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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7화 〉탐식마(貪食魔) (277/429)



〈 277화 〉탐식마(貪食魔)

놈은 동의할 수 없다는 듯이 흉성을 내질렀지만, 이제 와서 놈의 피어에 주눅 드는 팀원은 없었다. 회색빛 오러가 조금 출렁였을 뿐.
아직 빠지지 못한 원정대 본대 쪽에서는 곡소리와 함께 소란이 일었지만 그것까지 신경 써 줄 정도로 여유롭진 않았다.

[너를 넘어서 화신에 도달할 것이다!]


화신인지 뭔지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꿈도 크지. 류 현은 가볍게 땅을 박차며 내달렸다. 검은 기운이 그의 뒤로 비행운처럼 뒤로 길게 늘어졌다가, 주먹을 움켜쥐자 따라 뭉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거대한 주먹을 이룬 검은 기운은,


꾸웅! 구엘 뒤 굴락의 주먹과 충돌했다. 질량이 거의 없다시피 한 존재의 충돌임에도 터져 나온 마력파동에 공터가 들썩거렸다.

‘응?’


예상과 다르게 놈은 나가떨어지지도, 검은 기운에 곧바로 파 먹히지도 않았다. 류 현은 놈의 머리통 위를 살폈다.
놈의 머리에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할 이름이 노이즈라도  것처럼 심하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설마 이거 더미...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어떻게 봐도 이 존재감은 놈이 분명했다.
제 특성으로 수많은 몸에 같은 힘을 불어넣고 여기저기 갈아타던 놈이었지만, 매개체인 제단이 부서졌으니 더미를 던져놓고 도망가는 건 이제 불가능 할 터.
정보의 출처가 다른 곳도 아니고 구엘 뒤 굴락 본인이니 달리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놈의 정신을 한 몸에 다 담을  있는 육신이면 우리 중 누구든 눈치  챌 수가 없지. 여기에는 그럴 육신도 없고.’

그리 결론을 내린 류 현은 생각하는  관두기로 했다. 대신 이를 악물고 검은 기운을 유도했다. 맞닿은 적의 주먹 위로.
기다렸던 놈의 비명이 울렸다.


[끄아아아악! 노옴...!]


놈이 남은 왼손으로 류 현을 쳐내고자 했으나,

소리도 없이 뒤를 점한 화련과 승하 듀오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쉭! 승하의 검이 놈의 왼팔을 잘라내기 무섭게,

꾸웅! 화련이 ‘프레셔’가 놈의 무너진 자세를 더욱 무너뜨렸다. 정면으로 무너지는 놈의 눈앞에는 검은 기운으로 자신의 오른팔을 반쯤 먹어치운 류 현이 있었다.
정신체인 놈도 육신의 형태를 이룬 이상 멈출 방법은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조금 나른한 얼굴을 한 류 현이 손을 내뻗자 오른팔을 뜯어먹던 검은 기운이 뒤집힌 우산마냥 펼쳐졌고,
콰직! 놈의 머리통부터 명치까지 씹어 삼켰다.

***
[끼리리릭!][췩! 취르륵!][끼꺄아아아아!]투타타타! “끄으으...엄마, 엄마!”“이 씨발 의무병 병신 새끼들아!”

화약 냄새가 걷히면 그 위를 피비린내가 덮었고, 피비린내가 흩어지면 시체 썩은 내가 밀고 들어왔다.
그렇게 온갖 냄새가 켜켜이 쌓인 전장은 그 냄새만으로도 그 참혹함을 논하기 충분해 보였다.

홀로 전선을 감당하다시피 하고 있는 지벡 건터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까앙! 쩌엉! 퍼엉! 지벡은 제 팔뚝 정도의 길이의 검으로 리치의 눈구멍을 찔렀다가 쑥 내뽑았다. 검을 내뽑을  리치의 머리통을 폭발과 냉기가 완전히 박살내놓았다는 건 지벡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이렇게 처리한 놈만 해도 벌써 열  마리째니까.


쩌엉! “끅...!”

옆구리를 찌르고 들어오는 대검을 가까스로 막아내었지만 지벡이 쉴 틈은 없었다. 왼팔에 매어둔 방패가 일격에 아작 났다. 다음은 요행으로라도 막아내는 건 불가능.
순식간에 회수되어 머리통을 쪼갤 기세로 내려쳐지는 대검을 향해 검지와 중지를 겨누었다.

피잉! 뻐벙! 우지직! 가속, 빙결, 상호반발, 파쇄 마법의 콜라보. 탄 한 발에 대검의 내려치려던 데스 나이트의 머리통이 사라졌다.
핏물과 살점으로 얼룩진 갑옷이 스르르 무너졌다.
조금의 여유를 얻은 지벡은 ‘가방’을 조작하며 주변을 살폈다. 사방이 검붉은 기운을 피워 올리는 언데드 뿐이었다. 인간 측 병력이 전혀 안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숫자 차이가 너무 확연했다.

애초에 정면 대결을 위한 병력이 아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지벡 건터가 이끄는 병력은 순전히 유격전을 통해서 적을 지연시키려고 플레이어들로만 이루어진 나름 정예 부대였으니까.


‘염병, 매복이라니 씨발, 씨발!’

그 덕에 구울이나 스켈레톤, 4성 리치는 아주 학살을 하곤 있으나 지벡은  사실을 전혀 기뻐할 수 없었다.
플레이어들이 아무리 초인 소리를 들어도 체력적인 한계가 있고, 잡몹들 사이사이 끼어있는 데스 나이트나 6성급 리치의 존재는 지나칠 정도로  효과를 보고 있었다.

모이면 데스 나이트와 6성급 리치도 충분히 감당 가능한 이들이 사이사이 들어오는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갈려나갔다.
뼈아프다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피해.
개 중에서 압권은 머리통 위에  이름까지 띄워놓고 날뛰고 있는 네임드 몹, 데스 나이트 체페슈였다.
놈이 플레이어 둘을 죽은 생선 토막 치듯이 토막 내는 것을  지벡이 이를 갈아붙였다.

‘젠장할 벌써 얼마나...’

지벡은 한탄하는 대신 아티펙트에 마력을 밀어 넣었다. 양손, 목, 귀, 팔목에 차고 있는 아티펙트들 중 절반이 제각기 빛을 내뿜으며 마법을 자아내었다. 지벡은 능숙하게 그것들을 꼬아 창으로 엮어내었다.
가속, 파쇄, 빙결, 고진동, 스트라이킹, 커터 등 거의 이십 여종에 달하는 마법이 뒤섞인 창은 아주 짧은 손목 스냅만으로도,

키이이이! 뻐엉! 음속을 가볍게 돌파했다.
콰광! 빠지지직! 콰르릉! 아무런 대비도 없던 데스나이트 체페슈를 후려친 창이 폭발했다. 안에 갇혀 있던 마법들이 주변을 들쑤시면서 검은 연기를 뭉클뭉클 피워 올렸다.

하지만 지벡은 환호성을 내지르지 않고 나머지 절반의 아티펙트에 마력을 밀어 넣었다. 그의 눈동자에 푸른 빛이 어렸다.

스팟! 후웅! 서늘한 감각에 목을 뒤로 빼자, 눈썹을 스칠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대검 끝이 보였다. 지벡의 눈동자에 어린 푸른빛이 조금 약해졌다.
데스나이트 체페슈는 그대로 멈추지 않고 대검에 몸을 맡긴 것처럼 허리를 비틀더니 검을 내리쳐왔다.   번의 휘두름이었지만 지벡은 검의 궤적에 밀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마력이 빠진 그냥 검격임에도.


지벡은 눈을 이를 악물고 놈의 간격 안으로 뛰어들었다.  허리보다 더 넓은 폭을 가진 대검이 허리를 끊어 놓기 위해서 날아들었다.

쩌적! 퍼엉! 검이 옆구리를 찢기 10cm전, 그가 잔뜩 발동시켜둔 방어 마법들이 발동했다. 지벡의 몸이 강풍에 채인 연처럼 멀리 날려갔다. 그가 의도한 바였다.
단독으로는 도저히 놈을 묶어둘 자신이 없었기에. ‘이대로 5분만 끌고 튀자. 염병, 멍청한 새끼들 약해 보인다고 다 꼬라박는 병신들이 어디있...’

“씨발...”

코앞까지 다가온 건틀렛에 싸인 주먹은 지벡의 생각을 사정없이 깨부수며 밀고 들어왔다.

우드득! 후드득! 순간 팔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급하게 펼친 방어막은 놈의 주먹을 0.1초도 잡아두지 못했고, 비석을 부수고 쳐 박힌 지벡은 일어서려다가 타는 듯한 통증에 고개를 쳐 박았다.

‘씨발! 씨발! 내가 뭣 때문에 이런 좃같은...’
“끄으으읍...!”

부서진 팔을 타고 올라오는 놈의 마력 때문에 팔이 타는 것 같았다.  끔찍한 건 당장이라도 자신의 목을   있는 놈이 빤히 쳐다보기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눈도, 눈구멍도 없는 놈이니 본다는 말에 어폐가 있을지 모르나, 지벡은 놈의 시선을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놈은 자신을 내려다보면서 웃고 있다.

‘씨발 괴수 주제에 인간님을 가지고 놀아...?’


지벡은 이를 갈았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아티펙트가  녹아버릴 때까지 마법을 퍼부어도 놈을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안 들었다.
아니, 잡지 못할 것이다. 이미 해본 일이니까.  좋은 아티펙트 라인업으로 시도하고도 실패한 일. 그러니 놈도 저렇게 나오는 것이리라.
지벡은 확신했다.

데스나이트 체페슈는 지벡과 처음 격돌한 이후로 지벡과 마주친 전장에서 지벡을 미친 듯이 물고 늘어졌다.

그러나 죽이진 않았다. 지벡이 생각하기에 죽일 기회가 서른 번 넘게 있었음에도 놈은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궁지에 몰아넣으면서 숨통을 끊진 않았다.
적당히 괴롭히다가 지벡이 지쳐서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서 공격해오면 그것으로 물러나거나 뚫린 척 보내주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뚫었다고 생각한 지벡도 이런 일이 반복되니 눈치 채지 않을  없었다.

이번 매복 역습만 해도 그랬다. 놈은 분명 자신을 죽일 기회를 못해도 다섯 번은 봤을 것이다.
적의 병력이 본대에서 뒤쳐졌다고 무조건 최대 전력으로 몰아쳐야 한다고 작전을 강행한, 감지도 안 되는 언데드 군단의 완벽한 매복에 초장부터 정신이 나가버린 멍청이들을 살리느라 빈틈을 한두  보인 게 아닐 테니까.

유격대는 사실상 놈의 자비 하에 살아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적의 자비로 뻐길 생각은 없지만 지벡 자신이 없었다면 놈은 유격대를 한참 전에  자신의 수하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럼 뭐해 씨발, 저놈이 변덕만 부려도 끝인데.’

씨발. 지벡은 다시 욕지거리를 중얼거리며 마력을 휘돌렸다. 어떻게든 놈을 더 물고 늘어질 생각이었다. 자신을 가지고 노는 동안 한 놈이라도  도망갈 테니까. 아티펙트들이 일제히 빛을 뿜었다.
부러진 팔이 타는 정도가 아니라 녹아내리는 것 같았고, 마력회로에 벌겋게 달은 쇳물을 부은 느낌에 그는 욕지기를 했다.


“류 현  개새끼야아!”

저를 이 지옥 같은 곳으로  박은 남자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자신을 불태우던 지벡은,

“와, 진짜 심하네.”

스읏- 콰직! 뻐엉! 뒤에서 불쑥 튀어나와 체페슈의 팔을 날려버린 칼날의 주인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어떤 마법을 조합해서 퍼부어도 꿈쩍도 않던 무적의 장갑을 종잇장처럼 찢어버린 여자는, 그대로 데스나이트를 걷어차서 날려 보냈다.


“야, 아무리  보이는 곳에선 왕도 욕한다지만 너무 노골적인 거 아냐?”

류 현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지벡 건터의 블랙리스트 최상단을 차지하고 있었던 여자, 나승하는 킬킬 웃으며 손을 내뻗어왔다.
그녀의 몸 위로는 회색빛 오러가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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