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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6화 〉탐식마(貪食魔) (256/429)



〈 256화 〉탐식마(貪食魔)
“소문이 도는 게 예상보다 심각해. 곧 있으면 라가가  드래곤 종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올 거 같은데.”

말을 하는 승하의 표정은 눈에 띄게 굳어있었다.

원정대원 대부분과 별 인연이 없는 류 현은 처음부터 원정대를 완전히 장악하는 것을 포기하고, 용잡이 팀 팀원을 나누어 원정대 내부 팀에 배치하는 것으로 명령전달이라도 제대로 되도록 조치했다.

그 중 돌격 1팀을 맡고 있는 승하가 그다지 좋지 못한 소리를 접한 모양이었다. 류 현의 귀에도 아주  들려오진 않았기에 놀라진 않았다.

“무슨 정신머리로 그런 헛소리를 뿌리고 다닌데요? 이거 인원모집부터 튼  아니에요?”
“제 생각보다는 좀 온건하네요. 고르고 고른 인원이 맞긴 하군요.”

 현의 말에 화련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류 현은 말을 무르지 않았다.

“전 네임드 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알았거든요. 저것들이 하는 짓이 어떻게 봐도 괴수가  행동은 아니지 않습니까? 여기 오기 전부터 들려온 소식부터가요.”
“그야 그렇긴 하지만...이 상황에서 태평하게 그런 소리가 나와요?”
“어쩌겠습니까. 이미 벌어진 일인데. 아주 없는 사실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요. 직속상사도 아니라 찍어 누르기도 뭣하고.”
“...진짜 천하태평이셔.”
“소문이라는 게 그렇잖습니까. 돌기는 쉬운데 제어하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굳이 제어하기 위해서는 시도하려면 눈에 보이는 결과가 필요하고요. 지금 당장은 소문을 억누를만한 결과를 낼 대상도 없고요. 그보다는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집중하는 게 낫지요. 이걸 좀 봐주시죠.”

류 현은 탁자 위에 그림이 휘갈겨진 종이를 올리곤 화련 쪽으로 슥 밀었다. 화련이 정방향으로 돌려서 그것을 들여다보기 시작하자 희란도 슬쩍 고개를 들이밀었다.

 현이 내민 그림은 얼마 전 호지슨 버넷이 정찰대를 이끌고 정찰하고 온 문제의 구릉을 스케치한 것이었다. 밑에 적힌 육안으로 확인된 괴수의 종류와 숫자는 그녀들을 멈칫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무시하기에는 저 안에 들어앉아 있는 괴수 중에서 지룡이랑 라가류가 꽤 다수 인데다가, 우리가 자리를 비우면  베이스캠프가 바로 타격당할 위험이 너무 올라갑니다. 막말로 여기 남을 인원들이야 공격당하더라도 베이스캠프 버리고 함으로 돌아가면 되겠지만...문제는 우리가 돌아왔을 때 베이스캠프는 날아가 있고, 괴수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샌드위치 당할 수도 있다는 거죠. 뭐 사실 여기까지 온 시점에서 괴수 무리 사이에 끼이는  정도는 각오는 했지만 피할  있으면 피하는 게 좋죠.”
“...여기로 되돌아 올  전력이 온전할 지도 알 수 없으니까요.”
“예, 바로 그겁니다. 지금 전력이 온전할  정리해두는 게 맞죠. 겸사겸사 어수선한 분위기도 전환하고요. 손이 놀고 있으면 입방아가  열심히 돌아가는 법이죠. 원정대 전체가 전투다운 전투도 안 치러보고 계속 놀고 있으니까요.”

류 현의 말처럼 플레이어들은 잔뜩 지고 온 장비를 아직 개시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다. 노동이라고 해봐야 류 현이 자기들 좋으라고 시킨 살살이 풀 채취가 전부.

베이스캠프 항모전단의 화력으로 플레이어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확보되었고, 그 뒤에 갑자기 나타난 지룡과 샌 드래곤은 용잡이 팀이 해결했다. 그 외에도 일일이 명시하기에는 너무 많은 잡다한 괴수들은 화련이 잡거나, 경계를 서던 일반병사들이 알아서 처리했다.

전자기기가 장시간 노출되면 기능을 상실하는, 이 던전화 된 땅에서도 소총과 박격포는 기능해주었다. 한  이상 장기간 노출되어도 그럴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지만, 현재까지는 원정대 소속 플레이어들은 일반 병사보다 한 일이 없었다.


“이걸로 지금같이 어수선한 분위기가 정리될까요? 피해가 나면  어수선해질 거 같은데...지형상 그냥 손 놓고 구경해도 안전하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딱 봐도 구릉 양옆으로 매복 있을  같고. 라가 주술사 정도야 매복 하고 있어도 원정대 수준을 생각하면 별 문제야 없겠지만...여긴 던전이 아니잖아요?”

화련의 지적은 지당했다. 반쯤 파 먹힌 것 같은 구릉 주변은 그 부근만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지대가 꽤 움푹 들어가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곳의 구릉 안에 대체 왜 진을 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라가의 지능으로도 이 근처에 매복을 해두었을 건 확실해 보였다.

거기에 이곳이 던전 안이 아니라, 던전화 된 현실세계라는 것도 불안요소였다. X던전 같은 특이 케이스를 제하면 수준에 맞춰 괴수 숫자나 질이 제한되는 던전에 비해, 던전화가 진행되고 있는  땅에서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괴수 전력을 추측하는 건 장님이 코끼리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그렇다고 주변 상황을 파악할 때까지 정찰을 반복하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배에서 내릴 때 마지막으로 전해들은 소식은 데스 나이트가 이끄는 죽음의 군대가 루마니아 국경을 안쪽에서 두들기고 있다는 거였으니까.


지벡 건터가 수비 부대를 이끌고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주겠지만, 언데드 군단과의 싸움은 눈에 보이는 피해만 줄인다고 어떻게 되는 게 아니었다.


시간을 끌수록 유럽이 싸울 의지자체를 잃을 가능성이 높았다.

‘안전을 기하고 싶은  사실이지만...그러다간 카이로에 닿기도 전에 원정대가 공중분해 될 수도 있어.’

“우리가 보모 역할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달랜다고 달래질  같지도 않고. 다소 피해가 있다고 해서 물릴  있는 병력도, 상황도 아니고요. 뭐 어쩌겠습니까. 해보고 상황이 더 안 좋아지면 그 때는 다른 방책을 강구해야겠지요.”


어떻게 보면 무책임해 보이는 말이었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었다. 류 현의 말처럼 그들은 이 원정대를 돌보려고 참가한 것이 아니었다. 반대로 원정대의 규모를 방패삼아 카이로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시간싸움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별 수 없지.’


***


[캬아악!][크오오!] 꾸우웅!

[흐아아아!] 스칵! [끼아아악!]


자욱하게 일어난 먼지 구름사이로 귀곡성이 흘러나오기 무섭게 찢어지는 비명이 터져나오더니, 리치의 몸뚱이가 허물어졌다.


나승하는 앞으로 쭉 내뻗었던 검을 어깨에 걸치고는  한 숨을 뱉었다. 싸움을 끝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녀의 발치에는 리치가 남긴 찢어진 망토조각이 나부꼈다.

“고생하셨어요. 어, 언니.”
“고생은 무슨. 지형이 지랄 맞아서 련이가 더 고생했지. 수건 고마워 희란아.”


승하는 희란이 건네준 수건으로 목 부근을 닦으며 주변을 돌아봤다. 플레이어들은 구덩이가 되어버린 구릉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약을 발라주거나, 무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개 중에서 위급해 보이는 부상자는 없었다. 기껏해야 살점이 조금 깊게 패인 상처정도였고, 플레이어라는 점과 보급품의 질을 생각하면 그건 부상이라고 하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별 문제 없이 뚫었네. 갑자기 지반이 내려앉을 때는 철렁했었는데.”
“혜라랑 화련 언니가 힘냈으니까요.”

승하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하곤 머리 위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무너지는 모습 그대로 얼어붙은 모래더미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둘  이젠 멀티캐스팅은 기본이네. 힘의 규모는 크게 늘어났는지 모르겠는데...섬세함이 차원이 다르네. 달라.’


승하는 발끝으로 모래바닥을 툭툭 찔렀다. 그러자 바닥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모래가 쑥 하고 빠졌다. 모래가 빠진 구멍 사이로 허연 뼈 같은 것들이 보였다. 바짝 세운 날을 하늘을 향하고 있는 뼈창들이.


화련이 내려앉는 지반을 받히고, 혜라가 무너지던 구릉을 막지 않았다면 꽤 지저분한 개싸움이 되었을 것이다. 구릉 주변에 매복하고 있던 리치 숫자만 다섯이었으니까.

‘척 봐도 저주에, 독에...대체 여기 괴수들은 어떻게 되먹은 거야? 그냥 참호를 짓는 정도가 아니라 함정까지 판다고? 다른 괴수면 근처도 안 올 지형 아래에?’

파먹다만 것 같은 구릉은 원정대가 진입해서 지룡을 공격하자마자 무너져 내렸다. 어떻게 봐도 준비된 함정이었다. 거기에 갑자기  내려앉은 지반은 그냥 조심성 있는 정도로 넘어가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바닥에 깔린, 저주를 잔뜩 머금은 뼈창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승하의 상식 밖에서 놀고 있었다.


‘외부에서 쳐들어온 괴수를 상대하기 위한 함정이 아니야. 놈들의 상태도 좀 이상해. 마치...’

승하는 그 생각을 속으로 삼켰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터무니없는 비약이었다. 굳이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그런 불길한 상상.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도 없지...’

마침 승하의 시야에 류 현이 걸어 들어왔다. 주변의 부상여부를 살피며 걸어오고 있는 류 현을 향해 다가갔다.  안에 자리를 잡은 불안감을 털어놓기 위해서.

그리고 그 불안감은,


“미친...저게 다 뭐야? 쟤들 지금 진형 짜는 거야?”

사흘  이름 모를 평원에서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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