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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5화 〉탐식마(貪食魔) (285/429)



〈 285화 〉탐식마(貪食魔)
“와, 그 양반 그렇게  봤는데 꽤 막가파네요. 이거 어떻게 뒷감당 하려고 푼 거지?”

화련은 제 손에 쥐여진 신문을 팔랑팔랑 흔들며 말했다. 신문의 1면에는 인간 노예들을 부리는 라가들의 사진과 인간 노예로 부려졌던 이들의 증언들이 실려 있었다.
기사에서는 아프리카 원정대 소속의 익명의 제보자라고 했지만, 그들은 웨인이 정보를 찔러 준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말고는 이렇게 자세한 수치를, 정황까지 섞어서 제시할  있는 이가 없을 테니까.


“이렇게 난리날 거 모르지도 않았을 거 같은데.”

아프리카 대륙에서 구엘 뒤 굴락까지 잡고  그들에게는 골치는 아프지만, 받아들일 시간이 충분히 지나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있게 된 일.


하지만 대중들은 그렇지 못했다.
네임드 몹으로 인한 피해는 용잡이 팀이 국가단위로 커지기 전에 모조리 때려잡았고, 제 3차 ‘대소환’이 시작되었음에도 유예 없이 튀어나오는 괴수의 숫자는 전생과 달리 소수였으니 대중들이 피부로 위기를 느끼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껏해야 피해 당사국 시민들이나 심상치 않다고 느끼는 정도.

그런 와중에 나온 이 기사는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는 정도가 아니라, 호수 바닥이 뒤집어엎는 것과 다름없었다. 단순히 놀라게 만드는 정도가 아니라, 패닉을 일으켰다.

교회, 성당, 모스크 같이 종교 집회 건물들이 미어터지고 있다는 웃지 못 할 기현상은 대중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보여주는 일면에 지나지 않았다.
원래부터 치안이 좀 불안하던 지역은 벌써 소요사태가 일어났으며, 그것이 점차 국가 전역으로 퍼지는 중이었고 그 소요를 주도하는 놈들 중 몇몇은 ‘위스프’ 같은 조직으로 탈바꿈 하려는 기미마저 보였다.

전생의 류 현이 이때 즈음에  일들을 모두 겪고 난 후였는데, 그 쳐진 진도를 보충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일제히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 한 장과 증언 몇 줄로 일어난 일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스케일이 컸다.

“근데 이거 좀 위험하지 않아요? 마스터가 저번에...”
“예, 전생에서도  비슷하게 진행되다가 한 방에 우르르 무너져서 인류 전선이고 뭐고 다 없어졌죠.”
“그럼 지금이라도 수습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러면 마스터가 기껏 피해 줄이고 한 게...”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그 때는 클랜들이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3차 ‘대소환’이 일어나는 통에 국가 입장에서는 내환과 외환을 동시에 맞아야 했거든요. 클랜들이 내전 없이 힘을 보중한 상태라지만 군벌로 재정비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죠. 경험도, 라인도 말입니다. 그 때와는 많이 다르죠.”

클랜간의 전쟁도, 클랜의 물밑 작업에 잠식된 정부도 아직은 없다.
잠식되어가는 중인 곳은 있을지 모르나, 노골적으로 움직이는 클랜들이 없는 걸로 봐선 아직 준비가  됐거나 사태를 관망하는 걸 택한 것일 터.
사이비의 준동도, 제 2의,  3의 ‘위스프’의 등장도 훨씬 늦거나 규모가 작아졌다.

제 3차 ‘대소환’이 기억하는 것과 다르게 진행되고 있으니 낙관만 할 수는 없기는 했다.
이곳에 와서 과연 국가가 남아있는 게 더 나을까 싶을만한 개소리를 듣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 클랜은 아무리 커져도 일반인을 아우르지 못하니까.’

화련이나 승하, 그리고 이 사태를 일으킨 웨인 크로이츠는 아직 죽지도 않은 놈의 사체 분배가 어쩌고 하는 높으신 분들의 작태에 회의감 비슷한  느끼는 모양이었지만  현은 이미 떨쳐낸 상태였다.
그런 감정을 며칠 동안 부둥켜안고 있기에는 더러운 꼴을 너무 많이 봤고, 해야  일도 많았다. 정말 상상도 못한 수준의 개소리라 사흘 정도는 골머리를 앓기는 했지만.

‘진행이 상당히 늦춰지긴 했지만 낙관할 단계는 아니야. 어차피 그놈들한테는 기대도 안 했다.’


애초에 그는 모두가 사이좋게 손잡고 아지다하카의 머리통을 날릴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저 방해만 되지 않아도 족했다.

자살희망자가 아니라면 결국 괴수들과 맞서 싸우게 될 테고 그들의 역할은 그것으로 족했다. 끝에 가서는 싫어도 협조하게 될테니까.
최소한의 인지도만 확보하고  다른 대외 활동을 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거기에 적극적인 도움은 지금도 열렬하게 구애 중인 미국과 은근하게 지분대고 있는 중국의 것으로 충분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사공이 너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지. 국가 단위의 지원은 필요하지만, 스폰서가 너무 많아지면 귀찮은 일에 휩쓸릴 거고.’

후자는 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전자는 상황을 충분히 직시하고 있는 듯 했으니 하나만 남아도 상관없었다.
전생에서도 거의 간판만 유지하고 있던 미국의 지원 하나만으로도 악룡에게 도달했었으니까.


네임드 몹들이 전생보다 훨씬 강력해졌다지만,  현 본인도 그 이상으로 강해졌을 뿐더러, 이젠 그 강대한 적에게 홀로 맞서지 않아도 되니까.

‘그래도 이럴 줄은 몰랐는데. 웨인 크로이츠.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유명 플레이어 중에서는 단명한 편인 웨인에 대해서  방도라곤 직접 부딪히는 것뿐이었다.
어찌어찌 인연이 닿은 후, 잦은 만남을 통해서 웨인이라는 남자의 성향 정도는 대강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현이 파악한 웨인은 이런 일을 벌일만한 자가 아니었다. 책임감, 성실함, 워커홀릭으로 똘똘 뭉친 남자였으니까.
머리라도 나쁘면 모르겠지만, 이런 걸 던져놓고 여파를 생각 못할 정도로 머리가 나쁜 사람도 아니었다.

‘솔직히 돌아가는 꼴이 나한테 나쁠  없긴 한데...’


사이비들의 발호나, 포스트 ‘위스프’들의 준동은 짜증나는 변수긴 했지만 막을 도리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데 힘없는 사람들이 멀쩡하게 행동하길 바라는 게 더 이상한 일.
컨트롤  수 없는 부분이라  곤란한 면도 있었지만, 아주 나쁜 일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뭐, 어쩌겠습니까. 이미 일은 벌어졌고, 돌아가는 상황도 그리 나쁘지 않으니 최대한 이용해보는 수밖에요.”
“그거야 그렇긴 한데...진짜 그 양반한테 아무 말도 안 하실 거에요?”


화련은 웨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불안한 마음이 더 컸다.
지휘권을 위임받았든 어쩌든, 지금 아프리카에 머물고 있는  천이 조금 안 되는 플레이어를 이끌고 있는 자가 돌발행동을 벌인 거였으니까.


갑자기 눈이 뒤집혀서 더 이상한 짓을 벌이면 이쪽으로 불똥이  확률이 높았다.
아니, 백프로 이쪽으로 불똥이 튈 것이다. 불똥을 두려워하는 건 아니었지만, 예방할  있는 사고는 예방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팀의 목적과 대치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면 더더욱.

“오늘 새벽에 웨인 씨와 잠깐 연락을 했었습니다.”


새벽 이라는 말에 화련의 시선이 뾰족해졌다. 류 현이 찔끔하는 것을 보고 그녀는 한 숨과 함께 손을 내저었다. 말을 계속 하라는 의미였다.

“이쪽을 돕기 위해서 그랬다더군요.”
“도와요...?  난리판이?”

난리판이라는 화련의 표현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지금 한창 난리가 벌어지고 있는 서유럽에서 멀찍이 떨어진, 이곳 우크라이나에서도 혼란스러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지경이니까.


주로 유럽국가의 외교관들이나 국방부 관계자의 입을 거쳐서 말이다.


“여기서 데스나이트를 상대로 시간을 끌기로 한  위기감을 부추기기 위해서였지요.”
“그랬...었죠. 그런데 이건 좀 과한  같은데요.”

실시간으로 땅이 황폐화되고, 가산을  내버리고 피난행렬에 올라야 했던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들으면 펄펄 뛰었겠지만, 화련이 알바는 아니었다.

“제가 하자고 해놓고 이런 소리 하는 것도 웃기지만, 사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나 총리 말고는  효과를 보지 못한 게 사실 아닙니까. 괜한 농토만 오염되고 있는 판국이죠.”
“그것도...그렇죠.”

인접 국가들도 비슷한 수준으로 불안해하며 사냥을 종용했으나 그다지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현이 보기에 그들은 놈이 작정하면 유럽 전역에 할로윈을 선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벡 건터가 너무 잘 막아줬기 때문에 이렇다니, 이걸 대체 뭐라고 해야...’
“이대로는 시간을 한 달을  보낸다고 해도 우크라이나만 황폐화될  별다른 위기의식은 못 심어줄 겁니다. 그렇다고 놈이 날뛰게 내버려둘 수도 없고요.”
“그렇긴 한데, 이러면 민간인 피해가 너무...”

 현으로부터 전생의 이야기를 들었기에 화련은 지금의 혼란이 상당히 큰 민간인 피해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걸 예상할  있었다.
위기감은 전파할  있겠지만, 당장의 반응들을 보면 그 정도가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거부반응이 어마어마했다. 괴수와의 싸움이 아니라, 패닉에 빠져서 인간들끼리 피해가 날 판.

“별  없지요. 전 신이 아니니까요. 흘려야할 피를 적게 흐르게 노력할 순 있겠지만, 막진 않을 생각입니다.”


대꾸하는 류 현의 음색은 일말의 안타까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화련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막을 생각이 없다는 말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에 걸린 표정 때문이었지.

그녀의 마스터는 아주 드물게 이런 면모를 보이곤 했다. 이번이 두 번째.


처음으로 이런 표정을 내보인  세아가 입원해 있던 병원을 습격한 베니 에벌린이 죽었다는 소식을 웨인으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였다.
강도 높은 심문 끝에 그 여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류 현은 이런 표정을 지었었다.

마치 심장에 흐르는 피가 차갑게 식은 이처럼, 피가 아니라 쇳물이 흐르는 이처럼.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무덤덤하게 ‘그렇습니까.’하고 대답하고는 하루 종일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었다.
그 장난기 많은 승하도 그날은 류 현 근처에 얼쩡거리지 않았었다.


화련은 조심스럽게 그의 눈치를 살폈다. 당장 독일 부총리와의 미팅이 잡혀있는데, 그런 상태에 돌입한 것이라면 미팅부터 깨야만 했다.
다행스럽게도 류 현은 다시 입을 떼었을 때 평소의 그로 되돌아왔다.

“어찌됐거나 당장은 이 상황을 유용하게 써먹을 궁리를 하는  낫겠지요. 뒷수습을 하려거든 웨인 씨가 인간 노예 구출을 끝내고 나서야 시도라도 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당장은 웨인 씨에게 연락해서 그만 두라고 해봐야  소용도 없을 겁니다. 이미 혼란은 퍼질 때로 퍼졌으니. 그렇게  이유도 없고요.”
“마스터 뜻이 그러시다면야...제가  드릴 말씀은 없네요. 괜히 심란하게 만든  같고...”
“아니요, 그렇진 않습니다. 저도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이 문제는 그냥 대충 넘길 것도 아니니 미팅이 끝나고 나면 다 모여서 다시 논하기로 하지요.”
“...승하 언니가 또 난리치겠네요.”


류 현은 쓴웃음만 지었다.

그 때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스터, 부총리님을 모시고 왔어요.”


목소리의 주인은 희란이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일체의 떨림도 없이 똑 부러지는 목소리였다.

‘아니, 진짜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나. 왜 나랑 있을 때는 저렇게 못 하는 거지?’
“열려있습니다. 들어오시죠.”

복잡한 속내를 감춘 채 류 현은 백발이 히끗한 손님을 맞아들였다.
독일의 부총리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신사가 오늘 세 번째로 맞이하는 손님이라는 것과, 이 뒤로도 세 명의 손님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수 없는 깔끔한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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