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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1화 〉탐식마(貪食魔) (271/429)



〈 271화 〉탐식마(貪食魔)

[이름 모를 신격의 집행자여, 짐의 무례를 사과하마.]
[지금부턴 굴라의 사도로서 최선의 다  그대를 삼켜주마.]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는 소리에 짜증을 내려던  현은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거의 끼워 맞추는 것처럼 구엘 뒤 굴락의 주먹이 그의 감지망을 비집고 들어왔다.

꾸웅! 퍼엉! “크으...”

상이한 두 마력이 부딪힌 폭발로 둘은 두어 바퀴 구른 뒤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기분 나쁜 미소를 띄우고 있는 구엘 뒤 굴락에 비해  현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그가 움켜쥐고 있는 오른 손에서 연신 붉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손 등뼈가 깨져서 올라오는 고통은 덤이었다.

‘뭐지? 저 오러 때문인가?’


거기에 재생이 더뎠다. 평소대로라면 개방성 골절이든, 분쇄 골절이든 뼈가 남아있다면 심호흡 하는 동안에 붙어버렸을 텐데, 검은 안개까지 끌어올린 상태임에도 손등이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이 계속 되었다.

하지만 계속 손을 부여잡고 끙끙 거릴 수도 없었다. 순식간에 태세를 정비한 구엘 뒤 굴락이 제 몸을 내쏘았으니까.
눈을 두  깜빡이기도 전에 허리를 뒤튼 구엘 뒤 굴락이 코앞에 나타났다.
감각을 한계까지 끌어올렸음에도 이렇게 보는 것이 고작.
류 현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한껏 뒤로 빼었다. ‘집중하자. 집중, 이번에는 제대로 봐야해.’


뻐억! 퍼엉! ‘이런 씹...!’


맞닿은 면을 따라 제 검은 안개와 피부를 갉아먹는 붉은 오러를 보자 기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검은 안개가 저항했지만, 밀리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의 우세를 확신한 구엘 뒤 굴락이 놀고 있던 손을 뻗으려던 찰나,
이번에는 승하가 손 놓고 있지 않겠다는 듯이 류 현의  뒤에서 솟아올랐다.
카앙! 예기치 못한 습격에 구엘 뒤 굴락의 몸이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검은 검기가 아니라, 직접 후려쳐서 구엘 뒤 굴락을 떨어뜨린 승하는 반쯤 넋 나간 얼굴로  검을 내려다봤다.
검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앞서 두 번 휘두르긴 했지만, 검이 녹아내리는 모습은 그녀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검에 들러붙은 붉은 오러가 불쏘시개에 들러붙은 불티마냥 검을 녹여내고 있었다.
그녀가 검에 둘러놓은 마력검도 같이!
승하가 마력검의 농도를 더욱 짙게 해봐도 조금 지연될 뿐, 검은 계속해서 녹아내렸다.


‘미친...대체 뭐야?’
“저거 대체 뭐야?”
“전들 알겠습니까. 일단 절대 닿으시면 안 됩니다.”
“그건 이것만 봐도 알만 하고.”

승하가 이젠 원형을 알아보기 힘든 검을 내밀자 류 현이 혀를 찼다. 마력검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녹아내리는 꼴을 봐선 보통일이 아니었다.

“...절대 저 붉은 거에 닿으시면 안 됩니다. 되도록 아까 그 검기를 내쏘는 걸로 보조만 해주세요.”
“야, 너 아까 그렇게 당해놓고...”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류 현은 더 말하지 않고 승하에게 방금 부딪힌 왼손을  내밀었다.
완전히  등뼈가 박살나서 피부 위로 삐죽삐죽 튀어나온 모습은 그로테스 했지만, 승하를 놀라게 한 건 다른 부분이었다.
상처부위가 아물 생각은커녕, 들러붙은 붉은 기운에 벌어졌다가 약간 아물었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류 현의 괴물 같은 재생력을 생각하면 있을  없는 일.
그리고 승하에겐 방금 전, 가슴에 구멍이 뚫려서 다 죽어가던 류 현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너...”
“아까 가슴에 구멍에 났을 때랑은 느낌이  다릅니다. 좀 덜하긴 한데, 재생력이 별로인 승하 씨는 아예 닿을 여지를 안 두는  낫겠습니다. 아시겠죠?”
“...너 다시 그  나면 그냥 냅다 튈 거야. 알았어?”


류 현은 쓴웃음을 짓는 것으로 대꾸를 대신했다.

[이야기는 모두 끝났는가?]


류 현이 뒤로 주먹을 휘두른  거의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같이 돌아간 시야에 포착된 건 턱이 빠져라 벌려진 구엘 뒤 굴락의 아가리였다.


콰직! “크윽?!”

주먹이 뜯겨져나갔지만, 덕분에 목에 물어뜯기는 꼴은 면할 수 있었다.  현은 남은 손으로는 승하를 밀치고, 제 몸을 앞으로 날렸다. 제 손을 만족스럽게 씹고 있는 구엘 뒤 굴락을 향해서.


‘에너지 드레인...!’

검은 안개가  현의 의지에 호응하며 미친 듯이 들끓으며 짐승의 머리를 이루고, 그 아가리를 쩍 벌렸다. 조금 전까지 밀린 것을 만회라도 하려는 양.
콰악! 류 현이 구엘 뒤 굴락에게 닿는 것과 동시에 안개로 만들어진 아가리가 콱  물렸다.


[애쓰는구나.]

뻐엉! 다물리기가 무섭게 검은 짐승의 머리통이 터져나갔다. 아가리를 찢고 나온 붉은 오러가 검은 안개를 집어삼켰다.
이전처럼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갉아 먹히진 않았지만, 마력이 쭉쭉 빨려나가는  느껴질 정도였다.
버티는 데는 큰 문제가 없지만, 네임드 몹의 정신 나간 방어력을 뚫는데 핵심인 능력이 계속 막히기만 하니 답답해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나가떨어졌다가 몸을 일으킨 류 현은 꽤나 험악한 몰골이었다. 뜯어 먹힌 왼손이 돋아난 대신인지 옆구리에 바람구멍을 추가한 상태였다.

‘염병...이것도 안 통해..?’
[생텀도 없는 곳에서 꽤나 잘 배운  하다만은, 이런 곳의 집행자가 사도인 짐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겠느냐?]


무슨 개소리냐고 소리치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대신 류 현은 구멍 난 옆구리와 그나마 멀쩡한 오른 손에 신경을 쏟아 부었다.
꾸역꾸역 피를 쏟아내며 덜렁거리는 소장을 내보이던 옆구리에 살이 차오르고, 오른 손에서 일렁거리던 검은 안개들이 스미듯 아주 얇은 막을 이루었다.
막을 이룬 검은 안개는 이내 그의 손 위를 휘돌기 시작했다. 엘더 리치  때 그랬던 것처럼.

‘더 빠르게 더...!’

그러는 동안에도 여유로운 걸음의 구엘 뒤 굴락은 천천히 거리를 좁혀왔다. 처음 드러냈을 때보다 더 강맹한 기세를 보이고 있는 붉은 오러를 두른 채.

끼이익! 키아악! 류 현이 요청하지 않았지만 곧바로 원호가 들어왔다.
그의 등 뒤에서 날아온 검은 검기는 붉은 오러를 가르고, 곧바로 구엘 뒤 굴락의 머리통을 뚫고 지나갔다.
놈의 모가지가 젖혀졌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았을 때, 왼쪽 눈이 있어야 할 자리가 휑했다.

[다시 봐도 놀랍구나. 힘의 크기는 마스터 급인데 기예만큼은 그랜드 마스터라니. 집행자도 그렇고, 짐을 여러 번 놀라게 만드는군.]
[허나 집행자가 우선이지. 거의 오백 년만이로구나.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신격의 집행자라고는 하나...]
[그러니, 조금 비켜 있거라.]

후욱! 구엘  굴락이 손을 휘저음과 동시에 붉은 오러가 뱀처럼 꿈틀거리며 승하에게 달려들었다. 승하가 뒤로 펄쩍펄쩍 뛰면서 검을 휘둘렀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이상 방해 없이 다섯 걸음 거리까지 좁히는데 성공한 구엘  굴락은 여전히 미동도 없는 류 현을 보며 킬킬거렸다.


[어지간히 몰락한 신격인가 보군. 생텀도 없는 걸로 봐선 집행자를 둘씩이나  수도 없을 것 같은데 하나 뿐인 집행자를 이리 내팽개쳐두다니. 이제 부여받은 권능도 다 하였는가?]


구엘 뒤 굴락이 천천히 손을 뻗쳐오자 붉은 오러 또한 그를 집어삼키기 위해 사방에서 조여 들었다.


[하기야 남아있었어도 변하는 것은 없었을 터.]
“...하고 있네.”
[음?]
“까고 있네 이새끼야!”

퍼걱! 뿌북!  현이 외치는 것과 거의 동시에 파육음이 터져 나왔다. 구엘 뒤 굴락의 여유로운 태도와는 달리, 류 현의 오른손은 너무나도 쉽게 놈의 왼쪽 가슴을 관통하였다.
등 뒤로 빠져나온 오른손에는 펄떡펄떡 뛰고 있는 심장이 쥐여진 채였다. 심장이 몸 밖으로 나오자 견딜 수 없는지, 붉은 오러가 훅 꺼졌다.
‘됐다! 이건 먹히는 군.’

류 현은 망설이지 않고 놈의 몸을 걷어찼다.
푸확! 오른 손에서 회전하고 있는 검은 안개가 놈의 몸을 찢어놓았다.
몸 밖으로 뜯겨 나왔음에도 뛰고 있는 심장을 쥐어 터뜨린 류 현은 오른손의 검은 안개를 흩었다. 그는 재생한 왼손으로 오른손을 주무르며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끙...이건 좀 빡세네. 주력으로 쓰는  무리고 결정타용으로나...’
[캬하하하! 커억! 훌륭하다! 부족한 권능을 이런 식으로 채워왔는가.]

심장이 뜯겨서 죽었을, 다음 몸으로 갈아타야 할 놈이 껄껄 웃어젖히더니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렇다면 짐도 그에 응해줘야겠지.]

딱! 손가락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붉은 빛이 떠올랐다.
‘뭐야...?’
붉은 빛을 꺼졌던 붉은 오러가 다시 치솟는 거라고 생각한  현은 뒤로 펄쩍 뛰었지만, 우려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스물에 달하는 기척이 사방에서 불쑥 솟아났을 뿐. 갑작스레 나타난 기척에  현과 승하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구엘 뒤 굴락이 다시금 손가락을 튕기자,
슈르륵! 찌직! 우지직! 공터에 널려있던 놈의 시체들이 녹아 핏물로 화하더니, 놈의 몸뚱이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류 현이 검은 안개를 끌어올리며 대응하려고 했지만 수풀을 헤치고 나오는 또 다른 구엘 뒤 굴락의 등장에 둘은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유리알 같은 눈에는 초점이 없고, 머리통 위로 구엘 뒤 굴락이라는 이름표는 없었지만, 풍기는 기세가 놈과 똑같았다.
놈들은  사람은 보이지도 않는지, 머리통 위에 이름이 떠있는 놈에게 다가가더니,

우적! 빠드득! 빠득! 차례대로 뜯어 먹혔다. 당연히 있어야할 움찔거림이나 고통에  비명 같은  존재하지 않았다.
승하가 류 현의 바로 뒤에 다가와 설 잠깐의 시간동안 놈은 새로 나타난  몸뚱이들을 모두 씹어 삼켰다.
류 현은 감각을 있는 대로 끌어올려 놈의 기세 변화를 살폈지만, 마력양 자체는 아무런 변화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제 몸뚱이를 씹어 삼키고 실실 웃는 놈을 보니 괴수도 정신병에 걸리나 싶을 정도였다.


‘저게 대체 뭐하는...’


[간만이라 잘 될지 모르겠군.]

그러나,


뿌드득! 우지직! 놈의 등을 찢고 살덩이들이 꾸역꾸역 밀고 나오며 그 높이가 5미터를 훌쩍 넘자, 류 현은  생각을 계속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윽고,

[진체(眞體)는 오랜만이라 힘 조절이 안 되니 알아서 잘 피하거라. 기왕이면 오래 즐기고 싶으니.]

놈이 8미터를 훌쩍 넘는 신장을 가지고 자신을 내려다보며 말했을 때  현은 진지하게 퇴각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쿠웅! 콰광! 그런  현의 상념을 짓뭉개듯 놈의 발이 내리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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