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8화 〉탐식마(貪食魔)
그럴 수 없다.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류 현이 가장 잘 아는 바였다.
7년 전 인류는 가장 약한 네임드 몹을 상대로 두더라도 저항할 능력이 없다.
전생에 보았던 본 드래곤을 기준으로 두더라도 힘들 텐데, 두 마리 씩이나 튀어나온다면 볼 것도 없었다.
잡더라도 이겼다라고 말하기 힘든 치명상을 입고 난 이후일 테지.
‘핵샤워는 기본일 테니 플레이어들도 왕창 죽어나자빠지겠지.’
그대로 던전 억제력도 같이 떨어지면?
류 현이 악룡을 잡았을 때와 같은 꼴이 되었을 것이다. 당장의 위협을 치웠지만, 그 여파로 멸망을 피할 수 없는 그런 상태가.
“우리가 전부 죽지 않은 게 우리에 대한 배려의 증거라는 건가? 참 대단한 배려로군.”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마무리 짓긴 했지만 그 적의가 옅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가 보기에는 합당한 추론이었으니까.
두 번째 생을 살고 있는 그였기에 자극되는 부분이 있었고, 동시에 차분하게 받아들 일수도 있었다.
[그냥 죽지 않기만 한 것은 아니지. 이전에 없었던 힘을, 에너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나.]
“그건 ‘대소환’이 가져온...”
[왜 그 반대로는 생각하지 못하지? 이 작은 행성에 마나를 정착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을 수 있지도 않나.]
“......”
[‘대소환’이라는 것이 이 행성이 닥친 지 20년이 채 되지 않았더군. 아니면 내가 잘 못 알고 있나?]
“내가 아는 한에서는...틀리진 않아.”
[그래, 너희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받아들였지. 그 중에서 가장 이질적인 건 너 같은 플레이어 들일 테고.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나? 갑자기 새로운 에너지와 땅, 생물체가 발견되고 그에 맞춰서 형편 좋게 대항마가 나타났다?]
이상하다마다. 류 현은 몇 번이고 그런 의심을 떠올렸다가 폐기하길 반복했었다.
아마, 입 밖으로 당당하게 내지 못할 뿐 이런 의심을 품고 있는 게 그 뿐은 아닐 것이다.
류 현의 의심의 상당부분은 전생에 접했던 가설들에 기반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피폐해진 상태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연구를 이어가던 이들이 존재했으니, 현생에서는 더 진전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칼리프의 말로 유추해보면, 전생에서는 류 현이 흡수했던 그 석비 같은 아티펙트는 발견되지 못했을 테니.
[그것도 너희가 잘 다룰 수 있게 가공된 상태로? 말도 안 되는 일. 너라는 존재를 확인하고 나니 확언할 수 없게 되었다만. 이건 단순히 운을 좋은 것을 넘어서, 이상할 정도로 운이 좋은 것이지. 누군가가 의도했다고 하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이 작은 행성조차 힘겨워하는 너희가 망가지지 않도록 말이다. 너를 보고 있자면 내 추측이 맞나 의심이 들긴 한다마는.]
류 현은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놈이 사이사이 자신이 어떻게 됐어야 한다는 양 말하곤 하는데 속이 편할 리가 없었다.
놈에게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정보를 주고 싶지 않아서 일일이 대꾸하진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태도를 볼 때 놈은 그마저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놈의 말이 사실이라는 보장은 없지만...찔러나 보자.’
“아까부터 말끝마다 사람을 위험물 취급하는데...네가...”
[그야 당연한 일이지. 적어도 이 은하 내에서 너보다 위험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너희가 만든 핵이라는 물건도 행성을 통째로 소멸시키진 못하지 않나. 그에 반해 너는 힘을 제어하는데 실패하기만 해도 이 성계를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소멸시키게 될 터인데.]
“뭐?”
[정말로 모른다는 반응이로군. 대화할수록 알 수가 없어지는 기분이야. 네게 주어진 힘의 규모를 보면 모를 수가 없는 수준인데, 어찌된 것인지.]
그야 당연히 알 수가 없었다.
류 현도 다른 플레이어들과 똑같이 각성을 하면서 이 힘을 얻은 것이니까.
일반적인 플레이어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힘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이게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지만, 그건 드물지만 다른 플레이어도 겪기도 하는 현상이었다.
물론,
후발 주자인 자신이 5년이 채 안 되는 시간만에 최상위권을 지키던 이들을 모두 제치고, 단독으로 네임드 몹을 찢어죽일 수 있게 해준 이 능력이 평범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쓰는 내내 끔찍한 충동을 비롯한 이상 징후도 느꼈기에 경계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이 행성단위, 아니 성계단위 폭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강림’때 덮쳐드는 기시감과 끔찍한 수준의 충동들은 그에게도 공포라는 걸 느끼게 만들었지만, 당장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으니까.
정확히는 그걸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는 게 맞겠지만, 그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놈의 발언은 류 현의 상상을 아득히 넘어서는 것이었다.
자신의 몸에 담긴 이 힘이 인류 정도가 아니라, 행성을 끝장낼 수 있는 시한폭탄이었다니?
정말 한 번도 생각해 본적 없는 사실이었다.
류 현이 가정해본 최악의 폭주라고 해봐야, 미쳐 날뛰다가 마력과 몸이 거덜 나서 죽게 되는 것이 전부였다.
그도 그럴게 전생 기준으로 ‘강림’상태에서 이성을 상실하면 전체적인 스펙이 올라서 전투력이 향상되지만, 인지범위가 극단적으로 좁아졌다.
의도하고 ‘강림’을 폭주시키든, 전투도중에 빈사 직전에 정신을 놓아서 그리되든 결과는 비슷했다.
의식을 되찾고 나면, 남이 플레이한 게임을 보는 것처럼 당시 복기할 수 있을 정도로는 기억이 돌아오니 아주 틀린 추측은 아닐 터였다.
그랬는데,
칼리프 드 오르시아 이후로 처음으로 자신의 힘에 대해서 알고 있는 듯한 놈이 그 대전제를 정면에서 부정한 것이다.
그것도 그 칼리프 드 오르시아가 했던 말과 정반대되는 말을.
‘놈이 거짓말을? 아니, 굳이 이런 거짓말을 해야 할 필요가 있나? 칼리프 그 여자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류 현이 얼이 빠져있는 동안에도 놈의 말은 계속되었다.
[‘대소환’에 대한 추론을 제대로 세우는데 시간이 걸린 것도 너의 존재 탓이었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위험요소를 이렇게 약한 너희를 배려한 설계자가 끼워 넣었을 리가 없으니. 거기에 너무 큰 낭비 아닌가. 세뇌가 깨진 것도 그렇고, 분명 자원이 부족했을 게 분명하거늘. 실낱같은 확률에 걸고, 위험요소를 밀어 넣는다?]
혼자 의문의 던지고 고개를 살래살래 젓는 동안 류 현은 가까스로 패닉 상태에서 빠져나왔다.
충격을 다 털어내지 못한 그의 머리는 평소보다 훨씬 더 정직하게 제 의문을 토해냈다.
“...너는 이 안에 있는 게 뭔지 아는 건가?”
그러나 놈이 내놓은 대답은 그가 원하던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안다? 그런 말은 쓸 수 없을 것 같군. 마신의 사도여. 너와 네가 만난 ‘그녀’를 제외하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존재는 이 세계에는 없을 것이다. 아마 ‘그녀’ 또한 안다고 장담하지 못 하겠지. 네 안에 깃든 것은 그런 것이다.]
“...마신 말인가?”
[편의상 그리 부를 뿐, 그것을 바르게 부를 수 있는 말은 없다. 있다고 한들 내게는 허락되지 않을 것 같군. 너X XXX XXXX XX XXXX...흠, 격리가 생각보다 시원치 않았나 보군. 아니면, 네가 X말 사도XX의 무언가X 될 XX성이...쯧, 안 되겠군. 아직 격리의 힘이 다하지 않았는데도 이 모양이군. 억지로 계속 했다간 해야 할 말을 전하지 못할 수도 있겠어.]
류 현은 두 번 놀랐다.
놈의 입에서 다시금 그 괴상한 압박감을 느끼게 만드는 소음이 튀어나온 것에 한 번.
그 말을 내뱉은 놈의 코와 입가에서 시커멓게 죽은피가 흘러내리고 있는 것에서 다시 한 번.
‘...진짜라고? 아니, 거짓말이 아니라는 보장은...젠장, 지금 그런 걸 따지는 건 무의미해. 정신 차려라 류 현.’
류 현이 경악하고 있거나 말거나 놈은 제 할말을 해갔다.
[이 부분은 네가 해결해야 할 문제 같군. 어차피 이 부분은 내가 들려줄 수 있는 말도 많지 않다.]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말하도록 하지. 너희도 이미 보았겠지만,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용의 이름은 비아트리체. ‘나’의 세계에서 ‘나’와 동격에 이르렀던 동족이다. 떠본 결과, 유감스럽게도 그녀는 세뇌의 존재를 온전하게 알지도 못하고, 기억 또한 완전히 묶인 듯 하더군. 원래부터 그녀는 이름이 묶인 상태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만, 너희에게는 상당한 호재라고 할 수 있겠지. 아니었다면 너희 대부분은 그녀의 존재를 인지하기도 전에 수장당했을테니.]
[그녀는 자신이 복제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 행성에 불려온 다른 복제체들처럼 자신이 진짜라고 생각하고 있지. 단편적인 기억의 이상한 점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자신이 약해진 것도 모르고 있다. 오히려 이름이 풀린 덕에 강해졌다고 여기고 있겠지. 상처가 다 나으면 괜찮아 질 거라고, 그리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 상태를 생각하면, 상처가 다 나으면 내가 움직이지 않더라도 그녀가 움직이겠지.]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죽일 것을 권하는 바다. 마신의 사도여. 내가 너에게 제시할 거래는 복제체인 나의 목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