.
[에레츠]로 돌아갔다는 황당한 가정을 수용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랬다면 성이 파괴돼서 흔적이 남았을 테니까.
[에레츠]에서 차원이동을 감행해도 성이 버텨내지 못하는 게 정상인데, 이렇게 폐쇄된 곳이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살바토르가 머물던 그 도시에 삼 일간 머물고도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했다.
제물로 하인들을 쓴  맞는 건지, 그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걸 보면 무슨 일이 있는 건 분명했다.


[마신의 사도가 왔다간 흔적이 있긴 했지만...]


비아트리체는 떠오른 의혹을 내뱉음과 동시에 스스로 부정했다.
살바토르가 그 전력에 패배하는 것도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지만,  이상으로 그렇게 깔끔하게 패배할 그림은 아예 그려지질 않았다.
그녀가 아는 그 오만한 화룡은 맥없이 당할 존재가 아니었다.

마신의 사도라는,
그녀도 직접 보는 건 처음인 희소하고, 특이한 존재가 변수가  수도 있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런 식으로 흔적이 남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 괴물이 사도가 아니게 되서, 아예 잡아먹히는 상황이 오게 되었다면 그 정도로 그치진 않았을 테고.

[알 수가 없군.]

이렇듯,
있을 수 없는 상황을 가정하고 그것을 부정하길 반복하는 것으로 그녀의 일주일은 흘러왔다.
뉴욕에서 허비한 시간까지 합하면  열흘.

그렇게 길다고 하기도 힘들지만, 아주 짧다고도  수 없는 시간동안 고민했지만 뾰족한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다.


한 번은 의심되는 마신의 사도와 맞붙어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뉴욕에 잠깐 머물렀을 때 그 충동이 미쳐 날뛴 것을 생각하면 그쪽으로 고려조차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본심이었다.

강제로 심겨진 것이 분명한 충동에 잡아먹히는  불쾌한 것을 넘어서, 그녀로 하여금 공포감마저 느끼게 했다.
언젠가는 이 문제에 직접 부딪혀야할지도 모르겠지만, 미룰  있는 한 미루고 싶었다.

[...?]

그러나,

그것은 그녀만의 생각이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불청객은 아주 대담하게 이 무인의 땅에 고개를 디밀었다.

그녀가 일전에도 느꼈던, 투박하지만 이 낙후된 세계에는 어울리지 않는 공간마법.
억지로 공간을 잡아 찢어서 양끝을 기워버리는 무식한 방법으로 움직이는 존재는 그녀가 아는 한,  세계에는 단 하나 뿐이었다.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살바토르를 통해서 생존을 확인한 죽은 신의 무녀로 추측되는 공간 마법사.


그리고 그 짐작은 다른 의미로 대체 불가능한 강렬한 존재감이 사실로 만들어주었다.

생물체가 가질 수 있는 존재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분 나쁘고 이질적인 존재감.


[마신의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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