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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7화 〉탐식마(貪食魔) (317/429)



〈 317화 〉탐식마(貪食魔)

쿠르르르- 하늘로 붉은 빛이 솟구쳐 올라가자 쨍하진 않아도 그럭저럭 햇볕이 비치던 날이 어두워졌다.
쿠구구구! 으르렁거리던 하늘은 얼마가지 않아  원인을 쏟아내었다. 화염에 싸인 커다란 돌덩이 무리를!

유성우! 용잡이 팀이 가진 유니크 아티팩트 중 하나가  위력을 드러내었다. 미니버스를 두 개 겹쳐놓은 것 같은 큼직한 유성이  개, 소형차만한 것들이 열 댓 개는 족히 넘었다.
희란의 손안의 유성우가 터질 것처럼 백열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탄착지점을 조절하던 희란은 첫 번째 유성이 무형을 벽을 때리자 힘을 놓아버렸다.

콰아아아! 콰르르! 콰르릉! 우지직! 직접 지면에 부딪힌 것도 아닌데 몸이 들썩거리는 것 같은 충격이 주변을 뒤흔들었다.
희란은 일어난 먼지와 연기가 걷히길 기다리면서 이번에는 반대손에  청뢰에 마력을 밀어 넣었다.

연기가 걷히자 천공성의 모습이 다시 드러났다. 유성우가 떨어지기 전과 동일하게 굳건한 모습.
달라진 점은 천공성 주변을 철통같이 감싸고 있던 무형의 막이 눈에 보일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었다. 푸른 에너지 막은, 슬쩍만 건드려도 깨질 것처럼 금이 쫙쫙 가있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보통 물리력으로 충격을 가한다고 무너지지는 않을 터. 희란은 그대로 왼손에 머무른 푸른 번개를 해방시켰다.


콰르릉! 짜자작! 찌지직! 푸른 번개가 사냥감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맹수처럼 에너지 막 위를 할퀴고,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서 뒤챘다.
파캉! 카아앙! 그러한 시도는 곧 빛을 보게 되었다. 아주 일부분이지만, 에너지 막에 사람 하나가 드나들 정도의 구멍이 뚫렸고,


지지직! 콰르르릉! 희란은 그곳으로 남은 여력마저 모두 때려 부었다. 청뢰가 터질 것처럼 울부짖으며 푸른 번개를 쏟아내었다.
콰아아! 결국 에너지 막은 버티지 못하고 붕괴하기 시작했다. 에너지 방벽 한 면을 완전히 박살내놓은 푸른 번개가 그대로 천공성으로 돌격했으나,

지이잉! 파아앙! 일전의 전투기 편대를 격추시킨 그 빛이 다섯줄기가 쏘아져 나와 번개를 흩어놓았다. 오렌지색 빛줄기는 그대로 번개를 뚫고 희란에게로 내달렸다.
  잠자코 있던 류 현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후르르! 후왁! 간을 보거나 재는 것 따윈 없었다. 류 현은 있는 대로 검은 안개와 회색빛 오러를 끌어올렸다. 그의 몸 위로 갑자기 장벽이 세워진 듯 했다.
치이이이! 지지직! 오렌지 빛도 회색 오러 버프를 받은  현이 내뿜는 검은 안개의 방어를 뚫진 못했다. 안개의  많은 양이 그 열기에 소멸했지만, 류 현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희란을 안고 줄행랑을 놓기 시작했다.


[캬아아아!][오오옹!][뀌이이익!]쿠웅!

그런 그의 등을 천공성에서 쏟아져 나온 용종 괴수들이 쫓았다. 샌 드래곤, 쐐기룡, 지룡이 흉성을 터뜨리며 도주 중인 그의 등을 노렸다. 하나 같이 같은 종의 표준보다 2, 3배는 큰 놈들이었다.

개중 압권은 지룡이었다. 놈은 다른 동족보다 체적이 못해도 4배가량 되어보였다. 무게는  이상이었다. 놈의 그 체격은 무시무시한 무기가 되었다.
날개가 없는 지룡은 거친 착지 후 앞에 있는 것이라면 컨테이너 박스든, 5톤 트럭이든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찢어발기며 밀고 들어왔다. 도시 살해자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은 위력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류 현은 돌아보지도 않고 냅다 도망쳤다. 그가 돌아본 건 길을 막고 떡하니 서있는 승하를 스쳐지나갈  잠깐 뿐이었다. 류 현은 눈으로 인사를 건네었고, 승하는 고개를 까딱했다.
그녀의 시선은 밀고 들어오는 세 마리 용에 고정되어 있었다.

“진짜 대책 없이 커지기는 더럽게 커지네. 계속 더 커지려나? 이거 나도 주력 칼을 큰 걸로 바꿔야 하나?”

이미 한손검에 익숙해진 그녀로서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승하는 손목을 푸는 것처럼 검을 가볍게 몇 번 털었다.

[캬아아아!]  잠깐 동안 지룡은 몸을 내던지는  같은 질주로 코앞까지 거리를 좁혀 들어온 상태였다. 놈의 아가리가  벌어지며, 무저갱 같은 속이 보였다. 승하는 짧게 심호흡 후 슬쩍 뛰어올랐다.
탓- [크르륵?] 자신을 삼키기 위해서 지면에 바짝 붙은 놈의 코에 발을 디딘 그녀는 그대로 앞으로 구르는 것처럼 몸을 날렸다.


그러면서 콧대를 향해서   먹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회색 오러에 휩싸인 그녀의 검은 용의 비닐과 가죽, 뼈를 두부처럼 갈라버렸다. 지룡은 콧속으로 피가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후각이 봉쇄된 놈은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피어를 더욱 짙게 흘렸지만, 적응이 끝난 지 오래인 승하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녀의 집중력만 더 끌어올려주었을 뿐.

승하는 그대로 놈의 미간을 밟고 이번에는 강하게 도움닫기를 했다. 그녀의 목적은 기껏 네 장의 날개를 가지고도 낮은 고도에 머물러 있던 샌 드래곤이었다.

몸을 띄우는 데 성공한 용은 상대하지 않는다. 플레이어들이 만든 대 드래곤 교전 수칙이 그녀에겐 아무런 쓸모가 없어보였다.

쉭! 스칵! 단칼! 승하는 일검으로 놈의 한쪽 날개를 모두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다.
[오오옹!]놈이 구슬픈 소리를 내며 땅으로 처박혔다. 승하는  순간 놈에게서 신경을 껐다.


지룡 같은 특이 케이스가 아니라면, 땅으로 추락시킨 용은 그 전보다 난이도가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는 그래봐야 끔찍하게 강한 놈이겠지만, 비행 능력이 전투력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승하는 추락한 샌 드래곤을 무시하고, 남은 용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
남은 건 쐐기룡. 그놈만큼은 그녀도 보고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한 놈이었다. 일대일 상황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그런 것으로 징징거리는 타입이 아니었다.


피쉭! 쒸익! 반사적으로 허리를 앞으로  내밀었을 때는, 원래 골반이 있던 자리를 쐐기룡의 주둥이가 꿰뚫은 후였다.
퍼엉! 소리마저 놈의 움직임에 뒤늦게 따라붙었다. 승하는 놈의 모가지를 향해서 칼을 쭉 내밀었다. ‘찌르기’를 막 끝마친 놈은 그것을 피하지 못했다.

[끼이이이...][끄르륵!] 스칵! 푸쉭! 그대로 꽂은 칼을 그대로 올려 베어 목을 반쯤 끊어놓자, 놈이 바닥으로 추락해 컥컥거렸다. 놈은 발이 끊어져도 반나절 안에 대충 모양은 수복할 수 있는 재생력을 뽐내지 못했다.
다른 놈들도 별로 다를 건 없었다. 지룡이 가장 멀쩡한 편이었는데, 놈은 승하가  자상부분을 제 스스로 파내느라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승하가 짜낸 검기와 회색 오러의 하모니는 치명적이라는 말 이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 부분을 자해를 해서라도 파내려고  정도로.


그녀는 저도 모르게 몸을 감싼 회색 오러를 봤다.

‘진짜 사기야 사기.  현은 정신력 소모가 좀 있는 거 같았지만, 이 쪽은 아무런 소모가 없는 버프라니.’


몇 번이고 한 생각이었지만,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버프라는 것은 없는 것을 아무런 대가 없이 추가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있는 것을, 시전자가 자신의 것을 상당양 바쳐서 더하면, 피시전자는 오버클럭의 대가로 체력과 후폭풍을 내놓아야만 하는  통상적인 버프였다.
최상위권 버프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들도 이 틀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 회색빛 오러는 달랐다. 류 현의 정신력 소모가 있긴 하지만,  외에는 피시전자는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었다.
회색 오러가 거둬지고 나서 찾아오는 묘한 상실감은 어쩔 수 없으나, 정신적인 안정감까지 주는 미친 버프였다.
그 안정감이라는 것이 방향성이 너무 일직선이라서 좀 켕기긴 했지만, 승하는 금세 그것을 받아들였다. 이 버프를 처음 받았을 때 그녀가 느낀 거부감도 당혹스러움이 대부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걔를 더 믿게 된다고 나한테 손해인 것도 아니고.’


승하는 가볍게 검을 휘둘러 자해중인 지룡의 두 심장을 한 번에 터뜨려주었다. 다음은 샌 드래곤의 모가지를 쳤고, 슬슬 숨이 끊어지고 있는 쐐기룡은 숨이 끊어질 때까지 일부러 기다렸다가 그 목을 챙겼다.


다시 꾸려진 숙소로 향하기 전에 승하는 천공성을 돌아보았다.
이상하게도, 언제까지나 고고하게 그곳에 떠있으면서, 이쪽 공격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넘길 것 같던 성이 더는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천천히 수복되고 있어 깨진 유리창 같아 보이는 에너지 막이 그런 생각을 하는데 크게 한 몫 했다.


‘오렌지 빛은 그 위치로는 다섯 발 쏘는 게 한계 같고.  안에도 ‘구멍’과 똑같이 용종 괴수가 웅크리고 있다 이거지.’

그녀는 저도 모르게  나름대로의 공략 수첩을 작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 제 몸뚱이만한 용들의 머리통을 ‘가방’에서 꺼낸 쇠줄로 꿰어 질질 끌고 갔다.
미국의 수습팀이 보면 끌려가는 거리만큼 만 달러씩 값이 떨어진다고 절규했겠지만, 그녀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지금은 괴수 사체 소유권의 증거  하나인 머리통들도 달라고 하면 줘버릴 수 있을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리 빨라야 사흘 후에야 다시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친구가 일정 변경한 바로 다음날에 와주었으니까. 이유를 모르진 않는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좋아졌으면 좋아졌지.


“류 현 걔 쉬게 한다는 핑계로 몇  멕여도 되겠지? 흠...무슨 술을 뜯어내야 하나. 아우, 미리  공부해둘 걸.”

류 현이 들었다면 고개를 내저었을 생각이었지만, 승하는 간만에 같이  잔할 생각이 만만했다.
어차피 그냥 마셔선 이런 걸로는 어지간해선 취하지도 못하는 몸이고, 류 현에게도 화련 못지않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핑계가 그녀에겐 있었다.

그녀 본인도 한 달 넘게 이곳에서 괴수 웨이브를 혼자서 받아내다시피 하고 있었고 말이다. 류 현도  잘라 거절하진 못하리라. 그녀는 확신했다.

“에이 그냥 보드카 같은 거 잔뜩 받고 안주나 고급으로 받자. 아...류 현 걔는 이거 뜯어먹으려나?”

그날, 이런 승하의 소박한 소망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류 현과 한 잔하기는커녕, 밤새 헬기와 트럭에 몸을 내맡겨야만 했다.
희란의 유니크 아티팩트 폭격에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천공성이 ‘구멍’을 내버려두고 이동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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