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4화 〉탐식마(貪食魔) (264/429)



〈 264화 〉탐식마(貪食魔)
“꺄악!”


 현은 텐트를 찢어버리다시피 하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화련의 텐트로 뛰어든 류 현이 목격한 건 예상과는 조금 다른 광경이었다.


증언을 듣기 위해서 불러들인  여자가 거품을 물고 몸을 뒤틀고 있었다.

“끄으윽...”
“끄르륵!”
“화련 씨?”
“아, 마스터? 이 분들이 갑자기 이렇게...”
“일단 사람을 불러오겠습니다. 그럼.”

화련과 함께 증언을 듣고 있던 여성은 류 현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그 말을 남기고 뛰쳐나갔다.
 현은 화련이 바닥에 널브러져서 경련하고 있는 두 여성을 부책하려는 것을 손을 내저어 말렸다.

“두 분   들리십니까? 들리시면 눈을  번 깜빡이십시오.”


반응은 없었다. 두 여자는 이내 경련이 잦아들기 시작하더니, 코와 입에서 피를 쏟아내었다. 류 현은  여자의 목에 손을 갖다 대어 보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쪽도 똑같군요. 혹시  분들이 네임드 몹을 봤다는 얘기를 했습니까?”
“네? 네, 그걸 어떻게...”
“그 직후에 고통을 호소하다가 이렇게  거고요?”
“맞아요. 네임드 몹을 봤다는 소리를 하시더니 라가로드 어쩌고 하다가 갑자기...”
“이름은  들으신 겁니까?”
“이름요? 아뇨,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쓰러지시더니...그런데 죽은 거에요?”
“예. 그 네임드 몹이 가사상태로 위장시키는 마법을 쓰지 않았다면요. 아무래도 캠프 단위로 묶어서 특정 단어를 말하고 나면 터지는 시한폭탄 같은데...”

시한폭탄이라는 말에 화련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라가 자폭병 때문에 류 현이 혼자서  고생을 하고 있지 않은가?

“시한폭탄이라뇨? 마스터 쪽 텐트에는 다른 일이라도 있었나요?”
“이쪽이랑 비슷합니다.  서튼 씨는 전할  다 전하고 나서 이렇게 됐다는 게  다르지만요.”
“그럼 그쪽도...”
“예, 그래서 연동되는 시한폭탄이라고 한 거고요. 아무래도 놈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머리가 잘 도는 놈인가 봅니다.”


침착을 가장해서 덤덤하게 말했지만  현의 머릿속도 복잡했다.
‘말하는 네임드 몹은 벌써 두 마리째고, 그 두 마리째는 아예 인간의 전술을 흉내 낼 정도란 말이지. 하, 전생에선 아지다하카도 공장지대 폭격하는 정도가 전부였는데.’

“여기 이분이 응급학과 출신이시라고...죽었습니까?”
“예. 뭘 해보기도 전에.”


마침 사람을 불러온다던 대원이 의료반으로 보이는 흑인 여성을 데리고 들어왔다. 바닥에 널브러져있는 두 여성을 보고 그녀가 물었다.

“...일단 사망 확인이라도 해주시겠습니까? 제가 나가자마자 숨이 끊어진 겁니까?”
“아뇨, 제가 오고 나서  1,2분간은 숨이 붙어있었습니다.”


대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체를 내려다보며 굳어있던 의사의 등을 툭 치더니 사망확인서를 작성하도록 종용했다.
대원의 지시에 따라 사망확인서까지 작성한 의사는 그것을 들고 텐트 밖으로 나갔다.


류 현은 반쯤 넋이 나간 화련을 자리에 앉히고, 의자를 끌고 와 자신도 위에 주저앉았다. ‘한 것도 없는데 진이 빠지는 군. 젠장, 이걸로 숨기고 가긴 이미 글렀고.’

“저기 죄송하지만 제가 이름이 기억이 안나서...”
“제인 밀러. 밀러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예, 그럼 밀러 씨. 가서 호지슨 씨와  부대 부대장급들을 좀 불러주실 수 있겠습니까? 호지슨 씨부터 불러주시고 부대장들은 천천히 불러주셔도 됩니다.”
“정확히 어느 정도 지연되길 원하시는지?”
“...30분.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방금 나간  분도 제가  동안 데리고 있지요. 그럼 되겠습니까?”
“예, 그래 주시면 더할 나위 없지요.”

제인 밀러는 깍듯하게 경례를 올려붙이고 텐트를 나갔다.
곧바로 들려오는 뛰는 소리에 류 현은 의자에 더욱 늘어졌다. 호지슨이 빠릿빠릿한 부하를 두었구나 하고 생각하던 류 현은 골몰 중인 화련을 보고 툭 내뱉었다.

“자리를 옮기죠.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도 좀 그렇고, 호지슨 씨가 오시면  좁을 것 같고요.”
“아, 네. 그럼 마스터 텐트로?”
“예, 그리로 가죠. 그리고 화련 씨.”
“네?”
“당장은 신경 안 쓰실 수 없겠지만, 최대한 생각  하시는  나을 겁니다. 그건 계속 생각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요. 우리 처지도 잡혀 있는 민간인들 신경 쓸 처지도 아니고요.”
“...노력해볼게요.”

화련은 그렇게 대꾸하면서도 머릿속이 복잡한 얼굴이었다. 류 현은  말은 많았지만 그만 입을 다물기로 했다.
오늘 화련이 아니어도 이 일로 열변을 토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류 현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그가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


“아니 그럼 뭐 어쩌자는 겁니까? 우리가 여기에 왜 왔는데요?”
“괴수 잡으러  거지, 인명 구조하러 온 게 아니죠. 브리핑 때 뭐 들으셨습니까?”
“그 쪽이야 말로 브리핑 때 졸았습니까? 생존자가 있으면 보호하는 걸 우선한다! 지나봤자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까먹은 건지.”
“젠장, 그건 인사치레나 다름없는 소리였다는 걸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았던  아니요.”
“그렇다고 생목숨을 못 본 척 하자는 겁니까? 당신도  시체들 봤잖소, 괴수놈들이 이제 아예 사람 몸뚱이 안에 시한폭탄까지 설치해놓은 거.”
“그렇다고 우리가 그 사람들 빼내온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원정대에 그 많은 마법사 중에서 눈치 챈 사람이 하나 없는데!”
“아니, 가만히 있는 우리는 왜 걸고 넘어져요!”
“걸고넘어지는 게 아니라, 의미가 없다는 거지요. 의미가! 부검 해보셨다니 말씀해 보시죠, 발동하기 전에 봤으면 살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 그건 좀 더 면밀히 살펴봐야만 하는...”
“젠장, 그건 당신들 마법사들이 당장은 안  때 하는 얘기잖소. 보쇼, 구해놓아도 죽을  뻔히 아는데 구해서 뭘 어쩌겠다는 겁니까? 장례 치러주겠다고  고생을 사서하겠다는 거요? 우리 앞에 데려다 놓으면 메시지인지 뭔지 전하고 죽을 거 뻔히 알면서?”
“아니 우린 그런 뜻이 아니라...”

난장판. 난장판이었다.
본국에서는 수백억, 수천억의 자산가나 상당한 수준의 무력을 갖춘 단체의 수장들이 서로 소리를 질러대며 회의장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물리적인 행사만 없지 곧 그것까지 할 것 같은 분위기에  현은  숨을 푹 내쉬었다.
서로 목소리를 높이느라 정신이 없는 좌중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마력까지 담아서.

들끓던 분위기가 무색하게 류 현에게로 시선들이 몰렸다.


“이야기들은 다 나누셨습니까? 이렇게 서로  말들이 많으신데 제가 미쳐 눈치를 못 채서 죄송하군요.   자주 이런 자리를 만들어 드렸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아니, 우리는 그게 아니고...”
“거기서 그냥 폼 잡고 앉아만 있는데 우리가 뭘 더 어떻게 해요?”

뾰족한 목소리가 찌르고 들어왔다. 류 현은 눈을 굴려 시선만  곳을 향했다. 당장은 희생자들의 몸에 가해진 마법을 파훼할 수 없다던 그 마법사였다.

“먼저 떠들기부터 하시기에 제가 생각 못한 해결책이라도 있으신 줄 알았지요.”

마법사는 헛기침을 흠흠하더니 그 길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현은 좌중을 한 번 돌아보았다. 하나같이 그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이 퍽 우스웠다.

“지금까지 들어본 결과, 여러분이 아주 중요한 사실을 잊고 계신 것 같아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언제 시선을 피했냐는  류 현에게 시선이 다시 모였다.

“현재 우리 원정대는 민간인을 구출하고 보호할 여력이 전혀 없습니다. 사실 작전 한계 시간도 간당간당하죠. 호지슨 씨?”
“예. 지금처럼 보급품을 소모할 경우 12일 내에 작전 한계 도달합니다. 포션이나 붕대 같은 의료품은 전투 횟수에 따라 더 빨리 소모될 수도 있습니다.”
“조금 아껴 쓰면...돌아갈 때는 훨씬 빨리 돌아갈 수 있지 않나요?”
“그 부분까지 감안해서 쥐어짠 한계 시간입니다. 이 이상 작전 시간을 억지로 늘리면 배고픔과 싸우게 될 겁니다.”

호지슨은 혀를 차고 싶은 기분을 겨우 억눌렀다.  큰 어른이 철없는 소리를 하는 꼴이 어처구니없지만, 그들 탓이 아닌 걸 알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플레이어 조약. 군인이 되면 안 되는 거면 그거나 감시   것이지. 왜 군사훈련도 못하게 해?’

이런 작전 경험이 없는 플레이어들이 할 법한 질문이었으니까.
던전에서 식량을 쪼개고, 활동기간을 가늠해보는 것도 보스몹을 잡고나면 계산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냥 나와서 길드나 부처에서 챙겨주는 서비스를 받으면서 곯아떨어지면 되니까.
현실에 괴수가 튀어나오는 경우도 같았다. 오히려 더 풍족한 환경에서 사냥을 할 수 있었다. 괴수의 숨통을 끊고 나면  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니 이쪽을 생업으로 삼는 이들도 있을 정도.

그러니 경험의 부재로 인한 무지를 무조건 탓하기도 힘들었다.


‘일반 던전처럼 보스몹을 잡으면 이  같은 땅도 사라질 가능성도 없진 않겠지만...’

회의 전, 가장 먼저 이 소식을 전해들은 호지슨은 류 현과 의견을 나누어보았고, 그 결과 네임드 몹을 잡아도 상황이 전부 해결되진 않는다고 생각 쪽으로 가닥을 잡기로 했다.


‘아무런 대비도 없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는 것보단 심적으로라도 대비되어 있는 게 낫지.’



“그래서, 우리 원정대는 민간인을 구조할 여력은 물론 구조한 이들을 보호할 수도 없습니다. 그게 왜 어려운지는  안 해도 잘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저보다 경력이 짧은 분은 이 자리에 없으니 한 번쯤 짐꾼을 고용해보셨을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예, 뭐. 머리로는 이해하셔도 가슴이 못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정도는 저도 압니다. 괴수가 인간을 부린다니, 끔찍하다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하죠. 그런데 말입니다.”
“......”
“당장 제가 앞에서 탱킹 하는 것 말고 자폭병 공세를 막을 방법이 있습니까?”

순간 텐트 안에 숨소리마저 잦아들었다. 모두가 데룩데룩 눈알만 굴릴 뿐 입을 떼려고 하지 않았다. 입술 사이로 새어나가는 바람소리도 걱정되는지 턱을 만지는 척 입을 막는 이도 있었다.

“탓하려는 건 아닙니다. 가장 효율적인 역할 분담이었고, 제가 먼저 꺼낸 이야기였으니까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민간인을 끼워 넣으면 기존의 방식은 쓰는 게 불가능해질 거라는 겁니다.”
“끙...”


다들 침음성만 삼킬  반박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실에 튀어나온 대 괴수전을 꾸준히 겪어온 군인들도 힘겨워 하는데 몸까지 상한 일반인들이 버텨낼 리가 없지 않은가?
그건 플레이어들이  현이 친 방어선을 뚫고 들어온 놈들을 전부 상대해야한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정면에서.


첫날에 호되게 당한 기억이 남아있어 누구도 호기롭게 나서지 못했다. 자폭병만 상대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 아직 네임드 몹도 구경 못한 상태가 아닌가?
그것도 인간에게 마법적인 폭탄을 심어서 제 말을 전하게 할 정도로 영악한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뜻 항복이 나오지도 않았다.
괴수에게 부려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쉽사리 항복 선언이 나올 기미가 안 보이자, 류 현은 예정대로 자신이 악역을 자처하기로 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간을 많이 드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습니다. 아까 들으셨다시피 12일이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한계시간이거든요. 그리고 오래 생각한다고 답이 나올 문제도 아니고요.”
“그러니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박아두겠습니다. 우리 원정대는 민간인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 수행을 하지 않을 겁니다. 진격로 상에 있는 이들은 구출은 할 수 있지만, 합류시키진 않는  원칙으로 삼도록 하겠습니다.”
“하, 하지만 그래선 그 사람들 보고 죽으라는...”

류 현은 발언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아까 그 마법사였다. 마법사의 이름이 체니 얼리엇 이라는 것을 떠올린 류 현은 잘라 말했다.


“얼리엇 씨. 무례한 말인 줄은 압니다만, 당신은 원정대가 그런 위험을 감수하게 할 권한이 없습니다.”

류 현은 그대로 뒤돌아서서 텐트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 바깥으로 머리를 들이밀 때까지 그를 붙잡는 이는 없었다.


‘안된다고 그럼 여기 남겠다고 하는 인간 하나쯤은 나올 줄 알았더니.’

 나오면 좋지. 류 현은 그대로 텐트에서 몸을 빼내었다.
텐트 안에서 폭탄이 터진 것처럼 말소리가 폭발했지만 그는 귀를 닫고 자신의 텐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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