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2화 〉탐식마(貪食魔)
“아니 이게 대체 뭔...”
“......”
웨인과 지벡은 머리가 거의 맞닿을 정도로 바짝 붙은 채 사진 한 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지간한 꼴은 다 봤다고 자부할 정도로 산전수전 다 겪어본 두 남자의 말문이 막힐 정도로 사진 안에 들어있는 광경은 초현실적이었다.
오래된 기계식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은 다급하게 촬영했는지, 상이 꽤 흔들려 디테일한 부분은 거의 보이지 않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정글 속 작은 촌락이라는 장소에 걸맞지 않은 하얀 드레스 차림의 여자로 추정되는 인영과 그 뒤로 도열한 시뻘건 유리로 만들어진 것 같은 병사의 무리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한참을 말없이 사진만 보던 지벡이 입을 열었다.
“이거 어떻게 찍은 거야?”
“우리 애들이 한 거 아니니까 묻지 마. 이전이랑 똑같이 피만 쏙 빨린 마을에 우리 애들이 가보니 카메라 주인인 것 같은 가죽더미 옆에 이 사진이 있었다고 보고 받은 게 다야.”
“허, 습격 받은 마을에 이런 구식 카메라가 있었다니...진짜 거짓말 같은 우연이네.”
“그 카메라 주인이 겁 대가리를 상실한 놈인 것도. 우리한테는 다행스러운 일이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거린 지벡은 다시 사진에 코를 박을 기세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디에고는 두 남자를 닦달하지 않고, 느긋하게 시가를 태웠다. 그 속은 시가처럼 타들어가고 있었지만 별 다른 도리가 없었다.
마침내 두 남자가 고개를 들었을 때, 디에고는 더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어떤 것 같아?”
“글쎄,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걸로는 무슨 결론을 내릴 수 있어도, 그걸 의심해야 할 판인데. 물증 없이 가설만 내세운 입장에서 할 소린 아니란 거 알지만.”
“역시 그런가. 야디, 그거 가져오라고 해. 복원 작업 대충 끝났지?”
야디 라고 불린 덩치 큰 사내는 허리를 꾸벅 숙여보이더니 문밖으로 나가서 얼마가지 않아 돌아왔다. 돌아온 그의 손에는 태블릿 PC가 하나 쥐여져 있었다.
그는 태블릿을 몇 번 두드리더니, 탁자 위에 소리가 날까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지벡과 웨인의 시선이 자연히 그리로 쏠렸다. 디에고가 화면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아까 그 사진이랑 같은 현장에 있던 다른 사진들이야. 손상이 심해서 복원시켜보라고 하긴 했는데, 이 꼴이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지.”
지벡은 대충 대꾸하며 태블릿PC 화면을 훑었다. 디에고의 말처럼 사진들은 상태가 좋지 못했다. 처음의 것도 그리 상태가 좋다곤 할 수 없었는데, 이건 윤곽이라고 할 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여기서 뭔가를 찾아내려면 세심한 관찰이 아니라 추리가 필요할 지경이었다.
몇 장 슥슥 넘겨보던 두 남자의 손이 멈춘 것은 허옇고, 뻘건 덩어리가 찍힌 사진에서였다.
두 남자는 눈이 빠져라 그것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하면 손상된 사진이 복원이라도 될 것처럼.
다행스럽게도 아주 헛수고는 아니었다. 두 남자는 허연 것이 첫 번째 사진에서 본 여성체로 보이는 인영이고, 뻘건 것이 마찬가지로 그 사진에서 본 병사 같은 것임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 병사 뒤편에 있는 흙무더기처럼 찍힌 것이 사람의 몸뚱이라는 것도. 병사와 무너진 흙무더기처럼 짜부라진 사람의 몸뚱이를 잇고 있는 붉은 선까지 알아보는 데 성공했다.
“이거...아무리 봐도 피를 뽑아내는 거지?”
“화질이 좋지가 못해서 확신은 못하겠지만...보이긴 그렇게 보이는 군요.”
“하, 이걸 흡혈귀과가 아닌 걸 좋아해야해, 아님 끔찍해 해야 해? 이런 식으로 지 병사를 불리는 거 같은데. 어떻게 아직 안 걸렸지? 한 둘도 아닌데. 그리고 염병...결국 네임드 몹인지 아닌지는 분간도 못하겠네.”
“어차피 사진 화질이 좋았어도 알 수 없었을 겁니다.”
웨인의 말 대로였다.
“아쉬워서 하는 소리지. 젠장, 결국 추적에 도움 될 만한 건 놈이 제 군세를 꾸리고 있다는 것뿐이네. 이 정도 덩치면 얼마 안 가서 찾긴 하겠네.”
“글쎄요.”
“뭔데, 뭐 켕기는 거라도 있어?”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군세를 다 끌고 다녔으면 진작 마을 사람들이 대피했어야 정상인데. 이 사진을 찍은 카메라의 주인은 이렇게 근접할 때까지 마을에 머물렀습니다.”
“거야 미친놈이라서 그런가 보지. 이거 봐, 사람 몸뚱이에서 피 뽑아내는 순간에도 도망 안가고 셔터 누르던 놈인데.”
“그럼 마을 사람들은요.”
“응? 어...그러고 보니...야, 디에고 그 마을 집이 몇 채래?”
“음? 야디, 현장 갔다 온 애들한테 연락해봐.”
“아 그리고 시신으로 추정되는 것들 숫자도.”
“들었지?”
덩치 큰 사내는 다시금 허리를 꾸벅 숙여 보이더니, 방밖으로 향했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지 문 밖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몇 번 고성이 터져 나오다가, 눈치가 보이는 지 소리가 곧 멀어졌다.
야디에르가 돌아온 건 그로부터 10분 후였다. 그동안 목이 타는 지 음료수 잔을 세 번 비운 디에고가 짜증을 부렸다.
“뭐가 이리 오래 걸려?”
“죄송합니다. 그놈들이 제대로 확인도 안하고 그냥 귀환했다기에 근처에 있던 팀을 움직여서 확인하느라 좀 늦었습니다.”
“하, 시발. 가지가지 한다. 이 일 끝나고 나면 알지?”
“예, 한 번 다 모아서 제대로 기강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서 어떻데?”
“가구수는 50여 채에, 시신으로 추정되는 가죽 덩어리는 210체 가량 확인했다고 합니다.”
“흠...대충 맞아떨어지는 거 같은데.”
“이번에도 마을이 통째로 먹힌 거네. 하긴, 여태 목격자는커녕, 털린 마을에 거주했다고 주장하는 인간 하나 안 나왔는데.”
디에고와 협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습격 받은 마을의 생존자나, 전에 거주한 적이 있는 이를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5만 달러에 이르는 현상금을 걸고도 거짓 제보를 하려는 이조차 만나보지 못했다. 웨인과 지벡은 이를 토대로 흡혈귀설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지만, 오늘 접한 첫 물증을 보니 아무래도 그른 모양이었다.
피를 다룬다는 점에서 유사한 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차라리 아주 다른 카테고리를 새로 만드는 게 나을 정도로 달라보였다. 적어도 사진 상으로는.
“염병, 나아지는 게 하나도 없네. 그나마 허여멀건 해서 너네 애들이 찾기는 쉽겠다.”
“젠장,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너 뉴스도 안 보냐?”
“너네 나팔수들이 내보내는 뉴스를 내가 왜 봐? 안 봐도 훤하지.”
“말을 말자. 말을 말아. 그런데 이번에는 류 현이라는 놈 불러올 수 있겠지? 이렇게 물증도 생겼는데.”
디에고는 지난 사흘 동안 거의 기회만 나면 류 현을 언제 불러올 것이냐고 노래를 불러대었다.
제 땅이니 저가 알아서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던 모습은 팔아먹은 것인지, 아니면 남미의 대부답게 비상한 감이 이 위기가 보통이 아니라는 걸 감지한 것인지 지벡이 피해 다닐 정도로 심했다.
“야, 이게 무슨 물증이야. 말이 물증이지 이걸로 뭘 알 수 있어? 사람 피를 뽑아서 이상한 군대를 만든다는 거? 그 인간 불러서 수색이라도 시키게? 제정신이냐?”
“수색은 무슨. 미국에는 아직 아무 일도 안 터졌잖아. 우린 네 말대로 소재 파악은 못 했지만, 단서들이 하나 둘씩 나오고 있고. 그리고 인명 피해를 봐라. 우리가 파악 못한 곳도 있을 텐데 그럼 곧 2만도 찍을 기세라고!”
‘인명 피해 걱정은 개뿔. 여론이 불안해 질까봐 정보 조작까지 하는 놈이.’
말로는 뉴스를 안 봤다고 했지만, 지벡은 시간이 날 때마다 이 지역의 뉴스를 전부 훑어보고 있었다.
괜한 불똥에 맞아서 더러운 꼴 보지 않으려고. 혹여나 용잡이 팀이 이리로 왔을 때 우크라이나 같은 사태가 벌어질 거 같으면 그들을 설득해서 대피라도 시키기 위해서.
어쨌든 지벡이 갖가지 매체를 훑어본 결과 내린 결론은, 눈앞의 남자는 인명 피해에 대한 작은 유감보다는 자신의 장악력이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훨씬 크다는 것이었다.
‘원래도 깨끗한 놈은 아니었지만, 권력을 잡더니 아주 가버렸어.’
지벡은 속으로 혀를 쯔쯔 차면서 반박할 말을 계속 짜내었다.
빤히 보이는 디에고의 속내와는 별개로, 디에고의 요구 자체는 과하다고 보긴 어려웠으니까.
그렇다고 뉴욕에서 대기 중인 괴물들에게 이리로 와달라고 요청할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미국과 남미 양자 간에 가지는 무게가 다르니까.
‘이게 미쳤지. 너 같으면 이일 저일 터졌을 때 제일 먼저 달려와서 도와준 상대 내팽개치고 치안 개판인 약쟁이 소굴 먼저 돕고 싶겠냐?’
제 3자라고 할 만한 지벡이 느끼기에도 그랬으니, 당사자인 용잡이 팀은 어떨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그들에게 목숨을 의탁해야하는 지벡으로선 그런 부분을 건드려서 굳이 불쾌감을 일으킬 이유가 없었다.
“야, 무슨 일이 없어. 뉴욕 주에 지금 하루가 멀다 하고 용종 괴수 뜨고 있는 거 모르냐?”
“그거야 그놈들이 던전 단속을 제대로 못해서 그런 거겠지. 하여간 그 새끼들은 폼 잡는 것 외에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지벡의 말처럼 용잡이 팀이 머물고 있는 뉴욕 시를 포함한 뉴욕 주 전체는 현재 뜬금없이 등장하는 용종괴수들로 몸살을 앓는 중이었다.
등장하고 나서 거의 3~4시간 내로, 광속으로 토벌이 끝나버리는 터라 몸살이라는 표현으로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튀어나오는 놈들의 수준이 하나같이 높았다.
샌 드래곤이 가장 낮은 급수인데, 가장 작은 놈이 20미터 급이었으니 말 다한 셈.
핑계로는 조금 약했지만 지벡은 이걸로 밀고 나가기로 정한 지 오래였다. 아쉬운 건 디에고 쪽이니, 그 네임드 몹인지 모를 것이 리우데자네이루 같은 도시를 날려버리지 않는 이상에야 더 강하게 나가기 힘들 거라는 계산 하에.
“말이나 못 하면. 어쨌거나 이 정도로는 이리로 와달라고 하기가 힘들어. 미국이라고, 미국. 이 친구야. 너 같으면 자기네 땅에 뚝 떨어진 핵폭탄 같은 걸 처리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인간들이 다른 바쁜 일 있다고 간다면 그냥 보내주겠냐? 하물며, 지금 뉴욕 주에 일어나고 있는 일 때문에 동부 전체가 뒤숭숭한데? 그것도 소재지 파악이 끝나서 후딱 해치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 딸랑 사진하나 확보한 이쪽으로?”
“아니, 내 말은 적어도 네가 말 정도는 전해 줄 수 있지 않느냐 이거지. 너 여기서 엄청 고생하고 있는데 그것도 어필할 겸. 어?”
예상대로 더 강하게 나가지 못하고 살살 구슬리려는 모습에, 지벡은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그래, 힘이 부족하면 이럴 수밖에 없지. 나도 그래서 그놈 밑에서 기고 있는 거고 제기랄.’
갑자기 입맛이 썼다. 지벡은 디에고를 좀 달래주기로 마음먹었다.
브라질에서 이미 1만이 넘는 인명 피해가 난 것도 사실이고, 그 때문에 디에고가 잠자는 시간도 줄여가면서 추적에 온 힘을 쏟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의도는 어찌됐든 간에, 그가 사태 수습에 힘쓰고 있는 건 맞았다.
단지 우선순위에서 밀렸기에 이런 상황에 빠졌다는 것을 말할 수는 없기에 지벡은 디에고가 원하는 답을 주기로 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마침 오늘 정기 보고 하는 날이니 슬쩍 말은 건네 볼게. 너무 큰 기대는 하지마.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 상황이 걔들이 빼고 싶다고 바로 빠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알지. 내가 그걸 모를까. 그냥 말이라도 전해 달라고. 그럼 무슨 반응이라도 있지 않겠어?”
“오케이. 우리가 더 볼 거 없지? 이만 일어난다. 슬슬 가서 보고할 내용 정리해야겠어.”
“어어, 나도 좀 정리할 게 있어서 배웅은 못하겠다.”
“배웅은 무슨. 간다.”
지벡과 웨인은 그 길로 뒤도 안 돌아보고 지하 사무실을 나섰다. 웨인이 스쳐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앞으로 어쩌실 겁니까. 아무래도 감이든 다른 물증이든 잡은 것 같은데.”
“그냥 감이겠지. 저놈 성격은 내가 잘 알아. 그나저나 정말로 어쩐다. 이제 볼 때마다 저럴 텐데.”
그 말을 끝으로 두 남자는 고민에 잠긴 표정을 한 채 숙소까지 침묵을 지켰다.
닷새 후, 그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더는 변명을 쥐어짜지 않아도 되지 않게 되었다. 미국에서 날아온 소식 덕분이었다.
하지만 두 남자는 그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미국에서 날아온 소식은, 브라질에 있었던 그들은 듣지 못했지만 일전에 화련이 예견한 대로, 천공성(穿孔城)이 하늘에 구멍을 뚫는데 성공했다는 것이었으니까.
마찬가지로 그것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화련의 예견을 그들은 알지 못했지만, 보통 일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마력적 현상을 캐치하기 위해서 특수 제작된 카메라에 찍힌 사진에 실린 ‘구멍’은 사진 상으로만 봐도 기존의 게이트와는 차원이 다른 흉흉함을 내포하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