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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4화 〉탐식마(貪食魔) (334/429)



〈 334화 〉탐식마(貪食魔)

미합중국의 부통령 제프 리어던의 휴대폰을 울게 하기 한 시간 전.

 현은 세아가 초대장을 보여주자마자 그녀를 리치몬드의 컨트롤 타워까지 데려왔다.
원래도 그랬겠지만, 초대장 내용을 보고나니 몇 백 킬로미터 차이는 위안조차 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대체 저 좌표들이 뭐냐고 묻는 세아의 말을 무시하고, 그녀를 vvip실 회복실에 밀어 넣은 류 현은 곧바로 팀원들을 긴급 소집했다.
물론 백혜라에게는 직접 연락하지 않고 승하를 통해서 알렸고,

그 결과 인원이 한  비게 되었다.

“...비난하는 건 아닌데.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에요? 언니.”
“어?...으음...”

자리에 앉기도 전에 기습을 당한 승하의 동공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맸다.
화련은 그 너무나 잘 보이는 틈을 사정없이 후벼 팠다.

“언니가 무슨 마음으로 그러는  대충은 알겠는데. 이건 미봉책도  돼요. 혜라 걔가 우리가 모인  모르겠어요? 애가 성격이 좋으니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넘기고 있는 거지.”


세아와 관련해서 비슷하게 찔리는 것이 있는  현이 눈짓으로 제지하려고 했으나, 화련은 보고도 못 본  했다.
이건 그녀도 벼르고 있었던 문제였다.


“난 언니가 걔 떼서 한국으로 보내버릴 줄 알았어요. 데스나이트까지야 이래저래 정신이 없었고 규모도, 한국에 있는 다고 무사할 거라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저러다가 집으로 보내겠지. 이제 혼자 있다고 건들 수 있는 놈도 없는데. 좀 시끄러워지겠다. 하고.”
“...나도 말은 꺼내봤어. 그런데  듣잖아.”
“당연히 안 듣겠죠. 걔도 성인이잖아요. 그냥 성인도 아니고, 웬만한 꼰대는 찍소리도 못할 정도로 산전수전  겪은 애인데. 언니가 그냥 안 된다고 하면 듣겠어요? 무슨 괴물을 상대하는 지 다 봤는데.”
“...나보고 어쩌라는 건데.”


마지못해서 내뱉은  같은 말은 반박보다는 칭얼거림에 가까웠다. 화련은 속으로 한 숨을 삼켰다.


‘이 덩치만 큰 어린애 같으니라고.’


“그냥 얘기해요. 설득을 하든, 묶어서 한국으로 보내버리든 그게 먼저죠. 말 안 하면 묶어서 보내버려도 다시 돌아올 텐데. 걔가 미대사관에 연락 넣고 입만 잘 털어도 여기로 돌아올 수 있을 걸요. 막말로 미국 입장에서는 우리 모르게 입국시켜 버리고 착오가 있었다고 해버리면 되니까. 걔들 입장에서는 전력 하나라도 아쉬울 텐데, 혜라 정도면 천외천급이니 안 봐도 비디오지. 마스터도 얘기해도 된다고 허락한 판국에 뭐가 문제에요?”
“......”
“혜라 덕에 살아난 내가 말하긴  그렇지만,  내가 볼 때 그냥 아무것도 모른 상태서 돌려보내는 건 아프리카 데리고 가면서 이미 끝장났어요. 언니가 두들겨 패서 보내도 돌아올 걸요.”


나라도 그럴 테니까. 화련은 그 말까지 내뱉진 않았다.
뱉지 않아도 승하의 표정은 충분히 우중충해진 상태였으니까.

‘진짜 애라니까. 애.’

승하가 왜 백혜라 얘기만 나오면 저리 답답하게 구는지 이해 못  건 아니었지만, 그랬기에 더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어정쩡한 상태를 유지하는 건 서로에게 좋지 못하다. 화련은 이전부터 작심한 것을 오늘 쏟아내기로 했다.
그녀가 다시금 쏟아내려 입을 열려던 차였다.


“지금 할 만한 얘기는 아닌 것 같으니,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에 논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류 현의 중재에 화련은 소리 없이 한 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욱해서 몰아붙이긴 했지만, 전미 곳곳에 숨겨진 핵무기와 원자력 발전소가 터지니 마니 하는 상황에서 굳이 꺼내들 문제는 아니긴 했다.

그 당사자가 이 사태 수습에 힘써야 하는 이라면 더더욱. 그냥 들어도 충격적인 사실을 이런 상황에서 알려주는 건 제  깎아먹기 였다.


그렇다고 슬쩍 자기 눈치를 봐가면서 기운을 차리고 있는 승하의 행동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진짜 이번 일만 끝나 봐.’
“...그럼 이거 어쩌실 생각이세요?”

화련은 탁자에 펼쳐진 지도를 톡톡 두드렸다. 북미 대륙 여기저기에 빨간 점이 박혀 있는 지도는 방금 전, 국방부 장관의 보좌관 하나가 다 죽어가는 얼굴로 유출하시면 안 된다고 거듭 당부하며 건네준 것이었다.

냉전 시대.
미국과의 군비 경쟁에 체제의 명운마저 걸고, 전 세계에 스파이를 흩뿌려 정보전을 일삼던 소련마저 다 파악하지 못한 미국의 핵전력의 민낯.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팀원들의 얼굴을 밝지 못했다.

이미 본 지도였지만 화련은 한 번 더 훑어보고는 짜증스럽게 내뱉었다.

“뭐 이렇게 온갖 곳에 흩뿌려놨데요? 이거 다 다른 시설로 등록하고 비밀리에 옮겼을 텐데. 이게 말이 되요? 내가 미국에 이상한 환상이 있었던 건가?”
“원래는  다르게 관리했었는데 대소환 이후로 방침을 바꿨다더군요.”
“...돌겠네 진짜.”


텔레포트 능력 보유자인 화련이 봐도 지도에 찍힌 점은 너무 많았다. 자신과 희란이 운반에만 집중해도 힘들 정도로 너무 많았다.
놈이 제시한 사흘이라는 시간 안에는 도무지 어떻게  수가 없을 정도로.
처리 절차를 생각하면 운반이 아니라, 그  절차를 밟는데만 해도 그 정도는 걸릴 듯 했다.
법적 절차나 의회의 동의 절차를 빼고도 말이다.

“어차피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선택지는 고려대상이 아니니까요.”
“하긴, 저장장치만 뜯어가서 정보 빼보는 놈이 초장거리 타격이나 텔레포트를 못할 리가 없죠.”
“그...화룡들도 있고요.”
“예. 그리고 그 이전에 저걸 제대로 막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죠.”


그의 입에서 드물게 대놓고 약한 소리가 나오자 세 여자는 저도 모르게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그 짧은 무언의 소통 끝에 화련이 총대를 멨다.

“...그 정도에요? 아니, 아직 붙어보지도 않았잖아요. 마스터의 경험도 전생의 얘기고, 마스터도 전생보다 훨씬 강해졌으니깐...”
“아주 없진 않지요. 레드 드래곤 웨이브 때 놈의 앞발 강도를 확인해 봤으니까요.”
“아, 그 때...못 뚫었었지? 아마.”
“예, 덩치는 좀  작아진 것 같은데 스펙은 더 오른 것 같더군요. 여기도 포함해서.”


류 현은 관자놀이를 툭툭 쳐보이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류 현의 전생 경험을 들먹일 필요도 없었다. 현생에서 그들이 만난 네임드 몹과 비교해도 압도적이라 할 만 했다.


여기저기 요새를 꾸리려고 하는 와중에 상대의 후방을 털어버리는 엘더 리치.


어느 순간부터 이상해지긴 했지만,
공격 순위를 유연하게 바꾸고 유격전을 벌이는 걸로 모자라서 인간이 발굴한 유니크 아티펙트를 약탈해서 공격해오던 ‘패릭스’.

거기서 한 술이 아니라  술 더 떠서 인간노예를 굴리고 의사소통까지 되던 라가로드.


한 쌍이 나왔을  한 쪽이 나머지 한 쪽보다 쳐지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네임드 몹들은 후순위로 갈수록 지능이 상승한 것 같은 모습을 보여 왔다.


아직 이름을 보지 못한 ‘화룡’에 이르러서는 다른 한쪽인 ‘비아트릭스’ 마저 인간에 준하는 지능에, 전자기기 마비라는 끔찍한 기능까지 달고 있다.
‘화룡’에 이르러서는 저장장치들을 뜯어가서 미국이 냉전시대에도 지켜온 1급 기밀을 캐내는데 성공했다.

그걸로 협박을 해오는 것으로 봐서는  정보의 가치도 아주 잘 알고 있는  했다.
표면적으로는 초대장이긴 했지만.

“함정일게 뻔히 보이는데 응해야 한다니...놈한테 핵 퍼부어 봐야 안 먹히겠죠?”
“예, 전생에서도 문제없이 견뎠으니까요.”


협박당하는 대상을 아예 공격에 써버려서 없애버리자는 화련의 발상은 의미가 없었다.
그것도 놈에게 먹힐 때나 피해를 감수하고 고려해 볼만한 것이지, 방사능 낙진이나 뿌리고 실효는 없을게 뻔하니.


“첫 공격은 미사일을 처음 봐서 그런지 제대로 대응 못하고 직격당하더군요. 빛이 관측이 불가능할 정도라    여초 간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놈은 핵  발을 견뎠습니다. 그 뒤에는 다가오는 미사일을 터뜨려버리고 에너지를 흡수해버리더군요.”

아무리 네임드 몹이라도 유전자까지 구워버리는 방사능에는 버티지 못할 거라는 전망도 그저 희망사항이라는 것을 놈이 증명해냈다.
놈은 핵세례를 받고도 멀쩡하게 남미를 불지옥으로 만들고, 류 현에게 찢겨죽을 때까지 아주 건재했다.

당시 미국의 관측에 의하면 놈의 몸뚱이에서 별 다른 방사선 방출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했다. 핵미사일 네 발에 직격당한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다고.

전생에서 활동범위를 생각하면 놈이 살아있는 고 방사성 물질이 안  게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에 와선 그게 다행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북미대륙에 있는 핵을 전부 터뜨려도 놈은 영향을 받지 않을 테니까.
류 현 본인도 멀쩡하겠지만,  사실은 전혀 위안이 되질 않았다.

“미친...”
“미국 측에서 쏘자고 해도 말려야 할 판이죠. 전생에서야 운 좋게 낙진이 그다지 퍼지지 않았고 놈도 오염상태로 돌아다니진 않았지만, 이번에도 그럴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오히려 역이용 할 수도 있겠죠.”

놈이 핵무기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걸 협박 재료로 쓸 정도라면 방사능을 무기로 쓸 수도 있다는 것도 생각을 해둬야만 했다.
놈이 용잡이 팀이 따라잡지 못하게 열심히 북미를 돌아다니기만 해도, 북미는 지옥이 될 테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네요.”
“미국이 괴멸하는  감수할  아니라면 말이죠.”

화련의 생각에도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미국은 거의 유일하게 제대로 된 구실을 해주고 있는 조력 국가였으니까.


다른 나라들은 3차 대소환이 시작되면서 터지는 주기가 빨라지고 있는 고위 던전 처리에 정신이 나가있는 상태.

그나마 여유가 있는 유럽도 데스나이트와 아프리카 건 여파로 난민이 몰려들어서  끔찍한 소요가 예정되어 있다.
운 좋게 사태에서 비껴서 있는 나라들도 숟가락 올려볼까 하고 기웃거리다가 동부가 엉망이 되자, 아예 관망모드로 돌아서 버렸다.


기대가 없었기에 실망도 없었지만, 그렇기에 멀쩡한 조력 국가를 더 포기할 수 없었다.
어차피 잡아 죽여야 할 놈이기도 했고.

“...그래도 함정에 우리 발로 걸어들어 가야 한단 말이죠.”

언제는 유리한 환경에서 네임드 몹과 싸웠냐만은, 내키지 않는 게 사실.
더욱이 이번 상대는 인류가 이루어 놓은 문명의 일부마저 주물럭거리는 놈 아닌가.

말이 초대지, 초대에 응하지 않으면 핵을 터뜨려버리겠다고 협박하는 놈이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거기에 대해서 말입니다만.”


주목을 요구하는 듯한 말에 세 여자의 시선이 류 현의 입으로 몰렸다.


그리고 류 현이 말을 내뱉었을 때,
숙소가 떠나가라 큰 고성이   오고 갔다가 잦아들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십분 가량 흐르고 난 후,
씨근덕거리며 나온 승하가 백혜라에게로 향했고,
조금  후에 화련과 희란도 방을 나섰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두 사람을 배웅하는  현의 얼굴에도 씁쓸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류 현은 조금 손을 흔들어주다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수신인은 미합중국의 부통령 제프 리어던.


그의 전화를 기다린 것인지 금방 연결되었다.  현은 목을  번 가다듬고 말했다.


“류 현입니다. 작전 실행일이 정해져서 연락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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