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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9화 〉탐식마(貪食魔) (329/429)



〈 329화 〉탐식마(貪食魔)

 현은 그 시각 명상 중이었다.


원래  자리에 죽치고 앉아서 명상하는 건 취미에 없었지만, 회귀 후에는 시간을 쪼개서도 해야만 했다.
전생처럼 뒹굴고, 깨지면서 적응하기에는 회귀  이룬 경지가 너무도 이질적이었다.


혼자라면 시행착오를 감수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네임드 몹이 전생보다 강해진 것도 작용했고 말이다.


어쩔 수 없이  현은 수면시간을 줄여가면서 매일 같이 명상을 통해 내부를 관조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고,  진전이 없어 집어치울까 말까한 찰나에 세아의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류 현은 제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전화를 받고 봤다.
한국은 한창 자고 있어야할 새벽이라는 사실은 세아의 입에서 ‘너도 확인 했니?’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떠올랐으나,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응? 누나 갑자기 무슨 소리...”
[마신의 사도, 이름을 잃은 신의 무녀로 추정되는 여자 둘, 그랜드 마스터, 7위계 마법사. 뉴욕으로 초대. 초대에 응할 시 생, 생텀? 건설 방법을 넘기겠음.]
“누나? 그게 무슨 말...”
[3시간  전쯤에 갑자기 병원 위로 커다란 메시지 창이 떴었어. 병원에만 뜬  아니고 서울에도, 뉴스에 나오는 파리에도 나왔었는데...나 말고는 아무도 못 보는  같아. 저렇게 선명한데 아무 얘기도 없어. 련이랑 희란이도 못 보는 거 맞지? 거기 이상없는 것 맞아?]

세아의 목소리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다다 몰아치는 통에 류 현은 그녀의 말을 정리해 볼 겨를이 없었다.

‘그랜드 마스터? 그거 라가로드 그놈이 승하보고 한 말 아닌가? 마신의 사도는 나보고 했었고...무녀는 진짜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네. 생텀도 그 때 들었던 것 같고...근데 그게 왜 누나 입에서?’

어디서 들어본 말이었다는 사실이 류 현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말을  대상이 다름 아닌 네임드 몹이었으니까.
그것도 인간들을 잡아들여서 죽이는 게 아니라, 노예로 부리던 놈.
그놈이 하던 말이 왜 세아 입에서 나온단 말인가?

세아의 트라우마를 잘 아는 류 현은 한 번도 괴수 토벌 때의 일을 세아에게 말한 적이 없었다.
그녀가 다른 형태로 시야를 회복하고, 건강을 되찾은 후에도  원칙은 바뀐 적이 없었다.
굳이 자신이  끔찍한 경험을 말해주지 않아도, 나가 있는 동안 세아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갔을 테니까.

[아무래도 나도 거기...]
“누, 누나 잠깐만. 좀 진정해봐.  지금 누나가   반도 이해 못했거든. 일단 심호흡부터 하자. 이쪽에는 당장 아무 일도 없으니까. 천천히.”


머릿속에 든 말을 말로 다 쏟아내지 못해서 안절부절 못하던 세아는 류 현의 말에 맞춰 천천히 심호흡했다. 사이클이 세 번 정도 돌았을 때, 류 현이 슬쩍 물었다.

“뉴스 화면에서 봤었다고?”
[으응, 처음에는 갑자기 병원 하늘 위에 커다란 창이 떠올랐었는데...아무도 못 봤어. 간호사분들이나 의사선생님도...]
“다른 플레이어들도?”
[응.]

류 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세아가 다른 방식의 시야로 대체  시력을 제외한, 건강을 회복했음에도 류 현은 통째로 사들인 병원에 머물 것을 권유했고, 세아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말이 병원이지 사가에 의사들을 상주시키려고 꾸린 병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원정에 다녀 올 때마다 요양할 장소를 구해야할 처지였으니 효율성 측면에서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호위로 데려다 놓은 플레이어들이 눈에  띈다는 이점도 있었고.


“정확하게  시경인지 기억해?”
[어? 그게 그 창이 뜨고 깜짝 놀라서 그건  모르겠어.]
“대충 3시간  전이라는 거지?”
[정신 차리고 시계 봤을 때는 그 때쯤이었어.]
“응?”
[그, 그러니까. 그 창이 떠오르고 나서 나도 모르게...]

세아가 어물어물 말끝을 흐리자 류 현은 다급해졌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무슨 일 있는  아니야. 그냥  창에  글자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거기에 끌려서...]
“자, 잠깐만. 끊지 말고 있어봐. 화련 씨 불러올게.”
[어? 그럴 필요까지는...현아?]

세아가 불러봤지만 류 현은 이미 다른 휴대폰을 조작하는 중이었다.
화련은 류 현의 호출에 3분이  지나기 전에 방으로 달려왔다. 덤으로 같이 붙어있던 희란까지 달려왔는데, 류 현은 오히려 그녀를 반겼다.

그녀들이 오는 동안 류 현은 병원 직원에게 홀로그램 장치 세팅을 시켜놓았다. 미군 내에서나 쓰이는, 화상 통화를 위한 장치라기에는 너무 비싼 물건이었지만 정확한 가격을 아는  현은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지레 겁먹은 직원이 세팅 도중에 본체를 떨어뜨려서 3년  연봉을 날릴 뻔 하긴 했지만.

“대체 무슨 일이에요? 세아 언니한테 무슨 일 생겼어요?”
“무슨 일이 있는 거 같기는 한데 저 혼자서는 판단이 안 서서요.”


화련은  말에 뿌듯함 보다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산전수전, 공중전에 화전까지 겪어본 인간이 모르는 일을 내가 파악할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당혹감이 앞섰다.


“네?”
“제가 이쪽으로는 아는 게 없어서...그래서 화련 씨 의견을 여쭈려고 부른 겁니다.”
“이쪽?”

화련의   눈썹이 슥 밀려올라갔다.
그녀가 아는 한 어지간한 마법사는 세아를 해할  없으니까.

류 현이 강찬에게 받은 것과 네임드 몹 원정 후 각 국에서 뜯어낸, 아티펙트들을 두른 세아는 작은 방공호에 들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펠릭스’의 공격을 받은 후, 류 현은 더욱더 그런 것들을 병적으로 챙겼다.

거기에 세아가 가진 능력의 특수함을 생각하면, 헌팅레벨 300대 괴물에게 기습당하는  아니고서야 세아에게 해를 끼치는 건 지극히 어려울 터였다.
그런 괴물들은 출입국 관리가 굉장히 엄격했고 말이다.

공격 능력이 없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화련이 보기에 류 현은 그 부분을 은근히 반기는 쪽이었다. 정확히는 공격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길도 슬쩍 가려놓은 상태였다.

세아의 능력을 대략적으로 파악한 후, 화련이 내놓은 마법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결론을 알리지 말 것을 부탁했으니까.


‘전생 일을 생각하면 저러는 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어쩌다 중간에 끼여서 중재역할 비슷한 것도 해  입장에선  상태는 그리 좋기 만한  아니라는 게 그녀의 판단이었다.

‘이러다가 제대로 터지면 진짜 힘들어질 텐데.’

“예, 정확하게는 몰라도 정황상 마법 쪽 같아서요.”


당장은 자신의 마스터의 요구를 수행해야겠지만.


“뉴욕 쪽에서 퍼져 나온 이상 마력파장을 파악한 것 같습니다.”
“네?”
“정확하게는 거기에 실린 메시지를 봤다는군요.”
“진짜요?”


마지막 물음은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세아를 향한 것이었다. 세아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화련은 잠깐 동안 동공 지진을 일으켰지만, 금방 감정을 수습하는데 성공했다.

“어, 음...언니? 혹시나 해서 확인해보려는 거니까 생각하지 말고 바로바로 대답 좀 해주세요. 혹시 주변 공간에 이음새 같은 게 뒤틀려 보이고 그러진 않죠?”


저주 상태 확인을 시작으로 화련과 희란은 세아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고, 그 공세는 거의 30분간 계속 되었다.


당장이라도 뉴욕으로 날아가야겠다고 고집을 피울 기세  세아는 진이 빠져서 통화를 종료하게 되었다.
통화를 끝마친 화련은 혼자서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류 현의 시선을 느꼈는지 뒤를 슥 돌아보며 말했다.


“마스터, 세아 언니 마법 못 배우게 막으셔도 알아서  배우실 거 같은데요? 그리고 배우는 게 낫겠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류 현이 화를 내지 않은  말을 한 이가 화련이라는 것과, 그녀의 표정에서 내비치는 진지함 때문이었다.

“언니 재능이 진짜 미친 수준이에요. 그리고 그것 때문에 뉴욕에 있는 놈한테 걸렸을 거고요.”
“예?”
“팀의 마법사가 이런 말 하면 엄청 못 미덥게 들리시겠지만, 뉴욕의  마력파동은 아마 메시지 마법이었을 거에요. 아니지, 세아 언니가 내용물까지 확인해줬으니 메시지 마법 맞지. 아무튼 우리 수준에서는 엄청 난해해서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죠. 저도 이제야 이거 뜯어볼 여지가 있나 고민했을 정도니까요. 세아 언니만 그걸 알아본 거고요. 심지어 해석까지 했죠.”
“그건 누나의 능력이 보는 쪽이라서 그런  아닐까요?”
“그 영향도 있긴 하겠지만 그게 전부면 뉴욕 근처에 쫙 깔린 감지계놈들이 이상한 문자가 보인다고 난리를 쳤겠죠. 그냥 보이게  게 아니라, 엄청 꼬아놨어요.  정도는 해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내용은 마스터도 들었다시피...”
“비아트릭스. 그 괴물한테  스펙을 보냈죠. 화련 씨의 공간 마법도요.”
“네. 왜 저를 이름을 잃은 신의 무녀라고 지칭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문맥을 보면 그건 확실히 저죠. 희란이 능력도 대충 눈치 깐 것 같고요.”
“그리고 우리 팀을 초대하는 초대장도요. 그런데 이건 누나가 제대로 봤다고 가정했을 때 의미 있는 것 아닙니까? 제대로 각성한 지 일 년이  안됐습니다.”


화련은 제 소망을 말하는 자신의 대장을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바라봤다. 류 현은 드물게  시선을 슬쩍 피했다.
화련은 그 행동에서 그가 스스로 억지 부린다는 걸 알고서 억지를 부린다는 것을 눈치 챘다.

“마스터. 본인도 안 믿는 가정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에요? 언니가 제대로  게 분명해요. 지벡 건터 그 양아치가 뉴욕에 남겨놓은 ‘눈’이  이상한 마력파동에 파괴 안  것만 봐도 확실하잖아요. 저 괴물들은 마법에 한 해서는 우리보다  수, 아니 몇  수는 앞서 있어요.”

원래는 판단 보류 상태였던 일이었다.
그러나 세아의 증언이 합쳐지고 나니, 화련은 확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임드 몹으로 추정되는 화룡 무리의 우두머리는, 류 현이 전생에서 상대한 ‘화룡’보다 더  때리는 존재라고.
적이 심어놓은 도청장치를 일부러 내버려두고, 같이 ‘넘어 온’ 네임드 몹에게 그 적의 정보를 넘겨주면서 동시에 적에게 초대장을 보내는 놈이라는 사실을.

“저놈들이 전자기기만 뜯어가고 아무 분탕 안치는 것만 봐도 확실하잖아요? 훔쳐간 기기에서 어떻게  건지는 몰라도 정보를 뽑아낸 거죠. 그 결과 우리팀이, 마스터가 유일한 위협요소 라는 걸 아는 거죠.”


세아의 증언 속에는 이 현장에 있지 않으면 알  없는 사실들이 너무도 많았다.
지벡 건터가 놈의 출현을 목격할 때 심어두었던 ‘눈’의 존재부터, 비아트릭스의 이름까지.

세아가 해석을 잘못했는데 그것들이 우연히 언급될 가능성? 이미 미동부를 엉망으로 만든 놈이 얌전히 사라져줄 가능성보다 낮으면 낮았지, 높을 리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우려한 대로 남겨놓은 ‘눈’을 역추적할 능력도 있는 놈이죠. 아마 메시지 마법에 수신 추적도 조치 해놨을 거에요.”
“그 말씀은...”

류 현은 당장 건물 벽을 뚫고 나가서 한국까지 달음질 할 기세였다.


“마스터가 우려하시는 대로면 언니 연락을 받을 일도 없었겠죠. 도청시도도 넘어가는 걸로도 모자라서 역추적 우려해서 다시   건 잘했다고 하는 놈인데. 하지만 계속 손 놓고 있는 것도 답은 아니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진짜 시간문제에요. 마스터가 아무리 언니를 이쪽으로 노출  시키려고 하셔도, 언니 각성 능력이랑 재능을 생각하면 아티펙트 발동되는 거 보고 역산도 가능할 걸요? 마스터 앞에서 이런 소리 하는 건 우습지만 재능이 전부인 바닥이라서. 마스터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하면 지연 이상의 의미가 없어요.”
“그건...”

화련이 이전에도 몇 번이고 반복했던 말에 더 높은 평가가 첨가된 것뿐이었지만, 류 현은 쉽사리 반론을 내놓지 못했다.
그야 당연했다. 세아가  현이 괴수와 싸우는 것에 대해서 일단 부정부터 하려고 보는 것처럼, 류 현도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향하는 쪽으로 생각을 끼워 맞추는 거였으니까.

시대를 생각하면 정말  순간의 모면이라도   있는 능력은 중요했다.
플레이어들이 죽치고 있는 병원이라고 게이트가 열리지 말라는 법은 없고, 이제는 게이트 포화기간도 점점 무의미해질 테니까.


그렇다고 끝을 볼 때까지 세아를 끼고 다닐 순 없는 노릇이니, 재능이 있다면 그것이 싹이 틀  있게 도우는 것이 맞았다.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때 일이겠지만.

“...당장은 결정을 내려도 그리로 가긴 힘드니 조금 더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떨구는 류 현을 보고 화련은 더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숨을 삼키며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마스터 생각이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죠. 머리  식히고 계세요. 혜라랑 승하 언니 불러올 테니까. 언니가 또 밖에 나간 모양이니 좀 늦을 수도 있어요.”
“또요?”
“네, 또요.”

화련은  길로 조용히 눈치만 보던 희란을 데리고 나섰다.
류 현은 그녀들이 떠난 자리를 멍하니 응시하다가, 한 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렇게 하면 가슴에 들어앉은 돌덩이 같은 근심이 사라지는 것처럼.

당연하게도 효과는 전혀 없었다.

류 현은 다음날 그 근심거리를 싹 잊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기뻐하진 못했다.
사상 최초로 인류에게 통신을 걸어오는 괴수라는 존재가 근심거리로 대신 자리 잡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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