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1화 〉탐식마(貪食魔)
리우데자네이루 시내의 한 건물 지하.
전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방안은 살풍경했다. 응접실에 있어야 하는 탁자와 의자, 컵과 접시를 쟁여두는 서랍장과 거치대는 존재했지만 방안에 감도는 공기가 그렇게 보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이 이 방에 두 번째 들어온 지벡 건터는 전과 달리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그의 내면에서는 초조함과 욕지기, 짜증, 분노가 휘몰아치고 있었지만, 그것을 간파한 건 옆에 앉은 웨인뿐이었다.
그마저도 지벡이 이 리우자네이루까지 오면서 도시 내로 접어드는 순간까지 욕지기를 중얼거려서 잘 참고 있구나 할 뿐이었다.
그 정도로 지벡의 표정 관리는 완벽했다.
그리고 지벡 건터를 여전히 표정관리 못하고, 말 막 내뱉는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망나니로 기억하는 디에고 리베라 브렌트는, 지벡의 여유로운 표정에 주먹을 날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내가 저번에 말을 잘 못했나?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게 말했던 것 같은데. 사과도 했고, 보수도 챙겨줬는데. 이게 무슨 상황이지 지벡?”
“글쎄, 난 그 때 대답한 기억이 없는데. 너는 있나?”
디에고의 눈에서 불이 확 튀었다.
“지벡 건터. 말장난 하려고 여기에 부른 게 아니다. 난 분명히 그 때 경고 했었어. 이 건이 끝나기 전에 네가 오지랖을 부린다면 우리 관계가 꽤 험악해 질 거라고.”
씹어뱉는 것처럼 말하는 디에고가 내뿜어내는 기세는 흉흉했다. 숨기기는커녕, 아주 대놓고 내뿜어내는 적의는 어지간히 담이 쎈 플레이어라도 움찔할 만한 수준이었다.
디에고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떨어지는 이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지벡은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이죽거렸다.
“이봐, 디에고. 그렇게 인상 쓰고 기선 제압하려고 애쓸 필요 없어. 우린 너네 조직 이권에 관심은 요만큼도 없으니까. 우리 존재를 눈치 챘는데 헬기 편대가 아니라, 사람을 보낸 시점에서 네 의중은 대충 눈치 깠어.”
지벡의 말대로 디에고 리베라 브렌트라는 사내에게 2번의 경고는 어울리지 않았다.
남미 대륙의 대부라고 불리는 이 사내는 경고하는 일 자체가 드문, 사람들이 남미 카르텔 하면 떠올릴만한 불한당을 현실로 옮겨놓은 그런 인간이었다.
첫 번째 경고도 지벡을 자신이 불러들였고, 지벡과의 친분을 생각해서 한 것이지 늘상 하는 일처리 방식과는 정반대였다.
그런 지벡에게도 두 번째 경고는 하지 않을 인간이었다. 지벡을 죽이진 못하는 걸 알더라도 두 번째 경고 대신 헬기 편대를 보내서 기관총 세례를 퍼붓고 볼 이가 디에고였다.
그렇게 강경책을 휘둘렀기에 그가 수많은 서방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서 복구 불능까지 몰렸던 남미를 그들로부터 해방시키고, 대부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가 헬기 편대 대신 전령을 보낸 건 뻔히 보이는 이유 때문이었다.
“지금 이 사태를, 브라질을 헤집고 있는 네임드 몹을 감당할 수 없어서잖아?”
뿌득! 디에고의 입 안에서 치아 건강이 걱정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의 뒤에 서 있는 덩치 큰 사내, 야디에르의 근육도 당장 뛰어들 것처럼 꿈틀거렸지만, 디에고가 손을 들어보이자 씩씩 거리면서도 움직이진 못했다.
“디에고, 이건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야. 세상 어느 나라도 그 괴물을 단독으로 감당하진 못할 테니까.”
‘그 괴물들이 모인 팀을 빼면.’
지벡은 세간이 최후의 보루로 꼽고는 하는 핵 카드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건 카드가 아니라, 테이블을 뒤엎고 가장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방법이니까.
“호주, 일본, 필리핀, 러시아, 영국, 프랑스, 이집트,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네임드 몹을 어찌해보려다가, 혹은 네임드 몹의 따까리에게 물먹은 나라 목록만 해도 대충 이 정도지. 이집트는 아예 박살이 났고, 우크라이나도 아마 한 4,5년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 신세겠지. 루마니아는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을 거고.”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지벡.”
“기선 제압하겠다고 네 스스로도 넘어가기로 결론내린 일을 굳이 걸고넘어지지 말자는 거지. 지금 같은 상황에선 시간이 금이라고. 빨리빨리 진행을 해야 우리도 빨리 도울 수 있지 않겠어?”
유들유들하게 자신이 저지른 무례를 넘기려는 모습을 보니 디에고는 더는 참기가 힘들었다.
“뭐? 이건 그 이전의 문제다.”
“에이, 우리가 몸 값 협상하면서 뺄까봐 꼬투리 잡는 거 다 아는데.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굳이 안 그래도 도울 거니까.”
“뭣?”
디에고는 미간에서 턱까지 이르는 흉터가 구부러질 정도로 얼굴을 찌푸렸다.
‘이새끼 뭘 잘 못 먹었나?’ 그가 아는 지벡 건터는 이런 소릴 할 인간이 아니었다.
아니, 이런 소리를 하면 안 되는 인간이었다. 갑자기 사람이 변하면 곧 죽는다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죽을 뻔했기 때문에 그랬다.
갑자기 죽을 자리 찾아가는 것처럼 데스나이트라는 괴물을 상대로 지연전(遲延戰)을 벌인 게 불과 두 달하고 조금 더 된 일이었다.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지금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데스나이트 해체 영상만 봐도 지벡이 정말 죽을 뻔했을 거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해서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긴지 1년도 안 된 놈이 또 같은 짓을 대가도 없이 하려고 든다?
디에고는 반가움이나 고마움 보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 미친놈에게 휘말려서 자신도 봉변당하는 것 아닐까 하는 그런 두려움.
“잘 생각해 봐. 내가 뭐하러 네 경고까지 듣고 떠났는데 여기 다시 기어들어왔겠어? 너야 그 때 괴수 짓이 아닐 거라고 결론 내린 상태였지만, 난 아니었잖아?”
“그거야 네가...”
반박을 하려던 디에고는 말문이 막혔다. 디에고가 아는 지벡 건터라면 이렇게 만날 일 자체가 없어야 정상이었다.
자신이 아는 지벡은 감뿐이라도 위험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쪽으로 고개도 안 돌리는 놈이었다. 자신과 불편한 관계가 될 걸 감수하고, 위험을 향해서 대가리를 디민 이 상황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네가 그렇게 집착하는 조직이 목적이었다면 반대로 행동했겠지. 가만히 있어도 네임드 몹이 너네 조직이나 너네 수많은 고객들 중 하나를 박살내줬을 텐데. 안 그래?”
“...목적이 뭐지?”
지벡은 바로 대꾸하지 않고 웨인을 돌아봤다. 웨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한 번 끄덕일 뿐이었다.
지벡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말했다.
“우리 둘은 추적조야. 너네 고객, 일꾼, 미래의 조직원들을 조지고 있는 네임드 몹으로 추정되는 괴물의 소재를 쫓는 추적조.”
“추적조? 그럼...”
“당연히 본대가 있지. 뉴욕 소식은 알지? 지금 거기 거대한 부유성 떠서 동부 전체가 전쟁 분위기인거?”
디에고는 고개를 까딱했다. 모르면 곤란한 일이었다. 디에고의 위치상 미국 소식을 챙기는 건 당연했으니까.
그리고 디에고가 아닌 브라질에 거주 중인 국민들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브라질의 상황이 아무리 험악하게 돌아가고 있다곤 하나, 매일 같이 뉴스에서 떠들어대고 있는데 모를 수가 없었다.
“거기서 대기하고 있는 팀이 본대야. 당장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이라서 우리 둘만 여기로 온 거고.”
데스나이트 건이 마무리 되고, 프랑스 별장에서 잘 쉬고 있는데 웨인에게 잡혀왔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런다고 웨인이 꿈쩍할 리도 없고, 이 자리에 도움 되는 얘기도 아니었으니까.
“그...용잡이 팀인가 하는? 데스나이트를 찢어 죽인 그 남자가 속한 팀 맞나?”
“맞아. 잘 아네. 그 괴물 같은 남자가 우리 의뢰주라고 보면 돼. 사실 얘는 아니어도 혼자 오긴 왔을 듯.”
지벡이 자신을 삿대질 했지만 웨인은 무표정한 얼굴을 그대로 유지했다. 무표정한 웨인과 장난치는 것 같은 얼굴로 그에게 삿대질을 하고 있는 지벡을 번갈아보던 디에고의 입에서 한 숨이 새어나왔다.
“허...”
“다시 정리하자면, 우린 이 일로 너한테 뭔가 대가를 받을 생각이 없어. 너네랑 별개로 시작한 일이었으니까.”
“대체 뭘 대가로 받기로 했길래...”
“그건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야, 디에고. 아마추어처럼 왜 그래?”
사실 보장받은 대가 따윈 없기에 말해주고 싶어도 말해줄 수가 없었다. 이번에 웨인에게 잡혀오면서 어떤 약속도 받지 못했으니까.
그저 이번일로 점수를 크게 따서 그늘 아래로 들어갈 수 있게 되길 바랄 뿐.
‘하, 시발. 그래도 무급 봉사하는 기분이라 좃같네. 어디 진짜 뜯어먹을 구석 없나.’
“좋아, 대충 상황 이해가 가네. 그럼 그 용잡이 팀과 협업한다는 전제하에 진행하면 되나?”
지벡은 대답대신 재차 어깨를 들먹거렸다. “협업은 무슨, 그럴 깜냥은 되냐.” 라고 대답할 수 없어서 한 행동이었다.
그의 예상대로 자신이 가진 것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디에고는 제 좋을 대로 의미를 해석한 듯 했다.
“하지만 뉴욕에 죽치고 있는 건 조금 그렇군. 그쪽에는 아직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고 알고 있는데. 이쪽은 실시간으로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다고.”
‘얼씨구.’
정말로 대등한 협업관계라고 머릿속에서 관계 정리가 끝난 투였다. 지벡은 물어볼 것도 없이 류 현이 어디를 우선으로 두고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입에 발린 소리를 해주기로 했다.
“야, 너 며칠 전만해도 적대 조직 짓이라고 생각하던 건 잊었냐? 물증 없으면 내 땅에서 꺼지라고 할 놈이...아니지, 한 사흘 전이었으면 니가 만나러 오는 게 아니라 우리한테 폭격기를 보냈겠지. 안 그래? 그럴 거 뻔히 아는데 뭐하러?”
“아니 그거야...흠흠...”
아무것도 없는 벽을 향해서 고개를 돌리고 헛기침을 하는 디에고를 한심한 눈초리로 봐준 후 지벡은 계속 말했다.
“그리고 아직 우리 중 누구도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 네임드 몹은 맞는지 확인을 못 했잖아. 피해는 나고 있어도 뉴욕이랑 별 다를 게 없는 상황이지.”
“야, 아무리 그래도. 이쪽은 이미 인명 피해가 곧 1만 찍을 판인데 어떻게 같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리고 네임드 몹이 아니면, 굳이 외부 힘을 빌릴 필요도 없잖아?”
“그야 뭐...”
광역으로 전자기기를 망가뜨리는 오러(추정)에, 아마존 강을 그 꼴로 만드는 출력, 인간을 빨아먹는 놈이 네임드 몹이 아니면 더 큰일이겠지만 지벡은 교묘하게 디에고를 추켜세우는 식으로 그의 시선을 돌렸다.
막말로 네임드 몹이 아니라면 도울 이유가 없는데, 아닐 경우에 대해 상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 사실을 알 턱이 없는 디에고는 조금 기를 세워주자, 평소라면 먼저 할 리가 없는 사과를 건넸다.
“내가 크게 오해를 했었군. 그런 고마운 의도로 와준 것도 모르고...미안하다. 요즘 그런 일도 있고, 이래저래 뒤숭숭해서 사정 파악도 안하고 몰아붙이기만 했어.”
“이해해. 뭐, 헬기 편대부터 안 보낸 게 어디야. 나였으면 헬기부터 보내고 몇 번 갈겨준 다음에 이런 자릴 마련했을 거야. 그에 비하면 넌 양반이지.”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저, 그런데 말이야...혹시 단서를 잡은 게 없나? 조사반 애들이 말하기를 언제나 현장에 도착해보면 일을 저지른 놈 말고 다른 이들이 먼저 왔다간 흔적이 있다고들 하던데...”
“아, 그거 아마 우리가 맞을 거야. 솔직히 운이 좋았지. 범위를 좁히기도 전에 몇 번 얻어걸려서 이동루트를 예상까진 힘들어도 거쳐 갔을 거라고 예상되는 구역은 제일 먼저 가볼 수 있었으니까. 정보 교환은 당연히 해야 하는 거고. 애초에 그럴 생각으로 온 거니까. 곧 있으면 어차피 그쪽에서도 입수할 정보인데 숨겨서 어따 쓰겠어. 인원수 단위가 다른데.”
이것만큼은 진심이었다. 이 남미 대륙에서 활동하면서 디에고에게 안 들키는 건 불가능하지만, 피하려면 계속 피할 수 있는 상대와 대면하길 택한 건 디에고가 거느린 것들을 포기하기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협조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면 모르되, 그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지벡은 첫 희생 마을을 목도한 후에 일주일 간 나름대로의 보완을 거친, 네임드 몹 흡혈귀 설을 디에고에게 열심히 설파했다.
중간부터는 시종일관 침묵하던 웨인도 거들 정도로 그들은 꽤 확신에 차있었던 그들은, 한 번의 미팅으로 디에고를 거의 넘어오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로부터 사흘 후, 그 디에고가 입수해온 사진 한 장에 흡혈귀 설을 폐기하게 될 위기에 몰리게 되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