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4화 〉탐식마(貪食魔)
호지슨 버넷은 평소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원시적인 쌍망원경으로 전방을 훑어봤다. 그의 맨눈이 더 멀리 볼 수 있을 지경이지만 그는 자신이 눈이 아닌 렌즈를 통해서 재검증 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제 눈으로 본 것을 믿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젠장, 진짜 몬스터 랜드가 되어버렸군. 아프리카는 정말로 끝인 건가?’
버넷은 자신의 시력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괴수의 회색빛 동체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지룡이라는 등록명을 가지고 있는 괴수였다. 원정대 대장인 류 현이 발견하고 등록명까지 지은 괴수.
‘저런 괴물을 혼자 잡았다고...? 못해도 30000파운드는 되어 보이는데.’
중량을 톤 단위로 말해야할 것 같은 괴수가 움직이는 모습은 블랙던전까지 거친 호지슨에게도 전율을 일으킬 정도였다. ‘레이드가 아니라 거의 건물 해체 수준인데. 못해도 세 개 소대는 동원해야...’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매우 매끄럽게 모래바다 위를 움직이는 지룡을 보며 견적을 짜던 호지슨은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몸을 돌렸다. 그의 뒤쪽에 엎드려있던 소대원들이 그를 따라서 몸을 일으켰다.
‘임무를 잊지 말자. 나는 선봉이 아니라 정찰대다.’
스스로 타이르는 것처럼 뇌까린 호지슨은 소대원들을 이끌고 본대로 귀환했다.
***
“지룡에 라가 챔피언이 다섯이라...라가 주술사를 포함한 하급 라가류는 백 오십 정도. 시야가 들쑥날쑥한 걸 생각하면 더 있다고 봐야겠군요.”
“맞습니다. 그리고 지형이 좋지 못합니다. 원래 지도대로면 저런 구릉은 없어야 하는데...”
류 현은 정창대가 그려온 구릉 그림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커다란 쥐가 반쯤 파먹다만 것 같은 형태의 구릉은 어떻게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지 신기할 정도로 정면부분이 푹 파여 있었다. 그림 밑에 대부분 모래로 이루어져있는 것 같다는 코멘트로 볼 때 마력적인 작용이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원래의 지도는 의미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산맥도 안에서 땅이 솟아나서 이리 찢어지고 저리 찢어지고 한 상태니까요. 당장은 이 구릉이 문제군요. 딱 봐도 이 밑에서 진을 치고 있을 텐데...얼마만큼 있는지 감이 오질 않으니.”
“좀 더 근접해서 관찰할까 생각도 했습니다만...아무래도 갖춰간 장비가 너무 약식이라...”
“그건 잘 하셨습니다. 이런 구릉이 있는 줄 알았다면 정찰대 인원을 세 배로 보냈을 겁니다. 저도 따라붙었을 거고요. 어떤 작용으로 생성됐는지도 모르는 지형에는 접근 안 하는 게 답이지요.”
거기까지 듣고 호지슨은 속으로 한 숨을 몰아쉬었다. 안도의 한 숨이었다.
‘이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한다니...그냥 벼락출세한 자로 볼 게 아니야.’
호지슨이 보기에 류 현은 이렇게 무덤덤하게 신중을 기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현실에서 실행되는 대규모 작전에서 터져 나오는 플레이어들의 자만 같은 것을 우려한 건 아니었다. 그 원인은 다름 아닌 원정대에 속한 거의 이 천에 달하는 플레이어들이었다. 유엔과 협회가 고르고 고른 그 잘난 플레이어들 말이다.
‘멍청한 놈들. 이게 장난 같나?’
그놈들의 행태를 떠올리니 절로 이가 갈렸다. 현실에서 거드름 피우는 플레이어가 어떤 느낌인지 체험시켜주는 정도는 아니라도, 아프리카 대륙이 요동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작전을 임하고 있다는 긴장감이라곤 없었다.
아니, 그 정도라면 보고 짜증이 나더라도 못 본채 했을 것이다. 호지슨은 현실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자만을 부리고, 멍청한 짓을 찾아서 하다가 죽어나자빠지는 지 누구보다 잘 아는 남자였으니까.
하지만 지휘관에게 단체로 반항하려는 기색을 보이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문제아 취급받는 플레이어 중에서 껄렁거리면서 일하기 싫다는 티를 팍팍 내는 놈들은 꽤 있어도 아예 지휘관의 명령권에 도전하려는 놈은 잘 없다. 아무리 제 잘난 맛에 사는 플레이어라도 몇 천, 몇 만에 달하는 총부리를 모두 당해낼 순 없으니까.
그것을 제하더라도 군대조차 제어 못하는 개망나니 이미지는 본인에게도 좋지 못하다. 무인도를 하나 점거하고 그곳에서만 살 게 아니라면 말이다.
풀어진 모습?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환경이 적대적인 던전과 다르게 현실은 쾌적함 그 자체니까. 육체계열이라면 헌팅 레벨 100대만 되어도 북극에서 피서를 즐길 수 있을 정도다. 거기에 옆에는 제 능력보다 더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한 병력들도 있지 않은가?
플레이어 입장에서 생각하면 던전 안에서와 같은 긴장감을 유지하라고 요구하는 게 너무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원정대에 속한 플레이어들은 아예 출발 직후부터 류 현이 가진 명령권에 의구심을 표하고, 단체로 기 싸움을 시도하고 있으니 호지슨의 속내가 타들어가는 건 당연지사였다. 개인적인 호감도 있지만, 그를 파견한 미대통령이 아예 자국 지휘관을 따르는 것처럼 그를 보좌하고 친분을 쌓아보라고 거듭 격려했으니까.
류 현이 화가 나서 지휘관 자리를 내던지고 돌아가 버릴 수도 있는 이 상황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정작 당사자인 류 현은 별 일 없다는 듯이 정찰대를 보내고, 보급 상황을 확인하는 등 지휘관이 할 일을 잘 처리하고 있었다. 미국 측에서 붙여준 보좌관이 열심히 갈려나가고 있는 덕이긴 했지만, 이 상황에서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호지슨이 보기에는 합격점 이상이었다.
‘천생 사냥꾼인 줄 알았는데...이런 상황에서도 별 티도 안내고 저 자리에서 버티고 있다니...플레이어가 아니었어도 뭐라도 됐을지도 모르겠군.’
“달리 더 하실 말이라도 있으신지?”
“아, 아닙니다. 그럼 편히 쉬시길.”
류 현을 살피며 생각에 잠겨있던 호지슨은 류 현의 물음에 불에 대인 것처럼 후다닥 텐트를 빠져나갔다. 멍하니 떠난 호지슨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류 현은 기지개를 켜며 야전의자에 몸을 내맡겼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류 현은 두 눈을 비비적거리며 생각했다.
‘예상은 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성가시네. 하긴 사고 칠 인간이 이 천 명이 넘는데 내 예상대로 흘러가는 게 이상하지. 쯥...그래도 계속 이런 상태로 원정대를 끌고 가는 건 무리야.’
호지슨의 생각대로 류 현 또한 이 상황에 꽤나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니네가 무슨 사고를 치다가 뒈지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다. 알아서 몸 사리고 살아남도록.’ 해버렸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으니까.
‘...이런 경력도 필요하니까. 미리 경험 쌓는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서류 더미와 씨름 하려고 해도 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피로감이 상상 이상이었다. 대놓고 들이박으면 모르겠는데, 은근하게 대규모 원정을 지휘해본 경험이 없다는 걸 지적해오니 찍어 누르기도 애매했다.
경험이 없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지중해에서 검은 리치 성을 잡을 때도 지휘 비슷한 것도 해본 적이 없었다. 정말 군 지휘관이 하는 일은 해본 적은 더더욱 없었고 말이다.
그 덕에 스트레스가 배였다. 그렇지 않아도 익숙하지 않는 일인데, 밑에서는 공공연하게 소문 조장을 하고 있으니 신경 안 쓰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다.
아직 변변한 교전 한 번 없었는데도 이 지경이니, 본격적으로 교전이 일어나서 피해가 생기면 어떨지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
‘내가 이런 일로 스트레스 심하게 받는 타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말이야. 끙...’
‘지룡이라...음, 무력시위라도 한 번 해야 하나...젠장,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일이나 하자.’
류 현의 텐트가 불이 꺼진 건 그로부터 3시간 후의 일이었다.
***
“신이시여...저게 대체 무슨...”
“언제부터 마법사들이 스트라이커 역할도 겸하기 시작한 거야? 내가 한 달 동안 던전에 쳐 박혀 있는 동안 대격변이라도 일어났나?”
“마법사라는 거 뻥 아니야? 스트라이커들도 저 수준의 괴수랑 저렇게 엎치락뒤치락은 못해.”
“스트라이커가 아니라 스트라이커 할아버지가 와도 안 될 거다. 대체 마력통이 얼마나 큰 거야?”
“아니 이 미친놈들아 뭘 넋 놓고 있는 거야?”
“그럼 니가 저기 껴보든가. 난 절대 저렇게는 못 해. 아니, 할 수 있어도 안 한다.”
“저게 대체 어느 급이야? 샌 드래곤 중에서 제일 큰 놈도 저거보단 작지 않나?”
“종이 다르잖아 멍청아. 저거 분류명 아직 안 나왔나?”
“지룡. 지룡이라고 했었어.”
“엥? 발견자가 중국인이야? 그럼 중국에서 동네방네 광고 하고 다녔을 텐데.”
“중국인은 무슨. 최초 발견자 저기 있다.”
“칼날 늑대도 저 인간이 발견한 걸로 되어있지 않나? 대체 뭐야?”
“운이지 운.”
“운 같은 소리하네. 넌 저런 괴물을 운 빨로 혼자 잡냐?”
“솔플이라고? 구라치는 거 아냐?”
“너랑 나랑 똑같은 자료 받았는데 왜 너만 모르냐. 여자 번호 정리할 시간에 그것 좀 보지? 칼리프 클랜 측에서 공식적으로 보증했다는 것까지 적혀있다. 주면 좀 읽어라. 응?”
[끄르륵!] 퍼엉! 꼬리까지 하면 30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거체가 넘어가자 땅이 뒤흔들리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모래먼지 구름이 치솟았다.
[크아아!] 다시 몸을 일으킨 지룡의 몸뚱이는 다리나 아가리가 움직이는 게 신기할 정도로 상처투성이였다. 턱이 떨어지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의 깊은 상처가, 뼈까지 닿은 게 분명해 보이는 상처가 그 거대한 몸뚱이에 아로새겨진 상태였다.
이천에 달하는 플레이어 무리와 그들을 받쳐주는 병사 무리의 입방아 대상은 피를 흩뿌리며 죽어가고 있는 지룡이 아니라, 그 지룡의 몸뚱이에 매달려서 상처를 파내고 있는 세 여자였다.
화련, 희란, 혜라는 마법사라는 포지션을 부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지룡의 몸뚱이에 딱 달라붙어서 지룡을 넝마 꼴로 만드는 중이었다. 부족한 근력을 메우기 위해서 화련의 공간마법이나 혜라의 빙결마법이 역할을 톡톡히 했으나,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마법사 셋이서 스트라이커 마냥 지룡을 요리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녀들이 의도한 반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마법을 써도 디메리트 밖에 없는 근접전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이 일을 주도한 화련은 용잡이 팀을 제외한 원정대 소속 플레이어들에게 심리적 충격을 주길 원했다. 훈련을 겸하는 것도 있긴 했지만 주된 이유는 그것이었다.
‘거의 무료봉사나 다름없는데 왜 마스터가 먼저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해?’
화련도 귀가 있고 눈이 있으니 이 천 명이나 되는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흐르는 불평을 모를 수가 없었다. 불평을 토해내는 측이 면전에 대놓고 말을 내뱉지 않을 뿐 굳이 그것을 숨기지 않으려고 했기에 불온한 분위기를 읽어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사실이 화련을 더욱 화나게 했다. 이 원정대는 그들이 부탁해서 모인 게 아니라, 원정대 소속 플레이어들이 속한 조국이 그들을 모아서 용잡이 팀에게 부탁한 것이니까. 협회와 유엔에게 그 과정을 위탁한 것이고 속사정은 딱 그거였다.
그래도 자국 내에서는 나름 날린 이들이니 고분고분 따라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지휘 경력이니 검성빨이니 같은 소리를 들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류 현이 그런 일 있냐는 듯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지만 있는 사실이 없어지진 않았다.
‘트집 잡고 땡강 부리는 인간들한테는 무력 시위만한 게 없지.’
화련이 제안했을 때 류 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과 함께 굳이 그래야겠냐고 물었지만, 화련은 확신했다. 콧대 높은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이 이상 가는 방법은 없다고. 스트라이커 흉내까지 냈어야 했냐고 묻는다면 슬쩍 외면하겠지만.
‘훈련할 건 다 했는데 이렇게라도 써먹어 봐야지.’
그녀는 스스로 떳떳했다. 지룡의 송곳 같은 발톱이 머리 위로 떨어지자 그녀는 그 생각을 그만두어야 했다. 화련은 제 몸뚱이만한 폭을 가진 대검을 끌어당기며 훌쩍 날아올랐다.
혈조가 파이지 않은 단순하다 못해 무식한 모양새의 대검은 검신 내부에 박혀있는 드래곤 본 때문에 더 이상 생산이 어려워 반출 불가 판정을 받은 스위스산 명품이었다. 화련은 그러거나 말거나 마력검을 덧씌워 안에 박힌 드래곤 본을 불태웠다. 잔소리를 들어가며 마력검으로 흑강목을 찔렀던 나날의 분풍이라도 하는 것처럼.
드래곤 본에 반응한 마력검이 평소보다 더 서슬 퍼런 빛을 뿜으며 검신 위로 타올랐다. 동시에 화련의 눈동자가 하얀빛으로 백열하기 시작했다.
꾸웅! 공간 전체가 뒤흔들리는 것 같은 충격과 함께 몸을 뒤틀던 지룡의 움직임이 아주 잠깐 동안 완전히 멈추었다.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잠깐 멈칫한 것으로 보였을 그 틈을 화련은 놓치지 않았다.
스칵! 강철빔보다 더 단단한 지룡의 두개골을 가르는 느낌이 자루를 타고 전해졌다. ‘뇌에 안 닿았어!’ 화련은 휘두르던 자세에서 곧바로 찌르는 자세로 전환했다. 발 딛을 곳 없는 허공이었지만 그녀의 능력이 그녀를 누구보다 자유롭게 해주었다.
‘됐다!’ 화련은 반대편에서 얼음창을 쥐고 찔러 들어오는 혜라의 모습에 성공을 확신했다.
푸확! [크아아아아!] 화련을 기준으로 뒤쪽에서 모래바다를 폭발시키며 쑥 솟아오른 또 다른 지룡만 아니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별다른 조짐도 없는 갑작스러운 등장에 모두가 경악했다.
“아니 저거...”
“미친! 머리 통 하나는 더 크잖아!”
“아니 미친놈들아 넋 빼놓고 있을 때야? 장비 차고 빨리 준비해!”
“행크! 행크! 내 장비 어디 있어? 챙겨두라고 했잖아!”
“젠장, 누가 이럴 줄 알고...!”
그 혼란 때문에 세 여자의 사냥을 구경하고 있던 원정대는 무리 중에서 하나가 뛰어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뻐억! 콰직! 그들이 목격한 것은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지룡의 모가지가 뒤로 젖혀지는 장면뿐이었다. 플레이어의 좋은 시력으로 곧 지룡의 목 위에 올라타고 있는 류 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저거 설마...”
“그 설마인 거 같은데.”
“아니 저 팀은 대체 왜 저래? 괴수랑 못 싸워서 안달난 놈들만 모았나?”
“장비도 하나 안 찬 거 같은데?”
“지휘관이 닥돌부터 하면 어떻게 해?”
원정대원들이 우왕좌왕 하거나 말거나 류 현은 지룡에게 집중했다.
찰칵! 그의 손에 쥐여져있는 송곳의 손잡이 끝의 버튼을 누르자 낚시 바늘 같은 갈고리가 쑥 튀어나왔다. 버튼에서 손을 떼자 낚시는 원래로 들어갔고 류 현은 그것을 그대로,
푹! 딸깍! 있는 힘껏 지룡의 몸뚱이에 박아 넣고는 버튼을 두 번 눌러 낚시가 튀어나온 상태를 고정시켰다.
보통 송곳이라면 마력검의 힘으로 지룡의 몸뚱이에 박아 넣더라도 몇 초 안가서 녹아내렸겠지만, 이 송곳은 같은 지룡의 뼈로 만든 것이라 그럴 걱정은 없었다. 가공을 부탁받은 강 찬은 이런 것을 어디다가 쓰냐고 의아해 했으나 이렇게 쓸 일이 있지 않은가.
아무리 소재가 좋아도 지룡의 몸뚱이를 생각하면 박아 넣은 송곳은 가시조차 못 되는 수준이었지만 류 현은 만족했다. 에너지 드레인을 쓰지 않기로 했으니 이런 손잡이가 굉장히 중요했다.
‘오랜만에 순수 타격으로 상대해보겠네.’
그냥 심심해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마법사인 세 여자가 지룡을 스트라이커 마냥 농락하는 광경에 경악한 원정대원들을 보고 류 현도 느낀 바가 있기에 바보짓을 자청하려는 거였다.
‘결국은 실력이 신뢰를 만드는 거지.’
화련이 알았으면 대체 왜 그런 무식하고 소모적인 일을 하냐고 잔소리를 했겠지만, 그 화련은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지룡에 매달려 있느라 정신이 없을 터다. 여유가 있더라도 그녀도 비슷한 바보짓을 했으니 류 현은 걱정 없이 주먹을 끌어당겼다.
빠악!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파쇄권이 지룡의 대가리를 후려쳤다.