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화 〉탐식마(貪食魔)
“생각보다는 피해가 적긴 한데...다행이라는 말은 안 나오는군요.”
천막 안의 모두가 침음성으로 류 현의 말에 동의했다.
생각보단 피해가 적었지만 도저히 다행이라고 할 수 없는 그런 상태. 원정대가 처한 상황이었다.
“회복약 계열 소모가 극심하군요. 오늘 같은 전투를 세 번하고 나면...돌아오는 길에는 쓸 게 없겠네요. 호지슨 씨, 부대원들은 어떻습니까?”
“좀 놀라긴 했지만 다들 터질 일이 터졌다는 반응들입니다. 문제는 그 살점에 먹혔던 부대원들인데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단순 출혈로 인한 쇼크라고 보기에는...”
“예, 제가 보기에도 그냥 단순 쇼크는 아닌 거 같더군요. 마력 고갈로 인한 쇼크도 겹친 것 같으니 송장목 진액을 더 보급해드리겠습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아뇨, 당연히 취해야할 조치죠. 그런데...후송하기 전에 살덩어리에 삼켜질 때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되겠습니까?”
호지슨 버넷은 고개를 끄덕였다. 팔이나 다리가 떨어져나간 중상자들에게는 조금 가혹할 지도 모르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인정으로 처리하기에는 낮에 겪은 일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거기에 그들은 군인에 가까운 플레이어였다. 조직을 위해서 잠깐의 고통정도는 참을 수 있는 자들. 이정도로 우는 소리는 하지 않으리라.
“아까 정식 회의 때도 드렸던 말씀이긴 합니다만, 아마 이 살덩어리가.”
철퍽 하고 살덩어리가 탁자 위에 떨어졌다. 방금 돼지에게서 떼어낸 것처럼 핏물이 흠뻑 베어 나오고 있는 살덩이.
이것은 사실 반나절도 훨씬 전에 라가 로드의 몸뚱이에서 나온 것이었다.
라가 로드의 숨통을 완전히 짓이겨 놓기 직전, 류 현을 삼키려고 머리통을 뚫고 달려든 것을 고이 보관해놓았다.
“라가들의 파워업의 원인인 것 같은데...보시다시피.”
류 현이 살덩어리에 손가락을 갖다 대자, 파직하고 불꽃이 튀었다. 류 현은 강행하지 않고 손을 거두었다.
“이렇게 마력을 빨아들이면 빨아들였지, 내뿜는 놈은 아닙니다. 라가로드를 죽이지 않고 살덩이만 튀어나오게 해봤는데도 별 다를 건 없더군요. 오히려 숙주가 된 라가로드가 이 살덩이에 마력을 빨려서 죽어버렸고요.”
“잠복상태에서는 버프를 주고, 특정 상황에서 는 숙주를 죽일 정도로 쥐어짠다...이거 기생형 이라고 하기도 좀 그러네요. 이런 기생충이 어디 있어?”
화련의 추측은 류 현도 동의하는 바였다. 기생충이라고 할 만한 요소가 너무 없었다. 기생충이라고 부를 만한 요소는 라가류 괴수 몸 안에 잠복하고 있다는 게 전부였다.
‘그냥 기생충이라고 하기에는 느낌이 영 불길한데. 뒈진 게 분명한데...왜 이렇게 켕기지?’
“그러게, 무슨 원격 제어 폭탄 같네.”
심드렁하게 맞장구를 치는 승하의 말에 류 현의 눈이 크게 뜨였다. 류 현은 목관절이 걱정될 정도로 격하게 고개를 돌렸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어? 뭐가?”
류 현의 격한 반응에 담대하기로는 팀 제일인 승하마저 움찔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쏠린 좌중의 시선보다 류 현의 시선이 더 부담스럽다는 듯, 슬쩍 고개를 돌리며 대꾸했다.
“원격 제어 폭탄 같다고 했는데...”
승하를 바라보는 류 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류 현은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류 현...?”
승하가 고개를 기울여 표정을 살폈지만, 고심하는 기색 외에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얼마가지 않아 류 현은 고개를 들었고, 회의를 재진행 했지만 별 다른 소득 없이 자리를 파해야만 했다.
“너 진짜 왜 그래?”
호지슨 버넷의 인기척이 들을 수 없는 거리까지 멀어지자 승하가 불쑥 물었다. 자신의 ‘시한폭탄 같다’라는 말은 들은 뒤 류 현은 거의 넋을 빼놓은 사람처럼 건성으로 회의에 참여했다.
호지슨 버넷과 그가 같은 편으로 끌어들인 팀장 몇과 용잡이 팀이 따로 모인 약식회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넘겨도 되는 회의는 아니었다. 가면 갈수록 원정대에 불안한 기류가 돌고 있음을 생각하면 더더욱.
승하의 표정이 좋지 못한 건 그 때문이었다.
“잠깐 생각할게 있어서요.”
류 현의 대답에 승하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다른 일행들의 표정은 더 좋지 못했다. 류 현답지 못한 태도였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류 현은 평소와는 다르게 굳은 표정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듯 희란에게 말했다.
“희란 씨, 좀 부탁드릴게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네에, 말씀하세요.”
희란이 언제 표정을 굳혔냐는 듯 후다닥 앞으로 튀어나왔다.
“부탁드리긴 할 텐데 신중하게 결정하셨으면 합니다. 그냥 기분이 안 내켜도 거절하셔도 괜찮으니까요.”
희란은 목 건강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류 현은 진지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거듭 주의와 함께 설명을 늘어놓았다.
대충 요약하면 라가들을 강화시킨 이 살덩어리가 단순 도핑제가 아닌, 승하의 말처럼 원거리에서 조작을 가할 수 있는 뭔가 같다는 거였다.
설명을 다 듣긴 했지만 다른 일행은 물론이고, 설명을 듣는 희란도 류 현이 그렇게 느끼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희란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류 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연결’로 이 살덩어리를 들여다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뭐? 농담이지?”
“마스터?”
류 현의 말에 그녀들은 다른 의미로 질린 얼굴이 되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희란의 훈련을 위해서 괴수 몸뚱이에 ‘연결’을 강제로 해 본적이 몇 번 있었는데, 효과는 미미하고 희란의 컨디션만 곤두박질쳤었다.
‘연결’이 중간에 끊기는 건 예사고, 마력을 과도하게 밀어넣질 않나, 갑자기 코피를 쏟아내는 등 모두를 질겁하게 만들었다. 왜 그러냐고,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냐고 이유를 물어도 저도 잘 모르겠다고만 하고, 당시 기억을 더듬어보다가 토하기까지 했었다. 그 뒤로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녀들의 반응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다.
당사자인 희란은 아주 침착했지만 말이다.
“할게요.”
너무나도 단호한 대답이라 류 현마저 희란의 표정을 살필 정도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희란은 말을 번복하지도, 평소의 눈치 살피는 얼굴도 하지 않았다.
“제가 부탁드려놓고 할 말은 아닌 줄 압니다만,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99프로 위험할 겁니다. 제 예상이 맞든 맞지 않던 간에요.”
“네에. 저도 이해했어요. 이 살덩어리가 라가부대를 보낸 존재랑 링크되어 있을 것 같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확인 해볼게요.”
어투가 단호하고, 드물게도 머뭇거리지 않고 긴 말을 모두 내뱉어냈지만 류 현은 희란이 제대로 이해한 것인가 의구심을 느꼈다.
네임드 몹의 일부로 생각되는 살덩어리에 접촉하려는 이 치고는 지나치게 덤덤해보였으니까.
하지만 저가 권해놓고 뜯어말리는 것도 웃긴 일이기에, 이미 말했던 주의를 반복한 후 희란에게 살덩이를 내밀었다. 언제든 말라비틀어지게 준비한 채로.
“그럼 시작할게요.”
희란은 류 현은 한 번 올려다보곤 살덩이를 덥썩 쥐었다.
***
눈앞은 빛 한 점 없는 심해였다.
희란이 뭘 하기도 전에 그녀의 몸은 잠겨 들어갔다.
제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해서 이렇게 느껴지는 것이라는 걸 모르진 않는 희란은 숨이 막히는 곤란함을 느끼진 않았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편해서 이 방식을 고수하고 있을 뿐이었다. 정체를 가늠할 수 없는 것과 ‘연결’을 시도할 때는 말이다. 류 현과 처음으로 ‘연결’을 시도했을 때처럼.
희란은 불빛하나 없는 칠흑 속을 문제없이 나아갔다. 시각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지만, 그 너머의 이질적인 기운이 그녀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이네.’
저 멀리서 느껴지는 것임에도 끈적끈적하면서 섬뜩한 기운은 그녀가 꽤 자주 느껴본 기운이었다.
‘마스터랑 좀 비슷한 거 같으면서 달라.’
뭐가 다르냐고 물으면 콕 찝어서 설명하긴 어렵겠지만, 희란은 제 느낌에 확신이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빛 한 점 없이 시커멓기만 하던 사위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희란은 점점 피부를 훑는 것처럼 선명해지는 기운에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멈추지 않고 손발을 계속해서 놀렸다.
마침내 기운의 중심에 도달하고 희란은 보았다. 제 몸뚱이보다 커다란 가죽 주머니 같은 것을. 피부를 훑는 것 같은 끈적끈적한 기운의 근원은 이것이 분명했다.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하지...’
문제는 그것 외에는 알 수 있는 게 없다는 거였다. 접촉은 자살행위고, 그런 짓을 했다가 기억이 온전하게 남아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아니, 거의 백퍼센트 확실하게 뭘 봤는지 기억도 못할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유체이탈 비슷한 상태니까.
희란이 고민에 빠져들려던 그 때,
가죽 주머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갑자기 쫙 가라지며 커다란 눈이 번쩍 뜨였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어서 희란은 마주보는 게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
검붉은 눈동자를 가진 커다란 눈은 희란을 뚫어져라 내려다보더니,
히죽하고 눈꺼풀을 일그러뜨리며 눈웃음 지었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동작이었지만, 희란은 ‘찾았다’라는 말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
미간을 찌푸린 채 집중하기 시작하던 희란은 십 여초가 지나기도 전에,
“아윽!”
뭔가에 떠밀린 것처럼 쓰러졌다. 류 현은 거의 반사적으로 오른 손에 쥐고 있던 살덩이를 말라비틀어지게 만들고는, 희란에게 달려들었다.
“희란씨!”
“희란아!”
“희란아, 이거 보여? 보이면 눈 두 번 깜빡여.”
희란은 온 몸을 떨뿐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류 현이 긴급후송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화련을 부르려는 찰나였다.
“...봤어요.”
“예?”
“그, 그 쪽에서 절 봤어요. 커다란 눈이 희번뜩 하고...”
넋이 나갔는지 발음이 새긴 했으나 희란의 말을 모두가 알아들었다.
“보다니 그게 대체 무슨...”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류 현이 캐물으려고 했지만, 희란은 그대로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류 현과 팀원들은 정신을 놓은 희란을 회복시키려 애를 썼지만, 그녀는 하루 내내 잠에서 깨어날 기미를 안 보였다.
다음날 아침.
류 현이 희란을 긴급 후송시키는 초강수를 염두에 두고 있을 때, 그는 희란이 말한 ‘그 쪽에서 나를 봤다.’가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
테러단체 마냥 자살폭탄 테러를 하면서 죽기 위해서 꾸역꾸역 밀려드는 라가들의 행렬을 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