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3화 〉탐식마(貪食魔)
콰르륵! 콰아아- 흙이, 땅이 위에서 아래로 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사람들이 슬픔과 함께 기억의 저편에 시간과 함께 묻어버린 관이 딸려 올라왔고, 커다란 불발탄이, 그보다 훨씬 오래된 것 같은 화석화된 커다란 무언가가 딸려 올라갔다.
천공성은 그 대부분의 것들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 위로 뉴욕에 난 것과 비슷한 ‘구멍’이 꿈틀거렸다.
뉴욕의 난 ‘구멍’이 대형헬기가 여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정도라면, 이곳 스프링필드 상공에 난 ‘구멍’은 기껏해야 소형 드론이나 겨우 드나들 것 같은 크기였다.
하지만 ‘구멍’의 크기와 상관없이, ‘구멍’의 발생은 용잡이 팀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미정부도 대놓고 말하지 못해서 눈치만 보는 상황이었지만, 류 현은 더는 망설이지 않고 움직이기로 했다.
화련의 말처럼 지금은 두 번 없을지도 모를 기회였고, 더 변수가 늘어나는 걸 보고만 있다간 정말 아무 것도 못해보고 끝에 몰릴 판이었으니까.
“후우...”
그럼에도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류 현은 한 숨과 함께 뒤쪽을 한 번 슥 돌아보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집중하자. 집중. 언제부터 그리 여유로웠다고.’
그는 눈을 감았다.
화르르! 시작은 회색빛 오러였다. 그의 몸 위로 불쑥 솟아나는 것처럼 타오르기 시작한 오러는 그의 오감을 돋우었다. 류 현은 손끝으로 주변의 마나를 잡아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스르르- 어디든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진 감각 위에 묵직한 누름돌 같은 것이 자리 잡았다.
‘강림’!
검은 기운이 피부위로 스며 나오며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류 현은 지난 달 동안 몇 번이고 이 힘을 시험해봤지만, 아직도 이게 무엇인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검은 안개와 댈 필요가 없을 정도로 기운이 맑은데, 써보면 생물 무생물 가릴 것 없이 뜯어먹고, 베어내었다. 검은 안개와 달리 조금만 방심해도 ‘탐욕’이 미쳐 날뛰거나 하지도 않았다.
아프리카에서 회색빛 오러를 얻고 난 뒤에 이리 된 것이지만, 류 현은 ‘강림’마저 이전 생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잘 된 거긴 한데...왜 이건 그대로 일까...’
후욱! 버섯의 포자가 날리는 것처럼 검은 안개가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전생과 동일하게 미친 듯한 탐욕을 보이며 꿈틀거리고 있는 검은 안개. 류 현은 뚱한 얼굴로 그것을 올려다보다가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됐다. 고민한다고 뭐가 나올 문제도 아니고. 괴수만 때려잡을 수 있다면 된 거지.’
천공성도 그가 머리를 비울 수 있게 도와주었다.
지잉! 피잉! 열흘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류 현은 수십 번 떨쳐낸 오렌지 광선이 쏟아졌다.
후왁! 후르르! 결과도 이전과 동일하였다. 광선은 류 현의 몸을 조금 밀어내긴 했지만, 타격을 주진 못했다. 검은 안개를 뚫고 들어온 광선은 회색빛 오러를 뚫을 힘이 남아있질 않았다.
류 현은 여유롭게 매고 온 화구통을 내려놓았다. 화구통을 비틀어 열자 탄화된 것 같은 검은 막대가 열댓 개 가량 들어있었다.
브류나크-07. 아직 기억보다는 조금 모자라지만, 전생 같으면 이 만큼 마음껏 쓰지도 못했을 고급품이다.
류 현은 그것을 한 손에 두 개씩 네 개를 움켜잡았다. 천공성의 광선 조사도 어느 새 잠깐 끊어진 상태.
‘이것만 봐도 저 안에 성 주인이 없는 건 확실한데. 비아트릭스 그거랑 대화가 가능한 놈이 굳이 통하지도 않는 짓을 반복할 리가.’
부우우웅! 딴 생각을 하면서 밀어 넣은 마력에도 브류나크는 아주 성실하게 반응했다. 눈이 따가울 정도로 밝은 황금빛을 발하는 그것을,
후욱! 류 현은 있는 힘껏 허공으로 내쏘아 올렸다. 조준이랄 것도 없었다. 못 맞추는 게 이상할 정도로 커다란 표적이, 심지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뻐엉! 카아아앙! 효과는 상당했다. 류 현이 쏘아올린 네 줄기의 섬광은 에너지막에 틀어박히자마자 터져나가, 그 가루마저 에너지막을 갉아대었다.
‘강 찬도 전생보다 지금 강 찬이 솜씨 좋아지는 속도가 더 빠른 것 같기도 하고.’
스르륵- 류 현은 오른 팔을 뒤로 슥 빼더니, 검은 기운을 채찍처럼 늘어뜨렸다.
그리곤,
후웅! 파카앙! 브류나크의 황금 분진으로 약해진 방어막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방어막이 깨지자, 그와 동시에 오렌지 광선이 다시 그를 향해서 내쏘아졌다.
급하게 조사를 시작한 것인지, 기세는 전보다 훨씬 못했기에 류 현은 여유롭게 검은 기운을 회수했다. 검은 안개 때문에 오렌지 광선이 분산되어 코앞에서 노을이 지고 있는 듯 했다.
‘컨트롤은 계속 늘어나는데 소모율을 어떻게 할 수가 없네.’
류 현은 브류나크가 남은 화구통을 비끄러매고, 뒤로 뛰기 시작했다. 기세가 확 꺾인 광선이 따라붙었지만 속도마저 시원찮았다.
슈슉!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화련이 팀원들을 이끌고 모습을 드러내자, 류 현은 손을 내저어 검은 안개로 벽을 세웠다.
치이익! 오렌지 광선은 이제 조금도 검은 안개의 벽을 뚫지 못했다. 류 현은 등을 돌려 화련에게로 달려갔다.
그녀를 보자마자 이렇게 묻자고 생각한 것도 아닌데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괜찮으십니까?”
“어휴...그 말만 오늘 벌써 열 번 넘게 들었어요. 자요, 잡아요. 빨리 가서 끝내야 마스터가 좋아하는 검사를 하든 뭘 하든 하죠.”
류 현이 손을 잡자,
슈슉!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빛이 닥쳐들었다. 류 현은 확 변한 시야를 확인한 새도 없이 제 손을 잡고 있는 이를 살폈다.
화련은 그 모습을 보고 코로 한 숨을 훅 내뿜고는 말했다.
“안 움직일 테니까. 빨리 하기나 하세요. 마스터가 한바탕하고 나면 주변 공간이 불안정해져서 준비하고 있어야 하거든요.”
그 말에 류 현은 재빨리 돌아섰다. ‘구멍’에서 용종괴수들이 쏟아져 나오는 게 보였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승하가 기세를 가다듬고 있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류 현의 눈 흰자위가 검은 색으로 물들고, 동공이 하얗게 열렸다. 그는 팔을 늘어뜨렸다. 검은 기운과 검은 안개가 축 늘어진 팔위로 켜켜이 들러붙었다.
[캬아아아!][크아아아!][오오옹!] 선불 맞은 것처럼 ‘구멍’에서 뛰쳐나오는 용종 괴수들이 그에게 몸을 던졌지만,
끼이이! 키아악! 승하의 검끝이 풀어놓은 검은 선에 무참히 찢어발겨지는 끝을 피하지 못했다.
꾸웅! 터엉! 남은 놈들도 웨인의 슬레지해머와 지벡의 방어마법을 넘지 못했다.
십초 남짓한 시간. 집중을 마친 류 현이 팔을 들어올렸다. 양 팔에 걸린 검은 장막 같은 덩어리들이 살아있는 것 마냥 꿈틀거렸다.
그것을 감지한 천공성의 첨탑들이 일제히 그를 겨냥했다. 그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 듯 천천히,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허리가 비틀리고, 멈췄다가, 풀어졌다.
쒸이익! 일행들이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첨탑들이 무너지기 시작한 후였다. 류 현은 중앙의 탑을 향해서 한 번 더 양팔을 휘둘렀다.
여전히 끔찍한 기운이 펄펄 끓고 있는 양팔을 어떤 것이라도 벨 수 있는 보검처럼 휘둘렀다.
그 때,
화르르륵! 퍼엉! 콰르르! 중앙탑의 머리 부분이 폭발하며 화염이 피어올랐다.
류 현이 휘두른 채찍은 그 반발에 튕겨져 나왔다. 그 과정에서 화염의 반이 파 먹혔다.
그러나 화염은 기세가 죽지 않고 그대로 ‘구멍’까지 쭉 뻗었다.
그 불기둥 사이에서,
치이이! 앞발이 뻗어 나왔다.
류 현은 거의 본능적으로 양 팔을 내던졌다. 검은 채찍이 고삐 풀린 맹수처럼 날뛰었다.
치이이이익! 지지직! 다시금 중앙성을 박살내기 위해서 내쏘아진 검은 채찍은 ‘구멍’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앞발이 잡아채었다. 앞발과 채찍 간의 정말 작은 틈에서는 끊임없이 시커먼 불길이 넘실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류 현은 전생의 끔찍한 기억을 떠올렸다.
기세가 차원이 달랐지만 저 강맹한 붉은 비늘로 덮인 몸뚱이와 맑은 불꽃. 다른 놈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를 갈아붙이는 그의 잇사이로 억눌린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화룡...!”
“네?! 마스터, 잠깐만요. 뭐라고...”
화련이 당장이라도 뛰어올 것처럼 난리였지만, 그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류 현은 양팔을 비틀며 채찍을 빼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비늘과 피부가 찢어지는데도, 앞발은 꽉 다물린 채 펴질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 와중에도 검은 불꽃은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저것이 놈의 손아귀가 바로 잘려나가거나 터져나가지 않게 해주고 있는 것이리라. 류 현은 이를 갈다 어금니가 깨진 것을 느끼곤 침을 탁 뱉었다.
‘이대로 상대해? 하지만 저건 못해도 전생의 두 배...아니 세 배는 족히...’
류 현이 그 짧은 순간을 고민에 할애하는 동안 놈은 류 현의 고민을 덜어 주었다.
앞발이 뻗어 나온 ‘구멍’ 옆에 두 번째 ‘구멍’이 쩍하고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 ‘구멍’에서도 두 번째 앞발이 쑥 튀어나왔다. 첫 번째 ‘구멍’에서 튀어나온 앞발이 억지로 ‘구멍’을 넓히고 튀어나와서 심하게 긁히고 끼어서 옴짝달싹 상태였다면, 두 번째는 달랐다. 네 손가락 중 하나가 아주 짧은 곡선을 그렸다.
지이잉! 화르르르! “끄아아악!”
반응할 새도 없이 류 현의 등뒤에서 후끈한 열기가 터져 나왔다. 뒤돌아보기도 전에 지벡의 괴성이 터져 나왔다.
지벡은 당장이라도 깨질 것 같은 방어막을 두 팔로 지탱한 채로 코와 눈, 입에서 피를 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 위로 넘실거리는 불꽃은 조금의 틈이라도 보이면 단박에 그를 구워버릴 기세였다.
류 현은 왼팔과 채찍의 연결을 끊고, 검은 안개를 한 움큼 쥐어서 그 쪽으로 흩뿌렸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벡이 한 숨 돌리는 소리와 우당탕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 돼. 여기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잡는다. 놈도 저 상태인 걸 보면 무리한 거다.’
결심을 안고 다시 정면을 응시했을 때 류 현은 그 결심이 무너지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 ‘구멍’은 앞발이 튀어나오고도 공간이 제법 되었다.
그리고 그 공간은 놈의 동체로 생각되는 거대한 몸뚱이의 일부를 내보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시 돌아본 ‘구멍’에는 놈의 동체 부분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놈이 몸을 ‘구멍’ 뒤로 쑥 빼낸 것이다.
왜 그랬는지에 대한 대답은 곧 나왔다.
[크오오오!][크롸라라!]
그건 화룡이었다. 화룡들이었다.
두 번째 ‘구멍’의 여유 공간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시뻘건 것들은 하나하나가 그가 아는 화룡이었다.
물론 류 현이 전생에서 상대한 네임드 몹 화룡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지만, 그는 저것들이 네임드 몹이 아닌, 아니었을 때의 화룡임을 알 수 있었다.
저것들이 튀어나갔을 때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인지 또한.
고민할 수 있는 건 찰나의 순간뿐이었지만 류 현은 천공성 주변을 돌아보았다. 만일을 대비해서 미군이 배치해놓은 전투기와 헬기, 대형 드론등이 천공성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가 온갖 어그로를 다 끌고, 오렌지 광선을 다 받아내었기에 가능한 짓이었다.
원래라면 그들이 감수해야할 위험은 지금 3차 ‘대소환’으로 몸살을 앓는 중인 유럽의 군인들보다 적었을 것이다. 이제는 아니었지만.
한순간에 곧 고철과 시체가 될 헬기와 파일럿 1,2,3이 된 이들을 두고 류 현은 저울질을 했다.
‘저들이 가담해도 다 개죽음이 될 거다. 지체시켜 봤자 최대 10초 남짓. 숫자가 너무 많아. 피하게 하면 그래도 1/3정도는 남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그 10초가량이 필요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폐가 터져라 공기와 마력을 불어 넣었다. 우악스러운 마력 운용에 피가 들어차고 난리도 아니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계제가 아니었다.
그가 외쳤다. 피를 토하면서.
“막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