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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2화 〉탐식마(貪食魔) (322/429)



〈 322화 〉탐식마(貪食魔)

류 현은 한 숨을 푹푹 내쉬다가 정면을 슬쩍 바라봤다.
자신보다 거의 머리 두 개가 가까이 작은 화련이 열심히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은 그로 하여금 한 숨 짓게 만들었다.
그는 견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다시 생각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네?”


화련은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뚱한 표정만 봐도 일부러 늦게 반응한 게 분명했다. 다시 말해보라는 것 같은 태도에  현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회복을 앞당기는 것 말입니다. 다시 생각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말을 할수록 화련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류 현은 마음을 강하게 먹었다. 누가 뭐라고 하든 간에 류 현은 더 이상 그녀가 리스크를 감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거의 강박이라고 해도 좋았다. 화련이 당장 팀에 합류하지 않아서 쌓이게 될 리스크와 그녀가 당장 부상을 회복하면서 안게  리스크를 제대로 저울질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화련은 그런 류 현의 혼란을 눈치 챈지 오래였다.
류 현 본인을 제외한 팀원 전원이 알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화련 외에는 손을 댈  있는 이가 없었다.

‘내가 멍청했지. 한 번 겪어봤다고 멀쩡할 리가 없는데. 트라우마 때문에  크게 반응할 수도 있는 건데.’

류 현의 전생 이야기 중에서는 그의 친구였던 동료의 죽음도 끼어있었다. 너무 짧게 언급하고 말아서 원래라면 떠올리기도 힘들었겠지만, 그 짧은 언급 속에 담긴 감정적 동요를 그녀는 기억했다.


‘마스터 입장에서는 그게 첫 동료의 죽음이었으니까. 그것도 자기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 사고.’

트라우마로 따지면 지금도 류 현이 경기를 일으키는 세아의 안위에 관련된 문제가 제일 크겠지만, 그렇다고 그게 동료의 안위 문제에 그가 덤덤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화련은 지난 요양 기간 동안 그것을 실감했다.

평소의 그라면 신중을 기했을지언정, 아예 화련을 전력에서 빼버린다는 선택을 그리 오래 유지하진 못했을 것이다.
지금의 화련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팀의 다리니까. 본의 아니게 소수정예를 추구하게 된 용잡이 팀에게서 기동력을 빼버리면, 단순히 전력감소 정도로는 표현이 안 되는 문제가 생겨버리게 되는 것이다.


팀의 중심인 류 현이 이런 상태라 더 심해진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마스터.”
“......”

대답이 없자 화련은 하던 일을 아예 내려놓고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비아트릭스, 그거 근처에는 가지도 않을 거잖아요. 저부터가 당장 그거 근처로 가라고 했으면 거부했을 거에요. 지금 회복하는 속도를 보면 마스터가 우려한 일은 안 일어날 거 같고요.”


류 현이 가장 시간을 끄는데 오래 우려먹은 핑계  하나가 화련을 거의 죽음으로 몰고 갔던 냉기가 완전히 걷힌 게 아닐  있다는 거였다.
백혜라가 몇 번이고 탈진 상태에 빠져서 뽑아내긴 했지만, 수준 차이가 너무 심해서 본인도 완전히  빼낸 거라고 장담을 못하긴 했으니 핑계로 써먹기도 아주 그만이었다. 화련이 멀쩡해지다 못 해 더 강해지지만 않았다면.


깨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숨이 넘어갈 것 같던 화련은 의식을 차리자마자 급격하게 부상을 회복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마법의 경지가 조금  오르기까지 했다. 화련 본인도  현상에 황당해 했지만, 경지가 올랐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류 현이 이러는 바람에 실전에는 들어가 보질 못했지만.

화련 본인은 현장으로 복귀해서 슬슬 감도 다시 찾고, 올라간 경지도 확인해보고 싶어 하는데 부상당했던 당사자가 아닌 팀 대장이 정도 이상으로 기겁하며 만류하고 있는 상황.

조금 답답한 감도 없잖아 있었지만, 화련은 그를 이해하려고 애 썼다. 걱정해서 일어난 일이고, 비슷한 상황에서 눈이 돌아간 경험도 있었으니까.
그저 이대로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을 뿐이었다.

그녀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던  쳐진 류 현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저번 도청 때 들으셨잖습니까. 천공성의 소유자와 비아트릭스 그 둘은 단순히 의사소통이 가능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거야...”


부정할 수 없다. 아직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지만, 천공성의 배후에 있는 어떤 존재와 비아트릭스는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는 등, 적대적 관계라기에는  길게 대화를 나눈 듯 했다.
육성을 사용하는 건 비아트릭스 뿐이라, 반쪽짜리 그것도 대화의 80프로 가까이를 듣지 못했지만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
[안 될  없지. 난 당분간 저 쪽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테니 정리 대충 끝나고 나면 찾아와.] 라는 말은 적대관계가 아닌 정도가 아니라, 협력의 가능성까지 엿보게 해주었다.

충격적인 것은 그 이전 것이 더 컸지만, 류 현은 지금 오로지 화련을 초주검 상태로 만들었던 비아트릭스에 집중한 상태였다.
화련은 그 뻔히 보이는 의도를 읽었다.


“저도 들었으니 알죠. 하지만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잖아요? 그 때 들으셨잖아요. 놈들이 인간을 왜 죽이려고 드는 건지.”


비아트릭스의 입에서 확인하게 된 사실. 괴수가 존재하고 나서부터 끊임없이 확인되었지만, 어디까지나 행동만 보고 추측했을 뿐이었다.
괴수들에겐 의사소통을 할  있는 지성이 없었으니까. 지성이 있을 거라고 추측되는 리치도 인간만 보면 눈이 돌아가는 판국에 대화시도를 해볼 멍청이는 모두  뚜껑이 덮인 지 오래였다.

자신의 의사를 말로 표현할 수 있고, 제 충동을 설명할 수 있으며, 관조까지 할  있는 존재가 눈이 뒤집힐 충동이라니.
같이 자리했던 미부통령은 다른 것보다 그 사실에 가장 충격을 받아서 돌아갔으며, 그 충격은 지금 미 수뇌부의 충격이 된 상태였다.


화련은 충격보다는 그런가 보다 하는 쪽이었다. 구엘  굴락이나 ‘페릭스’만 봐도 직접 입을 통해서 듣지만 않았지, 그녀 입장에서는 이미 확인사살까지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우리가 그냥 사리고 있는 다고해서 그거랑 안 붙을 방도는 없어요. 지입으로 이미 말하기까지 했잖아요. 인간을 죽이라는 충동이 든다고.”
“하지만 당장은  충동을 피해서 멀리 떨어져 나간 상태 아닙니까.”

비아트릭스는 그 대화를 끝으로 아무런 인명 피해도 내지 않고, 다시 대서양 횡단을 시작한 상태였다. 정말로 스프링필드에서 내뱉은 말을 전부 지키고 있었다.
인명 피해가 없었던 것은 대피를 말끔하게 끝낸 덕이었지만, 이후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놈이 인간을 감지 못해서 안 죽인  아닌 것 분명했다.

놈은 류 현이 움직여줄 것을 요청한  7함대가 야심차게 내놓은 고고도 정찰기를, 고도 20km 상공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물건을 단박에 격추시켜버렸으니까.


그 뒤로 놈은 인공위성의 시선마저 피해버렸다. 놈이 딛고 있는 곳에는 노이즈가 잔뜩 껴버린 것. 그것으로 놈의 위치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지만, 지난번의 등장 때를 감안하면 무턱대고 그것을 믿고 있기도 힘들었다. 그  놈은 인공위성의 감시망을 가볍게 뚫고, 전투기 뺨칠 속도로 미국 본토에 상륙했으니까.

류 현의 말은 아주 근거가 없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반대의 근거로 세우기는 좀 빈약한 것이었다.
이제까지의 자료를 봤을  놈은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이쪽의 감시를 피해서, 믿기지 않는 속도로 상륙한 후 인간을 학살할  있었으니까.


“이렇게 끝없이 피할 수는 없잖아요.”


화련은  말을 뱉으면서도 스스로가 웃긴 한 편, 가슴이 아렸다. 그녀는 입술을 짓씹으며 그를 닦달했다.
누가 대신 해줬으면 하는 생각도 안 든건 아니었지만, 어쩌겠는가. 자신 때문에 이리된 것을.

“마스터 말대로 놈은 인간을 피해서 멀리 간 상태고, 이게 언제까지 유지될 수도 알 수 없어요. 그래요, 우리가 천공성을 치면 놈이 반응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놈이 완전히 합류하고 나면 이렇게 기회를 엿 보는 게 가능할까요?”


류 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불가능했다. 회색 오러 버프를 감안해도, 비아트릭스와 대치가 가능한 것은 당장은 자신뿐이었다.
마치, 구엘 뒤 굴락이 붉은 오러를 처음 꺼냈을 때로 되돌아간 것이다.

거기에 놈의 공격은 육탄 돌격 같은 게 아니라, 마법. 그것도 소리 없이 들어오는 공격이라서 더 끔찍했다. 대비 없이 다시 대면하게 되면 저번의 끔찍한 경험이 행운이었다고 생각하게 될 꼴을 보게  가능성이 다분했다.
류 현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니요.”
“그렇죠? 지금이 최적기에요. 천공성을 소유한 놈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일을 방해하는 우리를 떨쳐내기 위해서 모습을 못 드러내는 상황이고, 비아트릭스는 스스로 멀어졌어요. 지금이 아니면 돌입은 엄두도 못 내게 될 가능성이 높죠.”
“그거야 굳이 화련 씨가 나설 필요 없이...”
“희란이나 마스터 둘  하나가 기술 하나 못 쓸 정도로 지친 후에 돌입하시게요? 거기 뭐가 있는 줄 알고?”


류 현은 말문이 막혔다. 비아트릭스의 태도를 생각하면 천공성에 있는 것은 아직 나오지 못했을 뿐, 만만한 놈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아프리카 일만 비춰 봐도 그랬다.


“안에 있는 게 비아트릭스와 동급일 수도 있는데 여력도 없이, 기동력도  날아간 상태에서 돌입하시겠다고요? 그게 진짜 최선이에요?”


그럴 리가 없었다. 다른 팀은 몰라도 용잡이 팀에게는 몇 시간의 유예만 있으면 흑해와 에게 해를 건널  있는 다리가 있었으니까.
팀원의 안전을 걱정한다면 화련의 참가는 필수였다.

결국 류 현은 자신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시작한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후우...절대로 텔레포트 이상의 뭔가를 하시려고 하면  됩니다. 괴수의 행동을 멈추거나, 그 격리공간인가 하는 걸로 공격하는 것도 금집니다.”

한 숨과 함께 내뱉은 말에 화련은 씩 미소 지었다.

“당장은 해 달라고 해도 못해요. 대충 내상 막고 나면 텔레포트 몇 번할 체력 밖에  남을 테니까.”


그리 말하는 화련은 말과 달리 생기가 넘쳐보였다. 어떻게 보면 신이  것 같기도 했다.


“......”


류 현은 얼마 전에 죽을 뻔한 이가 전장으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상황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기에, 그냥 대충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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