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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1화 〉탐식마(貪食魔) (311/429)



〈 311화 〉탐식마(貪食魔)

“그럼 시작할게요.”


화련의 마지막 확인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화련은 희란과 맞잡은 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익숙한 감각이, 이젠 거의 한 몸 같은 희란의 마력이 힘차게 휘돌며 그녀에게 호응했다. 그녀의 감각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희란이 느끼고 있는 감각을 공유하던 것이, 끊임없이 뻗어나가  백, 수 천 키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뻗어나갔다. 그녀가 내뻗은 감각의 실은 거리적 한계를 초월했다.

화련은 저 멀리, 저가 찍어놓은 가상의 점을 발견했다. 저곳이다. 그녀는 작은 달성감은 느꼈지만 환호하진 못했다.
자신이 점을 찍어놓은 지점 근처에 공간좌표가 일그러질 정도로 거대한 존재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더 볼 것도 없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존재감은 네임드 몹이 분명했다. 슬쩍 엿본 것뿐인데,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런 식으로 목도하는 것은 처음이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 사실이 별로 도움이 되진 않았다.
화련은 조금 헐떡이며 말했다.

“찾았어요. 찾았는데...”
“왜? 무슨 문제 있어?”
“무슨 존재감이...진짜 말도 안 돼요. 공간 좌표가 막 찌그러질 정도로...막...그 주변으로 마나흐름이나 공간이 움푹 들어가서...”

화련이 횡설수설했지만 팀원들은 대부분 그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더럽게  가보네. 에이, 아직 보급 덜 끝났는데.”
“한 번으로 놈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번은 정찰이라고 생각하고 오는 거죠. 모두 풀컨디션도 아니니 말입니다.”
“언니, 여기 물이요. 물.”
“어어, 고마워. 희란아.”
“너 진짜 괜찮겠어? 너 지금 얼굴이 말도 못할 수준이야. 거울봐. 거울.”
“...조금 놀란 것뿐이에요. 할 수 있어요.”

류 현도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봤지만, 화련의 의지는 굳건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류 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멀찍이서 한  보고 튈 건데 별 문제 없겠지.’

대서양을 갈라지게 한 뒤 걷는 것이 아니라, 얼려서 그 위를 걷고 있는 괴수는 정황상 텔레포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왜 저런 기행을 벌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텔레포트 능력이 없다면 그게 더 골 때리는 상황이었다. 놈은 드넓은 아마존 이곳저곳을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속도로 들쑤시고 다녔으니까.

지금이야 저런 이상한 짓을 하곤 있지만, 언제 텔레포트 능력을 발휘해서 시야에서 사라질지 누구도 모르는 일. 류 현은 이번 기회에 두 가지만이라도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놈은 네임드 몹이 맞는가?  놈은 내가 전생에 상대했던 놈들과 전혀 다른 개체인가?

단순히 ‘모사’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면 취해야할, 취할 수 있는 행동의 반경이 전혀 달라지니 매우 중요했다.


‘마음 같아서는 딱 둘만 다녀오고 싶은데...’

말한다고 따라줄 것 같지가 않았다.


‘별 수 없지. 상황 대처 능력을 조금이라도 더 늘린다고 생각할 수밖에.’
“준비 됐어요.”


류 현이 속으로 타협을 마치자, 그것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화련이 준비가 끝났음을 알려왔다. 그는 화련의 얼굴을 한 번 살피고는 가까이 붙어 섰다.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는지, 화련은 그 잠깐 사이에 안정되어 있었다.


“그럼 갑니다.”


슈슉!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뒤집혔다. 아니, 세상이 이리저리 일그러졌다가 부풀기를 반복했다. 긴장의 날이 잘  있을 때나 가끔 느끼는 텔레포트 딜레이였다.
울렁거리는 느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감긴 눈을 찌르는 빛이 닥쳐드는가 싶더니, 낯선  내가 확 밀어닥쳤다.

그리고 그 짠 내를 인식하기도 전에 류 현은 온몸을 짓누르는  같은 존재감이 욕지기를 삼켜야했다. 아직 이공간으로  넘어온 것도 아닌데도, 온전치 못한 감각으로도 무디게 넘길 수 없는 끔찍한 무게가 그를 짓눌렀다.
그는 제 판단이 잘 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모두가 시야가 회복되자마자 발아래를 바라봤다. 도저히 못 알아챌 수가 없는 거대한 존재가 그곳에 있었다.
유일한 목격자가 찬사를 늘어놓은, 인간을 초월한 미모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가장 빠르게 반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지친 화련이었다. 그녀는 거의 반사적으로 일행 주변에 무형의 벽을 둘렀다.
평소에는 자신의 몸 주변에 아주 얇게만 유지하던 격리 공간을 둘러쳤다. 그러고도 부족하다고 느낀 그녀는 바로 다음 텔레포트를 준비했다. 그녀의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그러나,


“꺄악!”
“언니!”
“화련 씨!”
“뭐야 저거 어떻게 다 넘어오기도 전에...”


놈은 슬쩍 손을 휘두른 것으로 그녀의 방비를 모두 장난으로 만들어버렸다. 화련은 놀랄 여유조차 없었다.
그녀가 둘러놓은 방벽을 찢어버린 냉기가 자신의 손가락을 타고, 팔목으로, 팔꿈치로 타고 올라왔으니까. 화련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놈이 두 번째 공격을 준비하는 것이 보였다. 어떤 영창도 없고, 준비 동작도 없음에도 놈의 가벼운 동작을 따라 주변의 마력들이 뒤틀리고, 잘려나가며 일정한 패턴대로 움직였다.
도무지 믿기지 않았지만 그건 분명히 마법이었다. 화련은 화살처럼 날아드는 빙결 마법을 느끼고 경고를 토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건 토혈이었다. 평소처럼 증발하는 것이 아니라, 몸 밖으로 튀어나옴과 동시에 얼어붙는 핏덩이였다.


후왁! 후르르!


미처 입밖으로 토해내지 못한 경고가 닿은 것일까? 빙결 마법은 앞을 막아선 류 현을 넘어서지 못했다. 회색빛 오러를 두르고, 검은 안개를 뭉클뭉클 피워 올리는 그의 등은 더없이 굳건해 보였다.
 류 현마저 타격이 없진 않은지 표정이 한껏 찌푸려진 상태였지만, 화련은 막았다는 그 사실 자체에 탄력을 받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깨어지다시피 한 텔레포트 연산을 다시 이어붙이기 시작했다.

“언니! 언니!”

끝에 가까워질수록 정신이 아득해지고, 피가 원래 그리로 나오는 것인 양, 토혈이 쏟아졌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선 안 돼. 숨이 끊어져도 넘어가서...!’

지이잉- 슈슉! 필사의 각오로 연산을 끝마친 화련은 내부가  진탕되든 말든 텔레포트를 감행했다.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몸뚱이는 그것을 감당해내었다.

우당탕! “언니!”“화련 씨!”
“야, 야, 련아. 정신 좀...혜라야, 휴대폰! 휴대폰!”
“아, 안 터져요. 아까 그 잠깐 동안 고장났나봐요!”
“염병...!”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들 때문에 뇌가 윙윙 울리는 것 같았다. 조용히 해달라고 말을 하고 싶은데, 나오는 것은 핏덩이 뿐이었다.

‘아...졸리다...’


가슴에는 깨어질 것 같은 시린 냉기가 미쳐 날뛰고 있는데, 머리는 계속해서 졸리다  신호를 내보냈다. 그녀는 그 신호를 따르고 싶었다.


“화련 씨! 정신 놓으시면 안 됩니다! 일단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이거라도 물고 계십시오.”

조치? 무슨 조치? 화련은 멍한 머리로 그걸 물으려다가 턱이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포기해버렸다.
그저 눈을 감고  수마에 몸을 내맡기고 싶었다.

그 때였다.

“아아아악! 끄아아아!”


얼어터진 것 같은 가슴의 흉통을 제외하면 감각이 다 죽어버린 줄 알았던 그녀의 몸뚱이가 아파죽겠다며 그녀의 뇌를 쥐고 흔들었다.
화련은 몸을 뒤틀려고 했다.
이런다고 통증이 사라질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양어깨를 꽉 붙든 류 현은 우악스럽게 그녀를 짓눌렀다. 화련은 욕지기라도 하고 싶었지만, 이제 목구멍으로 나오는 건 비명 일방통행이었다.

“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악!”

단순히 몸뚱이가 불에 탄다, 얼어터진다 하는 그런 감각이 아니었다. 육체적 고통에서 시작된 고통의 파도는 이제 영혼이라도 불태워버릴 기세였다.
그렇게 되자 그녀는 더 이상 비명도 내뱉을 수 없게 되었다. 소리 없는 비명과 더운 숨이 그녀의 목구멍을 통해서  없이 내뿜어졌다.


“----!”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면...!”


류 현의 중얼거리는 말은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녀의 뇌는 이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지경이었으니까.

우직! 찌직! 콰직!

언제까지나 계속될  같았던 고통의 파도의 끝은 의외로 싱겁게 찾아왔다.
화련은 영혼이 타는 것 같은 고통이 갑자기 온몸이 불타는 것 같은 수준으로 내려가자, 감은 줄도 모르고 감고 있었던 눈을 떴다. 그녀는 자신을 누르고 있는 류 현을 바라봤다.

눈물이 가득한 덕에 그녀가 볼 수 있는 건 번진 수채화 같은 모습뿐이었지만.
시야가 만족스러운 정보를 주지 않자 그녀는 다른 곳으로 신경을 돌렸다.

여전히 끔찍한 고통이 몸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좀 전까지만 해도 감당이 불가능한 고통에 노출되었던 터라 아프다고 난리칠 기운이 남아있질 않았다.
화련은 자신의 몸에 커다란 결락이 발생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류 현이 들고 있는 덩어리가 무엇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몸에서 떨어져나간 팔을, 어깻죽지부터 떼어낸 팔을 쥐고 있었다.

“화련 씨? 화련 씨! 제 말 들리십니까?”


그제야 그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인식할 여유가 생긴 것이지만.
하련은 멍하니 생각했다.

‘나보고 마스터한테 저렇게 하라고 했으면 엄청 망설였을 텐데, 진짜 아무 망설임 없이 잡아뜯어놨네.’


자신이 생각해도 정말 뜬금없는 생각이었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통 때문에 정신이 나간 것일지도 모르지. 그녀는 차갑게 식은 머리로 그리 평했다.


‘그래도 저런 표정은 지어주네.’

류 현은 찡그린 것도, 그렇다고 평소의 무덤덤한 표정도 아닌 어중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화련의 눈에는 그는 굉장히 괴로워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함께하면서, 또 세아의 말동무로 지내면서 화련은 저런 이상한 표정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내기를 해도 좋을 정도로 자신이 있었다.


‘진짜 아파 죽을 것 같은건 난데...저런 표정 지으면 난 어쩌라는 거야.’

고장 난 줄 알았던 안면 근육이 잘게 떨리며 웃음을  흘렸다. 그것을 보고 당황한 류 현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화련은 기회다 싶어 남은 기력을 쥐어짜내서 말했다.

“조금만, 조금만 자고 일어날 테니까...희란이 좀 부탁드릴게요...”
“화련 씨? 화련 씨!”

 현이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녀의 정신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진 못했다.
화련은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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