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5화 〉탐식마(貪食魔)
방안은 어두웠고, 연기로 가득했다. 일반인이 아닌 플레이어조차 별 대비 없이 방안으로 들어오면 약 기운에 취해서 다리가 풀려버릴 정도로. 온갖 환각을 일으키는 연기들로 가득했다.
방의 주인 디에고 리베라 브렌트는 이 연무에도 익숙한 지 미동도 없는 덩치 큰 남자를 삐뚜름하게 올려다보며 물었다.
“브라질 3개 지점이?”
“예. 연락은 수금일 5일 전부터 끊겼다고 합니다. 거기에선 그런 일이 비일비재 하다 보니 별 신경 안 쓰다가 수금일에도 연락이 없는 걸 보고 직접 찾아가봤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보니 이 꼴이었다 이거지.”
디에고는 제 책상에 놓인 태블릿 pc를 툭툭 쳤다. 화면 속에는 열대기후의 대명사인 브라질에 어울리지 않는 광경에 출력되고 있었다. 5층짜리 건물을 전부 집어삼킨 커다란 얼음 덩어리.
사진은 한 장이 아니었다. 같은 곳을 여러 각도에서 여러 번 찍기도 했지만, 완전히 다른 건물이 세 곳이었다.
“이거 플레이어거나 괴수겠지?”
“미국이 개발한 신병기가 아니라면 그럴 겁니다.”
“미국이 겨우 마약 딜러 조지겠다고 신병기를 이런 식으로 쓸 리가 없으니 둘 중 하나겠지. 흠...”
디에고는 제 미간에서 턱까지 가로지르는 흉터를 매만지며 생각에 빠졌다. 그의 덩치 큰 부하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플레이어 짓이면 최소 헌팅 레벨 250짜리인데.”
“그렇군요. 그럼 말씀하신 기준에 맞는 놈들 중 행방이 묘연한 놈들을 한 번 찾아보라고...”
“아니, 아냐. 그럴 필요 없어.”
덩치 큰 남자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마저도 금세 사라졌다.
궁금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는 감히 자신의 보스에게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남미 대륙의 최강의 플레이어이자, 남미 대륙의 대부(代父)라고 불리는 그에게 어찌 그런 불손을 범하겠는가.
“데이터베이스에 존재도 안 할 놈을 어떻게 찾아? 불장난 치는 놈들 중에서 이 정도 할 수 있는 놈들은 몇 있는데, 얼음가지고 노는 놈들 중에서는 이런 수준을 가진 놈이 내가 아는 한없어.”
발화계 초능력이나 마법을 다루는 플레이어는 많지만, 빙결계열은 극히 드물었다. 있다한들 하나같이 수준이 높지 못했다.
마법사의 탑에서 연구를 거듭하고 있지만, 그 단서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난제 중의 난제였다.
“내가 모르는 놈이 있다한들, 그런 거물이 움직이면 브라질 지부에서 진작 눈치를 챘겠지. 갑자기 급성장했거나, 각성하자마자 이 수준이었다는 얘기가 되는데...문제는 괴수 짓이라도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는 거지...별 수 없군. 그쪽 애들보고 한 이주 장사 접고 이 잡듯이 뒤지라고 해. 본사 애들도 한 오십 정도 보내주고.”
덩치 큰 남자의 눈이 퉁방울 만해졌다. 이주 간 장사를 아주 접게 되면 그 손실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소속 플레이어들을 움직이면 곱절이 될 것이고.
정말 그렇게 해야겠냐고 묻지 않은 것이 남자가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인내였다.
그런 남자의 마음을 읽었는지 디에고가 남자에게 힐끗 시선을 던지곤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거 같은데 가서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고 전해. 시기를 놓치면 브라질을 놓아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알겠습니다.”
덩치 큰 남자가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방 밖을 나섰다. 그 바람에 방안을 가득 채운 연기가 조금 옅어졌다.
디에고는 서랍을 열어 시가 하나를 꺼내들었다. 내용물이 담배잎이 아니라, 던전에서만 자생하는 금지 식물이었지만 그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성냥으로 정성스럽게 불을 붙인 그는 한 모금 빨아들이곤 내버려둔 태블릿pc를 만지작거렸다.
“이번만큼은 내 감이 틀렸으면 좋겠군.”
디에고는 기사를 읽지도 않고 스크롤을 긁어서 사진이 나올 때까지 쭉 내렸다. 그가 멈춘 지점에는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는 평원 사진이 있었다.
가장 최근에 네임드 몹의 피해를 입은 우크라이나의 평원 사진이었다. 사진 바로 밑에 기재된 피해 규모를 꼼꼼하게 읽던 디에고는 안도의 한 숨과 함께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하긴, 그게 떴으면 이렇게 규모가 작을 리가 없지...흠, 내 감을 걱정해야하는 건가.”
안도하는 것치고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정말로 그리 생각하지도 않았다. ‘대소환’ 이후 아프리카 못지않은 지옥이 될 뻔했던 멕시코를 재패하면서 벼려진 그의 감이 맹렬하게 경고음을 울렸기 때문이었다.
‘대비가 허술해서 다 날리는 것 보단 대비가 과해서 조금 손해 보는 게 낫다.’
디에고는 휴대폰 내의 연락처 목록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거너 건터의 연락처가...아직 번호 안 바꿨으려나?’
지벡 건터가 데스나이트 체페슈라는 괴물과의 전투에서 살아나온 지 이제 두 달 조금 더 지났다는 사실과 그것이 죽을 위기를 넘긴 최상위 플레이어에게 충분한 휴식기간이 아니라는 것은 다급한 디에고의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
드르륵 탁- 배스 타월로 대충 물기만 제거한 후 알몸으로 욕실을 나서던 승하는 거실로 향하는 모퉁이에서 멈칫했다.
씻으러 들어가기 전만 해도 없었던 인기척이 거실에 떡하니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잠깐 멈칫한 승하의 입 꼬리가 이내 슬쩍 올라갔다.
“네가 웬일이야? 연락도 없이 이렇게 불쑥.”
“...연락도 없이 찾아와서 문 따고 들어온 건 미안한데 옷 좀 입을 수 없어요?”
알몸뚱이로 누구보다 당당하게 제 앞에선 승하의 작태에 화련은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매번 잔소리를 해도 이 부분은 고쳐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승하는 어깨를 으쓱 해보이더니 식탁 의자에 걸어놓은 박스티를 걸쳤다. 너무 커서 어깨 한쪽이 다 드러날 지경이었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그녀는 그대로 소파에 앉아있는 화련의 바로 정면에 풀썩 앉았다.
“가끔 생각하는 건데 언니는 좀 심하게 늦게 태어난 거 같아요. 한 3천년쯤. 그 때 살았으면 이런 잔소리도 안 들었을 텐데.”
그 시절에도 가릴 건 가렸다는 반론 따윈 나오지 않았다. 승하는 픽 웃으며 대꾸했다.
“던전 들어갔다 나오면 피부에 닿는 게 다 거슬리는데 어떻게 해? 그 날에는 속옷 입고는 잠도 못 자.”
“안 그런 날도 홀랑 벗고 다니니까 하는 말이죠. 우리끼리만 있을 때 그러는 것도 아니고.”
“또 그 얘기야? 에이, 류 현 걔도 엄마 가슴보다 내 가슴을 더 많이 봤을 텐데 뭐 어때.”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칼리프 클랜의 알 사디크가 가진 갑옷 콜렉션을 두르고 붙어도 다 찢겨나갈 괴물들이 그들의 상대였다.
그런 싸움에서 방탄, 방검복보다 좀 나은 수준의 의복들이 버텨낼 리가 없었고, 최전방에서 싸우는 둘은 세미 누드쇼가 일상이었다. 류 현보다 몸을 보호하는 기술이 부족한 승하는 붙었다 하면 전신 탈의였고 말이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아, 알았어. 알았어. 걔 앞에서는 신경 쓸게. 그래서 무슨 일이야? 왜 또 류 현이 작업하다가 걸렸어? 아, 진척 상황 때문에 그래? 오늘은 독샘이 거의 안 나와서 나중에 한꺼번에 정산하려고 보고 안 한 건데.”
데스나이트 체페슈가 소멸한 지 두 달. 승하는 귀국 후 한반도 내의 블랙 등급 이상 던전들을 드나드느라 꽤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원래라면 감을 유지하는 선 정도만 드나들 예정이었지만, 회색빛 오러의 기능들이 하나 둘 드러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가장 먼저 알게 된 사실은 오러 버프를 받고 있으면 던전을 드나들 때 안게 되는 피로도가 거의 없는 수준이 된다는 거였다.
그것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명확하게 알기 위해서 몇 번 더 드나들다가 또 다른 기능을 알게 되었는데, 이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 할 만 했다. 버프를 받은 상태에서 잡은 괴수에 한해서 류 현의 마력흡수 제한이 풀린다는 것.
류 현이 직접 잡거나, 출입한 던전의 것이 아니어도 괴수 사체를 먹거나 에너지 드레인을 이용해서 마력을 빨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마력 수급에 날개가 달린 셈.
상황이 이렇지만 않았다면 팀 전체가 인당 던전 하나를 맡아서 마력 수급에 열을 올렸을 것이다.
국내 여론도 심상치 않고, 대외적으로 류 현은 요양 중이라는 설정 때문에 그러지 못했지만.
“그건 아니고요. 혜라 때문에 왔어요.”
“응? 혜라가 왜?”
“혜라도 오러 버프 받은 지 거의 한 달 되어가잖아요.”
“한 달 넘지 않았나? 아, 계속 던전 들락거리니까 시간 감각이 망가지네. 그런데?”
“마스터가 이제 슬슬 말하는 게 어떨까 하고 그러시더라고요.”
“...전생 얘기?”
“네. 대놓고 말한 적이 없어서 그렇지 혜라도 레귤러 멤버나 다름없잖아요? 네임드 몹 세 번 뜬 거 전부 다 참여했었고. 마스터도 계속 대충 넘기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야 그렇긴 한데...”
끙. 승하는 앓는 소리를 내며 말을 흐렸다. 그래도 될까? 그녀의 얼굴에는 그런 의구심이 가득했다.
“혜라가 발을 빼고 싶어 하면 저도 반대했을 거에요. 그런데 요즘 혜라 하는 거 보면...”
“어떻게든 따라잡으려고 난리지. 류 현 그놈이 얼마나 괴물인 줄도 모르고.”
“제가 보기엔 언니 따라잡으려고 그러는 거 같던데.”
“아무튼 간에. 오러 버프 때문인지 몰라도 애가 아주 던전에 못 가서 안달이야.”
“불안해서 그래요? 듣고 나면 더 심해질까 봐?”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백혜라는 류 현의 전생 얘기를 듣는다고 그렇게 망가질 애가 아니었다. 적어도 승하는 그렇게 믿었다.
문제가 되는 건 우크라이나에서 있었던 테러가 더 큰 문제지, 전생 얘기를 듣는다고 백혜라의 정신에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승하는 그리 판단하고 있었고, 이 일을 자꾸 미루는 건 다른 문제 때문이었다.
가족 같은 이를, 여동생을 발을 빼지 못하게 될 지경까지 끌고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한구석에 자리 잡은 채 심리적 장벽을 계속 높였다.
이미 그렇게 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임에도 의미 없이 지체 시키고 있는 건 그 때문이었다.
“아니, 뭐 지금 당장 하자는 건 아니었고요. 저번에 애매하게 끝났으니 좀 물어나 봐달라고 하신 거라서. 그럼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할게요.”
“으으응, 고마워.”
드물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승하를 보고 있자니 절로 힘이 빠졌다. 화련은 저도 모르게 따라 쳐지려는 어깨를 의식하며 말했다.
“고마워 할 것까지야. 그리고 독샘 말인데요. 슬슬 우리 내성 시험 해보자는데 잘 아는 업자 있어요? 희석하는 것도 기술이 있어야 한다던데.”
“으음...있긴 한데 아직 일 안 접었을지는 모르겠다. 혜라가 연락처 가지고 있을 테니까. 혜라 오면 물어볼게.”
“...그런 것도 혜라가 관리해요?”
“예전에 따로 살 때 내가 습격당한 적 있는데 그 때 한 번 소실된 이후로는 그렇게 됐어. 그 이후 이런 저런 일이 있어서 나도 그 사람들한테 연락 안 하게 돼서 찾을 일도 없었고.”
“그럼 일단 마스터한테 연락...응?”
휴대폰을 꺼내들던 화련은 갑작스러운 진동에 고개를 갸웃했다.
화면을 조작하던 그녀의 표정이 굳어지자 승하가 그녀의 어깨너머로 슬쩍 고개를 디밀었다.
“무슨 일이길래 그래? 응? 지벡? 저번에 그거 문제 생겼나?”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심각한 일인 것 같아서 보낸다. 바로 그쪽네 대장한테 보내면 화낼 거 같아서.>
메시지 아래에는 여러 장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폭이 200미터는 넘어 보이는 강이 깡깡 얼어붙은 걸로도 모자라서, 폭을 넘는 높이까지 얼음이 솟구친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사진 밑에 자그맣게 해당 지역 지명을 적어놓은 줄글들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브라질이라는 국명을 본 순간 그녀들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눈을 마주쳤다.
‘이거 괴수 짓인데.’
‘설마...네임드 몹은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