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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9화 〉탐식마(貪食魔) (269/429)



〈 269화 〉탐식마(貪食魔)

[보기보다 성질이 급하구나!]


구엘  굴락은 달려드는 류 현을 마다하지 않았다. 왼팔을 푸는 것처럼 슬쩍 흔들던 구엘 뒤 굴락은 그대로 채찍처럼 왼팔을 휘둘렀다.
후웅! 그 의지에 응하듯 고무줄마냥 주욱 늘어난 왼팔이 류 현을 공중에서 잡아채었다. 구엘 뒤 굴락의 입가에 어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스칵! 구엘 뒤 굴락은 별안간 뒤로 굴렀다. 그의 선택이 옳았음을,


푸확! 털썩 끊어진 왼팔과 그의 목구멍을 타고 치솟는 피거품이 증명해주었다. 몸통을 직접 타격당한 것이 아님에도 내상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 너도 있었지.]


구엘 뒤 굴락은 칼을 휘두른 자세 그대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승하를 보며 웃었다.  왼팔을 자르고 머금은 핏물이 칼날을 타고 흘렀음에도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그 사이 몸을 일으킨 류 현과 승하는 경계를 늦추지 않은  주고 받았다.


“되겠습니까?”
“솔직하게 말해도 돼?”
“예.”
“세 번 이상 부딪히면 칼 버려야 할 거 같은데. 날이 다 찌그러져서 날붙이로는 의미가 없어질 정도야. 저놈이 공격력은 어느 정도 될지는 몰라도 정면에서 공격을 받아내면 한 번도 될까 말까?”
“...사전에 얘기했던 대로 가죠.”

검이 부족할 일은 없겠지만, ‘가방’에서 꺼내는 텀 자체가 손해였다.
인간과 그리 차이나지 않는 체적을 가졌다면 더더욱.

‘생각보다 훨씬 더 작아. 커버에 집중해도  위험하겠는걸.’
[뭘 그리 속닥대는가?]

후웅! 몸을 뒤로   현이  것은 둘 사이를 갈라놓은 붉은 채찍이었다. 정확히는 채찍처럼 늘어난 라가로드 구엘 뒤 굴락의 팔!
스칵! 승하는 방금  자신이 보여준 위력을 무시하는   행동에 다시금 구엘 뒤 굴락의 팔을 끊어놓았다.

[크르륵...캬하하. 예리함은 네가 제국의 그랜드 마스터들 보다 낫구나!]

구엘  굴락은 승하의 검격에 피거품을 토하면서도 웃었다. 웃으면서 다시 돋아난 왼팔을 채찍처럼 이번에는 횡으로 휘둘러왔다.
승하와 류 현은 펄쩍 뛰면서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10여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자라나 휘둘러지고 있는 왼팔을!
말도  되는 동체시력을 가진 둘은 회색빛 왼팔이 이음새 부분보다 좀  하얗고, 흉터가 없다는 사실까지 볼 수 있었다. 어떻게 봐도 새로 돋아난 새살같은 모습.
둘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품었다.


‘무슨 재생속도가 이따위야?’
류 현도 집중하면 이정도 급속재생 정도는 가능하지만, 속 빈 강정이나 다름없는 상태로만 가능했다. ‘강림’을 했을 때나 가능한 무지막지한 재생력.

끊어진 오른팔의 절단면에서 살점이 부글부글 끓으며 점점 돋아나고 있는 것까지 확인한 두 사람은 더 이상 이에 관해서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특히 승하는 한 가지만 남겨두고 머리를 싹 비워버렸다.
‘아무리 재생력이 미쳤어도 목을 따면 그만이지!’


머릿속을 비워낸 만큼 가벼워진 승하는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렸다. 구엘 뒤 굴락이 순식간에 재생한 오른팔을 내쏘고 있음에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콰직! 치이익! “크으으...”


내쏘아진 주먹은 승하의 앞에 불쑥 솟아난 류 현을 뚫지 못했다. 가드를 올린 팔에 닿자마자 주먹이 찰흙처럼 터져나가더니 곧바로 송곳처럼 바뀌어 그의 가슴을 꿰뚫었지만, 류 현은 뚫리지 않고 버텨내었다. 승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신경을 거머쥔 검에 쏟아 부었다. 호흡에 녹아 흐르던 마력이, 눈동자에 맺힌 살의가, 그녀의 두 팔에 축적된 경험들이 칼날 위에 칼날을 덧씌웠다.


끼이익! 뻐엉! 검은 선이 내달렸다.
거침없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검은 선은 그 흉흉한 기세대로 구엘 뒤 굴락의 목을 터뜨려버리더니, 반전해서 확인사살로 심장이 있을 왼쪽 가슴마저 터뜨려버렸다.
정면에서 핏물을 뒤집어썼지만 승하는 눈을 감지도, 멈추지도 않고,

스칵! 카각! 서걱! 겨드랑이를 올려 베고, 허리를 끊고, 이미 반은 날아간 몸통을 반 토막 내었다. 공중에서 다섯 토막 난 구엘 뒤 굴락은 단말마도 내뱉지 못하고 바닥에 쏟아졌다.
그에 뒤따르듯이 승하의 검이 쨍하는 소리와 함께 깨져나갔다. 그녀가 예상했던 것처럼 마력검으로도 도저히 커버가 안 되는 단단함 때문이었다.

‘진짜 더럽게 단단하네. 장기전으로 갔으면 내가 먼저 방전됐겠어.’

거의 단칼에 네임드 몹을 끝장내놓은 이답지 않은 감상이었으나, 승하는  사실에 고무되진 않았다.
류 현이 아니었다면 동료  명을 희생하고 잡은 셈이 되었을 테니까.
아니, 그러고도 아직 못 잡았을 확률이 높았다.

“...이겨놓고 이게 뭔 궁상이래. 야, 류 현 너 괜찮...너  그래?”

쥐고 있던 칼자루를 휙 던져버리고 뒤돌아선 그녀는 예상치 못한 광경에 표정을 굳혔다.
류 현이 꿰뚫렸던 가슴을 부여잡고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오른쪽 가슴에 뚫린 거의 주먹만 한 구멍에서 선혈이 꾸역꾸역 쏟아져 내렸다. 땅을 적시자마자 피가 증발하는 그 기괴한 광경에서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점이라면 아직도 상처가 막히지 않았다는 것.

평소라면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괴물 같은 재생력을 가지고 있지만, 출혈로 인한 빈혈은 피할 길이 없어, 출혈이 심한 급소 부위는 대충 외형만이라도 채우고 보는 류 현이였다. 최소한 상처 자체는 그냥 두더라도 출혈은 어떻게든 막아왔었다.
싸움도 끝난 판국에 지금처럼 얼굴이 허옇게 질릴 때까지 상처를 그대로 둘 리가 없는 것이다.


“야,  왜 그래? 어어?”
“재생이...커헉...”

죽은피를 한 움큼 토해내고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는 모습은 낯설다 못해 두려움까지 불러일으켰다.

허리가 반쯤 패이고, 팔 하나가 날아가도 괴수를 잡겠다고 미친놈 마냥 달려들던 류 현이 아닌가?
그 류 현이 멀쩡하게 일어서서 멀뚱멀뚱 쳐다보는  아니라 상처를 어쩌지도 못하고 쓰러지고 있었다.

승하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무너진 류 현을 끌어안고 있는 상태였다.


“야, 류 현? 류 현? 정신 놓지마! 일단 상처를 막아야...”


류 현과 맞닿은 가슴께가 피로 축축해졌다가 피가 증발하면서 말끔해지길 반복했다. 그 기괴한 감각은 승하로 하여금 좋지 못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승하는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조작해서 물약점토를 찾으려고 했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화련과 희란이 뛰어오며 뭐라고 소리 질렀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승하가 제  뒤에 드리운 살의를 반 박자 느리게 느낀 것도  때문이었다.


쉭! 우지직! 퍼걱! “어...?”

갑자기 가슴을 밀쳐져서 나뒹굴었다. 승하는  바퀴 구른 후에 거의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몸을 일으켰으나, 그녀의 정신은 아직도 뒹구는 중이었다.
그녀가 느끼는 혼란은 가슴의 구멍 하나를 어쩌지 못하고 허덕이던  현의 몸에서 오른팔이 떨어져나가고, 쇄골부터 명치까지 갈라진 치명상이 추가된 것을 확인하자 머릿속의 태풍이 되었다.
그의 앞에 서서 살점이 덕지덕지 묻은 제 손을 핥고 있는 구엘 뒤 굴락을 보자 그 태풍은 그녀를 미쳐 날뛰게 만들었다.

“이...씨발!”

키이잉! 끼아악! ‘가방’에서 검을 꺼내는 것과 내휘두르는 건 거의 동시에 행해졌다.
기세를 가다듬는 과정도 없이 마구잡이로 휘둘러 핏물이 올라왔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승하는 팔이 터져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검은 검기를 마구잡이로 내쏘아내었다. 세 번째에 칼이 터져나가지 않았다면 정말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콰릉! 승하가 새로운 검을 꺼내는 잠깐의 공백을 벽력이 찢어발기며 끼어들어왔다.
꾸웅! 그 뒤를 무형의 압력이  현을 감싸듯 그의 주변을 짓눌렀다.
승하는 류 현의 주변 땅이 내려앉는 모습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그제야 마력과 살의를 있는 대로 흩뿌리며 달려오고 있는 두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오지...”

말을 하다말고 입을 닫은 승하는 극심한 갈등을 느꼈다.


‘젠장, 말려야 하는데. 말한다고 들을 리가 없지...’


토막을 내서 죽은  알았던 놈이 무슨 수작을 부린 건지는 몰라도 멀쩡하게 살아있으니 근접계열이 아닌 둘이 다가오는  말려야 했다.


‘나부터가 정신 나가서 그 난리를 쳤는데 쟤들이 들을 리가...’


하지만  밖으로 만류의 말을  수가 없었다.  뒤집혀서 저렇게 달려오는 데 목소리가 들릴 리도 없고, 자신부터가 정신 줄 놓지 않았는가?


누구도 대놓고 말한 적은 없지만, 팀 내에서 류 현 다음 서열은 분명히 승하였다.
승하가 내부 서열가지고 으르렁거리는 성격이 아니고, 창립 멤버라고 할 만한 둘도 텃세는커녕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니 류 현도 그냥저냥 넘어간 것.
거기다가  팀처럼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상황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갔으니 그런 걸 의논할 정신도 없었다.


팀원 모두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류 현에게 문제가 생겼을 시에 승하가 팀을 이끈다는 인식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뭐라고 하기가 힘들었다.
자신부터가 책임을 잊고 날뛰었으니까. 지금은 뭐라고 하든 자리를 지키라는 지시는 귀에 들리지 않을  같다는 생각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하긴 했지만.


‘일단 류  데리고 뒤로 빠지라고 해야...’


승하는 입으로 뭐라고 하는 대신 구엘  굴락에게로 달려들기로 했다. 류 현의 상태가  모양이니 누가 시간을 버는 사이에  번 빠져야만 했다.
감정 때문이 아니라, 류 현이 없이 놈을 잡을 자신이 없었다.


‘잡아도 잡은  아닌 게 되겠지. 본대 피해 계산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일단 빠져야 해.’


승하가 둘에게 소리치려던 때였다.

“오지마!”

전장에 자리한 이들의 시선에  곳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제 가슴을 쥐어뜯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마스...”
“오지 말라고! 자리 지켜! 콜록!”
“야! 류 현, 너  그래!”


뜨득! 찌직! 류 현은 만류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가슴에 난 구멍에 손을 밀어 넣더니, 환부를 사정없이 쥐어뜯었다.
그를 향해서 달려오던  여자는 물론이고, 상황을 따라가질 못해서 서있던 웨인과 백혜라도 그 모습을 보고 질겁했다.
이미 넝마가  남자가 제 몸을 쥐어뜯는 모습은 참혹하다거나 끔찍한 걸 넘어서 새로운 단어가 필요해보였다.

희란은 그 자리에서 기절하지 못해서 서있는 수준이었고, 화련은 놀라 멈춰 섰던 발걸음을 그를 말리기 위해서 떼려다가 류 현의 시선을 받고 우뚝 굳어버렸다.

“자리 지켜요. 지킨다고요. 지키고 있을 테니까 제발...!”
“야야, 너 진짜 왜 그래?! 일단 좀 진정하고 응?”

다른 이들이 보기에 류 현의 갑작스러운 행동은 자해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과다출혈로 정신을 놨던 사람이 왜 저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제정신으로 하는 짓이 아니라는 것이 모두의 생각이었다.

승하와 화련의 만류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류 현은 제 가슴을 뜯어내는 짓을 계속했다.
살점을 한 움큼 뜯어낼 때마다 자지러지는 비명이 들려왔지만 류 현은 기어코 환부 주변을 전부 쥐어뜯어내었다.

“아아아...”
“진짜 하다하다...콜록...”
‘내 몸을 쥐어뜯는 지랄을 하게 되네. 염병...파먹히기도 엄청 파먹혔군.’

기침과 함께 검은 피가 주륵 흘러나왔다. 계속 들려오던 비명이 숫제 울음소리 비슷한 것으로 바뀌었으나 류 현은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흐읍...”

구멍 난 가슴에 손을 얹고 마력을 밀어 넣자 환부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살점이 거품처럼 자라나, 구멍을 메워갔다.
 모습을 봤는지, 구멍이 채워짐과 함께 울음소리 같은 것도 같이 멎었다.

“후우우...”

구멍이 채워지자 류 현은 길게 한 숨을 내쉬며 저가 뜯어낸 살점들을 내려다봤다. 뜯어낸 살점들은 부글부글 끓더니 꺼멓게 타들어갔다.
어떻게 봐도 정상과는 거리가 먼 모양새.
재가 돼서 흩날리는 살점이었던 것들을 내려다보며  현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작게 중얼거렸다.
다름 아닌 자신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너무 자만했어. 아무리 방심을 유도하려고 그랬다지만 그냥 맨몸으로 네임드 몹 공격을 받다니 진짜 미친 거지. 류 현, 이 미친놈아 정신  차리자.”
“류 현...?  괜찮아?”

승하의 눈에는 큰 부상으로 인한 정신착란이 온 것처럼 보였지만.


“예, 괜찮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류 현은 덜렁거리고 있는 오른쪽 어깻죽지를 왼손으로 움켜쥐더니  잡아당겼다. 치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쇄골에서 명치까지 이어진 절단면이 아물었다.
떨어진 오른팔까지 주워든 류 현은 붙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팔꿈치 절단면에 갖다 대었고, 오른팔은 그대로 붙어버렸다.

“잘 붙죠.”


다른 이들에게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것까지 보여준 류 현은, 팔짱을 끼고 그 모습을 구경하던 구엘 뒤 굴락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구경은 다 했나?”
[놀랍구나. 짐의 혈육을 꽤 섞었는데 버텨낼 줄이야. 거기다가 저렇게 공멸해버릴 줄은 짐도 예상치 못했느니.]
“나도 예상 못했다. 날 안쪽에서부터 뜯어먹을 수 있는 새끼가 또 나올 줄은. 아주 고맙다. 덕분에 아주 정신이 번쩍 드네.”
[호오, 그대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가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인가? 한  보고 싶구나.]
“못 봐.”
[그게 무슨 의미지?]
“나 뜯어먹으려고 했던 놈들은 다 나한테 먹혔으니까.”


후왁! 그 말을 신호로,  현의 몸 전체에서 검은 안개가 훅 뿜어져 나왔다.
라가로드 구엘 뒤 굴락은 검은 안개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닿기도 전에 저만치 물러섰다.

순식간에 거의 오 미터 높이까지 솟구친 검은 안개가 좌우로 퍼져나가며 주변을 장악해갔다.
검은 안개를 전신갑옷처럼 두른 류 현이 으르렁거렸다.

“너도 뜯어먹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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