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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9화 〉탐식마(貪食魔) (339/429)



〈 339화 〉탐식마(貪食魔)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죽일 것을 권하는 바다. 마신의 사도여. 내가 너에게 제시할 거래는 복제체인 나의 목숨이다.]

류 현은 바로 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을 죽이라고 자살성 발언을 내뱉는 놈의 어조가 너무 평온하다는 것도 그에 한몫했다.


그리고 그 덕에  현은 멍청하게 되묻지 않고, 자신의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정신으로는 던졌을  없는, 동시에 핵심을 꿰뚫는 질문이었다.

“거래? 뭘 두고?”


동시에 멍청한 질문이기도 했다. 놈이  목숨을 재료로  요구하든, 그는 뭔가를 내놓을 생각이 없었으니까.
죽여야 하는 상대에게 죽음의 대가로 뭘 준단 말인가?

놈이 갑자기 이런 저런 정보를 던져주며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해서 괴수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니었다.


협상 가능한 지성체라면 다시 생각해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놈이  입으로 말하지 않았는가.
인간을 죽이라는 충동이 세뇌로 박혀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봐선 그냥 깨졌다고 계속 안심할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그런 이유로 류 현은 얼이 빠진 상태에서 자신이 내뱉은 소리를 내뱉자마자 부정하려고 했으나,

[아직 있지도 않은 것을 어찌 요구하겠나. 내가 원하는 것은 빚을 달아두는 것이다.]


놈의 부정이  빨랐다.


“빚?”


놈의 대답에 류 현은 더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제 목숨으로 빚을 달아두겠다니? 복제체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일까?
하지만 놈의 존재는 이곳에 버젓이 존재 하지 않은가.
독립된 존재가 아닌 다른 무언가라는 의미인가?
아니면 앞서 말한 세뇌 때문인걸까?
그것도 아니면 인간과 괴수간의 차이 때문?

무슨 가정을 하든  현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해가 가질 않으니, 무슨 가정이든 간에 어떤 확신도 가질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생각할수록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이해가 가질 않나 보군. 하기야 이상할 건 없지. 설명해주지. 복제체라고는 하나, 너희가 아는 복제와는 조금 의미가 다르다.]
“뭐가 다르다는 거지?”
[원본이 되는 ‘나’의 손실이 없진 않다는 것이지.]
“손실된 걸...어떻게 아는 거지?”
[세뇌가 풀렸으니까. 이전까지는 세뇌와 이 닫힌 세계의 특성 때문에 원본이 되는 ‘나’와 이 세계의 내가 서로의 존재를 알 수 없었으나, 세뇌라는 방해물이 치워지지 않았나. 그 덕에 나와 함께 넘어온 내 영지의  중 하나를 제대로 써먹을 수 있게 된 것이지.]


놈의 말에 그가 잊고 있었던  던전의 이름이 떠올랐다.
지금도 인간들 사이에서는 놈의 등장의 이유라고 생각되고 있는, 미국에 존재했던 X던전.

천공성(穿孔城).

[완벽하진 않아도 성을 써서 한순간이지만 연결을 하는데 성공했지. 복제품이라지만 완성도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너를 키우기 위해서인지, ‘나’의 이름과 영혼의 일부를 가져간 복제품인지라. 구멍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으로도 되긴 되더군. 덕분에 성을 전부 소모시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네게 넘겨줄 것이 하나 더 생겼지.]
“네 성을 주겠다고...?”
[당장 쓰지는  해도 이 낙후된 세계에서는 기준으로는 교보재로도 넘치는 수준일 터. ‘나’의 세계에서도 그것은 쉬이 만들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너희 말로는 포탈이라고 해야 하나? 혹여 그것이 내키지 않다면 네가 취해도 되지 않겠나.]
“왜 그런 것까지 챙겨주겠다는 거지? 네 말대라면 네 쪽은 얻는 것 없이 잃기만 하는 것 아닌가? 본체 쪽에도 타격이 있다고...”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의미가 없다?”
[‘나’와 관계없는 이 세계의 변혁을 위해서 이런 꼴이  것은 불쾌한 일이나,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 네가 이해하기 쉽게 얘기하자면, 천재지변으로 일어난 사고를 보고 행성을 원망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일이다.  시스템을 구축한 이를 원망하는 것도 비슷한 일이 되겠지.]

모르는 척 빼긴 했지만, 사실 놈은 이 사단을 일으킨 장본인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놈의 태도에서 그런 의심이 일었지만, 의심까지는 입 밖에 내놓을  없었다.



[그리고 잃기만 한 것도 아니다. 비아트릭스가 제 이름을 알게 되었듯이,  또한 일족에 대한 제한이 풀린  하니.]
“일족?”
[확실한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너와 대화하고 있는 나는 원본이 아닌 열화판이라. 본체인 ‘나’를 위해서 모든 정보를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어찌됐거나 연결되었을 때 내게 전해졌던 감정을 보면 ‘나’에게도 흡족한 보상이었음은 확실하니 그리 나쁘기만  일은 아니지.]
“그러니까, 내게 빚을 달아두기 위해서 목숨과 그 포탈인지 뭔지 하는 성도 내어주겠다는 건가?”
[그래.]

류 현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괴수를 상대로 이런 말을 하게  줄은 몰랐는데.’

그는 열리지 않으려는 입술을 달싹여 말을 짜내듯이 뱉었다.

“...너희는 내게는 그냥 괴수야.”
[그래, 그 또한 이해한다. 너희에게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천재지변일테니 다른 판단을 바라는 건 무리한 일 일터.]
[허나 네가 끝에 다다르면 지금과는 다른 눈으로 지금을 보게 될 터. 그 때에 거는 것이다. 어차피, 너는 이곳의 나를 죽이려고 들  아닌가.]


입가를  찢으며 웃으며 말하는 놈의 태도에 류 현은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놈의  대로였으니까.
여전히 놈의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것도 같았다.
동시에  다른 의문도 솟아올랐다.


“끝이라고? 너 설마...”
[아니,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것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나도, ‘나’도 그런 초월자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저, 너희가 모아놓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유추했을 뿐이다. ‘대소환’은 너희를 말살시키는 게 아니라, 너나 밖에 있는 그랜드 마스터 같은 존재를 양성하는 것일 테니. 그 끝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뿐.]


류 현은 그럴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을 동시에 품었다.


‘끝이라고? 정말로?’

현생보다 모든 면에서 열악했던 전생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당시 마법사의 극한에 도달했던 화련은 아지다하카가 마지막 네임드 몹이 아닐 것이라고 했었으니까.

류 현 본인도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화련과 달리 그저 감에 의지한 판단이긴 했지만, 그는 확신했다. 남을 설득하거나 설명해보라고 하면 그러진 못하겠지만.


달리 말하면 화련의 추측은 끝이 있을 거라는 상정 하에 한 추측이겠지만, 당시 류 현에게는 그리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당장 먹을 빵이 급한 이에게 여생을 위해서 지금 그 돈으로 투자를 해야 한다는 조언이 무의미한 것처럼, 전생의 그에게는 당장 악룡을 쳐 죽일 수 있는 정보가 더 급했으니까.

그런  현에게 있어서 ‘대소환’에 끝이 존재한다는 말은 까마득한 먼 미래를 넘어서, 다른 세상 이야기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의 삶은 악룡 아지다하카와 ‘대소환’에 묶여서 29살 이후로 나아가지 못했으니까.
그런 것은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놈의 말은 기쁨이나 희망보다는, 떨떠름함을 느끼게 했다.
그래? 보다는 왜? 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건지 모르겠다만, 너무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너희를 성장시키는 게 아무 대가도 없을 리가 없지 않는가. 너희를 위한 장치가 이토록 많거늘.]
“......”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이유였다.
놈의 ‘대소환’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도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대소환’에 묶여 두 번째 생을 살면서도 여전히 묶인 자와 우연히 말려든 자의 차이 인걸까?
류 현은 스스로의 의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

[세뇌도 그 때문에 풀렸을 가능성이 크지. ‘대소환’은 너무 비효율적이니. 그 때문에 내가 너의 존재를 보고 혼란을 느꼈던 것이고.]
“결국 그냥 추측이라는 거로군.”
[거의 확정적인 추측이지.]


부정의 말이 바로 나오질 않았다. 놈이 이성만 들어서 있고, ‘보통 괴수’라고 가정하더라도 정말 그럴싸하게 들렸으니까.
수 없이 자신을 위기에서 건져준 감과 경험이 부정의 말을 내뱉지 못하게 만들었다.

[어찌됐거나 원본이 되는 ‘나’가 바라는 건 큰 것이 아니다. 애초에 네게 뭔가를 청구 강요 할 수도 있는 상황도 아니지 않는가. 모든 건 네가 이 ‘대소환’의 끝에 도달한 후에, 네게 넘겨줄 성을 다룰 수 있을 때나 의미가 있는 것. 그 외의 설명은 지금은 불필요 할 뿐더러, 이렇게...XXXXXX XXXXX XX. 지금처럼 아예 의도를 감지해서 차단되는군. 예상한 바이긴 하다만.]


놈이 내는 이상 현상에 류 현은 의구심을 삼켜야했다.

[너와 추론을 나누는 이 상황도 그리 나쁘진 않으나, 슬슬 한계로군. 가장 중요한 걸 놓치게  판이니 이 이야기는 이만 하도록 하지.]
[아까도 말했다만 내 동족인 비아트리체는 약화된 상태지만, 성을 가져오는 바람에  약화된 나보다 강하다. 아마, 이 세계에서는 그녀가 지닌 힘의 총량이 나의 2배는 되겠지. 이름을 막 찾은 탓에 제 전력을 완벽하게 다루진 못하겠지만,  부분을 감안해도 더 강하다는 건 변함없다. 네게 정보를 전해주느라 소모된 지금의 나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아마 2배는 넘겠지.]

류 현은 티 나지 않게 어금니를 사려 물었다.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입가에서 연신 검은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놈이 피폐해졌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으니까.

그런 놈의 두 배?
놈을 숨통을 끊어서 마력을 취하더라도 뭔가를 장담할  없는 수준이다.
이 정도의 능력을 가진 놈이니 단순히 마력만 늘어나진 않겠지만, 낙관하기는 힘들었다.
놈도 힘의 총량만을 비교하고 있는 것이니까.

[너희가 진짜 용과 싸워본 경험이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크게 느껴지겠지. 아니, 그걸 넘어서 네가 꾸린 팀이 괴멸할 수도 있겠군. 그러니  부분을 채워주겠다.]
“뭐?”
[모의전 상대가 되어주겠다는 뜻이다. 어차피 버릴 목숨이고, 너에게 투자하기로 했으니 확률을 더 끌어올리는 것이 맞겠지.]
“대체  이렇게 까지...”
[지금의 너는 말해줘도 듣지 못할뿐더러, 들을  있더라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저, ‘우리’를 위한 일이라고만 해두지.]
“‘우리’라고?”
[그래, ‘우리’. 이 정도는 허용이 되나보군.  말을 이해하게 되는 날이 ‘나’와 다시 만나게 되는 날일 것이다.]
“......”

류 현은 이 이상 이해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놈이 말하는 자신의 이치는 자신의 이해뿐만 아니라, 인간이 기대하던 지성체의 궤 밖이었다.


어차피 진실이라도 놈을 죽여야 했고, 거짓이라도 놈을 잡아 죽여야 한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그저 놈이 내뱉은 말을 전부 머릿속에 욱여넣어 놓기로만 했다.


‘괴수한테서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정말 놈의 의도대로 빚을 지는 기분이었다. 털어낼 수도 없는, 찝찝한 빚을.

[각오가 선 듯 하군. 그럼 지금 네 동료들을...]


 때였다.

쉬링! 푸확! 후르르! 공간 자체를 베어내는  같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불의 벽이 쩍하고 벌어졌다.
벌어진 불의 벽은 벌어진 상처에서 피를 쏟아내는 것처럼 불을 쏟아내서  원상복구 되었지만, 그들에게는 충분한 틈이었다.


슈슉!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텔레포트 시 나타나는 마력적 공백과 바람 빠지는 소리.
류 현은 부지불식간에 옆에 나타난 다수의 인기척에 반가움보다는 당혹스러움을 먼저 느꼈다.

‘이걸 뭐라고 설명하지?’

“마스터!”
“마스터! 괜찮...어?”
“어어...?”
“이게 어떻게 된...?”

그리고 류 현이 느낀 당혹스러움은 불의  너머로 비집고 들어온 다섯 명에게 전염되었다.

말을 채 다 잇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리는  명의 심정을 승하가 아주 완벽하게 축약해주었다.

“쿠흡...뭐야...멀쩡..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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