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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0화 〉탐식마(貪食魔) (270/429)



〈 270화 〉탐식마(貪食魔)

류 현은 재보는  없이 곧바로 몸을 날렸다. 검은 안개가 유성의 꼬리처럼 늘어졌다. 허공에서 한계까지 허리를 뒤튼 그는 허공을 박차며 한껏 재어놓은 시위를 놓았다.


꾸웅! 구엘 뒤 굴락과 류 현의 주먹이 맞닿은 면을 중심으로 대기가 들썩거렸다.


[무게 잡은 것 치고는 별  없구나!]
“지랄.”

뻐엉! 맞닿은 면에서 마력이 폭발했다. 파쇄권! 그의 성명절기라고 해도 무방한 기술이 펼쳐졌다. 검은 안개라는 치명적인 독니를 달고!


찌직! 치이이! 류 현은 폭발 때문에 저만치 밀려났지만, 남겨진 검은 안개가 구엘 뒤 굴락의 단단한 외피를 비집기 시작했다.
시작은 아주 작은, 살짝 까진 상처였다. 검은 안개는  탐욕만큼이나 악착같이 까진 부분을 헤집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진피층을 뚫었고 그 밑의 뼈와 근육들을 갉아대기 시작했다.

뚜둑! 찌직! 구엘 뒤 굴락이 제 손으로 오른팔을 떼어낼 정도로 지독하게.
떼어낸 팔이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지자 구엘 뒤 굴락이 입매를 비틀었다.

[이러한 재주도 숨겨두고 있었는가. 짐이 얕보인 건지, 아니면 그대가 오만한 것인지.]
‘내가 멍청한 거지.’


 현은 속으로만 대꾸하곤 땅을 박찼다. 검은 안개가 추진제 역할까지 해주자, 손을 보태려던 승하가 공격궤도가 엉킬 것 같아 멈춰서야  정도였다.


찌직! 푸화학! 승하가 확실하게 봤다고 말할 수 있는  두 가지였다.
구엘 뒤 굴락이 갑자기 왼쪽어깨를 휙 젖혔다는 것과, 그 다음순간 그 왼쪽어깨에 달려있던 것이 뜯겨져나갔다는 것.


[재주를 숨긴 정도가 아니구나. 이정도면 반절은...커르륵...]

그리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류 현이 구엘  굴락의 대가리를 잡아 뽑고 있는 모습!


퍼걱! 블록 장난감처럼 뽑아낸 대가리를 류 현은 곧바로 짓밟아 뭉갰다. 승하의 시선이 두부처럼 짓뭉개진 머리통과 류 현을 바쁘게 오갔다.

‘그 단단한 놈을 이렇게 쉽게?’

놈의 몸뚱이에 대고 칼을 휘두를 때마다 철기둥에 대고 맨칼을 휘두르는 느낌이었다. 팔을 잘라내고, 토막쳐내긴 했지만 상당한 소모를 감수해야만 했다.


그 단단한 놈을, 네임드 몹을 저렇게 손쉽게 찢어발기다니.
조금이지만 박탈감 비슷한 것마저  정도였다. 정작  위업을 달성한 류 현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지만.
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거진 수풀을 응시하던 류 현이 툭 내뱉었다.


“더는 안 속는다. 나와.”


승하가 대체 뭐하는 거냐고 묻기도 전에 수풀이 흔들리더니, 회색빛 근육질 몸뚱이가 수풀을 헤치고 나왔다. 어떻게 봐도 구엘 뒤 굴락이었다.


[캬하하, 기대이상이로다. 짐의 혈육이 적게 들어갔다지만 반응조차 하기 힘들 줄이야.]
“저게...어떻게?”

승하는 방금 전  현이 터뜨린 머리통과 걸어 나온 구엘  굴락을 번갈아봤지만 둘 다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시체를 발로 툭 밀어서 뒤집더니 살피는 모습은 문자 그대로 기괴하기 그지 없었다.

‘뭐야, 그 때 그 정령들처럼 복수 개체가 하나인 건가?’


추측거리가 부족한데 머리를 굴린다고 단시간에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승하는 스스로 답을 내는 것을 포기하고 류 현에게서 답을 얻기로 했다.
라가로드니 하는 네임드 몹은 들어본 적 없다고 원정대 조직 단계에서 듣긴 했지만, 그래도 네임드 몹을 상대해본 경험은 그가 압도적으로 많으니.


“다 진짜일 겁니다. 뭘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분신 같은 거라면 승하 씨 검격을 그렇게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죠.”


그런 승하의 기색을 눈치 채었는지  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골치 아픈 것으로 진화했지만 승하는 불평을 내뱉지 않았다.

“그럼 어째야해? 일단 되는 대로 계속 썰어?”
“예상가는 게 하나 있긴 한데...일단은 몇 번 더 잡아야 확신이 설 것 같습니다.”
“좋아. 원래 포지션대로 가면 돼?”
“아뇨, 일단은  혼자 상대해보죠. 승하 씨는 후위를 지켜주세요. 대형은 패턴 F로 바꾸고...”
“F? 진짜?”

 현은  번 말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고개만 끄덕이고 승하의 등을 툭 쳤다. 그녀는  이상 따지지 않고 류 현을 지나쳐서 뒤로 달려갔다.
구엘 뒤 굴락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아직도 박살난 머리통을 이리저리 굴려보는 중이었다.


[이해할 수가 없구나. 혈육이 적게 들어간 몸뚱이었으니 오래 견디지 못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가지만...이리 단시간에 완전히 고갈되다니.]


구엘 뒤 굴락의 유리알 같은 눈이 류 현을 향했다. 눈매가 휘어지며 소름끼치는 미소가 걸렸다.

[그 검은 것은 단순한 오러가 아니야. 그렇지?]

 현은 대꾸하지 않았다. 몸 주변에 꿈틀거리고 있는 검은 안개를 더욱더 끌어올릴 뿐.


***
“F? 내가  못 들은 거죠?”
“아주 제대로 잘 들은 거 맞아. 희란아, 이리와.”
“네엣...”


희란이 옆으로 와서 섰지만 화련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승하를 빤히 쳐다봤다. 승하가 한 숨과 함께 말했다.


“지금 정신없고, 먼저 사고 친 내 말이 못 미더운 것도 이해하는데, F야. F. 늦장부리다가 진짜 빼지도 못하게  수도 있어.”
“후우...”


화련은  숨을 푸욱 내쉬더니 희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마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하얀빛으로 백열했다.
화련과 그녀가 붙잡고 있는 희란이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하자 승하는 웨인을 돌아봤다.

“너...”

꾸웅! 류 현이 괴수와 격돌 중일 공터에서 충격파가 더 터져왔다. 승하가 반사적으로 화련을 올려다봤지만 그녀는 입술만 짓씹을 뿐 공터로 달려갈 생각은 없어보였다. 아직까지는.
대형을 몸을 빼내는 것을 전제로 하는 패턴F로 바꾸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달려 나갔을 기세였다.


“...혜라를 부탁할게. 여차하면 둘이서 퇴로 확보해야 하니 절대로 끼어들지 마. 내  무슨 뜻인지 알지?”
“예, 그런데 정말로...”
“방금 봤을  아냐?”

대꾸는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 승하는 그 이상 덧붙이지 않았다. 웨인도  이상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콰캉! 뻐엉! 굉음이 터져 나오더니 꽤 떨어진 거리임에도 못 볼 수가 없을 정도로 높이 피분수가 솟구쳤다. 보고만 있어도 피비린내가 느껴지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그것을  승하는 바로 공터로 달려갈 것처럼 자세를 잡다가, 움찔하더니 공터 남쪽 방향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그녀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뭐야. 그런 거였어?”


웨인이 무슨 소리냐고 묻기도 전에 승하가 땅을 박찼다.

***


[캬하...커르륵...! 놀랍구나, 놀라워! 그 연약한 몸뚱이에 그러한 권능을 숨기고 있을 줄이야! 짐이 이곳으로 떨어진 것이 굴라의 인도였는가!]


내뿜고 있는 흉흉한 기세와는 달리 구엘  굴락은 처참한 몰골이었다. 오른쪽 쇄골부터 골반 바로 위까지 사라진 몸뚱이는 살아서 웃고 있는 게 신기할 지경.


그에 반해  현은 첫 공격 때 넝마가 된 옷을 빼고는 긁힌 상처도 없었다. 몸 주변에서 일렁거리고 있는 검은 안개의 기세 또한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든 기색이라곤 없었다.

[생텀도, 계약의 흔적도 보이질 않거늘 어찌 집행ㅈ...]

뻐엉! 구엘 뒤 굴락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로켓추진하는 것처럼 검은 안개를 내쏘며 다시금 날아오른  현의 주먹이 머리통을 터뜨려버렸으니까. 파편마저 검은 안개의 손길에 부스러져 내렸다.

“굴란지 뭔지 본 적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으니까 그만 지껄여.”

이미 시체가 된 상대에게 할 필요가 없는 말이었지만 류 현은 굳이 입으로 내뱉었다.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걸 혼자서 놈을 두  고꾸라뜨리고 확신하게 되었다. 놈이 어떻게 계속해서 ‘살아나서’ 기어 나오는지도.

“응?”


생각한 딜레이가 지나도 놈이 새로운 몸뚱이를 이끌고 나타나지 않자 류 현은 머리통이 사라진 시체를 슬쩍 뒤집어 보았다.
보통은 머리통이 터진 시점에서 죽은 게 확실하지만, 심장의 율동과 마력의 순환이 터럭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걸 봐선 괴수 할아버지라도 죽은 게 확실해보였다.

“설마 이새끼가...!”

류 현이 후위를 맡은 팀원들이 있을 방향을 보며 이를 갈던 찰나,

끼이익! 키아악! 푸홧! 뒤쪽 수풀에서 피비린내가 터져 나왔다.
곧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승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녀의 왼손에는 목이 사라진 구엘  굴락의 몸뚱이가 끌려오고 있었다.


“눈치 채셨나보군요.”
“어, 네가 이놈 죽이자마자 갑자기 기척하나가 뒤에서 불쑥 나타나더라고 그거 보고 알았지. 이 새끼  갈아타는 거 맞지? 와, 진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짓을 막 하네. 그렇다고 내구도가 편차가 심한 것도 아니고. 두 번째 꺼 빼면 다 똑같은 거 같은데.”
“진짜 불사신 보다야 낫죠.”
“그거랑 이거랑 별 차이도 없어 보이는데.”
“갈아탈 수 있는 몸이 무한대는 아닐 겁니다. 다른 네임드 몹 중에서 머리통이 날아가도  번까지 회복하는 놈도 보긴 했는데 결국은 천천히 약해졌으니까요. 당장은 약해지는 기미는 안 보입니다만...분명, 무슨 조건이나 패널티가 있을 겁니다.”
“세 번이라니 으엑...얘기 들을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진짜 어떻게 혼자서 그걸 견딘 거야?”

류 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땐 저 말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그건 지금도 그렇잖아. 뭐야, 잘난 척 하는 건데 내가  알아들은 건가?”
“무슨 그런 말을 그렇게...”

그 때, 수풀이 열리며 회색빛 생명체가 걸어 나왔다. 머리 위의 글자를 살필 것도 없이 구엘 뒤 굴락이 확신했다. 두 사람은 신호도 주고받지 않고 동시에 뛰쳐나갔다.


쉭! 뻐억! 파쇄권과 검격이 각각 놈의 코와 오른쪽 폐를 짓뭉개놓았다. 놈이 그 짧은 순간 몸을 뒤튼 덕에 숨통을 끊는데 실패한 것.
그대로 구엘 뒤 굴락의 몸이 수풀 뒤편으로 사라졌다. 승하가 당장 쫓으려고 했으나, 류 현이 손을 내저었다.


‘몸을 계속 갈아타는 것만 해도 사실상 준 불사에 가깝긴 하지만...놈의 패가 이게 다 일 것 같지가 않단 말이야.’

그렇다고 몰아붙여서 잡아 죽이자니, 당장은 죽일 수도 없는 놈이었다.

[그랜드 마스터와 집행자라,  년이 넘는 세월동안 짐조차 보지 못한 조합이구나. 이런 낙후된 세계에 그랜드 마스터는 둘째 치고, 집행자가 존재할 줄이야.]

다시 수풀을 헤치고 나온 구엘 뒤 굴락은 빈말로도 상태가 좋지 못했다. 코를 중심으로 얼굴이 함몰되었고, 옆구리에서 오른쪽 폐를 사선으로 가로질러 올라가는 검상은 입을 열 때마다 쉭쉭 거리는 소리가 나오게 만들었다.


[권능을 아낄 때가 아니었군.]

후욱! 화르르! 두 사람은 순간 구엘  굴락의 몸에 불이 붙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열기도 느껴지지도 않고, 놈이 상처가 전보다 훨씬 빠르게 아무는 것과 놈의 기세가 치솟기 시작한 것을 보고 뭔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인지 몰라도, 저것이 놈의 힘을 증폭시켜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불꽃처럼 붉은 오라에 휩싸인 구엘 뒤 굴락은 쇠 긁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름 모를 신격의 집행자여, 먼저 짐의 무례를 사과하마.]
[지금부턴 굴라의 사도로서 최선의 다  그대를 삼키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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