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09화 〉탐식마(貪食魔) (309/429)



〈 309화 〉탐식마(貪食魔)
모두 시선이 류 현에게로 몰렸다.
용잡이 팀 특성상 류 현이 내린 결정은 번복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 당연했다. 실제로도 류 현 스스로 결정을 번복한  빼고는 엎어진 적이 없었다. 최대한 다른 시각에서 의견을 개진하려고 애쓰는 화련도 결정이 떨어지고 나면 토다는 소리도 거의 하지 않았다.

잠깐동안 고심하는 표정이었던 류 현은 망설임 없이 내뱉었다.


“아니요. 쫓지 않을 겁니다.”
“...연결이 언제 끊어질지 몰라요.”
“그래서 더 쫓지 않을 겁니다. 혜라 양이...”

류 현은 말을 하다 말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화련을 봤다. 혜라 양이라는 호칭은 승하가 박박 우겨서  현에게 강요한 것이었다.
이래야 애가 소속감과 친근감을 느낀다, 어쩌구저쩌구. 류 현은 대체 이 호칭에 왜 그런 효험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해할 순 없었지만, 따라주기로 했다.
백혜라가 불쾌해 하는 눈치면 즉시 때려치우고 사과하겠지만, 다행스럽게도 불쾌해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혜라 양이 느낌을 못 믿겠다는 건 아니지만, 연결이 불완전하다는 것도 걸리고, 우리가 만전 상태도 아니니까요. 어쩌면 그 느낌이 저쪽에서 유도하는 걸 수도 있으니, 되도록 만전을 기하고 싶습니다.”

가감할 것도 없는 정론  자체에 제의를  백혜라도 별 거리낌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가 동의의 의사를 보이자, 류 현은 손뼉을  번 짝 치고는 말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요. 많이 피로들 하셨을텐데 고생하셨습니다.”


용잡이 팀은 그 길로 숙소로 복귀했다.


그들이 복귀하는 것을 보고 들러붙어서 징징거릴 기회만 엿보던 디에고가 엉겨 붙으려고 했지만, 웨인이 제지하고 류 현이 팀의 피로가 심해 오늘은 이만 돌아가서 쉬겠다고 당분간은 돌아가지 않겠다는 뉘앙스를 전하자 쉽게 떨어져나갔다. 그 얘기를 듣고 표정을 관리하긴 했어도, 입가가 실룩거리는 것이 꽤나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지금부터라도 미국보다 이쪽을 우선해줄 거라는 착각이라도 한 것이리라, 류 현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반대로 숙소에서 건 전화로  얘기를 똑같이 들은 던컨 대통령은 꽤 낙담한 눈치였지만. 그래도 구체적인 일정을 캐물으며 질척거리진 않았다.


용잡이 팀은 숙소로 돌아오고 하루 종일 먹고, 자는 일에 열중했다. 화련은 미국쪽 반응에 꽤 신경 쓰는 눈치였지만, 류 현은 그녀를 잘 다독여 휴식에 힘쓰게 만들었다.
소모가 가장 큰 것이 그녀일 테고, 앞으로의 추적에도 그녀가 가장 중요하고, 힘이 들 터이니 쉴 수 있을 때 쉬어두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다독이자 그녀는 그 이상 매달리지 않고 방으로 돌아갔다.
희란은 처음부터 계속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돌아오자마자 뻗어버렸고, 승하는 상태가 좋지만은 않은 혜라에게 붙어있느라 숙소에 온 뒤로 보지 못했다.
화련까지 돌려보내고 나자, 류 현은 비로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진짜 감이  잡히네.”

그리고 류 현은 그 혼자만의 시간을 괴수 정체를 추측하는데 다 쏟아 붓고 있는 중이었다. 벌써 해가 어둑한 것이 오늘 휴식은 다 그른 것 같아, 그 핑계로  현은 피로를 무시하기로 했다.


‘빙결계 능력을 가진 놈은 있었지만...이 놈은 ‘모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달라. 애초에 여성체라고 칭할 수 있는 부분부터가...’

마을을 통째로 얼음덩어리로 뒤덮는 괴수를 보고도 얼굴이나 살핀 놈의 증언이라 썩 미덥지는 않았지만, 여성체라는 부분부터가 류 현이 아는 빙결계 네임드 몹 ‘모사’와는 달랐다.
놈도 인간형이긴 했지만, 키가 2미터를 훌쩍 넘어서, 3미터에는 좀 미치지 못하는 거인이었다. 시력에 문제가 있지 않는 이상 여성체라고 볼 수가 없는 놈이었다.

‘의식하지 않고 광범위하게 환각을 보여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환상을 뒤집어쓰고 있을 확률도 있지만...그렇게 가정하면 가정자체가 무의미해져.’
‘그 가정을 끼고 들어간다고 해도 그 시점에서 이미 내가 아는 ‘모사’와는 전혀 다른 놈이 된다.’


류 현이 전생에 상대했던 ‘모사’는 다른 능력은 거의 없고, 어마어마한 출력을 자랑하는 빙결능력 하나로 류 현과 맞선 놈이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상대하기가 쉬웠었다.
순식간에 마력장막과 인간을 초월한 내구도를 자랑하는 뼈와 살을 얼려버리는 냉기에 적응하고 나자, 놈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고 그에게 뜯어 먹혀야 했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자신의 몸뚱이를 한 번씩은 다 반 토막 내본 놈들의 기준에서였지만.
상대하기 그래도 쉬운 편이라고 기억하는 놈을 상대하면서 류 현은, 얼어붙은  몸을 깨부수는 자해를 수 십  반복해야만 했다.


그런 ‘모사’가 의식하지 않고 광범위하게 환각을 보여주는 능력이나, 환상을 뒤집어쓸  있는 능력을 얻었다면 아주 다른 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후자라면 환상을 다루는 숙련도가 관건이겠지만, 네임드 몹 씩이나 된 놈이 미숙할 것 같지는 않았다. 전자라면 당장 추적 활동이 전면 부정당할 판이니 더욱 골치 아팠고.

‘여기에 주변 전자기기를 망가뜨리는 능력까지.’

이것만 아니었어도 꼬리를 밟는  아니어도, 꼬리털이라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명을 갈아 넣는 방식이 되겠지만, 아무리 갈아 넣어도 지금까지 나온 인명피해보단 적을 것이고, 디에고의 수하라면 카르텔의 일원일 테니 갈려나가든 말든 상관할 바도 아니었고.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연락이 끊긴 주변 조직원과 연계해서 범위를 좁히려고 해도, 놈이 가진 그 능력의 범위가 너무 넓은데다가, 이번 일을 보면 놈은 텔레포트 능력 또한 보유하고 있는 듯 했다.

‘생각해보니 추적활동은 이미 전면 부정당한 거나 다름없었군. 텔레포트 능력을 가진 놈을 어중이떠중이가 제대로 추적할 수 있을 리가...’

거기다가 전자기기를 먹통으로 만드는 그 능력까지 더해서 상상해보자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문제는  디에고라는 약쟁이도 슬슬 여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거라는 건데.’

화련이 말한 것처럼 약으로 뇌가 녹아버려서 계속 몰라줬으면 했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뇌까지 녹아버린 약쟁이는 남미의 대부 자리를 유지할 수 없으니까.
말이 대부지, 놈은 아직도 자기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외줄타기를 계속하고 있을 터였다. 맨몸이 아니라 이젠 여러 안전장치를 펼쳐놓고 하는 외줄타기 일 테지만.
어쨌거나 류 현이 도달한 결론에 놈도 늦게나마 도달하긴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눈치 챈 순간, 용잡이 팀이 떠나지 못하게 붙들고 늘어질 것이다.
그래봐야 자신들을 물리적으로 구속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류 현이 걱정하는 건 그 다음이었다.


‘아마 정보를 풀고 여론 몰이를 하겠지. 그래봐야 마약 카르텔 수장이라고 맞불을 놓으면 되기야 하겠지만...시기가 좋지 않아.’

정말로 그랬다. 다른 때라면 디에고가 저놈이 우리 남미가 죽는 꼴을  보고도, 알고도 외면하네 어쩌네 여론 몰이를 해도 마약 카르텔이라는 이미지를 공격하면 맞불 놓는 건 어렵진 않았을 것이다.
디에고의 외침과 마약 카르텔이 별 상관없더라도 사람들은 마냥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러기가  곤란했다.
우크라이나에서 괜히 시간 끌면서 몸값 높이기를 했다는 의심이 아주 적게나마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니까.

사람들은 용잡이 팀이 온갖 네임드 몹들을 목숨 걸고 토벌해줄 의무 같은 건 없다는 사실에는 이미 관심조차 없을 테니까.
디에고가 정보를 풀게 되면, 아마 남미의 생목숨을 외면했다는 것에 더 집중할 것이다.

‘그렇다곤 해도 언제까지 여기서 놈과 꼬리잡기를  수는 없다. 당장 뉴욕에 네임드 몹이 안 뜨더라도 미국 동부가 버티지 못할 정도로 데미지가 축적되면 여론이고 나발이고 아무런 의미가 없어.’

그래서 홀로 휴식시간도 반납하고 이리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뭐라도 단서를 짜내서 던져줘야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 디에고가 너 죽고 나죽자 식으로 나오는데 까지 시간이라도  수 있을 테니.


이미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선택지 따위는 있지도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어떻게 미국으로 빠른 시일 내에 돌아가면서도 여론을 덜 악화시키는 가였다.

하지만 쉽사리 답이 나올 기미는 없었고,  현은 소리 없이 투덜거렸다.


‘쯧, ‘모사’ 그놈이 조금 업그레이드 된 상태로 그대로 나타났으면 일이 쉽게 풀렸을 텐데. 텔레포트나 전자기기 방해 능력을 끼고 있었어도 이것저것 정보를 던져주면서 시간을  법 했는데 다 글렀군.’

 현의 고민은 새벽녘까지 계속 되었다. 화련이 다급한 얼굴로 방으로 쳐들어올 때까지.

쾅쾅!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까 하는 찰나에 노크가 아니라 문을 부수려는  같은 소리가 울렸다.  현은 문밖에 있는 이의 정체를 알아채고는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지만 침착하게 허락의 말을 내뱉었다. 문이 벌컥 열렸다.

문을 부술 것처럼 열어젖히고 뛰어 들어온 화련이 외쳤다.


“놈이요! 놈이 떴어요!”
“놈? 괴수 말씀하시는 겁니까? 뉴욕이요?”
“아뇨, 여기 있던 놈이요.”


류 현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디랍니까?”
“대서양이요!”
“대서양?”


대서양이 얼마나 넓은데 그리 말하면 어찌 알아듣는단 말인가. 류 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설명이 형편없는 것보다는 화련이 이리 흥분한 게 신경 쓰였다.


“아마존 하구에서 지금 대서양으로 진입 중이에요. 위성 카메라에 걸렸는데, 어떻게봐도 놈이 분명해요!”
“대체 뭘 보셨길래...”
“지금 지가 걸을 길을 바다를 얼려서 만들면서 가고 있어요. 그래서 위성에 걸렸던 거고요!”
“예?”

이번에는 류 현도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바다를 얼려서 길을 만들어? 왜? 텔레포트 능력 있는  아니었나?


류 현은 놈이 텔레포트 능력이 없다는 증거가   있는  기행을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네임드 몹이 이런 이상한 짓을 할 정도로 정신이 이상한 것을 경계해야 할지  수가 없었다.

‘던전 게이트를 왜 안 쓰지? 아님  쓰는 건가? 그 정도 능력을 가진 놈이 네임드 몹이 아니라고?’


머릿속은 엉망으로 뒤엉켰지만,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밖으로 내뱉었다.


“웨인 씨는  계십니까? 일단 모이도록 하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