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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9화 〉탐식마(貪食魔) (319/429)



〈 319화 〉탐식마(貪食魔)

같은 시각 류 현은 스프링필드가  눈에 내려다보이는 빌딩 옥상에 서있었다. 뉴욕과 달리 이곳은 전기불로 불야성을 이루는 중이었다.


주민 대부분은 대피한지 오래고, 용잡이 팀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미국의 플레이어들과 일반인 군인들이 내고 있는 빛이었다.
저들 중 몇몇은 내일 이 시간에 불을 밝힐  없는 처지가 될 테지.

류 현은 저들의 처지를 상상해보며 감상에 빠지진 않았지만, 떨떠름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들을 동정해서가 아니라, 고기방패에 가까운 죽음이 썩 내키지 않아서였다. 사기 측면이나, 전력 손실 측면이나 여러모로 좋지 않은 요소만이 가득했다.
그렇다고 저들의 전력을 보존하겠다고 팀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건 더욱 말이 안 되었다. 열 명이 안 되는 인원으로는 저지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용종괴수가 밖으로 뛰쳐나가면 순식간에 근처 도시하나가 날아갈 것이다.


‘유니크 아티펙트 셋으로도 부족하다니.’


류 현은 지금도 계속 스프링필드를 향해 날아오고 있을, 천공성이 오고 있는 방향을 노려보았다.
유성우, 청뢰, 개미지옥. 거기에 강 찬이 야심차게 선보인 브류나크- 07 버전.

이 모든  쏟아 부었음에도 천공성을 부술 수가 없었다. 흙을 빨아 당기는 짓을 멈추게 하고 도망가게 만들 수는 있었지만, 진입이 도무지 불가능했다.
방어막을 부수고, 흙을 빨아들이는 짓까지 멈추게 하고 진입하려고 들면 그 이상한 오렌지 광선을 쏘아대거나, 용종 괴수들을 쏟아내었다.

우격다짐으로 밀고 들어가면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그러자니 팀원들 반대가 극심했다. 안에 뭐가 있는 줄 알아서 거길 혼자서 들어가냐는 말에 류 현도  말이 없었다.
그 난리 통에 자신 말고 한 명을 챙겨서 무사히 들어갈 가능성은 자신이 생각해봐도 너무 낮았다.


‘승하정도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그렇게 해버리면 희란 씨나 혜라양이 무방비가 된다.’

요 며칠간 희란이 짊어지고 있는 부담이 엄청났다. 주력 마법사였던 화련은 전투 불능 상태라, 유니크 아티펙트 세 가지 전부를 혼자서 운용하게 된 그녀의 부담이 적을 수가 없었다.

백혜라는  전투 불능이 된 화련 때문에 쥐어짜내기를 시키기가 어려웠다.
화련이 눈을  이후로 여태껏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죽다가 살아난 참이니 마냥 낙관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웠다.
거기에 유니크 아티팩트들을 운용해  경험은 희란이 압도적으로 많은지라, 조금이라도 화력이 아쉬운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녀에게 맡기는 것이 최선이었다.


‘...최선은 무슨. 결국에는 점점 화력이 줄어들 거야. 슬슬 희란 씨의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겠지.’

마력이야 자신의 것으로 충당하곤 있다지만, 체력은 채울 수가 없다. 아무리 회복력이 좋은 플레이어라도 마력통이 거의 텅빌 정도의 소모를 반복하면 지치는 것을 피할  없는 것이다.

‘화룡이나 도플갱어, 아지다하카를 상대할 때도 화력이 딸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는데...’

정확히는 놈들과 일대일로 싸울 때 한정이었지만.
그 외에는 전생에서 일대일 상황까지 가는 과정마다 화력 부족을 절감한 류 현이었다.
그래서 조금 무리해서 청뢰를 확보하고, 유성우의 단서가 보이자마자 아프리카로 달려갔었다.
그것으로 완벽하진 않아도 충분한 화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했다. 이후에 의도하지 않았지만 개미지옥을 확보하게 되면서 그 생각은 더욱 굳건해졌다.

실제로 네임드 몹들이 몰거나, 조종하는 괴수 무리는 저  가지를 동원하면 대부분 해결되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엘더 리치의 기억을 사용하는 것으로 모자란 부분을 채웠다.

그런데 저 천공성에는 세 개의 유니크 아티팩트와 브류나크, 류  본인이 손을 보태어도 뚫는 게 힘들었다.
기껏 뚫고 나면, 용종 괴수나 광선을 흩뿌리면서 줄행랑을 놓는데 기동성이 크게 저하된 상태에서는 진입이 거의 불가능했다.
한 번은 작정하고 ‘강림’의 문을 열어젖히고 검은 것을 끌어올렸을 때는, 천공성 쪽에서 다른 것은 모두 도외시하고 류 현을 밀어내는 데만 전력을 때려 부었다. 에너지 방어막까지 끄고 정말 전력을 다해서.

‘그러고도 성의 주인으로 보이는 놈은 코빼기도 안 보였지. 화련 씨 말대로 정말 ‘구멍’ 너머에서 아직 나오지 못한 거라면...왜 천공성이 움직이기 시작한 거지?’

더럽게 단단한 성이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 뿐이었다. 공격 수단은 오렌지 광선뿐인데, 공격수단이라기 보단 방어수단에 가까웠다. 아직  번도 선공을 위해서  광선을 쏜 일이 없었다.

‘흙을  올리는 행위가 성의 주인의 등장과 연관이 있는 건가? 도망을 치다가도 틈만 나면 멈춰 서서 그러는 걸 보면 뭔가 있긴 한데.’

단서가 적어도 너무 적었다. 심상찮아서 작업에 속도가 붙을 때마다 방어막을 깨고, 도망가도록 공격하곤 있지만 유의미한 성과는 나지 않고 이쪽이 먼저 지칠 판.

‘결국 미국 측 작전대로 가야하나. 해안선 쪽으로 유도해 달라니 말이 쉽지...’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도 않았으니 해달라는 대로 해주긴  생각이었다.

‘잘 되면 좋겠지만...천공성 내구도를 생각하면 방어막만 벗겨낸다고 뭔가 될  같진 않은데.’


방어막이 벗겨진 채로 청뢰에 직격 당해도 멀쩡했었다. 대놓고 X던전에 관련된 건물이니, 현대의 화약병기가 청뢰보다  잘 먹힐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해 보긴 해봐야겠지.’


그렇게 마음을 정리한 순간이었다.


“왜 또 이런데서 혼자서 청승 떨고 있어요?”
“...화련 씨. 아직 안 주무셨습니까?”
“아직 11시도 안 됐거든요?”
“아직 다 안 나으셨잖습니까. 환자는 잘 먹고  자는 게 중요합니다.”


그 말에 화련은 오히려 눈을 흘겼다. 네가 그런 소리를  입장이냐는 눈빛을 류 현은 슬쩍 외면했다.
화련도 그것을 따지러  것은 아니었기에 더 따지고 들진 않았다.

“왜 또 죽상하고 다니는 거에요? 승하 언니가 내 등 떠밀 정도면 희란이나 혜라도  눈치 깠을 텐데. 어쩐지 걔네 오늘 내내 잘 안 보인다 싶었는데.”
“승하 씨 가요?”


이 여자가 진짜.  현은 옥상문 쪽을 노려봤다. 그런다고 이 자리에 없는 승하가 그의 눈치를 볼 일은 없었다.

“네, 자기는 저번에 했으니까 이번에는 네가 하라고 뭐 그러던데요.”
“후우...”
“또또 오버하신다. 매일 상태 확인도 하면서 그렇게 유난 떨면 안 지쳐요?”
“그거야 화련 씨는...”

자기가 그 때 어떤 상태였는지 모르지 않습니까. 류 현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말을 삼켰다. 아무리 지금은 말끔하게 털고 일어났다지만, 당사자한테 할 소리가 아니었다.

“아뇨,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죽상인 거에요?”
“진전이 전혀 없지 않습니까. 희란 씨는 계속 되는 오버워크 때문에 곧 나가떨어질 테고, 미국 측의 병력들도 로테이션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겁니다. 부통령의 말이 사실이라면 좀 더 버티기야 하겠지만...이대로는 천천히 말라 죽을 겁니다.”
“에휴, 또 혼자서 세상 걱정 다 안고 있는 거였네.”

류 현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화련은 그런 그를 빤히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무도 마스터한테 저것들 전부 해결하라고 안 했어요.  수 있어도 그렇게 할 필요가...?”

동시에 두 사람의 고개가 바다가 있을 방향으로  돌아갔다.
화련은 이미 몸 안에서 모두 몰아냈다고 생각한 냉기가 뼈에 스미는 것 같은 몸서리 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저도 모르게 당했던 명치 부근을 더듬을 정도였다. 몸을  번 더듬은 그녀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 숨을 몰아쉬었다.

 현이 눈치 챈 것은, 일전에 집어삼켰던 것의 파편이 반응해서였다. 완전히 흡수가 끝났어야할 그 냉기가 아직 죽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꾸물거렸다.  현은 조금의 의심조차 하지 않고 결론을 내렸다.
놈이다!

직접 닿아본 경험이 있는 둘 이외에는 누구도  존재의 접근을 눈치 채지 못했다.
해왕 비아트릭스!  괴물이 이곳을 향해서 오고 있는 게 분명했다.
열흘이 넘는 기간 동안 거의 멈춰 서서 꼼짝도 안하던 놈이 왜 갑자기 급하게 이리 오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으나, 좋은 의도를 가지고 접근해오는 것은 아닐 터였다.
두 사람은 마주치더니 마주 끄덕였다. 서로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 같은 말을 내뱉었다.


“놈입니다.”
“놈이에요.”

그 길로 둘은 옥상 계단을 구르듯이 뛰어 내려갔다.
같이 소리쳐 소식을 알리려던 화련을 희란에게 맡긴  현은 부통령과 사령관을 끌고 오다시피 하여 퇴각 명령을 이끌어내었다.
아닌 밤중의 홍두깨였지만 퇴각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장비마저 거의 다 버리다시피 하여 지체될 일은 없었다.
긴가민가해하던 최후미 병력들도 그로부터 1시간쯤 지났을 때, 갑자기 퍽퍽 꺼져나가는 불빛들을 도시 밖에서 보고 질겁하며 달음질 쳤다. 그렇게 불빛이 건재한데 인적이라곤 사라진 무인도시가 완성되었다.

순식간에 무인의 도시가 된 스프링필드에 먼저 도착한 것은 천공성이었다.
스프링필드에 도착한 천공성은 평소와 달리 흙을 끌어올리지 않고 그냥 떠있을 뿐이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리고 그로부터 30분이 채 되지 않아, 불이 들어와 있던 건물들의 불빛이 일제히 꺼졌다. 어둠을 레드 카펫 대신 깔며 스프링필드에 들어선 것은 해왕 비아트릭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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