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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8화 〉탐식마(貪食魔) (308/429)



〈 308화 〉탐식마(貪食魔)

용잡이 팀은 그 길로 해산하여 잠자리에 들었다. 느지막이 아침을 맞이한 그들은, 전투적으로 아침 식사를 해치운 후에 웨인이 수배한 헬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  거리에 있는 마을도 아니어서 헬기는 금세 그들을 목적지에 내려주었다.


“어, 언니 괜찮아요. 조금 울렁거릴 뿐이니까...”
“그래도. 너 뉴욕에 있는 내내 컨디션 안 좋았잖아. 그냥 있으려니까 내가 불편해서 그래.”
“혜라 넌 어때? 괜찮아? 막 토할 거 같고 그러진 않아?”
“불쾌한 느낌이 아니라니까. 간질간질 거리는 느낌이 있긴 한데, 신경 안 쓰면  느낄 정도니까...”


뒤따라오는  여자의 소란스러움을 뒤로 하고  현은  할 일을 했다. 헬기가 착륙을 위해서 호버링을 할 때부터 나와 있던 사내 중 가장 덩치 큰 자와 그를 선도하는 남자가 그에게 달려왔다.
그  덩치도 작고, 인상도 약한 편인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디에고 리베라 브렌트. 요청에 응해준 것에 감사를 표하는 바야.”
“류 현이라고 합니다. 죄송하지만 인사는 기회가 날  다시 나누기로 하고 그것부터 보고 싶은데, 되겠습니까?”


미간부터 턱에 이르는 흉터가 아니었다면 디에고 리베라 브렌트라는 소개를 믿기 어려웠을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초면에, 커다란 흉터 때문에 표정을 읽기가 쉽지가 않은 상대인데도, 너무 노골적으로 좋아해서 달리 생각할 여지도 없어보였다.


“그렇게 해. 의욕적으로 나서 주겠다는데 대환영이지.”


그를 스쳐지나가 다섯 걸음쯤 딛고 나자 웨인이 슬쩍 따라붙으며 귀엣말을 했다.

“그는 제가 맡고 있겠습니다. 편안히  일 보시길.”

류 현은 고개만 끄덕였다. 웨인이 멀어져갔다.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질척거리는 유형 같았는데  됐군.’

“휴...”
“어휴, 너도 고생이다. 민감한 게 건강을 해칠 정도니...”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는데 그냥 넘기기 힘든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목소리의 주인인 화련을 돌아보곤 눈짓으로 물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화련은  질문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살의와 적의를 내뿜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사납게 눈을 흘겼다. 점점 멀어지고 있는 디에고를 향해서.


“저기  인간 완전 중증 약쟁이에요. 희란이 얘 식은땀 흘린 거 봐요.  인간 숨 쉴 때 마다 태운 약 냄새가 느껴질 정도래요.”
“......”


그 정도란 말인가. 류 현은 화련을 따라 디에고의 뒷모습에 시선을 던졌다. 방금 전에 봤을 때는, 약쟁이 특유의 떨림 같은 게 없어서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기야, 마약 산지를 주무르는 인간인데 그런 부작용 없는 고급약을 쓰겠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의외의 정보를 얻었지만, 디에고를 보는 시선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그저 팀 전체와 디에고를 대면시키는 일은 최대한 피해야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자신이야 약쟁이든 뭐든 써먹을 구석만 있으면 얼마든지 얼굴 맞댈 생각이니까.


“희란 씨, 괜찮으시겠습니까? 내내 컨디션도  좋으셨는데.”
“괘, 괜찮아요. 마스터. 조금만 앉아서 쉬면 괜찮아 질 거에요. 괜한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류 현은 몇 마디 더 하려다가 그것들을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괜히 자신이 희란을 들쑤시는 것보단 화련에게 맡겨놓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확인 작업이 끝나면 최대한 빨리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피로가 남아있으셔도 조금만 참아주시길.”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디에고가 들었다면 들러붙어서 징징거릴 소리였지만, 류 현은 네임드 몹의 정확한 좌표를 알아내거나, 놈이  발로 나타나지 않는 이상 오늘 일정을 이 이상 수행할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손쉽게 도살했다지만, 뉴욕에서 용종 괴수를 때려잡은 피로가 없을 수가 없으니까. ‘구멍’이 내뿜어대는 마력 때문에 휴식을 해도 영 시원찮았다.
그렇다고 영향권을 벗어나서 쉬자니 그 영향권이 너무 넓을뿐더러, ‘구멍’에서 나오는 용종괴수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한 웨이브 중 반의 반에 해당하는 수만 놓쳤는데도 보스턴이 그 꼴이 났으니까.

그래도 ‘구멍’ 뒤의 존재 때문에라도 영향권 밖에서 쉬고  계획을 잡으려고 하는 찰나에  일이 터진 것이다.


‘여기도 영향권 밖이긴 하니까. 여기서 쉬기 힘들 것 같으면 사흘 내로 미국으로 돌아가자.’

디에고가 알았다면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다 못해 욕을 했을 생각이지만,  현은 이미 결정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이런 대형 사건이 터져서 더는 외면하기 힘들어 와보긴 했지만, 솔직히 추적도 시원찮은 판국에 이곳 일에 매달려 있고 싶진 않았다.
다른 일이 없으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었으니까.


본인은 손을 잡은 것도 아닌데, 디에고가 스쳐지나가는 것만으로도 토할 것 같은 얼굴이  희란을 보면 빠른 미국 복귀에 무게추가 기울었다.


“하, 직접 보니까. 진짜 도발하려고 이래놓은 것 같네.”
“그러게. 단순히 눈에 띄는 정도가 아니잖아?”


염두를 굴리는 와중에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기에 목적한 바인 커다란 얼음 덩어리 앞에 도달했다.
류 현은 그것을 보자마자 백혜라가 왜 뜬금없이 그런 소리를 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냥 보통 마법으로 얼리거나 얼음 덩어리를 소환한 게 아니야.’

마법에 대해선 문외한 중의 문외한이라고 해도 될 정도기에 설명할 수는 없지만,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수단이 동원되었다는 것쯤은   있었다.
이를 테면 구엘  굴락으로부터 가져온 회색빛 오러 같은.
단순히 출력이 강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게 확실해 보였다.  현은 급하게 헬기를 구해서 이곳으로 오게 만든 이를 슬쩍 돌아보았다.
백혜라는 넋이 빠진 얼굴로 얼음덩어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단순히 놀랐다기보다도, 정신이 그리로 쏠려 있어서 표정단속을 못하는 모습 같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혜라야? 백혜라!”
“어? 어으응...언니.”
“야, 너 왜 갑자기 넋을 놓고 그래. 깜짝 놀랐잖아.”
“어? 그게...어...음...저거 만져보면 안 될까?”


백혜라가 대답은 하다 말고 뜬금없는 소리를 하자 승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녀에게도 이 상황은 당혹스럽기 그지 없었다.

‘얘가 왜 이래?’

물어봐야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태가 아니었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백혜라는 다시 멍하니 얼음덩어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거 잘 못 만졌다가 애 잘  되기라도 하면...’


법적으로는 이미 성인이 되었지만 그녀에게는 그저 쬐끄만 여동생이었다.
그녀는 팀의 대장이자, 하나 뿐인 남자사람친구를 돌아봤다.
그는 평소의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화련 씨, 저주 저항 아티펙트 좀 꺼내주시겠습니까? 그것들 전부 착용하고, 언제든 잡아당길  있도록 준비 해둔 뒤에 시도해 보도록 하죠.”


 십분 정도 노력한 끝에, 백혜라는 저주 저항 세팅을 끝마칠 수 있었다. 팀원 전원이 달라붙은 덕이었다.
모든 장비를 차고나자, 그녀의 몰골이 마치 저주받은 미라 꼴이 되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보고 웃지 않았다.


장비 때문에 조금 뒤뚱거리게 된 백혜라가 팀원들을 한 번 돌아보고는 고개를 한 번 끄덕했다. 그들도 혜라에게 마주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백혜라는 뒤뚱거리며 얼음덩어리 앞에 섰다. 고개를 젖혀 끝을 올려다보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제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정확히는 두 팔을 보려고  것이었다.


자신의 두 팔. 물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혈관 같은 모양새의 마력 회로가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한 방향으로만 움직일  있게 설계되었을 회로가.

그녀는 날숨을 뱉으며  마력을 휘돌리기 시작했다. 마력 흐름에 호응하여, 평소에는 볼 길이 없는 회로가 하얗게 백열하며 제 존재를 알렸다.
저주저항 세팅 때문에 맨살이 보이는 곳이 얼굴 말고는 없는 지경이었지만,  두꺼운 벽마저 뚫고 팔에서 비롯된 빛이 사방을 밝혔다.
멀찍이 차단선을 지키고 있던 이들도 그것을 보았는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빛을 내뿜고 있는 제 팔을 한  슥 훑어보고는 어깨 높이로 들어올렸다.
보기 전에는 스스로도 몰랐는데, 그녀의 손끝이 잘게 떨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다 잡았다.


‘해야 해. 할  있어, 없어가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이야.’

그녀는 더 망설이지 않고 얼음덩어리에 두 손을 갖다 대었다. 그 사이에 두터운 장갑과 몇 개의 반지가 껴있었지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얼음덩어리에 닿자마자 즉시, 그녀의 팔이 터질 것처럼 하얀 빛이 한계까지 백열했다. 얼음덩어리의 뭔가와 호응하는 것처럼.
동시에 백혜라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쌍코피까지 주르륵 흘리는 모습은 어떻게 봐도 뭔가   되었음을 알리는 것 같았다.


그녀의 모습을 본 승하가 바로 손을 뻗어왔다.


“혜라야! 백혜라!”


그녀의 손이 닿기도 전에,

우당탕 털썩- 얼음덩어리로부터 튕겨져 나온 혜라가  바퀴 굴렀다. 그러고도 아픈 것도 안 느껴지는지, 벌벌 떨면서 무슨 소리를 웅얼거렸다.
제 어깨를 끌어안은 두 팔에서 연기가 펄펄 피어올랐다. 재빨리 혜라를 안아든 승하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혜라야! 혜라야! 류 현, 얼른 구급...”
“으으, 머리 울려죽을 것 같아.”
“혜라야? 괜찮아? 너 이거  개야? 아니지, 일단 자리를...”
“그럴 필요 없어요. 아무 이상 없으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방금 전만 해도 쌍코피를 흘리며 벌벌 떨던 혜라의 말은 승하를 조금도 납득시키지 못했다.

“너 네가 어떤 꼴이었는지 직접 봤어야 해! 아니면 이런 소리 못하지. 일단 가서 검사부터 받아보자.”
“빈말이 아니라 진짜 괜찮다니까요. 무슨 일 생기기도 전에 저쪽에서 연결을 끊어서 아무 이상 없어요.”
“연결? 끊어? 무슨 소리야 그건 또?”
“설명하고 싶긴 한데, 당장은 어렵고. 일단 급한 일부터 말할게요. 언니, 잠깐만. 응? 제발.”

승하는 애원하는 혜라의 말을  들어주진 않았다. 그녀는 제게 기대게 만든 상태로 혜라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당연히 허리를 감싼 팔은 혜라가 똑바로 서고도 풀어주지 않았다.


“진짜 고집하곤...알았어. 빨리 끝낼게.”
“뭔가...알아내신 겁니까?”
“저도 처음 느껴본 거라서 당장은 설명이 안 되네요. 일단 급한 것부터 말씀드릴게요. 엄청 큰 강 하구에 있어요. 규모를 보니까, 아마 아마존 강 하구일 거 같아요.”
“예? 대체 뭐가...”
“네임드 몹이요. 지금 추적하실 거면 당장은 제가 좌표는 바로 못 찍어 드려도, 대강 거리랑 방향 안내정도는 할 수 있어요. 이 뒤로는 저도 장담을 못하겠어요. 워낙 미약한 연결이라서...어쩌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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