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3화 〉탐식마(貪食魔)
투타타타! 콰앙! 빠지직! [푸흐흥!][케르르륵!][꺅!꺅!]
화약연기가 자욱한 하늘을 밴시가 가로지르며 여자의 비명소리 같은 귀곡성을 내뿜었다. 그 귀곡성에 노출된 이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주저 않는 순간,
쒸이익! 어른 남자 팔뚝 길이의 대침이 밴시의 몸을 꿰뚫었다.
물리력을 무시하는 환수종, 그 중에서도 잡기 까다로운 밴시가 이런 공격에 당할 일은 없었다.
대침이 현철이 아니고, 대침 안에 담긴 마력이 회색빛 오러의 버프를 받은 화련의 것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퍼어엉! 파르르 떨리던 현철 대침이 마력을 폭사시키자 밴시의 몸뚱이가 터져나갔다. 밴시는 단말마조차 지르지 못하고 소멸하였다.
블랙 던전 이상에서만 출몰하는, 그 중에서도 공략하기 괴악하기로 유명한 괴수의 최후라기에는 너무나 허망한 최후.
그 최후를 똑똑히 지켜본 파비오 룸펜은 마른 침을 삼켰다.
‘괴물!’
그것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존재였다. 주인에게로 되돌아가고 있는 현철 대침의 주인은.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어디서 저런 괴물들이...’
용잡이 팀의 명성은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머리통에 제 이름을 박고 나타난 괴물들이 기존 괴수의 틀을 박살내고, 그 김에 각국의 도시들까지 박살내고 다닐 때 홀연히 나타나 그놈들을 박살낸 또 다른 괴물들.
하지만 강렬한 데뷔에도 불구하고 용잡이 팀에 대한 정보가 턱 없이 적었다.
친밀하다는 소문이 있는 협회에서 통제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갑자기 포텐이 대폭발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협회가 웨인 크로이츠의 뒤를 이을 새로운 간판 만들기에 착수한 것인지 소문만 무성할 뿐.
거기에 그들이 때려잡은 첫 번째 네임드 몹인 본 드래곤의 부산물이 일체 시장에 나오지 않음으로서 정체가 더욱 모호해졌다.
거래를 트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될 건수가 사라졌고, 당연하게도 용잡이 팀에 관심을 기울이던 이들은 당혹했다. 그들이 알고 있는 플레이어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 뒤로 대외활동도 딱히 없었기에 그들에 대한 인식은 사실기반 보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의 지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사실은 항공 자위대랑 해상 자위대의 이지스함이 진을 빼놓은 걸 막타만 쳤다더라.
협회가 키운 히든카드가 쉰 명 가까이 되는데, 그 중 간판으로 키우려는 놈들이 그놈들이고 실제로는 쉰 명이 다 달려들어서 반이 죽었다더라.
특이하게도 용잡이 팀에 대한 소문은 일관되게 그들을 깎아내리는 쪽으로만 작용했고, 어느 새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여겨질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파비오 룸펜 또한 그렇게 믿는 이들 중 하나였다.
엘더 리치, 본 드래곤 레이드에 중간까지는 참여했던 지벡 건터가 무섭게 강해지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지만, 이미 박혀있는 선입견은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정황상으로도 그리 생각할 여지가 많아서 더욱 그랬다.
그리고 지금 파비오 룸펜은 과소평가하던 제 생각을 뜯어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상식이 파괴당하는 기분이었다.
파비오 룸펜은 앞에서 괴성을 내지르면서도 저지선을 넘지 못하고 있는 구울 무리를 봤다.
‘이게 세 명의 힘이라고?’
구울 무리를 가로막고 있는 건 파비오 룸펜이 데리고 온 아발론의 클랜원들이었다.
하지만 파비오는 그것이 클랜원들의 힘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인류는 이 언데드 군단을 막지 못한다.
파비오 룸펜이 죽여도 죽지 않는 죽은 자의 군대와 전투를 반복하면서 내린 결론이었다. 적군의 병력은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는데 아군은 야금야금 소모되기만 했다.
죽은 아군이 언데드가 되어서 달려드는 모습은, 그들이 온갖 더러운 꼴을 다 봐온 경험 많은 플레이어가 아니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 경험 많은 플레이어인 그들조차 정신적으로 데미지가 축적되는 것을 피하진 못하였지만.
실제로 며칠 전만 해도 그는 망명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네임드 몹 레이드 한 번 다녀오더니 괴물이 되어버린 지벡 건터의 눈을 피해서 어떻게 도망갈지 고민하는 게 그가 깨어있는 동안 주로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괴물이 된 지벡 건터마저 데스나이트 체페슈의 장난감 취급당한다는 사실이 그의 결심을 굳혀주었다.
그런데 상황이 확 반전한 것이다. 겨우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팀의 합류로.
심지어 그 중 하나는 어지간히 심각한 부상을 입었는지 제 몸 하나도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것도 가장 강력한 전력일 팀 대장이라는 자가.
그럼에도 그들은 합류 첫 날에 매복에 당해 몰려있던 유격대를 구해내고, 지금은 정면충돌 상황을 조율하고 있었다.
부상자 하나를 뺀 네 명도 아니고, 단 세 명이 말이다. 그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파비오 룸펜은 그 사실에서 부조리함을 느꼈다. 강력한 아군의 존재에서 얻을 수 있는 안정감 같은 건 옛날 옛적에 사라졌다.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그런 안정감이라도 들지 않겠는가?
파비오에겐 저들은 자신과는 다른 종처럼 느껴졌다. 안정감보단 그들이 돌변했을 때 맞이할 참담한 상황부터 떠올랐다.
그가 사는 상식의 세계에선 플레이어는 저렇게 강할 수가 없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저 괴물들은 대체 뭐야?’
그 때 쓰린 통증이 올라왔다. 목 아래로 사라졌던 감각이 돌아왔다.
“쓰읍...”
파비오 룸펜은 돌무더기에 쳐 박힌 제 몸을 빼내었다. 돌 표면에는 그의 피가 진득하게 흐르다가 증발하는 중이었다.
그는 제 몸에 박힌 돌들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허리에 박힌 뾰족한 돌까지 빼내고 나자 시야도 트이고 좀 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전히 머리 위로는 밴시 같은 환수종 언데드들이 날아다니고, 산 인간들의 욕지거리보다 언데드들의 귀곡성이 더 크게 들렸지만 파비오는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끼아아악!] 또 한 마리의 밴시가 대침에 맞고 폭발 사산했다.
‘밴시가 대체 몇 마리야. 자리를 옮기자고 해야겠...’
앞을 틀어막고 열심히 칼질 중인 클랜원을 부르려던 때였다.
콰르릉! 마른하늘의 날벼락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벽력이 눈앞을 불태웠다. 파비오 룸펜은 시야가 하얗게 변한 것도 무시하고 그곳으로 내달렸다.
‘하...이건 무용담 풀어도 아무도 안 믿겠는데.’
아주 정확하게 저지선 앞에 푸른 번개가 재차 선을 그어놓은 선이 보였다. 저지선을 두들기던 구울들은 하나같이 시커먼 숯덩이가 되어있었다.
저지선을 유지하던 클랜원 대부분이 코앞에 떨어진 푸른 번개에 놀라 엎어져 있었지만, 번개로 인한 부상은 일체 보이지 않았다.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는 컨트롤 능력.
‘자기 마법도 아니고 아티펙트에 담긴 마법을 저렇게 컨트롤 하면 진짜 마법사들은 뭘 먹고 살라는 거야?’
자신이 마법사도 아님에도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래라면 저만한 아티펙트를 어떻게 훔칠까 고민했겠지만, 이런 걸 한두 번도 아니고 열 번 넘게 반복해서 보고 나니 그런 생각조차 들질 않았다. 어디 비벼볼 구석이 보여야 딴 생각이라도 품지 않겠는가?
‘도망치기 전에 놈들이 와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아님...’
감당할 수 없는 괴물들이, 괴수와 달리 인류 문명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그를 이용해서 끔찍한 계획을 세울 수도 있는 이성마저 있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경악해야 하는가.
파비오 룸펜은 고뇌했다.
물론 인류의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은 아니었다. 저런 괴물들이 설칠 경우 주색잡기로 가득할 자신의 풍족한 미래에 먹구름이 낄 여지가 많기 때문.
굳이 저들이 훼까닥 돌아서 세상을 망치겠다고 날뛰지 않아도 존재만으로도 파비오 룸펜이라는 플레이어의 상대적인 가치는 계속 떨어질 것이다.
한 두수 쳐지는 정도도 아니고, 자신이 한 트럭 덤벼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괴물들이 떡하니 존재하는데 가치를 유지하는 게 이상한 일.
[푸히이이잉!][캭! 꺼르르륵...]
저 멀리서 들려오는 유령마의 단말마가 그의 상념을 깨부쉈다. 파비오 룸펜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몸을 일으키는 클랜원들에게 뒤를 방비하며 퇴각하라는 명령을 내린 후 몸을 날렸다.
출진 때 걸치고 있었던 방어 아티펙트와 할버드는 박살나서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현 상황에서는 상관없었다. 방금 전에 낙뢰에 맞고 탄화한 구울 무리를 제외하면 시야 안에 언데드 부대는 없었으니까.
이 협곡 주변에는 수십만의 언데드들이 득시글거리겠지만, 전투 초기에 협곡 입구를 막아버리면서 밴시 같은 비행형 언데드가 아니고선 전장에 끼어들 수 없게 만들어 두었다.
그래봤자 흙더미와 돌무더기니 무한히 버티진 못하겠지만, 안에 가둔 언데드들은 대부분 소멸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걸음을 재촉하는 그의 눈에 부상자를 추스르면서 퇴각 준비를 하고 있는 다른 팀들이 일명 ‘성수’라고 부르는 잿물을 언데드의 유해에 뿌리고 있는 장면이 들어왔다.
어딘가 여상스러웠지만, 며칠 전만 해도 꿈도 못 꾸던 일이었다. 언데드를 완전 소멸, 또는 부활을 지연시키기 위한 후속조치를 취할 여유 따위는 없었으니까. 중상이지만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이들도 버리고 퇴각하던 게 불과 이주도 안 된 일이었다.
파비오는 아무런 방해 없이 협곡 안쪽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일주일 전 만해도...거너 건터를 데스나이트에게 던져놓고 돌려깎기도 못했었는데...’
모든 게,
캉! 카앙! 후웅! 후왁! 콰르르! 검 한 자루로 협곡의 경관을 바꾸고 있는 네임드 몹, 데스나이트 체페슈를 묶어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대 반경 1km를 커버하던 놈의 데스 오라는 직경이 50미터도 안 되는 공간만을 점한 상태였다. 군단을 유지하는 것보다 저와 제 근위대에게 집중하는 것을 택한 것이다.
한 명의 인간을 상대하기 위해서 말이다.
놈의 데스 오라 때문에 유격대가 얼마나 큰 손해를 본 상태로 진정한 의미의 불사의 군대와 싸웠는지를 떠올리면 있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파비오 룸펜은 저 정도로 농축된 데스 오라의 영향권 아래에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혼자서 하늘을 커버하는 작은 여자도, 푸른 번개와 유성우를 떨어뜨리며 전장을 조율하던 좀 맹해 보이는 키 큰 여자도 괴물이 분명했지만 저 여자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차라리...차리라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군.’
검성, 나승하는 극한으로 농축되어 이젠 거의 검게 보이는 데스 오라 안에서 신나게 칼춤을 추는 중이었다.
후웅! 후칵! 파캉! 동시에 세 개의 대검이 짓쳐들자 승하는 상체를 뒤로 빼어 두 검이 서로 부딪히게 한 후,
스칵! 남은 하나의 대검을 제 검으로 썰어버렸다. 뻐억! 검을 잃은 데스나이트가 옆구리를 차여 바닥에 뒹굴었다.
승하는 놈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앞으로 몸을 날렸다. 잘려나간 왼팔을 잡고 치료 시도 중인 네임드 몹, 데스나이트 체페슈를 향해서!
후왁! 그러나 데스나이트 근위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승하는 허리를 양단하기 위해서 뒤에서 날아드는 대검과 오른쪽 허벅지를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칼날을 피하기 위해 왼쪽으로 굴러야 했다.
몸을 벌떡 일으킨 그녀의 눈앞으로,
후옹! 카앙! 체페슈가 휘두른 대검이 밀고 들어왔다. 한 팔이지만 전력을 다한 풀스윙! 반격을 넣을 여지는 없었다.
정직하게 제 검으로 받아낸 승하의 몸이 훅 날려갔다.
“끄응...익숙해졌다 싶은데 아직도 페이스 배분이 잘 안 되네. 쟤들도 슬슬 내 성향을 파악한 거 같기도 하고.”
흙먼지를 툭툭 털어 일어선 승하는 어느 새 체페슈 앞을 가로막아선 데스나이트 근위대를 보고 혀를 찼다.
놈이 언데드 군단의 유지를 포기하고 데스 오러를 한 점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놈에게 닿는 검격이 확 줄어들었다.
놈을 호위하는 데스나이트 근위대가 한 박자 느리게나마 그녀의 움직임에 반응하기 시작하면서 상대하기 까다로워진 것이다.
놈들을 노려보던 승하는 한 숨과 함께 제 귀로 손을 가져갔다. 귀 안쪽을 꾹 누른 후 그녀가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아. 퇴각하자고 퇴각.”
-지금 바로 갈 테니까 떨어져 있어요.
대답이 곧바로 돌아왔다. 승하는 반도 안 남은 옷을 툭툭 털면서 투덜거렸다.
“내가 무슨 싸움에 미친년인 줄 알아? 떨어져 있으니까 빨랑 오기나 오...”
슈슉!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화련이 허공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귀를 누른 채로 투덜거리던 승하는 투덜거리는 걸 멈추고 화련에게 손을 내뻗었다.
그런 그녀를 화련이 이리저리 살피더니 물어왔다.
거의 벗은 몸이어서 더 잘 볼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승하는 별 부상을 입지 않은 상태였다.
“...부상도 안 당했는데 먼저 부르다니..오늘은 웬일이래요?”
“야, 나라도 두 번 연속으로 당한 걸로 충분하거든?”
“두 번 당했으니 세 번도 당할 수 있는 게 사람이죠. 세 번 안 당할 사람은 애초에 두 번도 잘 안당하고요.”
“뭔가 말에 뼈가 많이 있다?”
“뭐 그래도 세 번은 안 당했으니 언니가 훨씬 낫네요.”
“뭔소리야?”
“그런 게 있어요. 자, 가요.”
슈슉!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두 여자는 모습을 감추었다.
그 길로 파비오 룸펜도 있는 힘을 다해서 자리를 이탈했다. 내빼는 와중에도 파비오는 한 가지 사실을 그다지 좋지 못한 머리에 새겨두었다.
‘오늘도 계속 할 만한 상태에서 뒤로 뺐다. 검성 성질 머리를 생각하면...미리 계획한 거겠지.’
이미 유격대 내에서는 비밀이랄 것도 없는 사실이었지만 파비오는 소홀히 생각할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다.
저런 괴물들과 거리를 벌린 상태면 모를까, 한 배를 탄 상황에서 상황 분석을 게을리 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멍하니 옆에 있다가 괴물이 일으킨 파도에 휩쓸려 죽는 건 사양이었으니까.
‘놈들이 원하는 걸 알아채도 뭘 할 수 있겠느냐마는...’
단지, 자신의 처지에 한탄을 금할 수 없다는 게 서러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