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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5화 〉탐식마(貪食魔) (255/429)



〈 255화 〉탐식마(貪食魔)
꾸웅! 피륙으로 이루어진 몸뚱이가 낸 것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묵직한 굉음이었다. 굉음만큼이나 거대한 모래 파도가 일었다.

그러나 그 굉음에 반사적으로 움찔하는 이는 있었어도,  사실에 놀라는 이는 없었다. 모두 그 거대한 몸뚱이를 거꾸러뜨린 주인공에게 넋이 나가있었으니까.

꼬리까지 합치면 족히 30미터를 넘어 보이는 괴수를 혼자서, 그것도 아티펙트 조차 없이 때려잡는 모습은 아무리 날고 기는 플레이어들이더라도 경외심을 느끼기에 충분한 광경이었다.

거기에 쓰러진 지룡은 화살촉 같았던 대가리가 거듭된 주먹질로 거의 타원형으로 변한 상태였다. 모두가 그 꼴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았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물론 모두가 자신이 느낀 경외감을 순순히 인정한  아니었다. 어떤 이는 타고난 반항심으로, 어떤 이는 경쟁심을 불태우는 땔감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 말도 안 되는 위업을 달성한 류 현은...


“아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지휘관이 거기서 혼자서 닥돌을 해요? 우리가 고집 좀 부렸다고 시위하는 거에요?”


일행 중 가장 몸집이 작은, 류 현과 비교하면 체격이 두 배 이상 차이나 보이는 화련에게 잔소리 폭격을 얻어맞는 중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상황이 급하게 돌아가다 보니까...”
“맞아요. 이번에는 좀 심하셨어요...언니가 소리 질러서 돌아보는데...”
“아, 희란아 좀!”

희란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려던 류 현은 화련의 뜨거운 시선이 찔끔하곤 입을 다물어야했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마스터 옆에 서있던 이천 명은 장식이에요? 그리고 왜 멀쩡한 장비 냅두고 손으로 때려잡아요?”
“......”


거기에 화련의 지적은 너무나도 타당한 것이기에 말대꾸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류 현은 병영으로 돌아가는 동안 찌그러지기로 했다.


***


“젠장, 내가 이런 풀 뽑으려고 온  아나?”
“시끄러, 켈빈.  할 거면 텐트로 돌아가서 잠이나 자.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닌데 왜 짜증이야?”


켈빈이라고 불린 갈색머리 사내는 뒤쪽에서 삽질을 하고 있는 군복 입은 이들을 턱짓하며 말했다.

“...이런  저기 저놈들한테 시켜도 되잖아.”
“어쩌겠어. 대장님 지시인데.”
“대장은 얼어뒈질 놈의 대장. 그놈 하는 것 봐. 괴수 잡는 건  잡는지 모르겠지만 대규모 원정은 진짜 아는 거 좃도 없다니까? 어떤 놈이 플레이어한테 이런 잡일을 시켜? 괴수가 어디서 튀어나올지도 모르는데.”
“그 튀어나온 놈들은 다 잡아주고 있잖아. 아, 저기 긴다리 도마뱀 나왔...잡았네. 저 화살 대체 뭐지? 저런 건 처음 보는데. 무슨 한정판 같은 건가?”
“젠장, 칼! 그런 태평한 소리할 때야?”
“아니  그렇다고 이렇게 호들갑 떨 일도 아니잖아. 뽑은 만큼 지분 인정해주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지분이야 당연히 줘야하는 거고! 우리가 아니었으면 저놈이 여기서 한가롭게 풀이나 캘 수 있어?”
“그냥 풀이 아니라 살살이풀. 우리 마스터가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살살이풀. 그러고 보니 이것도 그 친구가 최초 발견자라고 했었지.”
“...협회 놈들이 수작질 부렸겠지.”
“누가 자네보고 뭐래? 힘든 일도 아니고 열심히 챙겨보자고. 많이 챙겨가면 성과금이랑 휴가도 두둑이 챙겨주겠지.”




“좋은  줘도 엄청 투덜거리네. 저거 보고 뭔가 느끼시는  없어요?”


화련은 방금 긴다리 도마뱀의 머리통을 꿰뚫은 화살을 손질하면서 류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류 현은 어깨를 들먹이며 대꾸했다.

“어쩌겠습니까. 사람의 선의라는 게 항상 진실 그대로 전달되는 건 아니니까요.”
“...마스터는 보면 볼수록 모르겠어요. 어떨 때보면 무섭게 냉정한 것 같은데, 정작 다들 화낼만하다고 생각할 때는 허허 웃어넘기고.”

화련의 말처럼 류 현은 허허 웃기만 했다. 그 웃음에 담긴 곡절을 정확히는 몰라도 전생 얘기로 대강 짐작할  있는 화련은 착잡한 시선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냥 원정대 전체 전리품이라고 하면 위쪽에서 이거저거 빼가서 직접 채집시켰다는 건  말을 안하는 거에요? 괜히 안 들어도 되는 욕까지 먹고 있잖아요.”

그녀의 말처럼  현이 채집 작업을 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의 궁시렁거림까지 다 들어가면서 그들에게 작업을 시키고 있는 이유는 그 본인들을 위해서였다. 원정대의 전체의 전리품으로 처리해버리면 플레이어들에게 돌아가는 것보다 위에서 빼가는 것이 더 많을  뻔했기 때문에. 플레이어 개인에게 챙겨가게 하더라도 클랜이나 소속 기관에 떼이기는 하겠지만, 이렇게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 라는게  현의 생각이었다.

‘아직은 클랜이 군벌이  정도로 성장은 하지 못했으니까. 아직은 대놓고 소속원을 그렇게 뜯어먹진 못하겠지. 아니더라도 이이상은 나도 어쩌기가 힘들고.’

그래서 원성을  걸 뻔히 알면서 그들을 굴리고 있는 것이다. 화련은  자청해서 욕을 먹냐고 투덜거렸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현 본인도 딱히 그들의 목숨이 걱정돼서,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그들을 챙겨주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플레이어이기 때문에,  다가올 괴수와의 전쟁에서 일반인 만 명보다 더 유효한 전력이기에 그런 것뿐이었다.

“뭐 그렇다고 자기네 나라 욕해가면서 설명을 할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래봐야 괜한 분란조장만 하게  거고요.”
“이런 거 보면 참 마음씀씀이가 섬세한데...”
“예?”
“아뇨, 그냥 혼잣말이에요.”


[오오옹!]


한  들으면 절대 헷갈릴 수 없는 하울링에 화련과 류 현의 시선이 같은 하늘을 향했다. 그 직후 하울링을 토해낸 샌 드래곤의 피어가 피부를 훑고 지나갔다.

살살이풀을 채취하던 플레이어  몇몇이 피어에 내성이 없는지 비틀거리거나 쓰러졌으나, 옆에 있던 동료들이 부축해서 재빨리 후방으로 빠졌다. 같이 작업하던 병사들도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피어 영향권 밖에 있던 인원들이 재빨리 후송해갔다.

 현은 자신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조치를 취하는 이들을 확인하고 하늘로 시선을 되돌렸다. 류 현의 표정은 평소와 비교할 것도 없이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바로 옆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화련도 마찬가지였다.


“마스터, 저거 위에 설마...”
“예, 라가처럼 보이네요. 덩치로 봐선 챔피언급인 것 같은데...”

그들이 놀란 원인은 샌 드래곤의 등 위에 타고 있는 라가챔피언이었다. 인간에 비하면 거인이라고 해도 좋을 거구를 자랑하는 라가챔피언도 샌 드래곤 등 위에 있으니 인간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안장 메여있는  제가 잘 못 본 거 아니죠?”
“예, 제 눈에도 잘 보입니다.”


거기에 샌 드래곤의 거대한 몸뚱이를 감싸는 안장까지 메여져 있었다. 어떻게 봐도 라가챔피언이  드래곤을  것으로 쓰고 있는 것 같았다. 두 괴수간의 전력차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눈에 보이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어?”


쉭! 까앙! 멍하니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라가챔피언 쪽에서 뭔가 번쩍하더니 화련에게로 창이 날아들었다. 류 현은 손등으로 슬쩍 흘려내고는 바닥에 박힌 창을 뽑아내서 이리저리 살폈다.


“통짜 현철이네요. 이거.”
“통짜요? 정신 나간 벼락부자도 아니고 누가 대체 현철을 통짜로...”

[고오오오옹!] 화련은 의문을 다 내뱉을 수 없었다. 천천히 다가오던 샌 드래곤이 기수의 지시를 받았는지 급격하게 하강하면서 아가리를 쩍 벌렸으니까. 괴수에 대해 문외한이라도 모를 수가 없는 동작이었다.


브레스! 화련은 그 단어가 떠오르자마자 자신이 차고 있는 벨트에 걸린 화살들을 공중으로 날려 보냈다. 벼락살, 킬러비라고 불리는 아티펙트 다섯발이 순식간에 샌 드래곤에게로 도달했다. 화련은 하얗게 타오르고 있는 눈동자를 더욱 불태우며 다섯 발의 화살에 박차를 가했다.

파지지직! 찌이익! 세 발은 샌 드래곤의 지척에서 스파크를 일으키며 타버렸으나, 나머지  발이 샌 드래곤의 피륙을 찢는데 성공했다. 각각 눈 밑과 코 안쪽을 타격한 덕에 샌 드래곤은 브레스를 토해내지 못하고 허공에서 몸을 뒤틀어야만 했다.  드래곤의 크기와 재생력을 생각하면 정말 생채기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으나, 급소타격은 샌 드래곤 같은 괴물에게도 그대로 먹혀든 것이다.


“쯧, 그걸로는 생채기 정도가 한계네. 마스터 일단 제가 가서 저거 떨어뜨릴 테니까 바로 마무리를...응?”


몸을 천천히 띄우며 말을 전하던 화련은 두 사람을 향해서 달려오고 있는 남자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어설프게 응전하는 것보다는 병영에서 장비를 꺼내서 진영을 갖추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원정대원들에게도 그렇게 교육을 시켜놓았고 말이다. 다가오는 남자가 웨인이라는 것을 알아보자 바로 류 현을 돌아보았지만.


류 현은 화련을 향해서 고개를 끄덕였고, 화련은 곧바로 웨인의 몸을 한  정도 띄워 올렸다. 웨인 또한 긍정의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웨인의 몸을 방금 전의 화살처럼 쏘아 올렸다.

 현이 웨인의 위치를 확인하기도 전에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캬아아악!] 후두득! 떠엉! 비명소리만 떨어진 건 아니었다. 류 현의 발치에 핏물 한 바가지와 함께 둥그런 뭔가가 떨어졌다. 라가챔피언의 대가리였다. 웨인의 공격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는지, 놈의 머리는 공격당하는 것치곤 꽤나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오옹!] 기수를 따르는 것처럼 얼마가지 않아 샌 드래곤의 구슬픈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밑에서 보기에는 커다랗고 하얀 날개달린 것이 온몸으로 불을 뿜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불꽃처럼 보이는 시뻘건 뭔가는 샌 드래곤의 핏물이었고 그렇게 핏물을 뿜어낼 정도로 난도질 당한, 날개 힘줄이 모두 끊어진 샌 드래곤은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콰앙! 쿠구구! [꾸오오-] 스칵! [끄르륵-] 땅에서 마저 내뱉으려고  단말마는 가래 끓는 소리가 되더니 얼마 안가 끊어졌다. 충돌 때문에 일어난 흙먼지를 헤치고 걸어 나온 웨인은 꽤나 험악한 몰골이었다. 샌 드래곤의 피를 뒤집어 쓴 데 바로 흙먼지가 끼얹어지니 방금 전의 멀끔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류 현과 화련은 웨인에게로 다가가면서 말을 주고 받았다.

“샌 드래곤에 안장 채우고 타고 있었다는 거 까실거에요?”
“덮기에는  눈이 너무 많죠.”
“그쪽 본 인간들은 다 거품 물고 쓰러지던 거 같던데.”
“영영 덮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숨긴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딱히 없고요. 당장 다 돌아가라고 하고 우리끼리 할  아니면 숨기는 건 자충숩니다.”
“말하면 난리날 거 같은데...”
“제 생각에도 꽤 동요할 것 같긴 합니다. 그런데...이런  나올 정도인데  받아들이고 헤매면 그냥 죽는거죠.”


류 현은 손에든 철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보자마자 순수 현철로 만들었을 거라고 추측했던 창은 마력을 흘려본 결과 정말로 현철로만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인간 기준으로는...이걸 0등급 현철이라고 불러야 하나. 이거 하나 팔면 항구에서 기다리는 배 한 대는 사겠네.’

화련은 무기에 돈 쳐 바르는 걸 인생 목표로 삼은 플레이어의 유품으로 오해한  같지만, 류 현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가 아는 바로는 인류는 아직 이런 품질의 현철을 만들지 못한다.

‘이 정도면 식칼로 만들어도 퍼플몹 정돈 개나 소나 그냥 썰겠네.’


아니, 전생에서도 이보다 한 단계쯤 낮은 질의 현철은 찍어냈어도 이 수준에 도달하진 못했다. 인류가 과학문명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얻게 된 마력을 다루는 기술로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수준의 현철이다.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겠지만, 이런 현철을 만들 수 있는 마법사들은 현철이나 만들겠다고 쇳물을 주물럭거릴 리가 없으니 못하는 거나 다름없을 터.

‘그 어이없는 가설을 내가 직접 확인하게  줄은 몰랐는데...이번 생은 진짜 쉽게 넘어가는 턴이 없네.’


가까워지고 있는 웨인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현의 머릿속에는 전생에서 본 가설 마지막 문장이 맴돌고 있었다.


[...이러한 성향을 기반으로 유추해 볼 때, 라가는 다른 이족보행 고지능 괴수들보다 고도화된 사회 시스템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가설대로면 라가 중에서 대가리가 따로 있다는 건데...설마 그놈이 네임드 몹이거나 하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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